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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열정으로 사는 배우

‘신구의 크리스마스 캐롤’ 주연 맡아 무대 서는 신구

글·민선화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12. 12

오는 12월 중순부터 공연될 뮤지컬 ‘신구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괴팍한 스크루지 할아버지를 연기하는 원로배우 신구. 우리 시대 ‘자상한 아버지’상으로 꼽히며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그가 들려준 40년 연기 열정과 그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가족 이야기.

‘신구의 크리스마스 캐롤’ 주연 맡아 무대 서는 신구

“니들이게 맛을 알아~!” “너나 걱정하세요~” 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원로배우 신구(70)가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 ‘신구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주연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오는 12월16일부터 열흘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펼쳐질 뮤지컬 ‘신구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괴팍한 스크루지 할아버지 역을 맡아 점점 인정 많은 할아버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
잔잔한 눈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손을 내미는 그는 TV에 비쳐지는 대로 자상하고 따뜻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7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거의 매일 6시간 이상씩 뮤지컬 연습을 하고 있다는 그는 “올 연말에는 아이들과 훈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매일 아침 8km를 빨리 걸으면서 건강관리
“전에도 뮤지컬에는 몇 번 출연했는데 가족 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연말에 아이들 손잡고 함께 볼 수 있는 축제 같은 공연을 늘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기회가 와서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했죠.”
그는 뮤지컬은 드라마나 연극과 많이 다르고 노래와 춤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다소 부담은 된다고 털어놓았다. 연극은 배우들끼리만 모여도 연습이 가능한데 뮤지컬은 음악과 안무 등이 같이 준비돼야 하기 때문에 연습과정 자체가 더 힘들다는 것.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어요. 뮤지컬이지만 내가 노래를 못해서 대사 위주로 해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는데 적어도 한 곡은 불러야 한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그나마 춤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아 다행이에요. 극중에 자린고비로 살던 스크루지가 잘못을 깨달은 후 침대 위에서 춤을 추며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만 안무지도를 받으면 될 것 같거든요.”
칠순 나이에도 대사 암기와 체력 면에서 젊은 연기자들 못지않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그는 “할 줄 아는 게 대본 외우는 것밖에 없다”며 겸손해했다.
“아휴~ 나이는 못 속여요. 대사 외우는 것도 총기가 좋았던 젊은 시절보다는 못하죠. 대신 체력관리는 요즘도 꾸준히 해요. 그렇다고 연기생활을 위해서 운동하는 건 아니에요. 난 마누라한테도 술 먹기 위해 운동한다고 말하는데 진짜 그래요. 술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매일 새벽 3시쯤 일어난다는 그는 조간신문을 읽은 후 오전 6시쯤 집을 나서 양재천을 따라 탄천 입구까지 4km 정도를 왕복하며 빨리 걷기를 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달리기를 했는데 의사가 나이가 든 사람들은 관절에 무리가 생긴다고 해서 빨리 걷기로 바꿨다고. 또 그는 “담배는 30년 전에 끊었다”면서 1년에 한 번씩은 건강검진을 받는데 요즘은 자꾸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고 덧붙였다.
62년 연극 ‘소’로 데뷔한 그는 연기생활이 40년 넘은 베테랑 연기자지만 아직도 무대에 서면 긴장된다고 말한다. 연륜이 쌓일수록 연기를 보는 눈이 생겨 더 조심스럽고 항상 새로운 작품을 만나기 때문에 대본을 볼 때마다 설레고 긴장된다는 것.
그는 데뷔 후 지금까지 연기 외에 외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사업이나 다른 방면엔 소질이 없는데다 성격이 소심해서 ‘투자해서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고민하느라 시기를 놓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연기만 하길 잘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 연극, CF,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최근에 여러 CF와 시트콤에 출연해 코믹한 이미지까지 더하면서 연기의 폭을 넓혔다. “코믹한 캐릭터로 인해 망가지는 게 두렵지는 않냐”고 묻자 그는 의외의 답을 들려준다.

“시나리오를 보면 대충 ‘내가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감이 와요. 나는 코믹한 캐릭터라고 해서 망가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은 또 망가져야 인기가 많다면서요?(웃음) 한때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화제를 모았던 CF도 그렇고 처음으로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한 번도 안 해본 거니까 재밌겠다 싶어서 출연했죠. 이왕 할 거면 좀 더 재밌게 잘하자는 마음이었고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보통의 기성세대와 달리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도 데뷔 후 연기생활 10년쯤 되던 30대 중반에는 연기자로서 슬럼프를 겪었다고 한다. 당시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해 연애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조차 꿈꾸기 힘들 정도로 미래가 불투명했던 것.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냐”고 묻자 그는 어려웠던 지난 시절이 떠오르는 듯 미소를 지은 뒤 “어떻게 하긴, 다른 재주가 없으니까 그냥 버텼지!” 하며 허허 웃었다.
“난 지금도 힘들어하는 젊은 후배들을 보면 ‘적어도 10년은 연기에 투자하라’고 말해요. 10년 정도 하면 연기가 눈에 보이거든요. 그렇게 한 뒤에도 연기자로서 미래가 안 보이면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요.”

올해 처음 본 첫 손자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몰라
‘신구의 크리스마스 캐롤’ 주연 맡아 무대 서는 신구

그는 지금까지 연기자로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아내가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74년 결혼해 31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 하정숙씨(67)는 처음 만났을 당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 가난한 연극배우인 그와 5~6년간 연애하면서도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었다고. 그럼에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계속 결혼을 망설이던 그가 전격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재미있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내가 결혼을 하면 이 여자랑 해야겠다’고 마음은 정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정작 결혼하자는 말은 못 꺼내고 망설이고 있었어요. 그런 나한테 화가 난 아내가 어느 날 미국에 있는 친언니한테 도망가버리더라고요. 이러다 놓치겠다 싶어서 ‘결혼할 테니까 돌아오라’고 설득했죠(웃음). 넉넉하지 못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아내가 고마워요. 내가 패션공부를 계속하도록 뒷바라지를 못해줘 전업주부로만 살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요.”
아들 경현씨(31)는 고등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10년 만에 귀국해 지난해 6월 결혼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 않던 허니문베이비를 갖게 돼 지난 4월 그에게 첫 손자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자식보다 손자가 더 귀엽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래요. 그 녀석 얼굴만 보고 있으면 근심걱정이 다 사라져요. 아들 녀석 유학 보내고 아내와 단둘이 살다 보니 집안이 늘 절간같이 조용했는데 요즘은 주말마다 손자가 놀러 와서 시끌벅적하니까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아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던가, 그 또한 딸처럼 살갑고 명랑한 며느리가 들어와 집안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매우 흡족해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부부들이 쉽게 이혼을 결정하는데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연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하는 원로배우 신구. 칠순 나이에도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설렌다는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연습실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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