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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데뷔 20년, 털털한 바이올린 여제 사라 장과의 솔직담백 토크

“스트레스 해소엔 쇼핑, 하고 싶은 일은 파티 호스트”

글·구희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예술의전당 제공

입력 2013.03.15 13:30:00

개관 25주년을 맞은 예술의전당 음악 축제 무대를 위해 한국에 온 사라 장과 말 그대로 시시콜콜 수다를 떨었다. 사라 장이 연주 다음으로 잘하는 게 뭔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느새 데뷔 20년, 털털한 바이올린 여제 사라 장과의 솔직담백 토크


에메랄드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33·장영주)은 활력이 넘쳤다. 그는 지휘자 임헌정이 이끄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2월 15일, 개관 25주년을 맞은 예술의전당 음악 축제 무대에 섰다. 1988년 2월 15일 지휘자 금난새의 지휘로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으로 처음 예술의전당이 문을 연 지 꼭 25년 되는 날이었다.
온몸으로 연주하는 그의 무대는 흡사 빠르고 격렬한 춤사위 같았다. 이날 사라 장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번호 14번을 선보였다. 악장이 끝나고 연주자들이 잠시 호흡을 고르는 사이, 객석에서는 참고 참았던 기침을 몰아서 뱉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그만큼 관객들도 집중하고 있었다. 엄마 손에 이끌려온 듯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리던 아이도 빠르게 몰아치는 3악장에선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붙이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바이올린 활이 허공을 찌르고 음악이 멈추자 관객들은 참았던 박수와 함성을 터뜨렸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마친 사라 장은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온 ‘Por Una Cabeza’연주로 관객에게 화답했다.

요리랑 운전은 별로, 잘하는 건 쇼핑
이튿날 출국에 앞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라 장을 만났다. “반가워요!”라며 인사를 건넨 그는 기자에게 “커피? 녹차? 어떤 게 좋아요”라고 묻더니 직접 탄 커피를 권했다. 전날 밤 연주를 마치고 부천필하모닉 단원들과 사진을 찍고 리셉션에 참석했다는 그는 호텔에 돌아와서 가족, 친구와 새벽 4시 반까지 수다를 떨다 잠들었다고 했다.
4월까지 이어지는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 기념 음악 축제에는 사라 장 외에도 소프라노 신영옥과 조수미, 지휘자 장한나 등 내로라하는 음악 거장들이 참여해 무대를 빛낼 예정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계기를 묻자 옆에 있던 예술의전당 관계자를 가리키며 “이쪽에서 초대해서…”라며 웃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대답이었다.
“아기 때, 아직 공식적으로 데뷔하기 전 예술의전당에서 초대해줘서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그래서 늘 예술의전당 측에 감사한 마음이 있었고, 다른 홀보다 스페셜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라 장은 지난해 12월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그는 “다른 홀과는 다르게 큰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거나 딱 두 사람만 무대에 서도 소리가 좋은 게 예술의전당의 장점”이라고 했다.
“(어제 공연은) 재밌었어요.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고른 이유는 그동안 몇천 번씩 연주하던 곡 외에 다른 곡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음악적으로도 저를 위해서도 늘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브람스, 멘델스존 같은 고전 음악도 좋아하지만 현대 곡을 듣고 연주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어느새 데뷔 20년, 털털한 바이올린 여제 사라 장과의 솔직담백 토크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리던 시절 사라 장의 모습.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번호 14번 탄생에 얽힌 일화가 있다. 처음 바버에게 곡을 써달라고 돈을 지불한 사람이 정작 완성된 곡을 보고 “너무 연주하기 어렵다”며 환불을 요청한 것. 바버는 “이미 돈을 다 써버려서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음악에 문외한이더라도 음표들이 널뛰며 빠르게 흘러가는 3악장을 소화하는 사라 장을 보면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그는 “복잡하긴 하다. 앙상블과 합을 맞추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곡”이라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탱탱한 피부에 발그스레한 뺨이 눈에 띄었다. 화장 비법을 물었더니 맨얼굴에 블러셔만 바른다고. “어제 무대에서도 그랬느냐”는 물음에 그는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바이올린에 묻어나잖아요”라고 했다. 무대에 오를 때도 파운데이션은 하지 않고 블러셔만 칠한 뒤에 파우더만 조금 두드린다. 평소 피부 관리도 직접 한다고 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에 대한 여러 기사를 읽으며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요리’에 대한 동경이었다. “요리를 꼭 배우고 싶다”고 해온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 늘었는지 궁금했다. “서양식과 한식에서 딱 두 종류씩만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던 그는 직접 반죽한 진저브레드맨 사진을 보여줬다. 의외로 그럴싸한 모양새에 “나쁘지 않은데요”라고 했더니 그는 “이건 오븐에 넣기 전이고, 넣고 나니까 이렇게 됐다”며 다음 사진을 보여줬다. 부침개처럼 푹 퍼져서 팔다리가 사라져버린 진저브레드맨의 참혹한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요리책의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느낌에 따라 재료를 넣고 빼는 타입이에요. 음식을 만들다가 이걸 더 넣을까 하면 푹 넣는 식이죠. 디렉션을 잘 못 따라가요(웃음). 운전은 매번 공항과 호텔을 오가는 일정이라 제가 할 기회도 거의 없지만 애초에 공간 개념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주차도 못하고요.”
너무 못하는 것만 물어본 것 같아 질문을 바꿨다. 악기 연주 다음으로 ‘이것만큼은 내가 잘한다’는 게 있는지 물었더니 “쇼핑”이란다.
“인터넷 쇼핑 말고 그냥 쇼핑이요. 인터넷 쇼핑은 항상 사고 나면 반품하게 되더라고요. 입어보고 만져보고 사야 돼요. 공연하러 다니면서도 오늘 여기에서 두 시간 여유가 생긴다 싶으면 쇼핑하러 나가죠. 마음에 들면 일단 사고 봐요.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풀고요.”
일반적인 20~30대 여성들이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가장 단시간에 푸는 비법이 쇼핑 아니던가. 천하의 사라 장과 쇼핑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자니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바이올린 연주가 아니면 뭘 했을 것 같은지 묻자 “쇼핑? 파티 호스트?”라며 다시 웃는다.
“파티 호스트 하면 잘할 거 같아요. 테이블 세팅하고 DJ 부르고, 꽃 장식하고 사람들 초대해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 그런 풀 파티를 주최할 때 굉장히 즐거워요.”



바이올린 다음으로 아끼는 건 할머니가 준 주얼리

어느새 데뷔 20년, 털털한 바이올린 여제 사라 장과의 솔직담백 토크

2월 15일 예술의 전당 개관 25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사라 장.



사라 장의 바이올린은 1717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다. 전 세계에 2백여 대밖에 없는 바이올린이다. 5백여 대밖에 없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도 더 희소한 명기다. 두 바이올린의 음색이 달라서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의 선호도도 갈린다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다가 과르네리로 바꾼 바 있다.
“개인적으로 과르네리가 내는 소리를 좋아해요. 정말 좋은 소리가 나요. 사운드가 스위트하고 여성스러운 게 스트라디바리우스라면, 좀 더 어둡고 드라마틱하면서도 낮은 음이 파워풀한 건 과르네리죠. 제가 브람스, 베토벤 등 헤비한 곡을 많이 연주하는 편이라 과르네리가 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서도 이 악기를 쓰셨거든요. 선생님이 쓰시던 악기를 쓸 수 있어서 굉장히 의미가 깊죠.”
연주자에게 악기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바이올린 다음으로 소중한 물건은 뭘까. “활?”이라던 그는 “집도 소중하고요”라며 웃었다.
“할머니가 주신 주얼리가 소중한 물건이에요. 항상 가지고 다니고 공연 때 착용하기도 하죠. 정식 데뷔하기 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할머니께서 손녀딸이 자랑스러우셨는지 일곱 살짜리에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걸이와 목걸이를 주셨어요. 집에선 어린 아이한테 그 비싼 다이아몬드를 주시면 어쩌느냐며 난리였죠(웃음).”
할머니와의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사라 장이 열두 살 때 일이다. 예쁜 손녀딸에게 “뭘 사줄까” 물어보는 할머니에게 그는 “귀를 뚫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안 된대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해결사를 자처하며 다음 날 손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아픈지 안 아픈지 할머니가 먼저 해볼게” 하곤 귀를 뚫은 할머니. 그때 할머니는 칠순을 넘긴 연세였다. “괜찮다, 안 아프네”라며 사이좋게 귀를 뚫고 돌아온 할머니와 손녀에게 부모님이 화를 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2007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나와 “자유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방송 이야기를 하자 그는 “그때 그거 네 시간 넘게 찍은 거 아시냐”며 “제가 땅바닥에 네 시간은 못 앉는다고 했더니 제작진이 테이블 아래를 파주셨는데 아직도 그대로라더라”라고 했다. “강호동이 최근 MC로 복귀해서 다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하자 “다시 하는 거냐. 정말 다행이다, 잘됐다”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자유 시간에는 많이 자요.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요.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세요. 저도 같이 보는데, 웃기는 건 엄청 웃기고, 우는 장면도 많고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 시원해요. 문제는 한 에피소드를 보고 유럽에 공연하러 갔다가 돌아오면 너무 빨리 진행돼서 스토리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거죠.”
요즘도 그는 바이올린 가방에 여권부터 가족사진, 악보, 화장품까지 중요한 물건을 넣고 다닌다. 종종 짐이 제때 공항에 도착하지 않을 때가 있어 바이올린 가방을 핸드캐리어 삼아 가지고 다닌다.


20년 넘게 연주했지만 아직도 즐거워

어느새 데뷔 20년, 털털한 바이올린 여제 사라 장과의 솔직담백 토크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인터뷰 때마다 결혼 질문이 빠지질 않는다. 결혼 적령기가 된 사람의 숙명일까. 지겹겠지만 물어봤다. 마음에 둔 사람은 없는지 말이다. 그는 “아직 좋은 사람을 못 만났다”고 했다.
“예전에는 ‘넌 지금 커리어가 좋으니까 결혼을 늦게 하라’던 가족들이 갑자기 1년 전부터 ‘결혼 언제 하니’ ‘언제 하니’ 하고 물어보세요. 정말 좋은 사람이 생기면 시간을 만들어야죠. 비행기를 워낙 많이 타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몇 번 더 타는 건 문제가 안 돼요. 몇 년 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는 걸 보면서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요즘은 그 친구들이 이혼하겠다며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 달라고 하는 걸 보면 조금 더 기다릴까 싶기도 해요(웃음).”
올해와 내년 달력은 이미 정해진 스케줄로 꽉 찼다. 지금은 2015년 스케줄을 조율하고 있다. 아홉 살에 데뷔해 평생을 바이올린과 함께했지만 그는 아직도 연주가 재밌다.
“가끔 차를 타고 가면 라디오에서 어릴 때 제가 연주한 곡이 흘러나올 때가 있어요. 저는 듣기 민망한데 그래도 듣다 보면 ‘아홉 살 때 저 정도 했으면 됐다’ 싶기도 해요. 같은 곡을 몇천 번씩 연주해도 무대에서의 케미스트리(chemistry)가 매일 밤 다르니까 곡의 느낌도 매번 달라져요. 신기하죠. 지금도 계속 배워나가고 있어요.”
다시 태어나도 음악가의 길을 걸을까. 그는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매니지먼트사나 음반사같이 음악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 아이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어머니들에게 한마디 조언해달라고 했다. 그는 “제가 음악을 시작하기 전 ‘누군가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던 게 있다”며 말을 이었다.
“음악은 정말 진정으로 자신이 즐기고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의 저는 음악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연습하고 무대에서 잘하기만 하면 다 잘되겠지 싶었는데, 음악도 일종의 비즈니스더라고요. 잘못하면 연습할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전화 통화만 하고 이메일만 보내게 되는 거예요. ‘내가 할 일은 이메일 보내는 게 아니라 연습하고 리허설 무대에 서는 건데…’라는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하게 된다면 그런 일정을 돌봐줄 수 있는 좋은 분을 만나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에서의 매니지먼트는 어머니께서 해주고 계시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 누군가 음악 세상에는 음악만이 아니라 비즈니스도 있다는 걸 말해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여성동아 2013년 3월 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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