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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신’ 허재 아들로 산다는 것은

웅과 훈이 말하다

글·김민주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4.01.15 13:49:00

농구를 몰라도 허재는 안다. 지금까지 농구 천재, 농구 대통령, 농구의 신 등 화려한 수식어로 불리는 사람은 그뿐이다. 두 아들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과연 신을 넘어설 수 있을까.
‘농구의 신’ 허재 아들로 산다는 것은
‘농구의 신’ 허재 아들로 산다는 것은
12월 겨울,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연세대 실내체육관 앞에 서니 감회가 남다르다. 날 선 바람으로 몸과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었는데, 농구 코트를 보는 순간 얼어붙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렸다. 20여 년 전, 이상민과 우지원을 보러 몰려든 인파를 뚫고 기를 쓰고 달려들던 한 여고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함성과 열정, 치열했던 승부에 푹 빠져 지냈던 여고 시절의 추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 이상민과 우지원은 이곳에 없다. 대신 미래의 주인공을 꿈꾸는 그들이 있다. 바로 허재 감독(전주 KCC)의 아들 웅과 훈 형제다. 체육관 반대편에서 허웅(22·187cm)과 허훈(20·182cm)이 툭툭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걸어왔다. 멀리서도 20대 초반의 풋풋한 젊음이 느껴졌다.

형 웅은 중학교 1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고 훈은 형보다 조금 빠른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연히 농구를 좋아했겠지’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둘 다 농구보다 축구가 더 좋았단다. 한국의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 차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심지어 둘 다 초등학교 때까지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허재가 코치 연수차 가족과 함께 미국에 머물 때 형제는 농구에 눈떴다. 미국은 농구의 나라였던 것.

“어디를 가나 농구 골대가 있고 누구나 농구를 즐겨요.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해서 친구가 없었는데 농구를 하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어요. 미국에 있는 동안 농구가 좋아져서 정식으로 농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허웅)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웅은 아버지에게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 모두 반대했다. 웅은 초등학교 때까지 성적이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고 줄곧 반장을 해온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부모는 아들이 운동보다 공부로 승부하기를 바랐다. 더욱이 운동선수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너무나 잘 알기에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옆에서 그런 아버지를 늘 지켜본 어머니도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아셨죠. 자식만큼은 다른 길을 가기 바라셨어요. 그럼에도 계속 농구를 하겠다고 우겼더니 결국 허락하시면서 조건을 달았어요. ‘이왕 하려면 1등을 하라’고요.”



“이왕이면 1등 하라”는 말이 더 무서워

일단 아들의 농구 입문을 허락하자 허재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먼저 자신의 모교이자 농구 명문인 용산 중·고등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웅은 용산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버지가 농구 천재라 해도, 이미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농구를 해온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기본기부터 부족했다. 자존심이 상해서 잠시 포기할까 고민도 했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왕 하려면 1등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부족한 만큼 더 배우고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틈틈이 아버지를 찾아가 묻고 또 물었다.

“아버지에게 배울 때마다 확실히 실력이 늘었어요. 또래에 비해 늦게 시작했으니 부족한 것은 당연했고, 아버지의 특훈이 기본기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됐죠.”

그러나 아버지가 늘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허재의 아들’이라는 왕관이 그를 짓눌렀다. ‘아버지만큼 잘할까?’라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압박했다. 웅이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자 “아버지의 후광으로 뽑혔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묵묵히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대표팀에 합류할 때마다 그런 말이 돌았어요. 다 아버지 후광이라고요. 어쩌면 그 말 덕분에 더 열심히 농구를 한 것 같아요. 아버지의 덕이 아니라, 제 실력으로 됐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적어도 저 때문에 부모님이 욕먹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요. 주변의 그런 채찍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허웅)

형처럼만 하니 어느새 고교 톱 선수

부모의 기대와 걱정을 한 몸에 받은 형과 달리 훈은 형이 닦아놓은 길을 그대로 밟은 ‘따라쟁이’여서 지금까지 큰 고민은 없었다.

“형 따라 농구 하다가 저도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선 거죠. 저는 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느껴본 적도 없어요. 사실 아버지는 제가 둘째라서 별로 신경 쓰지 않으세요. 그냥 ‘열심히 해라. 다치지 말라’고 하는 정도?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난 적도 없고요. 눈치가 빨라서 그런가?(웃음) 형이 혼나면 옆에서 눈치껏 혼날 짓을 안 하거든요.”

훈은 2014년 연세대에 입학할 예정이어서 아직은 고교생 신분. 몸은 다 자란 청년인데 말투나 표정에서는 소년 느낌이 물씬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생활 소년도 대학에 들어가면 농구 말고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단다.

“미팅도 하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어요. 아! MT도 가고 싶어요. 친구들과 술을 먹어본 적이 없거든요. 지금까지 집, 체육관, 학교만 왔다 갔다 하며 살았죠. 농구 선수인데 키가 안 클까 봐 무조건 밤 11시면 잠자리에 들었거든요. 어머니가 저희 생활 습관을 정말 잘 만들어주셨어요.”

‘농구의 신’ 허재 아들로 산다는 것은
‘농구의 신’ 허재 아들로 산다는 것은

매의 눈으로 형제의 농구 실력을 분석하고 엄하게 가르치는 아버지 허재.

하지만 훈은 이미 2013년 11월 28일 연세대 입학 예정자 자격으로 대학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하필 어떤 시합보다 부담이 큰 디펜딩 챔피언 고려대와의 일전(2013 KB국민은행 농구대잔치)이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8득점 3리바운드 3점슛 2개를 기록해 인상적인 대학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형제의 동반 출전을 기대했던 관중은 형 웅이 발목 부상으로 결장하자 아쉬워하기도 했다. 훈은 자신의 데뷔전에 대해 “고등학교 시합과 달리 선수들이 키가 크고 힘이 좋아 힘들었다”면서 “앞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해서 힘을 기르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웅은 “동생이 100%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첫 게임치고는 잘했다”는 격려를 잊지 않았다.

웅은 슈팅 가드로 대학 농구 리그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현재 또래 중에 경쟁자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편인 훈은 포인트 가드로 고교 시절 랭킹 1위에 오를 만큼 발이 빠르고 패스가 좋다. 이처럼 형제가 각자의 특징을 앞세워 농구 코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허재는 매의 눈으로 아들들의 농구 실력을 분석하고 잔소리를 해댄다.

“아버지는 저에게 스피드와 힘을 키우라고 조언해주세요. 그러려면 많이 먹고, 체중을 늘리고,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요. 동생 훈이는 저보다 기본기와 스텝이 좋지만, 슛 연습을 더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키가 더 커야 한다는 말씀도 하세요. 아무리 발이 빨라도 농구선수는 키가 클수록 좋으니까요.”

전주 KCC에서도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선수들을 체크하는 감독으로 유명한 허재. 이들 형제 역시 아버지가 시합을 보러 오는 날이면 더욱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시합에 오시면 평소보다 몇 배 더 열심히 뛰죠(웃음). 시합에서는 연습을 제대로 안 한 게 금방 티가 나거든요. 그런 부분이 눈에 띄면 곧장 ‘그렇게 게임하면 안 된다’고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죠.”

‘농구의 신’ 허재 아들로 산다는 것은

웅과 훈 형제가 오랜만에 맞대결을 펼치며 서로의 기량을 뽐냈다.

“열심히 하면 혹시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용산 중·고교를 거쳐 연세대까지 형제가 줄곧 함께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장점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형의 길을 따라가는 훈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형이 늘 든든한 보호자가 돼주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형제가 같은 대학 농구부에 다닐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는 말도 했다. 형제끼리 같은 운동을 하다 보니 서로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포인트 가드로는 최고여서 배울 점이 많아요. 하지만 운동을 게을리하는 성향이 있어요. 연습을 좀 더 열심히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형은 엄청나게 노력하는 스타일이에요. 슈팅 가드는 노력하지 않으면 못하거든요. 게다가 끈기와 근성도 좋죠.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더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어요.”

슈팅 가드인 형과 포인트 가드인 동생. 형만 한 아우인지, 형보다 아우인지 실력 대결이 궁금했다. “맞대결하면 누가 이기느냐”고 물었더니 웅이 대번에 “저요”라고 한다. 그러자 훈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형이 이기기는 하는데, 실력은 서로 비슷해요. 맞대결을 해도 장난스럽게 하지, 죽기 살기로 시합해본 적은 없으니까요(웃음).”

지금은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시합을 하지만, 언젠가는 서로 경쟁자가 돼 만날 수도 있다. 그때쯤이면, 정말로 정정당당하게 형제끼리 승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다니면 왜 사람들이 그토록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는지, 사인을 해달라고 했는지, 악수를 하자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버지의 전성기 시절 농구 시합을 보면서 ‘농구 천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았다. 그저 “잘한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는단다. 그런 아버지는 형제에게 둘도 없는 선생님이다. 그래서 형제는 입을 모아 자신들이 “행운아”라고 말한다. 이제 농구를 떠나 아버지로서 허재의 점수를 물을 차례다.

“30점요. 농구 선수로서는 최고지만, 아빠로서는 별로였던 것 같아요. 결혼해도 숙소생활을 해야 하니까 집에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어릴 때는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빠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죠.”(허웅)

“50점요. 아버지가 저한테는 신경을 안 써주셔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불만도 없었고요. 하하하. 다만 칭찬을 잘 안 해주시는 게 불만이에요.”(허훈)

웅은 앞으로 팀에서 꼭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게 목표이고, 훈은 아버지처럼 농구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꾼다. 동생이 묻는다.

“형, 우리 열심히 하면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형이 대답한다.

“우리가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각오로 열심히 한다면 … 혹시!”

아버지가 이끌었던 대한민국 농구의 전성기가 웅과 훈 형제의 호흡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여성동아 2014년 1월 6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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