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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HOMMAGE

MADONNA EXPRESS

기획 · 안미은 기자 | 사진 · REX

입력 2015.11.10 14:30:00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2015 F/W 시즌 트렌드를 관통하는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신화, 마돈나 익스프레스에 탑승하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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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 꿈의 역

“언젠가는 이 도시를 정복하고 말 거야.” 홀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소녀가 존 F. 케네디국제공항을 등지고 내뱉은 말치곤 세다. 소녀의 주머니엔 겨우 35달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20세기 대중 문화를 바꿔놓은 스타 마돈나가 된다.

사실 마돈나는 16세 때부터 춤에 빠져 살았다. 미시간 주립 대학에 무용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가수의 꿈을 좇기 위해 무작정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가 뉴욕에서 처음 한 일은 도넛을 파는 일뿐이었다! 10달러를 벌기 위해 누드 모델을 하고, 질 낮은 언더그라운드 영화에도 출연했다. 스타의 무용담이 늘 같은 포물선을 그리듯, 이 시기의 궁핍한 뉴욕 생활은 마돈나를 강하고 성숙하고 야심 찬 여자로 만들었다.

많은 동성애자와 음악가, DJ, 그래피티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영감을 채웠다. 백그라운드 가수로 일하며 밴드를 결성해 마음껏 춤추고 노래했다. 한 대형 기획사의 눈에 띄어 1983년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데뷔 앨범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이 세상에 나온다.



MADONNA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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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ITION : 저항의 역사

“내가 헤픈 여자처럼 옷을 입었는지는 몰라도 상황을 장악한 것은 바로 나다. 그게 바로 여성주의의 요체 아닌가!”

‘성 상품화’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마돈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페미니즘과 저항의 아이콘이 됐다. 그의 뒤에는 게이와 레즈비언, 보수적이지 않은 여성주의자,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 등 저항적 집단들이 존재한다. 1990년 그가 순회 공연 제목으로 삼았던 ‘금발의 야망(Blond Ambition)’은 광고 문구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마돈나가 ‘너 자신을 표현해(Express Yourself)’를 부를 때 착용한 모노클(외알 안경으로 1920년대 레즈비언들이 권력을 가진 남자들을 풍자하기 위해 쓰던 소도구)도 가부장제에 대한 항의와 여성 동성애를 지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기저에 깔려 있다. 다시 돌아가, 원래는 갈색 머리인 그가 금발을 유지한 것은 ‘금발 머리 여자는 헤퍼’ ‘멍청해’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늘 에스코트를 받지’와 같은 고정관념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다. 그는 어쩌면 여자도 남자만큼 멍청해질 권리가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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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IT! : 논란의 중심지 역

마돈나의 음반과 업적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끝이 없다. 여성들의 의식과 대중문화사에 큰 의미를 남긴 사건들만 모아 정리한다.

‘보이 토이(Boy Toy)’라고 새겨진 벨트와 웨딩드레스 그리고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바닥에 몸을 문대면서 부르는 노래, ‘라이크 어 버진’은 마돈나의 베스트 퍼포먼스 중 하나로 꼽히며 ‘마돈나 워너비’를 외치게 했다.

1989년 발표한 4집 앨범 ‘라이크 어 프레이어(Like a Prayer)’를 섹시한 레드 블라우스를 입고 십자가에 묶인 채 노래해 신성 모독 논란에 휩싸인다. 이 곡을 직접 쓴 마돈나는 그에에 명성을 가져다 준 ‘라이크 어 버진’보다 이 곡을 더 의미있다고 뽑았다.

2003년 발표한 9집 앨범 ‘아메리칸 라이프(American Life)로 다시 한 번 추락을 맛보는 마돈나. 뮤직비디오에서 자국 대통령인 부시를 묘사한 사람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등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미국인들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당시 보이콧으로 인해 앨범이 37위에 머무르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다.

1992년 발간한 사진집 ‘섹스’.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원색적이라 비난했지만 출판 역사상 가장 화려한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기록됐다.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사진으로 가득한 불온서적이 아닌, 마돈나가 몸으로 표현한 진실된 섹슈얼리티다. 자신을 남성 문화의 소비 대상으로 여기는 물신주의를 이용해 이를 조롱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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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

많은 아티스트들의 선망과 욕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마돈나. 이후 무수히 많은 포스트 마돈나가 쏟아졌지만, 그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스타성에 대적할 가수는 없었다. 마돈나는 음악 그 이상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아티스트로 추앙받는다.

1990년, ‘금발의 야망’ 월드 투어 무대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원뿔 브라는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가 자신의 뮤즈인 마돈나를 위해 직접 디자인했다. 이 독특한 형태의 브라는 마돈나를 단숨에 글래머 스타로 만들며 패션계를 뜨겁게 달궜다. 이는 단순 파격에 그치지 않았다. 마돈나는 여성들이 여성인 것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즐기기를 바라면서 여성성을 극대화한 의상을 선보였다. 지금 레이디 가가가 그러하듯이. 그가 무대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노출 의상은 소극적인 여성들의 패션을 과감히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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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 현재 역

마돈나는 잠시 뜨다 사라질 것처럼 보였지만, 57세의 나이에도 불구, 13번째 정규 앨범 ‘레벨 하트(Rebel Heart)’를 발매하고 장기간 월드 투어를 떠났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섹시 퍼포먼스는 여전했고, 수녀 복장을 한 채 펼친 노출 공연은 세상을 또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마돈나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기에 섣불리 갖다 붙일 수식어가 없다. 마돈나는 그냥 마돈나다. 그에게 열광하는 많은 팬들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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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RETURN TO 1980’S

80년대 마돈나는 남자친구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은 헐렁한 점퍼에 레깅스를 신고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거나 가죽 점퍼,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은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닭 볏처럼 잔뜩 세운 머리에 입술은 빨갛게 물들인 채. 마돈나의 영향을 받은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1980년대를 대표하던 ‘마돈나 룩’은 한세기를 넘어 이번 시즌 트렌드가 돼 우리를 찾아왔다. 이제 패션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용기를 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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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 실패에 대처하는 법

피도 눈물도 없는 미국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톱 셀레브러티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돈나의 라이벌로 꼽히던 포스트 마돈나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물론 그도 영화, 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실패를 겪었고, 본업인 음악마저도 여러 번의 하락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실패를 이겨내는 법은 아주 간단했다. 1 음악에 실패하면 프로듀서를 비난하고 다른 프로듀서와 작업한다. 2 영화에 실패하면 감독을 비난하고 다른 감독과 작업한다. 3 사업에 실패하면 사업 파트너를 비난하고 다른 사업가와 일한다. 마돈나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이 ‘넘버 원’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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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LAIM

마돈나는 물질만능시대에서 물질을 숭배하는 게 비난받을 일이냐고 반문한다. 그의 말과 음악은 진실 혹은 대담하게 정곡을 찌른다.

MADONNA EXPRESS
디자인 · 최정미

여성동아 2015년 11월 6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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