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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프라이버시 인터뷰

‘미니스커트의 여인’ 윤복희 인생 고백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8.08.22 10:43:00

철이 들기 전부터 무대에 서야 했던 아이,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소녀는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고된 삶을 헤쳐온 끝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가 됐다. 윤복희를 만나 그의 환한 미소 뒤에 감춰진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니스커트의 여인’ 윤복희 인생 고백

윤복희(62)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미니스커트’다. 그는 우리나라에 ‘월남치마’가 유행하던 60년대 중반,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나 큰 화제를 모았고, 미니스커트만큼이나 파격적인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다.
1968년 6월 ‘여성동아’가 선정한 ‘이달의 여성’은 ‘돌아온 미니아가씨 윤복희양’.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사진 아래로, 당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의 패션 감각과 음악성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그로부터 꼭 40년이 흐른 지난 7월 초, 서울 중구의 한 뮤지컬 연습실에서 윤복희를 만났다. 까만 레깅스에 하늘색 셔츠를 입은 그는 여전히 날씬했고, 짧은 단발머리에서는 상큼함이 풍겼다. 윤복희는 지금도 20·30대 배우들과 함께 뮤지컬 무대에 서는 현역 배우다.
“처음 무대에 선 게 다섯 살 때니 어느새 48년째네요. 어릴 때는 만나는 기자들마다 ‘어른들 틈에서 공연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는데, 요즘은 ‘젊은 사람과 함께 공연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들 해요. 그만큼 시간이 흘렀죠.”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늘 관심의 한가운데 있었다. 윤복희의 아버지는 해방 전후 ‘부길부길 쇼’를 이끌며 큰 인기를 누렸던 코미디언 윤부길씨. 경성음악대를 졸업하고 일본 음악학교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윤씨는 코미디언이면서 무대연출가·싱어송라이터·영화감독을 겸한 당대의 천재였다. 어머니는 전설적인 춤꾼 최승희의 제자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고전무용가 성경자씨. 두 예술인 사이에서 태어난 윤복희는 철 들기 전부터 자연스레 춤과 노래를 배웠고, 다양한 예술을 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편에 빠져들면서 그의 삶은 격랑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가 정부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고 해요. 그로 인한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마약에 손을 댄 거죠. 아버지는 점점 중독이 심해져서 제가 여섯 살 때 마약 중독자 수용소에 들어가셨어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혼자 전국 순회 공연을 다녔고요.”

철 들기 전에 찾아온 부모의 죽음,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무대에 서야 했던 어린 시절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된 윤복희는 마약 중독자 수용소 근처 여관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윤복희는 그때를 “낮에는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밤이면 부엌 한구석에서 잠을 청하던 시절”로 기억했다.
“일을 하다 운 좋게 팁을 받으면 사탕과 카라멜을 사서 아버지에게 달려갔어요. 마약을 끊은 사람은 단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때는 외롭다, 춥다, 배고프다 같은 감정조차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었어요.”
하지만 장맛비가 쏟아지던 일곱 살 여름,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았다. 강원도 묵호의 한 공연장에서,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윤복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심장마비’라는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저릿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무렵 내내 비가 왔는데 어머니를 묻던 날엔 해가 났어요. 아버지가 새빨간 흙으로 덮인 무덤을 맨 손으로 파헤치며 목 놓아 울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요. 그게 참을 수 없이 싫었거든요. 당신이 괴롭히지 않았다면, 마약을 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아버지가 미웠고, 죽은 어머니도 미웠죠. 그날 무덤 앞에서 혼자 결심했어요. 나는 나중에 커도 절대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자식을 낳아서 이렇게 마음 아프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아버지와 함께 ‘윤부길과 천재 소녀 윤복희’라는 간판을 들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공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다시 마약을 시작하면서 그는 아홉 살 때 아버지에게서 도망쳐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죽고 나면 더 이상 엄마를 그리워할 일도 없을테고, 이렇게 괴롭지도 않겠지 하는 생각에 부엌칼을 제 배에 갖다 댔죠. 그런데 뾰족한 금속 끝이 살갗에 닿는 순간 아프더라고요. 죽은 뒤가 아무리 편안하다 해도, 죽기 전까지는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제가 좀 독해진 것 같아요. ‘열심히 살자’고 생각했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죠.”
여러 악단과 극단을 오가며 무대에 서고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몇 년 뒤 서울 명동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마약과 세상살이에 지친 아버지는 쌀쌀한 초겨울인데도 여름 양복을 입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저를 보더니 오빠를 부탁한다고 하시더군요. 오빠는 절대 이쪽, 연예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요. 그게 제가 아버지를 뵌 마지막 모습이에요. 얼마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죠. 얼마나 힘드셨으면 갓 열 살 넘은 딸에게 아들을 부탁하셨을까, 좀 더 자란 뒤 그 일을 생각하면 늘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는 더 악착같이 일하고 돈을 벌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였던 미8군의 유명 쇼 단에 들어갔고, 그러던 중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적인 재즈 스타 루이 암스트롱이 내한공연을 열면서, 당시 귀여운 외모와 노래 솜씨로 인기를 끌고 있던 열여섯 살 소녀 윤복희에게 함께 무대에 설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때 제가 루이 암스트롱 모창을 했는데 괜찮게 보였나봐요. 같이 미국에 가서 활동하자고 하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돼 63년부터 해외 활동을 시작했죠.”
윤복희는 곧 해외에서 화제를 모았다. 영국 BBC, 미국 CBS 등의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쇼였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으며 언론으로부터 ‘비틀즈보다 개성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오직 한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입었던 미니스커트,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랑이 끝난 뒤 다시 시작된 삶”
‘미니스커트의 여인’ 윤복희 인생 고백

그 무렵 사랑도 찾아왔다. 상대는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 가수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유주용씨. 윤복희가 미8군 무대에 설 때부터 알고 지낸 그는 윤복희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남모를 아픔까지 감싸준 부모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저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해준 사람은 그 전에도, 후에도 없어요. 제가 세상 살면서 필요한 건 전부 그분한테 배웠죠.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유행에 맞는 옷을 골라주고, 처음 미국에 가게 됐을 때는 음식 먹는 법 같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가르쳐줬어요. 그래서 외국 생활을 하다 힘들고 지칠 때면 늘 그분에게 엽서를 보냈고, 마음 속으로 ‘언젠가 저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죠.”
67년 미국 공연 중 잠시 휴가를 받아 귀국했을 때 그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도 오직 유씨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해 약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결혼한 뒤 윤복희는 남편과 시어머니까지 온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미니스커트의 여인’ 윤복희 인생 고백

화려한 성공 만큼 아픔도 많던 젊은 시절을 극복하고 뮤지컬 배우로서 새로운 행복을 찾은 윤복희.


“정말 행복했어요. 우리는 제가 공연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죠. 시장에 가거나 차를 탈 때,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조차 붙어 다녔어요. 그 행복이 너무 좋아서, 그만 무대에서 내려와 살림만 하는 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먼저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만 한다면 기꺼이 일을 그만뒀을 거예요.”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쇼 무대에서 화려한 성공을 이어가던 윤복희를 둘러싸고 갖가지 루머가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유씨는 날로 바빠지는 아내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가 다른 사람과 열애 중이라는 소문까지 들리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미국에 워낙 동양인이 적었기 때문에 제가 눈에 많이 띄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짝사랑하는 사람도 좀 있었던 것 같고요. 제 마음 속엔 늘 남편뿐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런 헛소문에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남편은 그게 아니었던 거죠. 어느날 제게 ‘자꾸 나쁜 소문이 들리는데 사실이냐’고 묻더군요.”
윤복희는 그 순간 남편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열다섯 살 꼬맹이 시절부터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줬던, 연인이고 남편이며 동시에 부모인 사람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만 이성을 잃고 “그래, 맞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신을 의심하는 남편이 미워서, 괜한 자존심에 오히려 못되게 굴기도 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한 것이다.
“이번엔 남편이 너무 놀랐어요. 제겐 늘 크고 대단하게만 보이던 사람이 눈물을 보이더군요. ‘우리 어머니가 나를 배반해도 나는 괜찮다. 그런데 네가 그러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서요. 그때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지만 돌이킬 수 없었어요. 무릎을 꿇고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당신뿐’이라고 말해도 한 번 돌아선 마음을 잡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결국 결혼 생활은 허무하게 끝났고, 그는 모든 상처와 고통을 안은 채 혼자 방황해야 했다. 부모를 잃은 어린 시절 이후 또 한 번,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당대 최고 인기 가수와 잠시 결혼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윤복희에게 고통만 남긴 채 끝났다.
“어쩌다 보니 두 번 결혼을 했지만 제가 정말 사랑한 사람은 첫 남편뿐이었어요. 그분은 지금도 제가 공연을 할 때면 종종 찾아와 격려해줄 만큼 좋은 친구로 남아 있죠. 젊은 시절 철없던 행동으로 모든 걸 망쳤지만, 뜨거운 열정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 사이에 서로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남아 있는 것이 참 감사해요.”
다시 혼자가 된 윤복희는 76년 잠시 귀국했다가 차량이 전복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극적으로 살아남은 뒤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미국 공연 활동을 접고 뮤지컬 공연에 뛰어든 것. 뮤지컬은 그의 아버지가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장르고, 윤복희가 다섯살 때 데뷔한 무대이기도 하다. 그는 뮤지컬 무대에 서고 종교를 갖게 되면서 비로소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77년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에서 에디트 피아프 역을 맡아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이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피터팬’ 등 수많은 뮤지컬에 출연하며 30년 넘게 무대를 지키고 있다.
“뮤지컬을 하면서 오랫동안 미워했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내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이 무대를 어느 날 갑자기 빼앗긴다면 나는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는 뮤지컬 무대에 서서 춤추고 노래할 때면 자신이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서는 것, 그래서 자신이 오랜 방황 끝에 얻은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가끔 다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때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은 젊은 시절 몇 번이나 낙태를 했다는 거예요. 책임질 수 없다는 마음에, 어린 시절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큰 죄를 짓고 말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삶의 행복과 기쁨을 믿어요.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번 생에서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여성동아 2008년 8월 5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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