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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eoul vs Paris vs New York

프랑스 ‘미식 삼총사’와의 수다

글·이미령, 로랭 달레 | 사진·홍중식 기자

2013. 10. 16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서 한국산 돼지고기와 쇠고기로 프랑스식 육가공품 ‘샤르키트리’를 만드는 3명의 프랑스 청년 롤랑, 장폴, 로뮈알드를 만나 미식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여기에 셰프 로랭이 끼니 영락없는 소설 속 다르타냥이었다.

프랑스 ‘미식 삼총사’와의 수다

왼쪽부터 롤랑, 장폴, 로뮈알드.



“로뮈알드가 누군데?”
로랭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처음 듣는 이름을 댔다. 로랭은 지난해 11월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 사람들 모임에 갔다가 처음으로 로뮈알드를 만났다고 했다.
“로뮈알드가 올 10월 남양주에서 열리는 슬로푸드 국제대회(Asio Gusto 2013)의 프랑스관 ‘파비용 드 프랑스’(Pavillon de France)의 레스토랑을 내가 맡아줄 수 있는지 물었어.”
“레스토랑을 맡아달라고?”
“하루 2백50여 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거야. 그것도 국제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매일. 미안하지만 못한다고 했어.”
로랭은 주문을 받자마자 정신없이 재빠르게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일은 망설임 없이 고사한다.
“로뮈알드는 뭐하는 사람인데 당신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샤르키트리(Charcuterie: 소시지, 햄, 리예트, 파테 등 육가공품)를 만든다고 해.”
“한국에서 프랑스 샤르키트리를 만든다고? 그게 가능해?”
“응. 그것도 한국산 돼지고기와 쇠고기로 만든대.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서 직접 고기를 구입해서 만든다고 들었어.”

한국인 아내 만나 한국에 정착한 두 남자

프랑스 ‘미식 삼총사’와의 수다

로랭을 포함해 4명의 프랑스 남자가 모이니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4시까지 수다가 이어졌다. 주제는 오로지 음식.



9월 초 로랭과 나는 프랑스 ‘미식 삼총사’를 만났다. 17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누비던 삼총사가 아니라 21세기 한국에 사는 롤랑, 장폴, 로뮈알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아토스는 무뚝뚝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고, 포르토스는 멋쟁이에 대담한 성격을 지녔으며, 아라미스는 깔끔하고 차분하다. 이들처럼 롤랑, 장폴, 로뮈알드도 각자 너무나 다른 성격에 전문 분야도 달랐지만 ‘미식’과 관련해 뜻이 맞는 것은 분명했다.
롤랑은 1930년부터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샤르키트리 제조업을 해오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육가공법을 배워온 탄탄한 경력의 샤르키티에(Charcutier)이자 미국에서 MBA를 취득한 경영 전문가다. 장폴은 12년간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지에서 셰프로 일하다가 2010년 한국에 들어와 프랑스 와인 수입과 컬리너리 컨설팅을 하고 있다. 농림 기술 전문가인 로뮈알드는 10년 가까이 중국, 북한 등에서 아시아 농업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하다가 2009년 한국에 왔다. 지금은 염소젖으로 만든 수제 치즈 생산에 열정을 쏟고 있다.
장폴과 로뮈알드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순전히 사랑 때문이다. 둘 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장폴은 런던 노부 레스토랑에서 함께 셰프로 일하던 한국인 요리사를 아내로 맞았고, 로뮈알드는 프랑스에 유학 온 한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 후 한국에 정착했다.
개성과 능력이 천차만별인 세 사람의 공통점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식가라는 것과 한국산 식재료로 최고의 프랑스식 샤르키트리를 만들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냉동하지 않은 고기와 천연 케이싱(casing)을 사용한 최고 품질의 샤르키트리를 한국에서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1년 반 이상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12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한국커피’ 본사 2층에 ‘프랑스 구어메이’(France Gourmet)를 세웠다. 완벽한 맛을 추구하며 늘 연구하고 열심히 찾고 공부한다는 점에서 ‘한국커피’의 양광준 대표와 음식 철학이 같아 이곳에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이들을 만나기 전 ‘프랑스 구어메이’에서 만든 소시지와 햄, 파테의 맛을 보았는데, 프랑스에서 먹어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프랑스 구어메이’를 방문하던 날, 오랜만에 또래 프랑스 남자들과 만나는 로랭은 들떠 있었다. 프랑스 남자와 한국 여자의 조합에다 요리에 대한 전문성과 미식에 대한 관심까지 우리 커플도 이들과 닮은 구석이 참 많았다. 이렇게 네 남자가 모이니 흥분 모드로 끝도 없이 음식 이야기를 한다. 나는 관객처럼 떨어져 앉아 네 남자의 대화를 ‘구경’했다.
프랑스 사람들의 대화 자리에 음식과 와인이 빠질 수는 없다. 아니다 다를까. 장폴이 슈냉 블랑(Chenin Blanc : 프랑스 발 드 누아르 지방의 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으로 만든 드라이한 부브레(Vouvray)와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 검은색 프랑스 와인 품종)으로 만든 소뮈르 샴피니(Saumur Champigny)를 열어 와인 잔에 따라 주었다. 안주로는 직접 만든 샤르키트리를 예쁘게 썰어 놓았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마치 오래된 친구 집에 놀러온 것처럼 편안했다. 대화도 술술 이어졌다. 친구들끼리라 속 시원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 같았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개의치 않고 그들의 수다를 지면에 옮겨 본다. 때로는 이들의 예리한 지적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참고 들어보자.



프랑스 ‘미식 삼총사’와의 수다

프랑스인들의 대화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와인과 음식들. ‘프랑스 구어메이’에서 준비한 다양한 샤르키트리를 맛볼 수 있었다.



보기에 치중하는 잘못된 미식 문화
“한국에서는 ‘가스트로노미’(gastronomy : 미식)를 미슐랭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의 음식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맞아. 블로그에 이런저런 레스토랑의 음식 사진들을 잔뜩 올려놓고 음식 비평가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많은데 ‘미식가’란 개념 자체가 애매모호해.”
“품질 대비 가격에 대한 인식이 모자라. 무조건 비싸야 좋은 줄 안다고.”
“겉모습이 화려해야 해. 음식 플레이팅에만 신경 쓰는 셰프도 봤다니까.”
“한국인 스스로 한국의 뛰어난 가스트로노미 전통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말이 떠올랐어. ‘내 왕국에서는 일요일에 닭 한 마리도 못 먹는 소작농이 없게 하겠다’고 했지. 가스트로노미의 대중화! 이것이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야.”
17세기 앙리 4세는 당시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켜 ‘선량왕’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후 ‘닭 한 마리’는 민생 안정의 대명사가 돼 선거 때마다 단골 구호로 등장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버(31대 대통령) 후보는 ‘누구나 닭 한 마리와 차 한 대씩’이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경쟁자였던 루스벨트 후보는 ‘밥상마다 닭 두 마리’를 내걸었다. 결과는 닭 두 마리를 내건 루스벨트의 승리.
“가스트로노미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식재료의 품질이 보장돼야 해. 그러고 나서 중요한 것이 콩비비알리테(convivialite : 식탁의 분위기)야.”
“프랑스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식탁 예절을 가르치지. 식사는 반드시 테이블에 앉아서 하고, 다른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대화하는 법을 몸에 익히는 거야. 같은 음식을 먹을 때도 타인이 나와 얼마나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식사하면서도 ‘톨레랑스’(tolerance : 관용)를 배우게 돼.”
“맞아. ‘맛있다’ ‘맛없다’라고 할 때도 왜 맛이 있는지, 무엇과 비교해 맛이 없는지 상대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잖아.”
“한국 레스토랑 음식들은 맛이 비슷비슷해. 늘 같은 음식만 먹다가 평소와 다른 맛을 접하면 당황하는 사람들도 봤어. 맛이 다르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맛이 다른 게 정상 아닌가요?’라고 하면 ‘이 음식 맛은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라고 해. 왜 같은 음식이라고 모두 같은 맛이어야 하지? 만드는 사람이 다른데.”
“시장에 가봐. 가게마다 똑같은 물건만 팔아. 감자도 한 가지밖에 없어.”
“음식에 사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한정돼 있어. 감자 한 가지, 당근 한 가지, 사과 한 가지….”
“아내 말로는 한국에도 노르망디에서 생산되는 사과 같은 작은 홍옥이 많았다고 해. 그런데 요즘은 시장에서 그런 사과를 볼 수가 없어. 온통 부사라는 사과뿐이야. 그 사과로는 ‘부댕’(boudin : 프랑스식 순대 요리)의 사이드디시(곁들이는 요리)를 만들 수 없잖아. 만들어봤어? 맛이 나쁘지는 않지만 절묘하게 새콤한 맛이 부족해. 너무 달다고.”

프랑스 ‘미식 삼총사’와의 수다


“프랑스인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게 틀림없어”
“나는 음식은 추억이고 감정(emotion)이라고 생각해. 서로 나누어 먹는 데서 즐거움을 느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음식은 맛이 없어. 고향에서 먹던 음식들이 많이 생각나.”
“나는 한국의 다양한 나물들이 좋아. 맛있고. 도라지라는 거 알아? 싱싱한 도라지를 약간의 기름, 깨, 새우젓만 가지고 무치면 사각사각 씹히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고.”
“얼마 전에 가메 와인을 약간 시원하게 해서 한국 음식들과 페어링해봤는데 상당히 잘 맞더라고. 와인도 맛있고 음식도 맛있고. 그런데 한국 마켓의 와인들은 너무 비싸.”
“맞아. 수입된 프랑스 와인들 가격 좀 봐. 생산자에게서 1천원에 구입해온 와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5천~8천원이 돼.”
“주류에 붙는 세금이 높아서 그래. 70%인가.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1천원짜리가 1천7백원이 되는 거야. 중간 유통 단계를 몇 번 거치다 보면 비싸질 수밖에. 그리고 아직까지 한국의 와인 시장이 너무 작아서 수입상들이 마진을 높게 잡는 것 같아.”
“와인 가격을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 맞춰 적절하게 조절하면 와인의 품질을 의심해. 수준 낮은 와인 아니냐고 되물어봐. 앞에서 말한 대로 한국에서는 품질 대비 가격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비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잖아.”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점점 좋은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데 희망이 있어. 그래서 비싼 것만이 좋은 와인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다니는 중이야. 와인처럼 대중적인 음료수가 어디 있느냐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와인을 마시면 엘리트라고 생각해.”
“아직까지는 소주 문화라 바뀌려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집중할 필요도 없었다. 음식과 관련해 네 사람은 신통하게도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뷰를 찍으러 온 사진기자와 나는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프랑스 사람들의 음식 사랑은 유별나다. DNA가 다른 게 틀림없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된 미팅이 오후 4시에 끝났다.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19세기 초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로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주면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명언을 남겼다)이나 알렉상드르 뒤마가 인생 말년에 각각 ‘미각의 생리학’과 ‘음식대사전’을 집필한 것을 생각해보라. 그런 선조를 둔 프랑스인들이 음식에 남다른 열정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프랑스인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틀림없다. ‘미식 삼총사’와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로랭을 보니 갑자기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다르타냥이 떠올랐다. 그들의 ‘창조주’ 알렉상드르 뒤마가 세상을 뜨기 수년 전부터 ‘음식대사전’을 집필하느라 열정을 다 바친 것처럼, 네 사람은 음식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프랑스 ‘미식 삼총사’와의 수다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해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고 각종 매체에 음식 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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