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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향년 87세로 선종한 우리 시대 聖者

글 이영래 기자 | 사진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입력 2009.03.23 16:24:00

지난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이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교황장으로 5일장을 치르는 동안 다녀간 명동성당 조문객만 약 40만 명.
추기경이 남긴 뜻을 기리는 행렬은 종교·성별·지역을 떠나 이어졌다. 김수환 추기경이 지나오신 길.
김수환 추기경

지난해 7월 노환으로 입원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2월16일 오후 6시 선종했다. 이미 지난해 10월 초 한때 호흡곤란으로 고비를 넘겼던 그는 가슴에 꽂은 링거주사로 영양을 공급받아오다, 선종 전날 폐렴 증세를 일으켰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으니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한 터라 인공호흡기 등의 처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생전 장기기증을 약속한 추기경의 뜻에 따라 안구 적출수술이 이뤄졌고, 이후 명동성당 유리관에 안치돼 조문객을 맞았다. 교황장으로 5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의 수는 약 40만 명, 3~4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했지만 조문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2월20일, 수만의 추도객이 운집한 가운데 치러진 장례미사를 끝으로 명동성당을 떠난 그는 경기도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역에 영면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1922년 음력 윤5월8일 대구 남산동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김보현(요한)으로 1868년 무진박해 때의 순교자였고, 그의 부모인 김영석(요셉)과 서중화(마르티나) 역시 가톨릭 신자였다.
초등학교 5년 과정인 군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형 김동환 신부와 함께 성직자의 길에 들어서기로 결심, 193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진학했다. 1941년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돼 그해 4월 일본 도쿄의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1944년 학병에 징집돼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기도 했으나 이듬해 전쟁이 끝나고 학업을 마친 뒤 귀국했다.
추기경은 4년 뒤인 1951년 9월15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사제로 서품됐다. 김수환 추기경이 첫 사목 생활을 시작한 곳은 경북 안동 본당. 그는 나중에 성직생활 50여 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난한 신자들과 웃고 울던 본당신부 시절”이라며 “주교 직무를 다 내려놓고 시골의 성당으로 가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후 독일 뮌스터대로 유학, 대학원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가톨릭 시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초대 마산교구 교구장을 거쳐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됐다. 이때 그가 택한 사목 표어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였으며 이는 지금 그의 묘비명으로 남았다.
46세 나이였던 69년 3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됐는데, 당시 전 세계 추기경 1백36명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며 ‘봉사하는 교회’ ‘역사적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를 주창한 그는 70~80년대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로서, 또 민주화 열망의 대변자로서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87년 6월 민주화 운동 때 대학생이 숨어 있는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관계자에 맞서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다음 신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를 밟고 가십시오”라고 일갈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가 됐다.
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인권개선과 체제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나라의 어른으로서 매 순간 순간 귀한 가르침을 주었다.

평화를 지켜주는 푸른 별이 되소서
김수환 추기경 영전에
이해인 수녀
언젠가는 이렇게 당신과의
마지막 이별이 오리라 예상했지만
막상 소식을 듣고 보니
가슴이 철렁합니다
커다란 등불 하나 사라진 세상이
새삼 외롭고 아프고 쓸쓸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추기경님의 사목 표어가
당신의 삶을 그대로 말해줍니다
진정 모든 이를 위한 삶이었기에
그만큼 고달프고 고독했던 시간들조차
큰 사랑으로 성화시키신 크신 아버지
우리 곁엔 언제나
‘기댈 언덕’이신 당신이 계셔 좋았습니다
한국교회의 버팀목이신 거룩한 사제,
지혜의 스승, 시대의 예언자,
용서하는 치유자이신 당신이 계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 든든했습니다
순교자의 피로 축복받은 이 땅에서
사랑의 소임 충실하게 마치시고
이제는 존재 자체로 죽음 너머의
기도가 되신 추기경님
우리 가슴속에 오래도록 살아계실
사계절의 추기경님
슬픔이 내어 준 길을 따라
깊은 그리움 모아 기도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근심과 고통으로
당신을 잠 못 들게 했던
이승에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지복의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우리나라와 겨레의 평화를 지켜주는
푸른 별이 되소서
얼마 전 제가 병실에서 뵈었을 때
아픔 속에도 유머를 잃지 않으시던
따스한 웃음, 남을 먼저 배려하고
챙기시던 그 넉넉한 사랑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말의 애도보다
침묵 속의 기도를 더 반기실
당신을 그리며 말을 아끼렵니다
마지막 감사와 이별의 인사를
눈물로 대신하며 두 손 모읍니다
지상에 남아 있는 우리 모두
당신처럼 진실하고 겸허하고
깨끗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아름다운 첫 약속의 기도 속에

여성동아 2009년 3월 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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