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밋밋한 남자? 맛을 아는 남자! 이현우의 무한도전~ 여기자의 사심 커피 인터뷰

우먼동아일보

2015. 05. 21

가수 이현우는 조미료와 소금을 뺀 밥상 같다. 혹자는 ‘밍밍하다’고 하겠으나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맛에 점점 더 빠져들기 마련. 연예계에서 25년간 롱런한 비결 역시 그만의 ‘싱거운 매력’ 때문이 아닐까. 음악, 요리, 연기, DJ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묵묵히 존재감을 드러내온 이현우의 사소한 이야기들.


밋밋한 남자? 맛을 아는 남자! 이현우의 무한도전~ 여기자의 사심 커피 인터뷰

얼마 전 이현우(49)는 MBC ‘라디오스타 -밋밋한 남자들’ 특집에 출연해 그간 감춰뒀던 입담을 뽐내 화제를 모았다. 어떤 리액션도 없이 조근조근한 말투로 자폭 멘트를 던지며 뜻밖의 예능감을 보여준 것. MC들이 ‘로봇 연기’의 창시자라며 놀려도 실실 웃어넘기고, 사업 실패로 서울 이태원 소재 건물을 날려 “그 동네는 잘 가지 않는다”는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지는가 하면, 자신을 ‘김흥국 주니어’라고 소개하며 라디오 진행 중 있었던 어이없는 곡 소개 실수담을 늘어놓아 큰 웃음을 안겼다.

지난 4월 중순, 서울 연남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현우는 방송에서 보고 듣던 그대로, 어떤 질문에도 억양의 변화 없이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 모습이 한편으론 재밌기도 해, 집에서도 늘 같은 모습이냐고 물었더니 “평정심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허허 웃는다. 2009년 13세 연하의 미술 큐레이터와 결혼해 7세, 5세 두 아들을 둔 그는 실제로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화를 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저는 주로 아이들을 위로하는 쪽이에요. 혼내는 건 엄마 몫이죠(웃음). 사실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날마다 전쟁이에요. 아내가 점점 전투적으로 변해가는게 안타깝지만 그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봐요. 제가 바라는 건 훗날 아이들이 ‘아빠는 우리를 위해 요리도 해주고, 많이 놀아줬어’라고 기억하는 거예요. 그게 제가 바라는 궁극적인 행복인 것 같고요.”


밋밋한 남자? 맛을 아는 남자! 이현우의 무한도전~ 여기자의 사심 커피 인터뷰

요리는 나의 힘!
그를 얘기하면서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연예계 원조 ‘요리하는 남자’인 이현우는 두 아들의 친구들까지 불러다 음식 만들어 먹이는 걸 좋아해 수시로 홈 파티를 연다. 앞치마를 두른 채 스테이크를 굽고, 스파게티와 샐러드 등을 만들어 그럴듯하게 한 상 차려 내면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두 아들은 의기양양 입이 귀에 걸린다. 이현우는 결혼 초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산모에게 좋다는 식재료를 찾아가며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가 요리하는 모습은 그 자신도, 가족들도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방송에서도 노래하는 이현우보다 요리하는 이현우가 더 익숙한 것처럼 말이다.



‘차줌마’에 앞서 요리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인 그는 그동안 여러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여전히 방송가에서 요리 관련 섭외 1순위다. 지난 1월 종영한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 SBS ‘쿡킹 코리아’에서는 토니오 셰프와 팀을 이뤄 최종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매회 셰프 저리 가라의 포스로 진지하게 요리에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역시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방송한 건 그때가 처음”이라며 웃는다.

“매주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야 했는데 제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어요. 토니오 셰프가 아니었다면 우승은 불가능했죠. 그 친구 덕분에 요리하는 남자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웃음). 방송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이인데, 몇 주간 호흡을 맞춰보면서 재능이 많은 친구란 걸 알게 됐고 아예 제가 운영하는 회사로 영입했어요. 노래 실력도 뛰어나 조만간 제가 만든 음악을 한 곡 주려고 해요. 노래 잘하는 셰프도 멋지잖아요(웃음).”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JTBC ‘수요미식회’에도 5월부터 새 멤버로 투입될 예정이다. 첫 녹화를 앞두고 삼겹살과 곰탕 맛집을 다녀왔다는 이현우는 “그동안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여러 번 진행했는데, 요즘은 맛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전문성이 있어야겠더라. 무조건 맛있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자세히 설명할지, 요즘 많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음식 사업도 시작했다. 인터넷과 홈쇼핑을 통해 냉동 돈가스와 특제 소스를 판매하는 것. 돈가스는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즐겨 먹는 메뉴인 만큼 재료 선정에 특히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현우는 “고기가 신선하고 두껍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음식 사업이 구설에 오르기도 쉽고 유통 과정도 까다롭기 때문에 1년 가까이 시장조사를 했고, 여러 업체를 만나 최적의 조건을 찾았다. 이번엔 꼭 잘돼야 한다”며 웃었다.

‘라디오스타’에서도 밝혔듯이 그는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는 하고 있던 방송도 다 그만두고 대인 기피증에 시달릴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그나마 가족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펫독’이라는 의류 브랜드였는데 전국에 40여 개에 달하는 대리점이 생겼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회사를 잘 돌보지 않는 사이 내부 비리가 생겨났고, 결국 부도 직전까지 몰리면서 매일 집으로 날아오는 어음을 막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알짜배기 빌딩을 팔아야 했다.

“더 드라마틱한 건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모든 일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로부터 1년 정도 압박이 지속됐는데 아내에게는 일절 말하지 않았어요. 제 잘못인데 아내까지 힘들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당시 세무사가, 부도를 내는 게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했지만 끝까지 부도는 내지 않았어요. 저를 믿고 대리점을 낸 분들께 너무 죄송해서 그럴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 이후에 아는 동생과 갈빗집을 냈다가 그것도 말아먹고, 네일 숍도 차렸다가 그만두고…. 지금까지 한 사업만 20개가 넘고 금액으로 따지면 50억원이 넘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노래하고 연기해서 번 돈을 사업으로 다 날렸다고 보면 돼요. 그때는 왜 그렇게 조바심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이 길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는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나만의 것을 이뤄내자 싶었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죠.”


밋밋한 남자? 맛을 아는 남자! 이현우의 무한도전~ 여기자의 사심 커피 인터뷰

인생 공부 제대로 한 사업 실패 경험
결혼 후 그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 부양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깨가 무거워진다지만 오히려 그는 반대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욕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면 가정을 꾸리고부터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욕심 없이 사는 법을 배우게 됐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나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싶더라고요. 미국에서 한국 올 때, 노래하고 싶다는 꿈 하나만 가지고 빈손으로 왔는데 이 정도만 이룬 것도 축복받은 삶이죠. 30대 때 번 돈은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리고 무조건 잃은 것만은 아니에요. 흔히들 사업으로 날린 돈을 인생 수업료라고 표현하던데, 저 역시 배운 것이 많아요. 솔직히 그때는 제가 너무 몰랐어요. 옳은 말을 해주는 사람도 옆에 없었고, 아니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했겠죠. 아마 저 빼고는 다 ‘왜 저 사업을 하나’ 싶었을 거예요(웃음).”

결혼 전 ‘우주의 중심은 나’였다면 결혼 후 그의 인생의 중심은 가족으로 바뀌었다. 아내가 새 생명을 품고, 낳아서 키우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면서 그의 가치관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그는 아이들이 주는 행복에 대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 초월의 감정”이라고 표현했다. 결혼 전에는 가요계 대표 노총각으로 불리며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즐겼던 그가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아이들과 보낸다. 개인적인 술 약속도 거의 잡지 않는데, 아이들 친구 아빠들과 함께 키즈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산과 들로 다니며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 또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놀이. 이현우는 EBS 육아 프로그램 ‘부모’를 진행한 경험이 아이들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저희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감성은 풍부한 것 같아요(웃음). 지금 나이에는 자연을 접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을 관찰하는 것만큼 감성 개발에 좋은 게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너무 바쁘셨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이민 가기 전까지 시청에서 근무하셨는데, 통금 시간이 넘어 귀가하시는 건 다반사였고, 항상 집에 손님들이 끊이질 않아서 어머니는 술상 차리기 바쁘셨죠. 그래서 저는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많이 놀아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요즘은 모든 게 오염돼 있는 세상이잖아요. 아이들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상당 부분을 걸러서 아이의 머리와 가슴 속에 넣어줘야 할 것 같아요.”


제2의 배철수를 꿈꾸다
미국 카네기멜론대를 다니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 오티스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현우는 4년 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개인전 ‘하트 블로섬 팜’을 열었다. 노랑, 빨강, 보라 등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낸 하트 그림 17점을 전시했는데, 특이한 건 하트에 삐죽삐죽 가시가 나 있다는 것이다. 연약한 이미지의 하트가 외부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만들어냈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는 곧 그동안 그가 살면서 받았던 상처들에 대한 방어책이기도 하다.

“그림은 음악 작업과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사실 그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많았는데, 한 가지 콘셉트를 잡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동안 취미로 습작만 해왔다면 이제는 전시회에 발표할 그림들을 그리려고 해요. 한때 아틀리에를 따로 두고 거기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지인들 술 마시는 아지트가 돼버려서(웃음), 얼마 전 이사하면서 아예 집 안에 그림 그리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아내가 옆에서 봐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도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여러모로 잘한 것 같아요. 조만간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아트 페어가 열리는데 거기에 출품할 예정이에요. 개인전은 내년에 한 번 더 열 생각이고, 해외 아트 페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요.”

연기에 대한 꿈도 여전하다. 비록 ‘로봇 연기’의 창시자라는 놀림 아닌 놀림도 받지만 그에게 연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2003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시작으로 ‘결혼하고 싶은 여자’ ‘웨딩’ ‘달자의 봄’ ‘오 마이 레이디’에 이어 지난해 ‘루비반지’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를 펼치며 ‘실장님’ 캐릭터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그래도 연기가 점점 나아지는 것 같지 않냐”며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연기는 정말 즐거운 작업이고, 언젠가는 꼭 잘하고 싶은 분야다. 실장님 말고 다른 재미있는 캐릭터도 맡고 싶다”며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본업인 싱어송라이터의 삶 또한 평생 그가 걸어갈 길이다. 얼마 전 SBS ‘K팝스타 시즌4’를 통해 이현우 1집 수록곡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가 재조명됐는데, 그는 24년 전 잘 다니던 (그래픽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최근 들어 가수 활동을 활발히 하지는 못했지만 9년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사업 실패 후 모든 활동을 그만둔 상태에서 유일하게 했던게 라디오 방송이에요. 그만큼 제게는 소중한 공간이죠. 화려하거나 요란스럽지 않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 참 좋아요. 대중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고요. 고정 청취자들이 꽤 많은데 이제는 다 가족 같아요(웃음). 아침마다 다양한 사연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도 듣고, 제 얘기도 들려드리면서 많은 위안을 얻어요. 배철수 형님처럼 오랫동안 장기 집권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하.”

25년 동안 잔잔하지만 늘 새로운 이슈로 대중과 소통해온 이현우는 연예계 생리를 ‘수건돌리기’ 게임에 비교했다. 지금 당장 등 뒤에 손수건이 놓이지 않더라도 열심히 게임에 동참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 그는 “운이 좋아 가수가 됐고, 버티니까 새로운 기회도 찾아왔다. 어차피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 만큼 조급한 마음 버리고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는 게 롱런하는 비결인 것 같다”고 밝혔다.



글 · 김유림 기자|사진 · 조영철 기자
장소협찬 · 넘버포(070-7782-7616)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