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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자랑스러운 한국인

미국 수퍼볼에서 MVP 선정된 한국계 ‘흑진주’ 하인스 워드

“모든 고난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 자체가 나를 지탱케 해준 힘이에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공종식‘동아일보 뉴욕특파원’

2006. 03. 15

이제 그의 이름은 혼혈인의 희망을 대변하는 대명사가 됐다. 2월 초 열린 미국 수퍼볼에서 최우수 선수로 등극한 한국계 ‘흑진주’ 하인스 워드. 가난과 혼혈의 아픔을 딛고 미국 사회의 ‘영웅’으로 떠오른 그와 워드를 키워낸 ‘자랑스러운 어머니’ 김영희씨를 만났다.

퀴즈 하나.‘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 스포츠 천국인 미국이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풋볼이라 부르는 ‘미식축구’라고 대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식축구는 미국의 개척정신을 담고 있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미식축구에서 단 한 차례 경기로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꿈의 무대’ 수퍼볼은 미국 국민 중 약 1억3천만 명이 그 중계 방송을 시청하고 30초 방송 광고료가 2백50만 달러(약 25억원)에 이른다. 케이블TV 등 다채널 다매체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인 미국에서 25% 이상의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프로그램은 수퍼볼이 유일하다. 이번 40회 수퍼볼의 평균 시청률은 40%를 넘어섰다. 경기가 열리는 날엔 피자 판매량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그런데 2월5일 열린 이번 수퍼볼은 또 하나의 ‘영웅’을 탄생시켜 더욱 화제를 모았다. 4쿼터 초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터치다운을 찍은 뒤 수퍼볼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한국계 ‘흑진주’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가 바로 그 인물이다.
특히 워드는 MVP에 선정된 뒤 인터뷰에서 “내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수퍼볼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에서도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주한미군 아버지(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59) 사이에서 태어난 워드는 수퍼볼이 열리는 디트로이트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워드를 울리려면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워드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각별하다.

“처음에는 혼혈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
76년 서울에서 태어난 워드는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나면서 험난한 인생을 살게 됐다. 워드는 영어를 할 줄 몰라 양육권을 얻지 못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 루이지애나주의 할아버지에게 보내졌지만 여덟 살이 되던 해 어렵게 어머니와 함께 애틀랜타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날마다 접시를 닦고 호텔 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일하는 등 3가지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워드는 학창시절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대학 미식축구에서 쿼터백, 와이드리시버, 러닝백 등 3개 포지션을 모두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포레스트파크 고교, 조지아대를 거쳐 98년 북아메리카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 입성했다.
키 183cm, 몸무게 97kg으로 미식축구 선수로는 체격이 좋은 편이 아니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낙천적인 인생관, 성실함으로 NFL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워드는 지난해 9월 계약금 1천2백만 달러를 포함해 4년간 2천5백80만 달러(약 2백58억원)에 피츠버그와 재계약했다.
워드는 2월5일 수퍼볼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짬을 내지 못하다가 2월11일 애틀랜타 인근 맥도너에 있는 어머니 김씨 집을 찾았다. 이들 모자의 상봉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 취재진이 20명 넘게 몰려들기도 했다.
워드가 나타나자 김씨는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와 아들을 맞았다. 워드는 포옹과 입맞춤으로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전날 취재진에게서 배운 한국말이었다. 지난해 추수감사절 이후 두 달 반 만에 어머니를 처음 만난 워드는 “부인과 아들은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엄마와 오붓한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오늘 저녁에는 마마와 함께 짬뽕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워드는 고교 친구였던 시몬과 결혼했으며 현재 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는 취재진이 “어떤 선물을 준비했느냐”고 묻자 “우리 엄마 돈 좋아해요, 머니(돈) 많이 갖고 왔어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워드는 전날 자택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이며, 나한테 어머니는 영감(inspiration) 그 자체”라고 말하는 등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는 “처음에는 혼혈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며 “크고 보니 나의 절반은 한국인이고, 다른 절반은 흑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축복이었고 양쪽의 장점이 내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 자체가 나를 지탱케 해준 힘이었어요. 어머니는 국제결혼하고 영어도 잘 못하시면서 가족을 위해 고생하셨습니다. 엄마가 새로운 일을 찾으면 식당 일을 그만두시게 하고 싶습니다. 풋볼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 어머니는 제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어요. 엄마는 포기라는 것을 몰랐어요. 수퍼볼에서의 승리도 저와 어머니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또 “엄마는 먼저 나에게 겸손하라고 가르쳤다. 네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만큼 남에게 그만큼 대하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만나본 그는 소문처럼 ‘겸손한 영웅’이었다. 그의 자택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밤늦게까지 한국 기자들이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며 인터뷰를 요청하지만 그는 항상 특유의 ‘살인미소’를 지으면서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심지어 기자들이 한꺼번에 오지 못해 30분 차이로 차례로 도착해 똑같은 질문을 하는데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답변해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보통 만날 수 있는 ‘스타’와는 취재진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 취재진 사이에 “정말 착하고 겸손한 선수”라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지난 시즌 아메리칸 미식축구 컨퍼런스(AFC)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한 뒤 팀 동료 제롬 베티스가 풋볼을 그만두려 하자 그는 눈물로 만류했다. 그 눈물은 이후 팬들의 입에 내내 오르내렸을 만큼 그는 의리 있는 선수로 꼽힌다.
그는 4월 예정된 한국 방문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표시했다. 그는 “엄마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자랐는지,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다”며 “한국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어머니 이름으로 된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8년 동안 연락 끊었다가 미식축구 스타가 된 아들을 만나러 온 아버지
아들 워드의 MVP 선정으로 어머니 김영희씨도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김씨는 아들이 뛰던 수퍼볼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TV로 경기장면을 지켜봤다. 보통 선수가 수퍼볼에 출전하면 가족들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이 관례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내가 워낙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답변했다. 김영희씨는 아들이 유명 스포츠 스타로 떠오르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거의 없는데도 지금도 근처 고등학교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일주일에 다섯 차례는 꼭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오후 2시까지 일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받는 월급이 6백 달러(약 60만원). 이에 대해 김씨는 “놀면 뭐하느냐”고 반문한 뒤 “몇 년 전 한두 달 일하지 않고 놀았더니 몸이 이상하더라”고 말했다. 4월 예정된 한국 방문도 김씨가 학교가 쉬는 일주일 동안 잠시 틈을 내서 오는 것이다. 아들과 따로 살고 있는 김씨는 “인생에는 언제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올라갈 때 조심해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워드에 대한 어릴 적 교육에 대해 김씨는 “때리기도 하고, 엄하게 길렀다”고 강조하면서 “그렇게 혼날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엄하게 했다. 그래야 세상 무서운 줄 알고 겸손해질 것 아니냐”는 소신을 피력했다.
그래도 그가 백만장자 풋볼 선수 워드의 어머니임을 드러내주는 건 은색 벤츠 승용차였다. 그는 아들이 돈을 벌어 사준 벤츠 자동차를 집에서는 항상 차고에, 학교 주차장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에 모셔둔다. 서민들이 주로 살기 때문에 벤츠가 그리 흔치 않은 맥도너에서 김씨는 ‘벤츠 타는 식당 아줌마’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씨는 취재진들을 만났을 때 대체로 말을 아꼈지만 불쑥불쑥 과거 차별받던 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잘나가기 전에는 아는 체도 하지 않는 것 아니냐. 전에 둘이 어렵게 살 때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던데…”라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하인스 워드의 아버지는 워드가 미식축구 스타로 떠오르던 대학 재학시절 뒤늦게 찾아왔지만 워드는 그를 철저히 외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김씨 모자가 힘들게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가끔 전화연락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마저 끊었다.
8년 넘게 아무런 연락이 없던 워드의 아버지는 워드가 조지아대학에서 풋볼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경기장에 자주 나타나 아들과 대화하려고 했다.
그는 워드에게 “과거 실수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 네가 나를 미워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을 꺼냈다고. 당시 풋볼 유망주였던 워드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관심과 애정표현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결국 워드는 아버지에게 “미워하는 감정이 없다. 그러나 더 이상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이후에는 둘 사이에 아무런 접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당시 아버지가 경기장에 왔을 때 어머니 김영희씨도 우연히 마주쳤다고 한다. 김씨는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고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놓았다.



성실하고 유머러스한 데다 겸손하기까지 한 ‘효자 스타’
애틀란타 주변에서 워드 모자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고생했지만 단란했던 가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방학 때는 어린 워드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친할머니 집에 보냈는데, 친할머니 집에서 바로 버스로 되돌려보내 워드가 터미널에서 어머니가 일을 마칠 때까지 혼자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김영희씨는 당시에 대해 “남들보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해 나중에는 집도 마련하는 등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워드가 다녔던 포레스트파크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정삼숙씨(65·여)는 “워드가 어느 날 찾아오더니 ‘코리언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우리 어머니도 코리언이에요’라고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기억했다.
정씨는 워드 선수가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잘하는데다 유머러스하고 매사에 겸손해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좋아했으며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드는 특히 학창시절부터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94년 고교 졸업 때 한미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 1천 달러를 받자, ‘진학하는 대학에서 이미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은 안 내도 되니 장학금은 어머니에게 드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워드는 이번에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만나는 장면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질문이 길어지자 “이렇게 어머니가 계속 밖에 서 있으면 몸에 좋지 않은데…”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등 ‘효자 스타’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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