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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열세 번째 | 스포츠에 빠진 여자들

“지금 이 순간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면 레드카드!”

한국 여성 최초 축구 국제 심판 임은주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2012. 11. 15

축구 선수들에게 임은주 심판은 그라운드 안에서는 매서운 포청천이고, 밖에서는 따뜻한 누님이었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한 치 양보 없는 스포츠보다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 작은 기회들을 디딤돌 삼아 축구계의 거인이 된 임은주 씨의 독하디독한 인생 이야기.

“지금 이 순간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면 레드카드!”


170cm가 넘는 키에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녹색 잔디 위를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서 몸에 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심판, 한국프로축구연맹 전임심판, 호주 시드니 올림픽 본선 주심, 미국 여자월드컵 주심 등 타이틀마다 ‘여자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임은주(46) 을지대 여가디자인학과 교수. 100m를 12초대에 주파하며 남자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의 모습을 방송으로 지켜보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는 육상, 중학교 때는 배구,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필드하키 선수로 활약했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종목을 바꾼 이유는 특기자로 선발돼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창단된 여자 축구 국가대표에 도전한 것도 몸값을 높여 대학원에 진학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진학한 뒤 축구부 코치를 하다가 감독이 갑자기 사임하면서 팀을 맡게 됐고, 경기 규칙을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심판자격증을 따면서 심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간 그는 거기서 갈고닦은 영어 실력을 발판 삼아 국제 심판 자격까지 획득했다.
1995년 그가 처음 심판이 되자 “왜 여자 심판을 배정하느냐”고 항의하는 코칭스태프도 있었고, 98년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의 심판상’을 수상하고도 ‘여자’라는 편견 때문에 프로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고 재수를 해야 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싸우기보다 노력으로 상황을 극복했다.
“인생에는 두 가지 히든카드가 있다고 봐요. 첫 번째는 조건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든가 하는 선천적인 거고 두 번째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거죠.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의지할 백그라운드가 없었어요.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지만 저는 큰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고 작은 기회를 디딤돌 삼아 운명을 개척해야 했죠. 매 순간 대충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100% 올인 했어요.”
그는 초등학교 경기 심판부터 시작해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 무대를 두루 누볐다. 전·후반 90분 경기를 뛰고 나면 남자 선수들도 맥이 풀려 주저앉는다. 그 역시 한 경기를 뛰고 나서 체중이 5kg이나 빠진 적도 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가 경기 중 다리에 경련이 나 침으로 찔러대는 바람에 허벅지가 피범벅이 되기도 했다. 여자인 그가 남자 선수들과 함께 달리기 위해선 그 이상의 체력 관리가 필요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윗몸일으키기 2천 개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어요. 매일 10~20km 정도 달리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3시간 이상씩 했죠. 직장인들도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니까 우리도 그만큼 운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홍일점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남자 선수들은 유니폼에 속바지가 붙어 있어서 따로 속옷을 안 입는데, 실업 경기 심판을 보던 중 한번은 선수 속바지가 벗겨져 크게 당황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프로에 가니까 몸싸움이 워낙 심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더라고요. 경기 시작 전 축구화 밑창을 검사하기 위해 라커룸에 들어갔다가 샤워하고 알몸으로 나오는 선수들과 맞닥뜨린 적도 있고…(웃음).”

“지금 이 순간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면 레드카드!”

임은주 교수는 현역 심판으로 활동할 땐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하루 8시간씩 운동을 했다고 한다.



우연하게 시작된 축구와 인연,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기 살기로 달렸다
심판 가운데 선수 경험이 있는 이들은 20% 안팎으로,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선수 출신들은 은퇴 후 지도자가 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체력이 뒷받침된다면 여성들도 도전해볼만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단 선수 출신 심판은 경기 흐름을 잘 파악하고 불필요한 휘슬은 잘 불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TV 중계로 보면 심판과 선수 사이가 딱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많이 해요. 경기 시작 전 서로 인사할 때 김병지 선수 같은 경우엔 ‘누님, 파마 잘 나왔네요. 어디서 했어요 ’ 물어보기도 하고, 경기 중 선수가 특정 선수를 욕하거나 플레이가 거칠어진다 싶으면 파울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흥분하지 말라’고 이야기도 하죠.”
이렇듯 살살 선수를 다루다가도 기선을 제압하거나 경고를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주저하지 않고 레드카드를 내민다.
“선배 심판들 가운데는 퇴장을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한 번 더 주의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바로 퇴장을 줍니다. 공정함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국내 리그에서 선수들이 앞으로 국가대표가 될 텐데, 엄격하게 룰을 적용하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테니까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선제골을 넣은 하석주 선수가 상대 선수에게 백 태클을 하다가 퇴장당했는데, 하 선수는 그게 퇴장감인 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국내 경기에서부터 엄격하게 룰을 적용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죠. 선수들도 심판 성향에 따라 적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선 제압을 해서 22명이 절 따라오게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22명에게 끌려다니는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임 교수는 2005년 심판에서 은퇴한 후 월드컵과 K리그 해설자 등을 거쳐 아시아축구연맹(AFC)과 FIFA의 심판위원과 심판 강사,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축구와 스포츠 외교를 위해 일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꿈은 스포츠를 통한 사회공헌재단을 만드는 것,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는 것이다. 이런 포부는 운동을 하다가 은퇴한 후배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악착같이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은 거의 이루었기에 남은 인생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며 살고 싶다며 최근 ‘레드카드 주는 여자’(21세기북스)를 펴낸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회가 된다면 위로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과 180도 다른, “한겨울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독설 멘토링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20대에 평생 할 고생을 다 해야 한다’고 말해요. 요즘 힐링 열풍이 일지만 위로가 필요한 건 10대고, 20대에는 치열하게 살면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기죠. 20대를 치열하게 살아야 그 이후에 닥쳐오는 인생의 쓰나미를 이겨낼 힘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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