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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희망 보고서

백혈병과 싸워가며 대회 준비해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대상 받은 초등학생 정원국

“벤처사업가 돼 하늘 나는 로봇 만드는 게 꿈이에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정경진‘프리랜서’

2004. 10. 11

백혈병과 싸워가며 국제로봇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해 대상을 받은 초등학생이 있다. 화제의 주인공 정원국군과 아버지 정용수씨를 만나 힘들었던 투병생활과 로봇에 대한 정군의 열정을 들어보았다.

백혈병과 싸워가며 대회 준비해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대상 받은 초등학생 정원국

정원국군 뒤로 그가 만든 로봇 ‘우주농부’가 보인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 말처럼 백혈병이라는 힘든 고통과 싸워가며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어낸 장한 초등학생이 있다. 지난 8월 말 열린 제 6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 한국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서울 영본초등학교 6학년 정원국군(13)이 그 주인공.
정군은 지난 8월8일과 9일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서 열린 국제로봇올림피아드 한국대회 초등부 창작부문에 출전해 ‘코스모 파머’라는 작품으로 대상인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코스모 파머’는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드라이아이스로 공급해 우주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든 우주농부 로봇이다.
특별한 꼬마 과학자 정원국군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여동생을 데리고 미국에 간 어머니 안윤주씨(40)를 대신해 아버지 정용수씨(43)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이 썰렁하죠? 아이가 아픈 뒤로 집도 싹 수리하고 책이며 살림살이를 다 치워버렸어요. 항상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거든요. 살림살이가 많으면 먼지가 생겨서요.”
정군은 많이 말랐다는 것 외에는 여느 또래 아이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지난 2001년 6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올 6월까지 3년간 항암 치료를 받은 정군은 지금은 완치가 된 상태. 처음엔 쑥스러워하면서 말을 못하고 고무줄만 만지작거리던 정군이 조금씩 입을 열었다.
“대회에 출전하려면 같은 학교에 다니는 2~3명이 한 팀을 이뤄야 했어요. 그런데 전 같이 나갈 친구가 없어서 동생한테 얘기했죠. 동생이 좋다고 해서 제 이름과 동생 이름을 한 자씩 딴 ‘원솜’이란 팀을 만들고 연습도 같이 했어요.”
그런데 여동생인 다솜양(11)이 갑자기 미국연수를 가게 되자 정군은 대회 이틀 전 사유서를 제출하고 혼자 참가했다. 혼자 2~3명의 몫을 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는 로봇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극복했다.
“8일에는 로봇을 만들고, 9일에는 프레젠테이션과 창의력 테스트를 했어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만든 로봇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많이 떨리고 힘들었지만 한 가지 주제(이번 대회의 주제는 ‘핸디캡’, 즉 장애인을 위한 로봇이었다)가 주어지고 거기에 맞춰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로봇을 상상해서 쓰는 창의력 시험은 쉬웠어요.”
백혈병과 싸워가며 대회 준비해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대상 받은 초등학생 정원국

지난 여름 나들이를 갔을 때의 정원국군 가족.


대회 결과는 8월24일 인터넷을 통해 발표되었다. 대상 수상자란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정군은 처음에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은근히 상을 탔으면 하고 기대는 했지만 대상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정군의 아버지도 그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으로 수상자 발표를 확인했다고 한다.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국내대회에서 은상 이상을 타야 한다고 해서 은상만 받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상을 받았다니까, 정말 기뻤죠(웃음).”
그는 아들의 병이 완쾌된 것만으로도 고맙고 기쁜데, 대상까지 받게 되어 커다란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집사람하고 아이만 대전에 내려 보내려고 했는데, 원국이가 같이 가자고 하는 거예요. 생전 뭘 하자고 요구하는 법이 없던 아이가 그러니까 안 갈 수가 없어서 ‘이틀 놀러 간다’ 생각하고 갔죠.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엄마 아빠가 같이 와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맴돌아요.”

백혈병과 싸워가며 대회 준비해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대상 받은 초등학생 정원국

정용수씨는 아들이 건강을 회복해 기쁜데 과학올림피아드 대상을 수상해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한다.


정군에게 백혈병이란 시련이 닥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01년 6월이었다.
“처음에 아들이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을 땐, 내가 살면서 뭐 그리 잘못한 게 많다고 아이가 이런 병에 걸렸나 싶었죠. 당시에 쓴 일기장을 보면 험한 말이 참 많은데, 대부분이 저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죠. 제가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오히려 아이 엄마는 차분하게 잘 견뎌냈어요.”
정씨는 부인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꿋꿋하고 차분하게 잘 이겨내준 것이 내심 고맙고 든든했지만 그런 말을 내놓고 하지는 못했다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학교를 휴학했던 정군은 3학년 2학기와 4학년을 건너뛰고 지난해 5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하지만 치료 때문에 자주 학교를 빠져야만 했고, 병이 완치된 지금도 오전 수업만 받고 있다. 앞으로 2년간은 재발 위험성이 있어 항상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오전 수업만 받길 바라지만 정군은 10월부터는 오후 수업도 받을 거라고 한다. “선생님한테 오후 수업도 받을 거 같다고 벌써 말씀드렸다”며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것.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받을 거 같다’고 한 것을 약속이라며 꼭 지키겠다는 아들의 기특한 고집을 말리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정씨는 걱정이라고 한다.
“오후 수업까지 받으려면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먹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백혈병은 먹는 것도 많이 조심해야 하거든요.”
정군이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2년 전쯤 집에서 투병하고 있을 때 아파트 노인정에서 로봇 시연회가 열린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 로봇 개발·교육업체가 주최한 이 로봇 시연회에서는 바닥에 그어놓은 선을 따라가는 로봇을 비롯해 사람의 손을 따라 움직이는 로봇, 악수하는 로봇 등이 선보였다.
백혈병과 싸워가며 대회 준비해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대상 받은 초등학생 정원국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이 아닌 진짜 로봇을 처음으로 접한 정군은 “나도 친구 삼을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정군은 한 달 동안 병원 무균실에서 생활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무균실에 있는 동안 주중에는 집사람이 함께 있고, 일요일엔 제가 함께 있어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아빠, 아빠가 대신 아파줬으면 좋겠다”고. 그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이란….”
아픈 아들을 대신해서 아파줄 수는 없었지만, 아들의 꿈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었다. 정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무균실에서 나오자 로봇 개발·교육업체에 의뢰해 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줬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얼마 동안은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어 집까지 방문한 업체 교사에게 로봇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진 후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어머니와 함께 직접 목동에 있는 업체에 가서 로봇도 만들고 창의력 공부도 했다. 이때 국제로봇올림피아드란 대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등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군은 학원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이처럼 힘겨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로봇에 대한 꿈과 열정을 키워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안씨가 뒤에 있었기 때문. 아버지 정씨에 따르면 안씨는 아픈 아들을 지켜보는 것에 비한다면 아들의 꿈을 위해 뒤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는 일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고.

백혈병과 싸워가며 대회 준비해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에서 대상 받은 초등학생 정원국

“원국이가 대회 나간다고 하면서 로봇을 만드는데, 그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지금껏 키워오면서 그렇게까지 집중한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대회 출전하기까지 한 석 달 동안은 정말 열심히 연습하더라고요. 건강에 무리가 갈까 염려될 정도였죠.”

항암 치료 받는 내내 투정 한번 부리지 않은 ‘애늙은이’
정씨는 아들의 별명이 ‘애늙은이’라고 귀띔해준다. 생각이 많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데 말이나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어른 못지않게 속이 깊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참을성도 많다고 한다.
정군은 항암 치료를 받는 내내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지 않았음은 물론 지금도 하지 말아야 할 거나 먹지 말아야 할 거는 스스로 알아서 챙긴다고.
“피자를 무척 좋아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먹지 말래요. 그래서 꾹 참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먹어요.”
이런 ‘애늙은이’ 같은 아들이 부모로서는 고맙고 대견스럽다.
“처음엔 누구나 다 그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친구가 신장이 안 좋은 아들한테 ‘이건 신장에 안 좋은 거니까 먹지 말라’고 하자, 글쎄 그 아이가 그러는 거예요. ‘아빠, 나 이거 먹고 그냥 죽을래’라고. 그걸 듣고 깜짝 놀랐죠. 우리 원국이가 참 고맙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론, 아이가 제 나이에 맞지 않게 속도 깊고 참을성 많은 것이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 아닌가 해서 안쓰러운 게 아버지의 마음이다.
정군의 꿈은 벤처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로봇과 관련된 벤처사업을 해서 과학과 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는 그는 그전에 먼저 카이스트에 가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한다.
“카이스트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 하늘을 나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요.”
정군은 지금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11월4일부터 3박4일 동안 대전 카이스트에서 국제로봇올림피아드 국제대회가 열리는 것. 지금의 건강을 지키면서 더 열심히 로봇을 개발해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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