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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둘러싼 논란

‘대리번역’의혹으로 방송 사퇴한 정지영 vs 정지영 상대로 집단소송 제기하는 이창현 변호사

글·이남희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6. 11. 23

1백만부가 넘게 팔린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가 대리번역 의혹에 휩싸였다. 방송인 정지영이 번역자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된 이 작품의 실제 번역자가 나타났기 때문. “이중 번역 사실을 몰랐다”고 밝히며 방송에서 사퇴한 정지영과 출판사와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이창현 변호사의 양측 입장을 취재했다.

“이중번역 사실 몰랐다”고 밝힌 정지영
‘대리번역’의혹으로 방송 사퇴한 정지영 vs 정지영 상대로 집단소송 제기하는 이창현 변호사

“이 의자가 늘 편했는데 요즘 며칠은 불편했어요. 끝까지 저를 믿고 걱정해주신 ‘달콤가족’(스위트 뮤직박스 청취자)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늘 힘이 돼드려야 했는데 여러분께 받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이제 인사드려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정지영이었습니다.”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 의혹에 휩싸인 방송인 정지영(31)이 10월19일 7년간 진행해온 SBS 파워FM ‘스위트 뮤직박스’와 작별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대리번역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방송 진행에서 물러난 것. 그는 이날 방송 진행에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본의 아니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은 절대 아니었기에 해당 서적을 통해 얻은 수익금 8천1백만원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 의혹이 불거진 것은 지난 10월11일. 전문번역가 김경환씨(필명)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리번역을 조건으로 내가 ‘마시멜로 이야기’를 번역했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출간 11개월 만에 1백만 부를 돌파한 ‘마시멜로 이야기’는 지적인 이미지의 정지영이 번역자로 알려져 더욱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책의 실제 번역자가 나타나면서, 스타를 내세운 출판사의 비윤리적인 영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출판사인 한경BP는 이에 대해 “대리번역이 아니라 이중번역”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번역자가 있음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도덕적인 차원에서 상처를 받게 된 정지영씨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정지영과 전문번역가 김씨의 번역본을 놓고 더 좋은 부분을 취하는 식으로 재편집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해명이다.
당사자인 정씨는 10월12일 자정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준 달콤가족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은 하지 않아서, 대리번역에 대한 의혹이 커졌다.
‘이중번역이 맞는가’를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명 번역가 강주헌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글에는 일정한 톤(tone)이 존재하는데 두 번역가의 좋은 문장만 따서 한데 모은다는 것은 경험상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실제 번역자인 김경환씨 역시 “출판사가 계약서에 ‘책 번역자로 제3자를 내세울 수 있고 이를 비밀로 한다’는 내용을 넣자고 해 동의했다”며 “이중계약을 할 생각이었다면 왜 ‘제3자를 번역자로 내세울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법무법인 홍윤의 이창현 변호사가 책 구매자들과 함께 출판사와 정지영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출판사 한경BP는 10월18일 이후 인쇄되는 ‘마시멜로 이야기’에 김경환씨와 정지영을 공동번역자로 기재하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다.
대리번역 의혹으로 방송 사퇴 압력을 받아온 정지영은 10월19일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이중번역 사실은 몰랐지만) 처음부터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한다”며 “지금 진행하고 있는 SBS 라디오 ‘스위트 뮤직박스’와 SBS TV ‘결정! 맛대맛’에도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간 침묵한 이유에 대해서는 “출판사의 사실 해명으로 이 일을 정리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라 여겨 빨리 본인의 입장을 밝히고 오해를 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소속사 티엔엔터테인먼트 측은 ‘정씨가 이중번역에 대해 미리 알고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에 대해서 정면으로 부인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난 후 최종 원고를 받아보았을 때 원래 번역본에 비해 훨씬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번역을 처음 해본 정지영씨로서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다듬었다고 생각했지, 또 다른 번역자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리번역인가, 이중번역인가. 정지영은 과연 다른 번역가의 존재를 몰랐을까. 이제 진실은 재판부의 판결이 가려줄 것이다.

정지영씨 · 출판사 상대로 집단소송 제기하는 이창현 변호사
‘대리번역’의혹으로 방송 사퇴한 정지영 vs 정지영 상대로 집단소송 제기하는 이창현 변호사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 의혹 사건이 법정 소송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독자들이 직접 나서서 출판사와 책의 번역자 정지영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것. 법무법인 홍윤의 이창현 변호사(33)는 지난 10월13일 한 포털 사이트에 ‘정지영 대리번역 대책’(http://cafe.daum.net/chlee5733)이란 카페를 열고, 해당 소송에 참가할 독자들을 모집했다.
이 변호사는 11월 초 정지영과 출판사인 한경BP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방침이다. 손해배상청구액은 1인당 최소 10만원에서 최고 1백만원에 이른다.
그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출판사의 스타 마케팅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소송 취지를 밝혔다.
“저도 번역자가 정지영 아나운서라고 해서 관심을 갖고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게 됐는데, 대리번역 의혹이 불거지면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스타를 내세운 출판사의 영업에 현혹돼 책을 구매하게 됐으니까요. 소비자를 기망하는 출판사의 영업으로 인해 독자들은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대리번역 사건이 재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변호사가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이유는 문제제기에 보다 힘을 싣기 위해서다. 책 한 권의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소송에 참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그는 “소송에 참여하고 싶은 구매자는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책을 구입했다는 증명서류(영수증, 카드내역서 등)를 준비하면 되며, 소송비용은 ‘홍윤’이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이중번역 사실을 몰랐다”는 정지영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방송에서 물러난 만큼, 동정여론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국민을 우롱한 대리번역 의혹의 진실을 가려 법적 제재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지, 정지영씨 개인에게 타격을 줄 생각은 없다”며 소송 진행 의지를 밝혔다.
“출판계에서는 대리번역을 ‘관행’이라고 하는데 관행이라고 모든 게 용서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면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가 대리번역인지, 이중번역인지 여부도 재판부가 가려줄 것입니다. ‘출판사가 독자를 얼마나 기망했느냐’로 판결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번 소송으로 지금껏 음지에서 일해온 번역가들과 대필 작가들이 인정받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 사건 일지
‘대리번역’의혹으로 방송 사퇴한 정지영 vs 정지영 상대로 집단소송 제기하는 이창현 변호사
10월11일 전문번역가 김경환씨,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리번역 조건으로 ‘마시멜로 이야기’를 번역했다”고 밝힘
10월12일 출판사 한경BP, “정지영씨에게 알리지 않고 이중번역했다”고 해명
정지영,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을 실망시킬 일은 없다”고 밝힘
10월13일 이창현 변호사, 포털 사이트에 ‘정지영 대리번역 대책’ 카페 개설
10월18일 한경BP, ‘마시멜로 이야기’에 김경환씨와 정지영을 공동 역자로 게재하기로 결정
10월19일 정지영, 방송 사퇴 의사와 함께 책 수익금 8천1백만원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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