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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에서 하차까지 논란의 주인공 김영희 PD

“김건모 재도전은 시청자 위한 선택, 후회 없어”

글·김민지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MBC 제공

입력 2011.05.17 10:33:00

실력파 가수 7명이 미션곡으로 서바이벌 경쟁을 벌였던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 속 ‘나는 가수다’. 진정성 있는 그들의 노래는 일요일 저녁마다 시청자의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첫 경합 때 꼴찌였던 김건모를 재도전시킨 결정으로 담당 연출자 김영희 PD가 하차했다. 첫 기획부터 한 달간의 방영까지 아쉬움을 뒤로하고 남미로 떠나는 김 PD를 만나 그간의 심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대박에서 하차까지 논란의 주인공 김영희 PD


역시 김영희 PD(51)였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에 밀려 고전하는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살린 9회말 2아웃 구원투수였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들의 일밤’으로 이름을 고치고 3월6일 첫 방송한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 7명이 모여 경합을 벌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넘어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세 번째 방송 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첫 경합 후 청중평가단 투표에서 꼴찌를 한 탈락가수가 발표됐지만 서바이벌 룰이 지켜지지 않았다. 참여 가수들의 건의로 7등인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했던 것이다. 김 PD의 이 같은 결정은 시청자들에게 여러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는 하차했다. 동시간대 방송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라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김 PD는 프로그램 방송 한 달 만에 물러났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만 그러기엔 김 PD가 보낸 3월 한 달이 너무 짧았다. 하차 결정 이후 이렇다 할 이야기를 전하지 않던 그를 4월13일 일산 MBC 드림센터 로비에서 만났다. 예상 밖으로 그의 표정은 따뜻해진 봄 날씨처럼 사뿐하고 가벼워 보였다.
“주변에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일부 측근은 분개하기도 했지만 전 오히려 덤덤해요. 워낙 선례가 없던 일이라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예상 못했지만 이왕 이렇게 결정된 거 따라야죠.”
담담한 말투 속엔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났다. 그는 “다른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보다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양심냉장고’나 ‘느낌표’ ‘칭찬합시다’ 때도 그랬어요. 제가 만들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후배들에게 물려줬죠. ‘나가수’ 역시 다른 후배 제작진과 함께 이끌어오고 있었고 자리만 잡히면 후배들에게 넘기려고 했어요. 누가 맡아도 처음 했던 기획 의도만 잘 살린다면 별문제 없다고 생각해요.”

담담한 퇴진, 그래도 ‘나가수’는 계속된다
김 PD는 대한민국 방송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꼽힌다. 1986년 MBC에 입사한 그는 90년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선봉자로 기존 관행을 깨고 새롭게 시도한 방송들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였던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비롯해 ‘이경규가 간다’의 ‘양심냉장고’, ‘느낌표’의 ‘하자하자’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는 재미와 함께 감동을 주는 따뜻한 메시지까지 더한 프로그램들로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후 그는 2005년 최연소 예능국장, 2007년 MBC PD협회장, 2008년 제22대 한국PD연합회 회장 등을 지내면서 연출 현장에서 잠시 떨어져 있었다. 그러던 그가 현장으로 복귀하겠다고 결심한 건 지난해 11월 말. 더는 새로울 게 없는 대한민국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의 마음속에 치솟았다.
“그간 감독하던 사람이 선수로 뛰겠다고 하니 설득하는 데 애 좀 먹었죠. 한 달 정도 논의한 끝에 복귀 결정이 났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지금 만들어지는 예능과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이죠.”
김 PD는 새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두 가지 방침을 정했다. 첫째,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메이저급 연예인은 쓰지 않겠다. 둘째,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아이템으로 승부를 보겠다. 그렇게 프로그램 구상을 하던 중 그의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노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노래가 탁 떠올랐어요. 사실 노래를 잘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왠지 제가 노래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면 시청자들도 신선하게 생각해줄 것 같았죠. 그때부터 노래를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노래에 관련한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김 PD는 결론을 내렸다. 노래에는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원초적인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그는 “진짜 노래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기는 있지만 가짜 노래 말고, 진짜 노래를 들려주면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대박에서 하차까지 논란의 주인공 김영희 PD

3월20일 방송된 ‘나는 가수다’의 논란 장면. 이날 첫 경합에서 꼴찌한 김건모에게 김영희 PD는 기존 룰과 달리 재도전 기회를 부여했다. 김 PD는 “시청자를 위한 선택이었다”라고 말한다.



김 PD의 이 같은 확신은 국내 최정상급이라 불리는 가수들을 섭외할 수 있는 결정타였다. 그는 ‘노래’를 아이템으로 정하자마자 최고의 가수를 모아 룰에 따라 경쟁시키는 포맷을 구상했다. 출연진은 방송 한 회 분량에 7곡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 7명으로 정했다. 그리고 7명 중 한 명이라도 바뀌거나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프로그램을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참여 가수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되니까 애초에 정한 7명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죠. 모두 한 번에 섭외된 건 아니지만 여러 번 접촉한 끝에 다들 ‘해볼 만하겠다’며 긍정적으로 고려하더라고요.”



‘탈락’이 아니라 ‘양보’라고 가수들 설득
사실 백지영 외엔 김 PD가 개인적으로 아는 가수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이상하리만큼 그에게 ‘환상’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면 당연히 좋을 것이고 가수들에게도 최선을 다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아마 제 진정성이 통했던 것 같아요. 노래 잘하는 가수를 통해 진짜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또 그것이 시청자의 가슴을 울리는 최고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가수들은 저만 믿고 따라와달라고 얘기했어요. 그렇게만 해준다면 전 제 25년 연출 인생을 걸고 이번 무대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고 약속했죠.”
김 PD는 그렇게 가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줬다. 그의 모습에 확신을 얻은 이소라는 MC 겸 가수로 출연을 결정한 다음 날 새벽, 그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새 프로그램의 제목으로 ‘나는 가수다’를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가수다’란 제목이 가수들로선 가장 좋은 제목이 아니었나 싶어요. 당시 이 제목 말고도 2개 정도 생각한 게 있었는데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나는 가수다’로 결정했어요. 이 제목이 유명한 가수들이 ‘탈락’이란 서바이벌 방식에도 불구하고 노래 부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나 가수들에게 ‘노래를 평가받아 떨어질 수 있다’는 부담감은 쉽게 떨칠 수 없는 벽이었다. 김 PD는 이에 대해 ‘탈락’이 아니라 새로운 가수에게 ‘양보’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3월20일 방영된 ‘나가수’의 첫 번째 경합 결과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방송 전부터 여러 번 공지했던 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다들 겸허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막상 탈락자가 결정되고 나니 분위기는 재도전 쪽으로 흘러갔어요.”
잠시 녹화를 중단한 짧은 순간, 김 PD는 판단의 기로에 섰다. 그는 ‘탈락 위기 가수가 재도전을 하는 게 시청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다.
“김건모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다음번에 더 노력해서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 역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시청자들께 룰을 바꾸게 된 점에 대해 양해를 드렸겠죠.”
결국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한 김 PD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고, 4회 방송을 끝으로 하차하게 됐다.
“4회까지 보았다면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때 마이크 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노래하는 김건모의 ‘Your my lady’를 들은 청중평가단이나 저희 제작진 모두 깊은 감동을 느꼈거든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어요.”
김 PD는 ‘나가수’를 올 12월까지 이끌고 갈 계획이었다. 6~8개월 정도 한 시즌으로 제작하고 두 번째 시즌을 10월이나 12월쯤 시작하면서 후배들에게 맡기려고 했다. 첫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 뒤풀이 자리에서 공표된 이야기였다.
“아마 그때까지 했다면 애초 제가 원했던 방향대로 ‘나가수’를 이끌었을 거예요. 좀 더 확고한 색깔을 갖고 있었겠죠. 물론 후임인 신정수 PD가 잘 해내리라 믿지만요.”

대박에서 하차까지 논란의 주인공 김영희 PD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나가수’와 함께 짧지만 뿌듯한 나날들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방송 기획단계에서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밤을 새우며 ‘나가수’에서 가의 ㄱ을 7로 바꿔 디자인하는 등 프로그램의 세세한 면까지 신경 썼다. 방송을 앞뒀을 땐 3~4일씩 밤샘 편집을 하면서도 그는 “한 번도 힘든 적이 없었다”고 했다.
“제 별명이 ‘쌀집 아저씨’여서, 혹은 따뜻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서 마냥 착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큰 오해예요. 제가 일할 땐 ‘독종’이거든요. 한번 뭘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지독하게 일해요. 주변에서 절 능력 있는 PD로 평가해준다면 전 자신 있게 남보다 성실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거 같아요. 노력이나 집중 면에선 저를 따라오는 사람을 못 봤거든요. 12월까지 ‘나가수’를 할 수 있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했을 거예요.”

‘나가수’는 평생 기억에 남을 작품
그는 이런 갑작스런 결정에도 늘 자신을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고맙다. 사실 그의 프로그램 하차 소식에 가족들의 충격도 컸다. 다들 내색은 안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그는 자신을 “행복한 가장”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제가 프로그램을 그만둔다는 소식에 가장 놀랐어요. 이제껏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고, 또 워낙 이야기들이 많았잖아요. 그래도 저의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정됐죠. 대학생 딸은 제 하차 소식을 학교 프로젝트 빔에 쏘인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알았대요. 괜히 얼굴이 부끄러워졌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제일 재밌는 건 아들 녀석인데 제 첫 방송을 못 보고 입대했거든요. 군대에서 장교들이 ‘지금 사회에선 ‘나는 가수다’가 대박 났다’며 소식을 전해주다가 3주가 지나니 ‘김영희 PD가 잘렸다’고 말해줬대요. 저한테 나중에 ‘아빠 소식 실시간으로 잘 전해 들었다’고 하데요(웃음).”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뒤로하고 4월 말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2004년 느닷없이 70여 일간 아프리카를 향했던 것처럼 이번엔 남미다. 멕시코, 쿠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 곳곳을 샅샅이 훑고 올 생각이다. 그는 “예기치 못한 휴식이 또 하나의 기회”라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티티카카 호수, 우유니 사막, 파타고니아 등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요. 두 달간 혼자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자연도 만끽하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얻어오고 싶어요. 벌써부터 열심히 스페인어를 공부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쉽진 않네요(웃음).”
김 PD는 인생의 반을 예능 프로그램 제작자로 살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 직업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친구 권유로 PD의 길에 들어섰어요. 하지만 이렇게 저한테 맞는 직업도 없었던 거 같아요. 한두 명이 아닌 수천 명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건 정말 보람 있거든요. ‘나가수’를 만들면서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 어떻게 될진 모르겠어요. 시청자나 후임 제작진이 원한다면 다시 ‘나가수’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니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평생 기억에 남을 작품으로 주저 없이 ‘나는 가수다’를 꼽은 김영희 PD. 또 한 번 시청자들을 위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열정적으로, 즐겁게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여성동아 2011년 5월 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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