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부회장은 20대 때부터 샤르코마리투스(Charcot Marie Tooth, CMT)라는 유전성 신경 질환을 앓아왔다. CMT는 염색체의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으로, 근육 약화 및 위축, 균형감각 상실, 신경감각 손실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보통 40세 이후 다리가 얇아지며 근력 장애가 생기고, 심하면 보행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삼성가는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가 이 병을 앓았으며, 3세 가운데는 이미경 부회장이 가장 심하고 이재현 회장도 50세 전후로 증세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대에 발현되지 않더라도 격세로 유전될 수 있으며 아직 치료제가 없어 더욱 무서운 질병이다.

지난해 1월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 마케츠’와의 인터뷰 당시 “예전보다 더 많이 일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며 의욕을 보였던 CJ 이미경 부회장은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미국에서 치료 중이다.
또한 2010년에는 노희영 전 브랜드 전략 고문을 영입해 비비고, 계절밥상 등을 잇달아 론칭해 성공시키면서 경영 수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노희영 고문이 세금 탈루 혐의에 연루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수사를 받는 와중에 노희영 고문이 CJ제일제당 마케팅총괄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이례적인 사건도 있었다. 이로 인해 잡음이 커지자 노 전 고문은 같은 해 9월 회사를 떠났으며 올 1월에는 벌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노 전 고문을 영입해 최측근으로 뒀던 이미경 부회장의 입지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10월 미국행을 선택한 데는 건강상의 이유 외에도 이러한 그룹 내부의 사정이 겹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CJ그룹의 경영은 이미경 부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이 이끌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미경 부회장은 잠깐씩 한국을 오가며 굵직한 일만 챙기고 있다. CJ그룹의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미경 부회장은 그룹 경영상 중요한 일만 전화나 이메일로 공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미경 부회장의 건강에 대해서도 “CMT 발병 이후 미국에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이후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증세가 더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재현 회장 신장이식 수술 후 복용약이 지병 악화시켜

이재현 회장은 신장이식 후유증과 우울증 등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항소심 선고 공판 당시.
이 회장의 병세가 악화된 배경에는 여러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신장이식 이후 평생 투여받아야 하는 면역 억제제가 기저 질환인 CMT와 상극 관계라 치료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항소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두하는 이 회장의 모습을 보면 다리를 비롯한 온몸이 앙상하게 말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신장이식 후 체중이 51kg으로 줄어든 뒤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또한 면역 억제제를 다량 투여하면서 간 독성에 의해 간 세포도 손상된 상태. 한때 간 수치가 정상치의 5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위험 때문에 면역 억제제 투여량을 줄이면 다시 신장 기능이 급속히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에는 홍역 바이러스에 감염돼 고열과 발진 증상이 나타나 가족 면회도 금지된 상태에서 3주간 격리 치료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한때 ‘이재현 회장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위독하다’는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CJ 측은 이는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이재현 회장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한 미래,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가 오너로 평생 아쉬울 것 없이 살아오다가 건강과 명예를 모두 잃고, 여기에 수감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겹친 탓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회장은 우울증 약도 복용 중이며, 이외에 고지혈증도 앓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구속 집행 정지 기한은 3월 21일로, 연장 신청을 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그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재계 인사들은 이 회장의 건강 상태를 우려해 가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이 회장은 가석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형법에 따르면 가석방은 (형이 확정돼)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운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이재현 회장은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형이 확정되지 않은 데다가, 형기 3분의 1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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