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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에너자이저

루저 조혜련의 위너로 거듭나기

글 오진영 사진 지호영 기자 || ■ 헤어&메이크업 지연(HAN'S HAIR 선릉점) ■ 코디네이터 민희진

2010. 04. 16

한동안 ‘비호감 연예인’으로 분류됐던 조혜련이 도전과 열정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다이어트 비디오 대박에 이어, 일본 진출 성공까지 그는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만류한 일에 뛰어들어 이뤄내고야 말았다. 잘난 점보다 부족한 점이 더 많았기에 가만히 앉아서 받기보다 달려들어 따내야 했던 그의 도전 인생 풀 스토리.

예능 프로그램에서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근육질 여전사’ 콘셉트로 밀고 나가는 조혜련(40). 알고 보니 방송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들이대는’ 도전의 연속이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일에도 “갈 때까지 가보자”며 밀어붙이고, 주변에서 만류하면 더 강한 의지로 “멋지게 보여주겠다”며 뛰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바를 이루고야 만다.
그는 말한다. “조혜련이 해냈는데 누군들 못하겠어요!” 꿈을 이루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자신이 없어서, 실력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집안 환경이 어려워서 포기하려 한다면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도전1 딸들은 대학 가지 말라고?

루저 조혜련의 위너로 거듭나기


“제게 청개구리 기질이 있나봐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죠?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조혜련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동력은 ‘금지’와 ‘결핍’이었다고 단언한다. 안 되는 것, 모자라는 것이 너무 많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힘겹게 노력하는 사이 어느덧 훌쩍 커버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청개구리 기질이 처음으로 발휘된 건 중학교 때다. 어머니가 딸 여섯을 모아놓고 “너희는 고등학교까지만 다녀라. 그 이상은 보내줄 능력이 안 된다”고 선언하자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꿈틀댔다.
“그전에는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내 인생에는 대학이란 게 없다고? 왜 그래야 하지?’ 하는 반발심이 생기더라고요. 그 뒤로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없는 살림에 아들 하나 얻겠다고 어머니는 계속 아기를 가졌는데 매번 딸이었다. 사나운 표범 한 마리가 어머니 품으로 달려드는 태몽 때문에 이번엔 확실히 아들이라고 확신하며 낳은 다섯째가 바로 조혜련이다. 그 뒤로도 딸이 둘이나 더 태어나자 할머니는 일곱째를 남의 집에 보냈다.
“4년 전쯤 그 막내 여동생을 찾았는데 엄마와 똑같이 생겼더라고요. 처음엔 동생이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엄마와 가깝게 지내요.”
조혜련은 요즘도 가끔 내다 팔아야 할 채소가 썩어버려 펑펑 우는 꿈을 꾼다. 농사로 대가족이 먹고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채소 장사를 나갔던 기억 때문이다. “쑥갓 사세요! 밭에서 갓 따온 거라 엄청 싱싱해요. 설마 어린아이가 거짓말하겠어요?” 열 살 때부터 이렇게 외쳐댔다. 밤 9시고, 10시고 들고 나간 쑥갓이 다 팔릴 때까지 시장에 남아 버텼다.
그는 채소 장사 할 때 발휘하던 악바리 근성을 중학교 때부터 공부에 쏟아 부었다. 대학 생각을 접으라는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언니들은 모두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문계로 진학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라”고 격려해주는 사람 하나 없었기에 더 악착같이 공부했다는 그. 마침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했다.

>>>도전 2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얼굴?
조혜련은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연기를 지켜본 교수로부터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웃기다. 너는 개그맨이 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개그맨이 되기로 결심하고 방송국 개그맨 시험에 응시했는데, 결과는 연이은 낙방. 충격이 컸다. 당시 채소 장사로 학비를 마련해 한 학기 다니고, 다시 휴학해 공장에서 학비를 벌고, 복학하는 등 대학 생활을 어렵게 이어가고 있던 그는 학업을 계속할 용기를 잃었다.
“공부도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도 모두 포기하고 싶었어요. 학교를 휴학하고 수원에 있는 과자 공장에 들어갔어요.”



루저 조혜련의 위너로 거듭나기


하루 12시간씩 주야 교대 근무를 하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남지 않는 힘겨운 나날이었다. 어느 날 퇴근 후 지칠 대로 지친 동료들이 TV에 나오는 ‘봉숭아 학당’을 보며 깔깔 웃는 모습을 접하고 놓아버리고 싶었던 꿈을 다시 붙잡았다. ‘저렇게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이 꼭 되고 싶다.’
복학해서 2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을 때 당시 경기대 학생이던 금병완과 김국진이 찾아와 개그맨 공채 시험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세 명이 한 팀을 이뤄 참가한 개그맨 시험에 김용만 박수홍 유재석 남희석 등도 도전했다. 조혜련 팀은 1차와 2차에 합격, 3차까지 진출했다. 결과는 조혜련만 3차에서 탈락. 나머지 두 명은 최종 합격했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유를 물어보니 심사위원으로부터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얼굴”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그맨 시험에 함께 나갔던 김국진이 TV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자 다시 청개구리 기질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개그맨이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당시 KBS에 대학생들이 출연하는 ‘청춘스케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반짝 가요제’라는 코너에서 노래를 재미있게 부르면 상금이 50만원이었다. 상금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에 나가서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 ‘I’ll always love you’를 충청도 버전으로 코믹하게 불러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청춘스케치’에 출연하고 있던 개그동아리그룹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연락해왔다. 단 3초 출연을 위해 8시간 이상 화장실에서 연습하는 열의를 보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는 특채로 KBS 개그맨이 되었다. 하루 세끼를 라면으로 때우는 신인시절을 거치고서야 스타덤에 올랐다. ‘울엄마’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98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운드엔지니어 김현기씨와 연애 1백일 만에 결혼해 딸 윤아와 아들 우주를 낳았다.

>>>도전 3 그 몸매로 다이어트 비디오를?
조혜련 하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다이어트 비디오’다. 그는 모델이나 배우가 아닌 개그맨으로서는 처음 다이어트 비디오를 만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몸무게가 68kg이었고, 방송 데뷔 후에는 57kg이었어요. 개그맨으로 활동하는 데는 통통하고 웃기게 생긴 외모가 도움이 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평균 신장을 훌쩍 뛰어넘는 팔등신 미녀보다는 ‘토종 몸매’인 자신의 다이어트 경험이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하지만 선뜻 제작비를 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모아놓은 쌈짓돈을 털어 직접 나섰다.
좋아하는 군것질과 맥주도 끊고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하루 3시간씩 몸 만들기 운동에 돌입했다. 냉장고 문에 그보다 먼저 다이어트 비디오를 낸 모델 이소라의 사진을 붙여놓고, ‘나 같은 사람도 저렇게 멋진 몸매를 만들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두 달 반 만에 8kg을 감량하고 허리 24인치에 탄탄한 근육으로 라인이 잡힌 미끈한 몸을 갖게 됐다.
순전히 그의 의지와 땀으로 세상에 나온 다이어트 비디오는 60만 장이 팔려나가는 ‘대박’을 터뜨렸다. 다이어트 비디오로 돈도 벌고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했지만, 가장 큰 수확은 ‘맨땅에 헤딩하듯 좌충우돌하다 보면 뭘 못하겠나’ 하는 자신감이다.

>>>도전 4 조혜련은 일본에서 절대 성공 못한다?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싶으면 몸을 던져서라도 빵빵 터뜨리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2005년, 그는 느닷없이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가족들과 휴가차 떠난 일본 여행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몇 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깜짝 놀랐어요. 이병헌·배용준 같은 배우들을 한 번 만나보는 게 소원이라는 둥 한국 연예인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나도 일본에서 활동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번 꽂히면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다. 13년 방송 경력이 아무 소용없을 일본에서 신인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그의 결심에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가족은 물론 소속사 대표와 친한 동료 연예인, 방송 관계자들까지 모두 만류했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신문 기사를 통해 배우나 가수는 몰라도 ‘코미디언 조혜련은 일본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단정 짓기도 했다. 문화적·언어적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울 거란 예상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이 그의 청개구리 기질을 제대로 자극했다.
“잘해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일본 진출 계획을 밀고 나갔어요.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윤손하씨와는 아무런 친분도 없는데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윤손하의 소개로 만난 일본인 매니저는 6개월 동안 일본어를 완벽하게 습득한 다음 다시 만나자고 했다. 일본 진출이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일본어라도 남을 테니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매일 8시간씩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다.
“윤아가 여섯 살, 우주가 네 살이라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함께 놀아주지 못하고 공부만 했어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이건 미안할 일이 아니다,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엄마를 아이들도 언젠가는 자랑스러워할 거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하루에 단어 1백 개씩 외우며 꼬박 6개월을 공부했다.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일본인 매니저는 그의 일본어 실력에 화들짝 놀랐다. 매니저보다 더 놀란 건 사실 조혜련 자신이다.
일본 방송 출연이 마침내 현실이 되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낼 수 없고, 일본에서는 새파란 신인이라 수입이 많지 않아 한국 활동을 접을 수 없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일정이 몰리는 바람에 하루에 비행기를 네 번 타고 왔다 갔다 한 적도 있어요. 집에 돌아와 잠자고 눈을 뜨면 여기가 한국인가 일본인가 헷갈려서 아이들 소리가 안 들리면 ‘일본이구나’ 했답니다.”

>>>도전 5 이혼 위기… 연예인 가정은 쉽게 깨진다?
그는 일본에서 각종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 시사 프로그램과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일본 연예계에 연착륙한 듯 보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달픈 나머지 수백 번도 더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느라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그를 힘들게 했다.
“한동안은 제가 집에 들어가도 딸이 저를 못 본 척 투명인간 취급을 했어요. 남편과는 이혼 위기까지 갔고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남편은 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꺼려했다. ‘하겠다’ ‘하지 마라’ 하는 갈등을 몇 번 겪고 나자, 그는 새로운 일을 계획할 때면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저 사람은 내가 뭘 하든 반대부터 할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일본 진출도 그랬다. 남편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남편의 자존심이 크게 상처받고 있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남편을 거추장스러워하며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급기야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둘 사이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작정한 듯 사흘 밤낮으로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조혜련은 그제야 한 사람의 아내인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한 번 폭풍우가 몰아쳐 앙금을 쓸어버리고 나니 두 사람의 관계는 비 개인 다음 날처럼 화창해졌다.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은 가족들과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 힘들다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하면 어떨까? 널 응원하고 아끼고 사랑한다!”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 격려한다.

미국 진출 겨냥 매일 3시간씩 영어공부

루저 조혜련의 위너로 거듭나기


그는 요즘 일본에서 영화 촬영 중이다. ‘숲에 노래가 들린다’에서 폐교 위기에 처한 시골학교로 발령받은 재일동포 여교사 역을 맡았다. 주인공이다. 개그맨이 되기 전 가졌던 배우의 꿈을 일본에서 이루게 된 것에 대해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물 같다”고 말한다.
서라벌예대 출신으로 평생 배우의 꿈을 가슴에 안고 사셨던 그의 아버지는 연예인인 딸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다.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들에게 미안해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그는 아버지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을 일본 방송에 출연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을 방송으로 본 영화감독이 그에게 영화 출연을 제의한 것이다.
“어릴 때 아버지한테 용돈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다고 일기에 쓴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그걸 보시고 마음이 무척 아프셨나봐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아파트 경비로 난생처음 취직해 번 돈 3천원을 들고 학교 앞에 오셔서 건네주신 적이 있어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남루한 행색의 아버지를 친구들이 볼세라 그는 3천원을 건네받자마자 쏜살같이 도망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날의 기억은 때늦은 후회로 그의 가슴에 와 박혔다.
그는 이 사연을 일본 방송에 출연해 얘기했고, 1등을 차지했다. 이 방송을 보고 그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호사카 노부히코 감독이 “당신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건 누가 가르치거나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 영어공부 삼매경에 빠졌다. 미국 진출을 위해서다.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제는 미국에 도전해야죠?” 하고 던진 질문에 “그럼요” 하고 가볍게 대답한 것이 미국 진출 도전의 출발점이 됐다. 가방에 영어 소설책을 넣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소리 내어 읽고 집에서는 동영상을 보며 대사를 따라 하는 ‘큰 소리 영어법’으로 매일 3시간 이상 영어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이유보다는 도전해도 되는 이유를 먼저 찾아내 일기장에 굵은 글씨로 써놓은 것은 물론이다. 미국 시장에 못 나가면 조혜련의 영어공부법 강의라도 하자는 배짱이다.
그는 지금껏 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며 도전해온 자신의 삶을 최근 자서전으로 펴냈다. ‘열렬하다 내 인생!’이라는 제목에선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일을 벌이는 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단지 제게 여러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잡지 않는 것보다는 일단 기회를 잡은 다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나폴레온 힐이라는 성공학 연구자가 25년 동안 수만 명의 성공한 사람을 만나 연구하고 내린 결론은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정확하게 적고, 그것을 매일 반복해서 읽고,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거예요. 저도 제가 바라는 일들을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서 미래의 일기로 적어요. ○년 ○월○일 일본의 유명한 배우와 CF 촬영, 오프라 윈프리 쇼 출연, 결혼 20주년 크루즈 여행….”
미국 시장에 도전해야 하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 수업도 받아야 하고 박사 학위도 탐나고 새로운 다이어트 비디오도 제작하고 싶은 욕심쟁이에게 지금껏 살면서 간절히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팔다리가 좀 길어지면 좋겠는데 그건 노력해서 안 되더라고요. 하하.”
개그맨 본능을 감추지 못하고 유쾌하게 웃고 난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죠?”
그가 이날 이후 일기장에 ‘셋째 출산’을 적어놓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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