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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재혼 공식이 있다

“재혼 시기는 사별 1~3년 후, 상대는 세련된 스타일의 전문직 여성”

글·김명희 기자|사진·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4.02.17 17:58:00

‘회장님’들의 재혼이 요즘 재계 화제다. 여기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금슬 좋던 조강지처와 사별 후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직 여성과 비교적 이른 시간 내에 웨딩마치를 울린다는 점이다. CEO들의 황혼 재혼 비하인드 스토리를 취재했다.
15세 연하 엘리트 동문과 재혼한 구학서 신세계 회장

구학서(68) 신세계 회장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모교 연세대 후배인 김은경(53) 씨와 재혼했다.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구 회장의 평소 성격답게 양가 가족들만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김씨는 구 회장보다 15세 연하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초혼이다.

구 회장은 2012년 우면산 산사태 때 사고로 아내 양명숙 씨를 잃었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구 회장 부부는 재계에서 금슬 좋은 잉꼬부부로 유명했으며, 특히 구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출발해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루기까지, 첫 직장인 삼성에 입사한 후 연애로 만나 결혼한 아내의 내조가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 구 회장은 경기상고-연세대 출신으로 삼성에 입사,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게 발탁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으며 1996년 신세계로 옮겼다. 2009년부터 회장직을 맡았으며 현재는 대외 업무에 치중하고 있다. 지난해 기업 분석 전문 업체 CXO의 조사에 따르면 그는 1백97억원 상당의 이마트와 신세계 주식을 보유,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에 이어 비(非)오너 출신 임원 가운데 두 번째 주식 부자다.

구 회장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대지 및 임야 2970㎡(9백여 평), 건평 300㎡(1백 평)가 넘는 넓은 집에서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그의 상황을 딱하게 여긴 가족과 지인들이 적극 재혼을 권했으며 마침 연세대 동문들의 소개로 김씨를 만나 좋은 결실을 맺게 됐다.

김씨는 범죄사회학 박사로, 연세대 로스쿨 겸임교수로 일했으며 동안에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다. 그는 사이버성폭력, 스토킹 등 여성이나 아동 대상 범죄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워커홀릭에 가까울 정도로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인데, 이런 면에서는 구 회장과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구학서 회장은 업무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 강연 원고나 기고문 등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력가와 결혼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결혼과 동시에 일을 포기하는 것과 달리 김씨는 지금도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 뒤 해외로 짧게 신혼여행을 다녀왔으며, 예전부터 살던 서울 우면동 형촌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그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구 회장과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는 집은 배우 심은하가 결혼 전 살던 곳으로, 현재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입주해 있다. 구 회장은 산사태 후 6개월 정도에 걸쳐 집을 리모델링해 거의 새집처럼 단장했다.

한국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재혼 공식이 있다
20세 연하 여성과 새 출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신창재(61) 교보생명 회장은 구학서 회장보다 한 달 앞선 지난해 11월, 40대 초반 여성과 웨딩마치를 울렸다. 초혼인 부인은 이화여대 출신으로, 모교 기획예산처 교직원으로 일하다 결혼하면서 퇴직했다. 신 회장은 이런 사실을 지난해 12월 임원진 송년회에서 직접 공개했다.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의 2남 2녀 중 장남인 신 회장은 경기고-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모교의 산부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불혹이던 1993년 부친의 뜻에 따라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2010년 사별한 아내 정혜원 씨와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정씨는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중매로 신 회장과 결혼했는데 소탈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 덕분에 주변의 평판이 좋았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지내던 그는 2004년 남편의 권유로 봄빛여성재단을 설립하고, 성매매 피해 여성 돕는 일을 해왔다. 그랬기에 그가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고 얼마 안 돼 사망하자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잘 살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현재 봄빛여성재단은 문을 닫은 상태.

신 회장은 아내와 사별한 후 모친 유순이 여사가 위독해지자 2011년 서울 성북동 본가로 들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2012년 어머니마저 별세하자 홀로 지내다가 이번에 재혼하면서 그곳에 새살림을 차렸다. 신 회장은 최근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우리은행 인수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혀 금융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자산 규모가 75조원에 이르는 교보생명은 교보증권과 교보악사자산운용, 교보문고 등 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신창재 회장은 이 가운데 33.8%를 보유했다.

한국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재혼 공식이 있다
회장님들의 재혼, 그것이 궁금하다


Q1. 사별 후 일찍 재혼하는 이유는.

구학서 회장, 신창재 회장, 김재철 회장은 모두 아내와 사별 후 1~3년 만에 새장가를 들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이른 감이 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 이웅진 대표는 이에 대해 “사별한 남성들은 집안일을 혼자 챙겨야 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재촉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남성들이 재혼을 하는 데 걸림돌은 경제력과 자녀들의 반대인데, 대기업 회장들은 이런 점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쉽게 재혼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Q2. 전문직 여성들에게 끌리는 이유는.

재벌 회장들은 자녀 결혼에 있어서 상대 집안의 배경을 중시하고, 심지어 정략결혼을 시키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황혼 재혼을 할 때는 배경보다는 살면서 터득한 안목을 바탕으로, 사람 됨됨이나 매력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끌림. 이웅진 대표는 “사회적 지위가 높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성들은 나이 차가 나는 여성적인 스타일의 이성을 선호한다. 세련되고 건강한 이미지에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지성과 사교적인 성격도 중시한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그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잘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호감을 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Q3. 재혼 후 상속 문제는.

최근 정부가 배우자의 선취분을 50%로 늘리는 상속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라, CEO의 재혼은 상속에 관한 한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 특히 교보생명의 경우엔 아직 자녀들에 대한 자산 승계가 전무한 터라 이 문제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개정안은 혼인 기간, 재산 형성 기여도 등을 참작해 법원이 배우자의 선취분을 감액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여도 문제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외국의 경우는 보통 혼전계약서를 통해 문제의 소지를 아예 차단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혼전계약서를 쓰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이웅진 대표의 설명.


결혼도 재혼도 초스피드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김재철(79) 동원그룹 회장은 지난해 4월 60대 여성과 재혼했다. 두 사람은 2012년 10월 김 회장 동생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한다. 김 회장은 첫 아내인 고(故) 조덕희 여사와의 사이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과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조 여사가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던 탓에 지친 김 회장을 위해 자녀들이 적극 재혼을 권유했다는 후문.

김재철 회장의 연애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결혼도, 재혼도 모두 만난 지 6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전남 강진의 농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원양어선 선장에서 시작해 동원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특유의 부지런함과 빠른 판단력, 추진력 등이 연애와 결혼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동원그룹은 자산 규모 3조1천37억원(2012년 기준)으로, 공기업을 제외하면 재계 서열이 38위다. 김 회장은 선장 시절이던 1962년 친구의 소개로 조 여사를 처음 만나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는데, 김 회장이 동원그룹을 일구는 동안 묵묵히 내조하며 그룹 장학회를 꾸리던 조 여사는 2012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재철 회장의 새 아내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이는 미인으로, 수준급의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이고 유쾌한 성격이라고 한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등 예술 계통에서 종사했으나, 현재는 일을 그만두고 동원그룹에서 마련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동원 측은 “경영자의 개인적인 사생활이라며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재철 회장은 고령에도 불구, 정기적으로 서울 양재동 사옥으로 출근해 업무를 직접 챙기고 있다. 김 회장은 워낙 건강한 체질에다 다방면에 식견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문학에 관심이 많아 2008년 조선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자녀들이 어릴 때는 책을 많이 읽게 하고 꾸준히 독후감을 쓰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덕분에 예술 계통에서 일한 새 아내와 관심사가 비슷해 대화가 잘 통했다는 후문. 두 사람은 현재 김 회장 소유의 서울 서초동 트라움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다. 김 회장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265㎡(80평) 빌라 2개 층을 터서 만든 복층 구조로, 실거래가는 40억~50억원 선이다.

한국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재혼 공식이 있다
후배 의사와 재혼한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

박용현(71) 전 두산그룹 회장은 2009년 동문 후배인 의사 윤보영(51) 씨와 재혼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의대 동문회에서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으며 결혼식은 서울 근교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소박하게 치렀다.

박 전 회장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마찬가지로 경기고-서울대 의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첫 아내인 고(故) 엄명자 여사는 이화여대 음대 출신으로, 두 사람은 20대 중반이던 1968년 결혼했으나 엄 여사는 박 전 회장이 서울대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박 전 회장은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연강재단 이사장,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등을 맡아 사회 공헌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윤씨는 결혼 초까지 서울 양천구에서 소아청소년과 병원을 운영했는데, 친절하고 꼼꼼한 진료로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지만 결혼 2년 후 병원 문을 닫고 지금은 내조에만 주력하고 있다. 수수한 외모에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며 결혼 후에도 재벌가 안주인답지 않게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부부는 종종 서울대 의대 동기 모임에 함께 참석해 부부애를 과시하기도 한다. 동기들이 운영하는 다음 카페에는 부부가 함께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진, 부부 동반 골프 모임에 참석했을 당시의 사진 등이 게재돼 있는데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다.

한국 대기업 회장들에게는 재혼 공식이 있다
35세 연하 재혼녀에게 주식 전액 넘겨준 영풍제지는 지금…


재계 오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재혼을 한 이는 이무진(80) 영풍제지 회장. 특히 그는 지난해 1월 35세 연하의 아내 노미정(45) 부회장에게 자신이 보유한 주식 1백13만8천4백52주(51.28%)를 전량 증여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기존에 주식 4.36%를 보유하고 있던 노 부회장은 영풍제지 지분 55.64%를 확보하면서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됐다.

노 부회장은 이무진 회장과 함께 경기도 평택에 있는 본사에 정기적으로 출근해 업무를 직접 챙기고 있다. 하지만 경영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영풍제지의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12%, 80% 감소한 5백11억원, 19억원. 경영 실적이 악화됐음에도 이무진 회장과 노미정 부회장은 상반기 급여로만 18억원을 받아갔으며, 연말 배당금도 24억원이나 챙겼다. 이에 지난해 10월 한 소액주주가 회사의 회계장부 열람을 청구하는 사건도 있었다. 게다가 노 부회장은 지난해 3월과 5월에 걸쳐 주식을 담보로 37억원의 대출을 받았다가 이 중 일부를 상환했으며, 11월에도 20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이런 와중에 이무진 회장의 장남이자 영풍제지 대표이사를 지낸 이택섭 씨와 법정 싸움에도 휘말렸다. 이씨는 지난해 3월 새어머니인 노 부회장을 법원과 검찰에 고소, 고발했다. 그는 소장에서 “노 부회장이 재력가인 아버지(이 회장)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뒤 불법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받아 쌍둥이 자녀를 낳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노미정 부회장 측은 이와 관련된 취재에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노 부회장의 배경도 미스터리다. 이에 관해 이무진 회장은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관련 일을 했다”고만 밝혔다.


여성동아 2014년 2월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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