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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감동 인터뷰

의문사 당한 검사 남편 기리며 시집 펴낸 김혜정

“정의롭게 살다간 남편의 눈빛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갈 거예요”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김형우 기자

2006. 03. 08

남편을 땅에 묻고, 그의 가슴은 불안과 독기로 소용돌이쳤다. 고통을 삭이고자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89년 의문의 죽임을 당한 남편, 진영태 검사를 기리며 김혜정씨가 등단한 지 14년 만에 첫 시집을 펴냈다. “남편만큼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김혜정씨의 애절한 사부곡.

의문사 당한 검사 남편 기리며 시집 펴낸  김혜정

1. 아들과 함께 충남 도고온천에 나들이간 김혜정·고 진영태 검사 부부. 2. 딸의 돌잔치. 3. 85년 인천지검에 근무하던 시절, 고 진영태 검사가 인천공단에서 일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법의 생활화’에 대해 강연했다.


“그가 떠나갔다. /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 혼자 남겨진 새벽 거리에 서서 / 웅크린 가게 문의 침묵을 바라본다. / 그리움도 증오도 문이 되어 닫히고 / 수은등 밑으로 사라져버리는 검은 고양이 / 나도 그 길을 따라 걷는다. / 밤새 버려진 한 짝의 구두 맥주 깡통 담배꽁초와 함께 / 오직 나 홀로 / 바람에 검은 비닐이 휘날린다.”(시 ‘혼자 돌아가는 새벽거리’ 전문)
그는 젊은 남편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89년 5월4일 새벽을 잊지 못한다. 그의 남편은 강력범죄를 수사하던 검사였다. 집 앞 도로에서 남편이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아내는 네 살배기 딸을 둘러업은 채 깊은 어둠 속으로 달려나갔다. 남편의 시신 앞에서 그는 인생이 다 끝난 것 같은 절망감에 눈물을 쏟았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그를 지탱시켜준 것은 바로 시였다.
17년 전 의문사를 당한 남편, 고(故) 진영태 검사를 기리며 김혜정씨(49)가 10년 넘게 써온 시들을 묶어 지난해 말 시집 ‘내게는 멀고 흐리다’를 펴냈다. 길지 않은 결혼생활 동안 진한 사랑을 남긴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을 감내해온 이의 깊은 정한이 그의 시에 묻어난다.
지난 2월9일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김혜정씨는 시를 통해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은 듯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아픔을 삭이려고 공책에 글을 써내려간 그는 91년부터 시를 제대로 공부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시와 겨례’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는 세상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가슴을 쓸어내리며 만드는 거잖아요. 제게 시를 쓰는 일은 곧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었어요. 시집에 실린 시들은 30대에 씌어진 것들입니다. 무엇 하나 녹록지 않았던 제 삶의 기억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죠.”

공안검사팀에서 유일하게 상부의 지시를 거절해 도청당한 남편
주변 사람들에게 진영태 검사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83년 인천지검에 첫 부임한 그는 공안검사팀에서 인천 5·3사태(신한민주당 개헌추진위원회 경인지부 결성 대회에 맞춰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의 수사를 맡았다. 하지만 진 검사가 공안검사팀에서 유일하게 상부의 지시를 거절하는 바람에 그의 집은 도청을 당하는 등 여러 가지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남편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수사할 때가 기억납니다. ‘부천경찰서 경장 문귀동이 당시 한 사업체에 위장 취업한 권인숙씨를 변태적으로 성고문한 증거를 잡았다’고 남편이 뿌듯하게 이야기했거든요. 남편은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 인천지검은 수사를 통해 이 엽기적인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도 문씨에게 기소유예 판결을 내렸죠. ‘젊은 검사가 매번 상부의 지시를 거절한다’며 저희 집은 도청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가족들은 전화도 쉽게 쓸 수가 없었지요.
훗날 권인숙씨가 당시를 회고하는 책을 냈는데, 거기에 창밖을 내다보며 눈물을 흘리던 검사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그 사람이 바로 저희 남편이라고 하더군요.”

김혜정씨는 진 검사를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기보다는 ‘훌륭한 검사’였다고 말했다. 늘 야근으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항상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이었다는 것. 진 검사는 결혼 전 김씨에게 “검사는 국가를 위해 불철주야 범죄자를 잡아들여야 하는 사람이니 나와 결혼해서 힘들게 살 것을 각오하라”고 당부했다. 김씨는 그런 남편의 부탁이 싫지 않았다고 한다. 검사로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겠다는 그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의문사 당한 검사 남편 기리며 시집 펴낸  김혜정

김혜정씨는 “가슴을 옥죄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를 썼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검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만 김혜정씨는 “주변에 훌륭한 검사들도 많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남편은 늘 ‘국가공무원인 검사가 사건과 관련해 뇌물을 받으면 억울한 사람만 더 억울하게 만든다’고 강조했어요. 누가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죠. 그러던 남편이 딱 한 번 돈을 받아온 적이 있어요. 홍성지검을 떠날 때 직원들이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각자 몇 만원씩 모은 전별금 봉투를 건넨 것이죠. 직원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것이니 남편도 감사하게 받은 것이고요. 제가 남편이 건넨 돈 봉투를 받고 기뻐하자 ‘역시 마누라는 돈을 주니 좋아하는군’ 하며 놀려댔어요.”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남편이 세상을 떴을 때, 그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남편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았기 때문. 누구의 소행인지 끝내 밝히지 못하고 사건이 유야무야 처리된 후 그는 가슴에 ‘불’을 안고 살아왔다.
“밤 11시50분까지 전 근무처인 인천지검의 선·후배들과 함께 술을 마신 남편은 대리운전 기사가 운전한 차를 타고 자정 무렵 집 앞에 도착했대요. 그런데 집 앞 도로에서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시각은 새벽 2시20분경이었습니다. 맨 처음엔 남편이 술에 취해 도로를 건너다 사고가 난 줄 알았는데, 다시 살펴보니 이상한 구석이 많았어요.
남편은 토하고 나면 정신이 말짱해지는 체질이었는데, 당시 차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남편이 토한 흔적이 남아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남편은 집에도 못 들어올 만큼 인사불성 상태는 아니었던 거죠. 게다가 남편의 시신에서 교통사고 때 발생하는 상처라고 볼 수 없는 심각한 타박상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어요.
2시간 20분 동안 남편의 행적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서울지검 형사2부에서 강력범죄에 관련된 수사를 담당하고 있었어요. 남편을 해칠 만한 몇 명의 인물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정확한 실마리를 잡긴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1년, 네 살이던 어린 남매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게 고마워
의문사 당한 검사 남편 기리며 시집 펴낸  김혜정

남편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였지만 결국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김혜정씨는 한 달 가까이 경찰서 등을 돌아다니며 범인을 수소문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당장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네 살 난 딸을 키우는 일이 그의 당면과제이기도 했다. 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싶었지만 ‘두 자녀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그는 사건을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한 외국계 은행에 입사했어요. 은행 홍보팀에서 사보를 만들었지요. IMF 때는 방송사 구성작가로도 활동하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일하지 않았다면 가슴을 옥죄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사별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큽니다. 가슴 한 편에서 늘 휑하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거든요. 참기 힘든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갑자기 한웅큼씩 빠지기도 했어요. 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잠들기 전 시를 썼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 저는 시를 쓰지 못했을 거예요.”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김혜정씨의 두 자녀는 의젓하게 성장했다. 지난 2월 경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아들(24)은 서글서글한 성품을 지닌 믿음직한 청년이 되었고, 글쓰기에 소질을 보이던 딸(21)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성인으로 잘 커준 아이들에게 김혜정씨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딸을 키우는 데는 별로 손이 안 갔지만, 아들은 사춘기를 힘겹게 보낸 편이에요. 공부보다는 다른 일들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친구의 아버지가 친구에게 운동을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운동을 시작하더군요. 그때 아들을 보며 참 가슴이 아팠어요.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한 덕분에 아들은 185cm 키에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로 자랐어요.”



의문사 당한 검사 남편 기리며 시집 펴낸  김혜정

아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김씨의 심정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들녀석이 혼자 낑낑거리며 스키 신발을 신는다. / 그 옆 어떤 아버지가 아들의 스키 신발을 신겨준다. / 느닷없이, 시큰하게 찾아오는 빈자리 / 어미의 온몸은 부재의 빈공간이 된다.” (시 ‘부재(不在)’ 중)
인터뷰 자리에 함께 나타난 김혜정씨의 딸은 어머니와 모든 것이 쏙 닮았다. 갸름한 얼굴형과 하얀 피부, 큰 쌍꺼풀, 게다가 어머니의 글솜씨까지 물려받은 것. “친구들이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김씨의 딸은 아버지의 기억을 희미하게 떠올렸다.
“아버지가 저를 무릎에 앉혀놓고 그림책을 보여주셨던 장면이 가끔 생각나요.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춘기 때 아버지께서 그런 사고를 당하셨다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고 방황했을 거예요.
지금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요. 한밤중 엄마가 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셨죠. ‘아버지가 영안실에 있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엄마는 한참을 멍하니 서 계셨어요. 그 모습이 아직까지 잊히질 않습니다.”

문학 공부하는 딸과 함께 남편의 죽음 다룬 영화 시나리오 준비
서른둘의 나이에 혼자가 된 김혜정씨에게 외로움의 시간은 길었다. “이제는 새로운 분을 만나 연애하실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어 “친정 부모님은 딸이 재혼을 하면 큰일나는 줄 안다”고 덧붙이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최근 20년 사이 혼자 된 검사 미망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중에서 재혼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거예요. 아마 다들 자신의 남편만큼 좋은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저 역시 남편처럼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연애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남편과 사별한 후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들어갔거든요. 친정 부모님은 저와 아이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큰 울타리가 돼주셨죠. 워낙 엄격하신 아버지는 제가 직장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려고 저녁에 집을 나서면, ‘큰일났다’고 걱정하실 정도였어요.”
김혜정씨는 이 세상에 없는 남편이 여전히 자신의 곁을 맴돌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도 종종 남편과 통화하는 꿈을 꾼다는 것. 남편의 자취는 그의 시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눈두덩에 푸른 화장을 하다가 / 문득, 책상 위에 놓은 그의 명패를 보았네. / 유품이 되어버린 명패 / (…) / 마치 부정을 저지른 여인처럼 / 화장을 하던 내 손길이 부끄러워졌네.”(시 ‘그의 영혼이 일어나’ 중)
김혜정씨는 결혼한 지 8년 만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나마 남편이 야근하는 경우가 많아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김씨는 생과부와 다름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연애기간은 짧았다. 오빠의 친구였던 진 검사와 6번 만나고 결혼에 골인한 것. 8년을 사랑하고 17년을 그리워하는 김혜정씨에게 남편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처음 선 자리에서 남편을 봤을 때, 유달리 하얀 얼굴과 빨간 입술의 소유자라고 생각했어요. 선 자리가 거북한지 남편은 팔짱을 끼고 있었죠. 그걸 보면서 제가 ‘나오기 싫은 거 억지로 나오셨나봐요’ 하고 물었는데, 남편은 그 모습에서 제게 반했다고 해요. 정말 자신을 위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예요.
남편은 직장에서 무뚝뚝했지만, 집에서는 저와 대화를 즐겨 했어요.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죠. ‘남편의 눈빛’에 대한 기억 하나로 지금껏 살아왔어요. 다만 남편과 저의 인연은 이 세상에서 끝내고 싶어요. 그 사람의 부재로 인한 고통이 평생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혜정씨는 92년 계간지 ‘오늘의 문학’에서 신인상을 수상했고, 지난 2000년 ‘작가’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그가 등단한 지 14년 만에 출간한 첫 시집 ‘내게는 멀고 흐리다’는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돼주고 있다. 그의 시를 읽은 한 독자는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시가 가슴속에 꽁꽁 숨겨둔 두려움과 맞서 싸울 힘을 주었다”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김씨는 최근 희곡을 공부하는 딸과 함께 남편의 의문의 죽음을 다룬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탄탄한 구조를 갖춘 영화를 탄생시켜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것.
“남편을 땅에 묻은 후, 저는 두려움과 눈물, 어린아이들의 검은 눈동자, 그리고 푸른 독기를 가슴에 안은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 시를 써왔지요. 시를 써오는 동안 저는 참으로 고요했습니다. 제 속으로 침잠해 모든 더듬이를 내리고 시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그 시간들은 쓸쓸하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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