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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한글교육도 글로벌 시대에 맞춰야죠”

재외동포재단 이종미 부장

글·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4.08.14 09:55:00

재외 한글학교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
행사를 주최한 재외동포재단의 이종미 부장은 이들을 미래 대한민국의 보물이 될 원석을 다듬는 사람들이라 부른다.
“재외동포 한글교육도 글로벌 시대에 맞춰야죠”
“선생님, 독도를 일본에 줘버려요!”

미국의 한글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아이가 선생님에게 던진 돌발 발언.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일본인 친구와 싸우기 싫다는 아이의 말에 선생님도 난감해졌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 그 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는 재외동포 2세대, 3세대들에게 그저 뿌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에겐 독도 문제보다 같은 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재외동포 2세대, 3세대들은 한글학교보다 먼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학교를 다니며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고 익힌다. 그 부모 세대도 이제는 대한민국이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한다. 뿌리는 같지만 법적으로 그들은 엄연히 외국인이다. 우리가 그렇듯 그들도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고, 자식 교육이 평생의 과제이며,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웃과 동료 그리고 친구들이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혈연과 혈통만을 강조하며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재외동포 소외시키는 배타적 민족주의

재외동포재단 교육지원부 이종미(53) 부장, 그의 고민도 여기서 출발한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신문 알림란 구석에 실린 재외동포 지원 기관 설립 기사 한 줄에 이끌려 다니던 외국계 은행을 무작정 뒤로하고 지원서를 제출했다는 그는, 유학 시절부터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세계 각국을 돌며 생활하던 시절까지를 합하면 꽤 긴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그래서 재외동포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혼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 국민들 정서 속에는 ‘우리가 어려울 때 너희는 너희 가족들끼리만 잘살려고 미국이며 어디로 건너간 거 아니냐’라는, 재외동포들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재외동포들에게 한국은 ‘친정’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그분들이 해외에 나가 살게 된 계기인데, 재외동포의 대부분은 독립운동이나 강제 징용 등을 이유로 해외에 나가신 분들의 자손이거든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방 이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 스스로도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다 보니 그분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여력이 없었던 겁니다.”

정부가 재외동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게 된 후에도 문제는 계속됐다. 초기의 우리네 재외동포정책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우리는 하나니까, 하는 일차원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물 수 없었다. 각자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채 무조건 무언가를 주거나 가르치려고만 드는 정책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특히 재외동포 1세대가 아닌 2세대, 3세대들에게는 부모 세대의 고향인 대한민국의 언어와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데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영 멀어질 것만 같았던 재외동포와 고국의 거리를 좁혀준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사태였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국가적 위기가 재외동포들과 대한민국을 상생의 관계로 되돌려놓는 계기가 됐죠. 한국이 해외 기업들과 경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투자와 무역의 물꼬를 트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국가들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한 분들이 바로 재외동포들이거든요.”

재외동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지난 1월과 2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공립학교 교과서의 동해 병기 법안이 85%의 찬성표를 얻으며 통과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도 마크 김이라는 재외동포 2세 3선 하원의원이었다. 이에 힘입어 미주 한인 단체들은 올해 11월 중간 선거와 2016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미 국무부와 연방 정부를 상대로 한 동해 병기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 공식 결성된 ‘한상네트워크’는 우리뿐만 아니라 재외동포들에게도 커다란 경제적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한상네트워크’는 세계 각지의 재외동포 경제인들과 국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해 상생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민족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나가기 위해 마련된 국제 비즈니스 컨벤션이다.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윈윈 전략 ‘한상네트워크’

“라오스에서 코라오 개발회사라는 이름으로 중고 자동차 부품 조립과 판매업을 하던 분이 계셨어요. 지난 2002년 제1차 세계 한상대회 당시만 해도 한상네트워크에서 요구하는 기업 규모나 매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주 작은 회사였지요. 물론 당시 라오스의 국가 상황이나 경제 규모를 따졌을 땐 한상네트워크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그 코라오 개발회사를 운영하시던 오너분의 의지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와 대한민국의 관계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모시켜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었던 거죠.”

지금은 라오스 최대의 민간 기업으로 성장한 ‘코라오 그룹’ 오세영 회장에 관한 이야기다. 한상네트워크에 참여한 기업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동반성장한 코라오는 라오스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픈 직장 중 하나로 꼽을 만큼 내실과 규모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조립·판매뿐만 아니라 금융, 유통과 물류, 바이오 에너지, 건설, 관광과 레저 등으로까지 규모를 확장하며 인도차이나 반도를 주름잡고 있다.

“재외동포 한글교육도 글로벌 시대에 맞춰야죠”

2014 ‘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 참가자들이 7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글 사랑’을 표현했다.

한상네트워크는 비빌 언덕 없던 재외동포들에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라는 진득한 뿌리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한상네트워크의 성과는 또 있다. 재외동포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들이 마음을 열고, 이방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갈등과 번민을 우리 앞에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 ‘영원한 이방인’ 등을 펴낸 작가, 미국 프린스턴대 이창래 교수가 그런 케이스다.

“지난해 제15회 차세대한인대회 강단에서 이 교수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토론하기를 즐기시던 부모님이 현지인과의 모임에만 참석하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용해지셨다고요. 언어 소통이 쉽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덕분에 아들인 이 교수에게 영어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그분의 저서가 미국에서 수많은 상을 휩쓴 필독서가 된 데는 그런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래서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욱 쉽지 않았다고 해요. 돌아가신 어머님을 고국의 선산에 묻으며 그 비석에 가족들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는 얘길 듣고서야 가족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더군요. 그분의 일화는 재외동포 2세, 3세라면 누구나 겪는 갈등과 번민입니다.”

한글학교에서 힐링하다

이 부장은 그들이 이러한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줄이고 사회의 밝고 건강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말과 글, 역사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그 뿌리는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열쇠다. 경제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연대 의식을 교육 네트워크로 확장해나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 설립된 재외동포 대상 한글학교는 1906년 최초로 세워진 하와이 한인사회한글학교를 비롯해 전 세계 1백18개국 1천9백18곳에 달한다. 대부분은 재외동포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세워진 야학 같은 기관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한류 바람이 뜨겁게 불면서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글을 가르치는 기관도 늘어나고 있지만, 한글 교육과 한국 문화 홍보 등에 중점을 둔 해외 한국어 보급 기관들과 재외동포 대상의 한글학교는 그 의미부터가 다르다. 생김새와 뿌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는 그들에게 한글학교란 오롯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치유의 장이자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생적으로 생겨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기관들인 만큼 그들이 느끼는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글학교의 주요 구성원은 중학교 미만의 학생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유아·초등생이 70% 이상을 차지하죠. 교사 대부분은 자원봉사자들입니다. 그 나라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거나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분들, 혹은 학부모나 유학생들도 있습니다. 한글 교육 전문가는 10%도 되지 않죠. 유아·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도록 훈련된 전문가는 더욱 적습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재외한글학교교사 초청연수 기간 동안 현직에서 근무하는 유초등 교사들을 강사로 초빙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한글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또 있다. 각 나라마다 다른 현지 사정을 반영하기 힘든 일률적인 내용과 구성의 교재다. 그마저도 보급이 쉽지 않아 교사들은 늘 교재 때문에 애를 태운다.

“다행히 올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다솜한글학교에서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 한국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이번 연수 기간 동안 다솜한글학교 최영미 교장께서 전 세계 한글학교 교사들 앞에 선보였습니다. 딱딱한 교재보다는 각국의 사정에 맞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한 거죠.”

재외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생적으로 뿌리내린 해외의 한글학교와 야학 등을 지원하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교사들의 교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재외동포재단이 지난 1999년부터 매년 시행하고 있는 행사로, 올해는 7월 11일부터 18일까지 열렸다. 국적도, 삶의 방식도, 본래의 직업도 모두 다르지만 한국어 교육이 우리 미래 세대가 고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 하나만은 모두가 같다.

“정부에서도 해외 한글학교를 설립·지원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7백만 명이 넘는 동포 사회를 아우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재외동포들을 해외 각국에서 그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국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맞는 한글 교육과 역사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자생력을 신뢰하고 전략적 지원을 펼쳐나간다면 우리가 가진 상생의 힘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성동아 2014년 8월 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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