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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베이징에서 온 편지

중국 유학길 오른 KBS 한석준 아나운서

낯선 도시에서 버린 만큼 채워지는 기쁨

글&사진·한석준 아나운서

2011. 04. 18

올해로 경력 9년 차인 한석준 아나운서. 큰 키에 호남형 얼굴로 여성 팬들이 많았던 그가 돌연 TV에서 사라졌다. ‘여성동아’ 지면을 통해 전해온 소식에는 늦은 유학을 결심하기까지의고민과 무모한 남편을 지지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다. 앞으로 그는 중국 현지에서 생생한 유학생활을 전할 예정이다.

중국 유학길 오른 KBS 한석준 아나운서


중국 유학길 오른 KBS 한석준 아나운서


지금 난 손바닥만 한 기숙사에 살고 있다. 한 평(3.3㎡)도 채 안 되는 화장실에는 손을 담그기에도 좁아 보이는 세면대와 샤워할 때면 그 세면대에 허리가 자꾸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은 샤워기가 있다. 보통의 학교 기숙사지만, 기분 나쁠 때 보면 괜찮은 감옥 같기도 하다.
여기서 난 아나운서가 아니고 학생이다. 물론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학생식당에서 만나는 한국 학생들이 가끔 함께 사진을 찍자며 촬영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앞으로 1년은 조명 아래 설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운해진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고 10년 가까이 살면서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주목받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모든 것을 서울에 두고 칭화대 기숙사에 있지 않은가.
내 마음에 중국 유학의 씨앗을 뿌린 이는 후배인 고민정 아나운서였다. 2009년 가을부터 중국 칭다오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선배도 한번 다녀와 봐요. 나하고는 또 다르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라고 한 말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즈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코앞에 닥쳤다. 원래 조우종 아나운서가 메인 MC를 맡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다른 일정과 겹쳐 결국 2008년 베이징올림픽 메인 MC였던 내게 그 일이 돌아왔다. 이것이 우연이기만 할까.
내 마음속에는 이미 고민정 아나운서가 뿌린 씨가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광저우에서 3주를 보냈다. 중국인들은 지난 1백 년과 다르게 다시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됐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2008년엔 수도 베이징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2010년 광저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서늘한 느낌이 밀려왔다. ‘광저우가 중국 남방 지역의 중심도시라 해도 지방 도시일 뿐인데 이토록 강한 자부심의 뿌리는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호기심도 점점 커졌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아내에게 어렵사리 결심을 털어놓았다. 사실 그동안 아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수없이 고민했다. 남편이 무급 휴직을 하고 1년간 유학을 간다고 하면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 부부 사이에 아직 아이가 없으니 좀 더 쉽게 이해해줄까? 좀처럼 아내의 반응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아내는 선뜻 “기왕 하는 공부, 가서 열심히 해봐”라고 했다. 사실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아내는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돼 남의 손에 맡기고 갈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남편의 무모한 결심을 지지해준 아내가 고맙기만 했다.

아내의 격려에 ‘진짜 가야겠다’는 힘 생겨

중국 유학길 오른 KBS 한석준 아나운서

칭화대 기숙사 전경과 운치 있는 가로수길.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지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내의 동의를 얻자마자 유학 준비에 들어갔다. 학교는 내심 칭화대로 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과정이 있는지, 원서접수가 언제까지인지 알아봤다. 중국어를 잘 못하는 내겐 영어로 진행되는 ‘보통진수생’ 과정이 적당했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인 경제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마침 칭화대 경제관리학원의 경제학과에 보통진수생 과정이 있었다. 운 좋게도 접수마감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빙고!
서류 접수를 마치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동안 ‘생생정보통’ MC가 바뀌는 과정에서 언론에 나의 유학 얘기가 보도됐다. 아직 합격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이러다 못 가게 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다행히 12월 27일, 입학이 확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2월16일 서울을 떠나 칭화대 유학생 기숙사에 도착했다.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중국 최고의 대학으로 라이벌 관계다. 내가 선택한 칭화대는 지방에서 온 본과생(한국 대학으로 치면 학부생)들이 많은데 대부분 출신 지역에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수재들이다. 이런 학생들이 한데 모여 생활하는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수업 과제물을 해결하는 과정이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열심히’의 정도를 뛰어넘는다. 공과대에 재학 중인 한 한국 유학생은 하루에 두 시간밖에 못 자는 생활을 한 달째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야 겨우 이들을 따라갈 수 있단다.
신기하게도 이들은 공부뿐 아니라 운동에도 열심이다.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 바로 옆 운동장에는 테니스장과 농구장, 축구장이 있는데 해 질 무렵이면 운동을 하는 학생들로 꽉 차 그 자체가 장관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안에 소진돼가던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들과 함께하는 1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
그래서 모든 활동을 되도록 평범한 중국 대학생들처럼 하려고 한다. 가장 애용하는 곳이 교내 학생식당. 아침식사는 3위안(한화 약 5백10원), 점심과 저녁 식사는 10위안(1천8백원) 정도. 물론 학생식당 중에서도 ‘고급’이 있다. 가끔 ‘오늘은 좀 잘 먹자’라는 생각이 들면 1인당 25위안(4천3백원)가량 하는 음식을 먹는다. 교내 학생식당은 열 곳이 넘는데 레스토랑처럼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가격이 비싼 곳도 있다. 일반 학생식당은 뷔페처럼 요리가 진열돼 있어 원하는 요리를 고르고, 미리 입금해둔 식당카드로 결제한다.
식당에 앉아 밥을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1년의 유학이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1년 동안의 가족과 이별, 1년 동안의 월급, 1년 동안 계속했어야 할 방송, 1년 동안 얻었을 수많은 관계와 경험, 1년 동안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시간, 사랑하는 두산 베어스의 야구 경기…. 그리고 작게는 좋아하는 동네 식당에 갈 수 없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온 중국에서 그 이상 얻어 가야 한다는 부담이 밀려들기도 한다. 늦은 나이에 유학이 힘든 이유를 알 것 같다. 다행히 이런 걱정은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돌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더 강하게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지금 선택한 이 길에서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지금 이 길에서 오늘도 전진이다!

중국 유학길 오른 KBS 한석준 아나운서

칭화대 내 학생식당의 메뉴는 다양하다. 대체로 기름지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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