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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 경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인생 스토리

“비운의 재벌가 며느리에서 대기업 이끄는 철의 여인 되기까지”

글·김명희 기자 사진·장승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 ■ 참고도서·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메디치)

입력 2010.12.16 16:46:00

지난 2003년 남편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 후 현대그룹 경영 일선에 나선 현정은 회장. 그가 최근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 자격을 거머쥐었다.
현 회장이 평범한 주부에서 시집과의 경영권 분쟁, 금강산 사업 중단 위기 등 잇단 시련을 극복하고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영인이 되기까지의 인생 역정.
‘뚝심 경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인생 스토리


지난 11월16일, 서울 계동 본사 사옥에서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발표를 기다리던 현정은(55) 현대그룹 회장은 뉴스 속보를 통해 현대그룹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두 손을 번쩍 추켜올렸다. 이로써 현대 그룹은 현대건설 채권단과 배타적으로 매각 협상을 벌일 수 있어 현대건설 인수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시숙인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우세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뒤로하고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데는 현 회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특히 마지막에 갑작스레 불거진 독일 엔지니어링 그룹 M+W의 참여 철회로 위기가 예상됐지만 동양종합금융그룹을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이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피 말리는 승부가 끝난 후 그는 경기도 하남에 있는 남편 선영을 찾아 혼자 조용히 되뇌었다. “여보, 결국 해냈어요”라고.
현대건설은 현 회장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947년 설립한 현대토건에서 출발했다. 정 명예회장이 맨손으로 일군 현대토건은 1950~60년대 건설 붐을 타고 급성장을 했으며 현재 현대그룹의 모태가 됐다. 하지만 2000년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정 명예회장의 맏아들인 정몽구 회장과 3남이자 현 회장의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이 맞붙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몽헌 회장은 현대건설을 비롯해 현대상선, 현대전자 등 26개 계열사를 맡게 됐다.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나갔고 6남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현대중공업으로 독립했다. 이후 현대그룹에 시련이 닥쳤다. 정몽헌 회장이 맡은 현대건설이 경영난에 빠져 2001년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데 이어 정몽헌 회장이 2003년 8월 대북 불법 송금 특검 진행 중 자살을 한 것이다. 이후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의 경영을 맡게 됐지만 현대가 형제들과 경영권 분쟁에 시달렸다. 따라서 채권단의 손에 있던 현대건설을 다시 찾아오는 건 현 회장으로선, 현대그룹의 적통임을 확인받는 것이자 남편인 정몽헌 회장의 한을 푸는 것이기도 했다. 현대건설 인수전 시작을 전후로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이 서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내세운 TV 광고를 내보내며 신경전을 벌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남편과 시아버지 사랑 듬뿍 받는 평범한 주부에서 CEO 되기까지

‘뚝심 경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인생 스토리

지난 10월 말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선정한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을 받은 현정은 회장(왼쪽). 지난 여름 정몽헌 회장 7주기를 맞아 현대그룹 임원들과 함께 선영 참배를 마치고 나오면서(오른쪽).



고 현영원 현대상선 전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딸인 현정은 회장은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직후인 1976년 고 정몽헌 회장과 결혼, 1남2녀를 키우면서 여느 현대가 안주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자 내조’를 하는 전업주부로 지냈다.
이런 분위기는 현정은 회장의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 정 명예회장은 자녀들에게 연애할 때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오래 사귀고 결혼할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이상 교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결혼을 승낙했는데, 거의 모든 자녀가 예외가 없었다고 한다. 현 회장이 고 정 회장을 처음 만난 건 지난 1975년, 아버지 현영원 당시 신한해운 사장을 따라 울산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곳에 도착하자 한 중년 남성이 현 회장의 가방을 받아주었는데 현 회장은 이날 저녁 열린 리셉션에서야 그가 정주영 회장이라는 걸 알고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이날 현 회장을 며느리로 낙점했다.



‘뚝심 경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인생 스토리


현영원 사장과 정주영 회장은 함께 해운 사업을 하며 막역해진 사이.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를 보여주겠다”며 아무 것도 없는 울산 허허벌판을 가리키자 현 사장이 어이없어하는 해외 선주들에게 “정 회장의 눈을 보라. 저런 열정을 지닌 사람이 무슨 일인들 못 해내겠느냐”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 이런 친분을 계기로 두 사람은 자식들 혼담을 주고받았는데, 이날 정 회장이 현정은 회장을 직접 보고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현 회장은 훗날 남편의 첫인상에 대해 “군인이라 머리가 짧았는데, 인상은 좀 별로였다(웃음). 처음 만난 날 태릉사격장에 가서 총 쏘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사람이 듬직해 보였다”고 술회했다. 정몽헌 회장과 현 회장은 교제 1년 만에 서둘러 결혼했는데 이는 정주영 회장의 재촉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몽헌 회장이 현 회장과 데이트를 하고 온 날은 어김없이 “오늘은 청혼을 했느냐?”고 묻곤 했다는 것.
정주영 회장은 자녀들에게 연애결혼을 장려한 반면 며느리의 사회 활동은 제한했다고 한다. 현대가 며느리들은 매일 새벽마다 청운동 정주영 회장의 자택을 찾아 아침상을 차리고 남편 출근을 돕는 것은 물론, 집안의 큰 결정은 거의 모두 남자가 하고 여자들은 여기에 따라야 했다. 딸만 넷인 집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란 현 회장은 이런 현대가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다. 현 회장은 이런 가풍을 거스르지는 않았지만 맏딸 지이씨를 낳은 후에는 남편과 함께 유학을 떠나 미국 페어리디킨슨대에서 석사과정(인성개발학)을 밟고 이후에는 자녀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 사회와 연결된 끈을 놓지 않았다.

위기 때마다 빛을 발한 뚝심 경영
현정은 회장의 보통 주부로서의 삶은 2003년 남편의 자살과 함께 막을 내렸다. 평생을 의지했던 남편의 죽음은 그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훗날 지인에게 “아이들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마냥 넋 놓고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고 정 회장은 그에게 “대북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현 회장은 그해 말 현대그룹 총수로 취임했다. 30년 동안 살림만 하던 그가 경영에 나설 것을 선언하자 주변에서는 ‘살림만 하던 주부가 경영을 알겠느냐’ ‘현대그룹이 구멍가게인 줄 아느냐’는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군다나 당시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이라는 구심점을 잃고 임직원들이 우왕좌왕하면서 경영 체계가 흔들렸고, 한때 재계 1위를 자랑했던 그룹의 위상도 15위로 추락해 있었다. 현대건설과 현대전자 등 우량 계열사들은 채권단 손으로 넘어가고, 부실 규모는 34조원을 넘는 등 그룹의 운명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벼랑 끝 위기였다.
취임 직후 터진 숙부 정상영 KCC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인한 대북사업 중단 위기 등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하지만 시련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현 회장은 KCC와의 분쟁 때는 국민주 운동으로 우호세력을 결집했고, 대북사업 위기 때는 딸 정지이 현 유엔아이 전무와 함께 직접 평양을 찾아 다섯 번이나 체류 기간을 연장한 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 성공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확대 등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현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 앞서 그룹의 한 행사에 참석,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연주 도중 3개의 줄이 끊어지고 1개만 남았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연주를 마무리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대북사업 중단은 연주회 중 바이올린 줄이 끊어진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 역시 줄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파가니니처럼 역사에 남을 훌륭한 연주를 하자”고 임직원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현 회장의 지인들에 의하면 그는 평소 그룹 내 회의 때는 주로 말을 아끼고 임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북한과의 협상 때는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었으며 한 치의 밀림도 없이 할 말을 다했다고 한다. 네 차례나 되는 협상 테이블에서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고 정주영 회장의 불도저 정신을 가장 많이 닮은 며느리라는 평도 얻었다.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임직원 공감 이끌어내고 결속 다져
이 같은 현 회장의 뚝심 경영으로 현대그룹의 연간 매출액은 2002년 6조4백95억원에서 2008년 12조7천8백억원으로 늘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7백22억원 적자에서 7천6백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현 회장은 2009년 8월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으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사실 현정은 회장의 이러한 경영자의 자질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현 회장의 할아버지 고 현준호 옹은 호남에서 손꼽히는 갑부로, 일제강점기에 호남은행을 창립했다. 아버지인 고 현영원 회장 역시 현대상선 전신인 신한해운 창업주이며, 현 회장의 외할아버지는 1960~70년대 국내 직물 산업을 이끈 전방 창업주 고 김용주 회장이다.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현 회장의 외삼촌이다.

‘뚝심 경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인생 스토리

현정은 회장이 가장 아끼고 의지하는 맏딸 정지이씨와 함께.



집안 배경만 놓고 보면 권위적인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 회장은 굉장히 소탈한 성격이라고 한다. 학창시절엔 동기생들조차 그의 집안 내력을 아는 이가 드물었으며 막내아들 영선씨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부모 동반 행사에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평범한 옷차림으로 참석하기도 했다는 것. 당연히 아무도 그가 국내 굴지 기업의 며느리임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현 회장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한다고 한다. 대북사업이 중단되었거나 경영권을 위협받을 때에도 사내 이메일을 통해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솔직한 대화로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는 것. 한번은 그가 회사 임직원 전원에게 ‘매일 KISS 하십니까’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여기서 KISS는 ‘Keep It Simple · Speedy’의 첫 자를 따 조합한 말로, 단순함과 신속함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현 회장은 더운 여름에는 임직원들에게 삼계탕을 선물하는가 하면,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육아서를, 여직원들에게는 직접 고른 다이어리를 선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매년 금강산에서 개최하는 신입사원 수련회에서 신입사원과 함께 등산과 게임을 하면서 소통을 실천한다. 이런 현 회장의 솔직담백한 소통의 리더십은 회사가 어려울 때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됐고, 직원들의 용기와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현대그룹 안팎의 공통된 견해. 현정은 회장이 방향키를 잡고 있는 현대그룹호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동아 2010년 12월 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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