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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화제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신선한 파장 일으킨 오세훈 송현옥 부부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미련없이 물러나는 풍토가 되면 좋겠습니다”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4. 02. 10

인기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던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의 국정 혼란에 대해 ‘내 탓이오’ 하고 외치며 백의종군하기까지는 아내 송현옥 교수의 영향도 컸다. 1월 중순 일요일 아침, 대치동 자택에서 부부를 만났다.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신선한 파장 일으킨 오세훈 송현옥 부부

비서관이 일러준 대로 찾아간 그의 집은 휘문고등학교 맞은편에 자리잡은 빌라. 현관을 들어서자 평소 그가 보여온 이미지처럼 깨끗하면서도 부드러운 집안 분위기가 느껴졌다.
“정치 신인이 상식을 지키고자 한 행동인데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주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요즘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오의원을 ‘대통령감’이라고 치켜세울 만큼 ‘오풍’이 불고 있다고 하자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43)의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마침 주방에 있던 아내 송현옥 서경대 연극영화과 교수(43)가 빙긋이 웃으며 차를 내왔다.
“어제 조간신문을 보니까 ‘환한 얼굴로 웃고 있는 오세훈 의원’이라는 설명과 함께 제 사진이 나왔더군요. 생각해보니 그렇게 밝은 표정을 짓기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4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아쉬운 점도 많지만 물러서고 싶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자신에 대한 대견함과 속시원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 것 같아요. 요즘 아주 편합니다.”
작은 소파에 나란히 앉은 부부의 모습이 그의 말처럼 정말 편안해 보였다.
그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지난 4년 동안 ‘정치적 실어증’에 걸려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했고, 또 하고 싶지 않은 말임에도 당과 조직의 입장 때문에 입 밖으로 내놓아야 했다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국회에 뛰어든 제게 현실정치는 많은 갈등을 하게 했어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죠. 이번 불출마 선언에 대해 ‘도피가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불출마 선언을 생각해왔다고 한다. 그가 이끌고 있는 한나라당 ‘미래연대’ 소속 젊은 의원들이 중진들에게 ‘용퇴’를 요청했을 당시 이미 자신도 물러날 것을 결심했다고.

정치권에 ‘내 탓이오’ 메시지 주고자 선언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은 바로 정치가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 책임은 다수당인 우리 한나라당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당을 개혁하려면 사람을 바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거든요. 지금처럼 ‘자리’에만 연연하는 의원들이 많아선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죠. 그래서 제가 먼저 그 ‘자리’를 포기함으로써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정치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환경운동과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 변호사로 자리잡고 그 여세를 몰아 국회에 등원, 정치계의 개혁을 주장했던 그에게 국민들이 많이 기대했던 것이 사실. 한나라당 내에서 젊은 의원들을 이끌며 당내 민주화에도 앞장서 ‘차세대 주자’로 불리던 그의 이번 선언은 당혹스러움과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정치권에 들어온 뒤 1년 정도 지나고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의원들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퇴근할 때면 내일 당장 때려치워야지 했다가도 출근하면서는 그래도 나를 뽑아준 지역구민들을 위해 그럴 순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곤 했죠. 이후 저의 정치적 목표인 정치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기성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묻혀버리더군요.”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신선한 파장 일으킨 오세훈 송현옥 부부

부부는 인터뷰 내내 “그냥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인데, 혼자 고고한 척 떠드는 게 될까 봐 두렵다”며 걱정했다. 하지만 부부는 함께 내린 결정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불출마 선언은 주변 정치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 하지만 한나라당 출입 기자 몇몇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불출마 선언 전날 속보로 기사가 나갔다고.
“친한 신문기자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미리 귀띔을 하지 못했어요. 다른 신문에 먼저 기사가 나가자 윗분에게 굉장히 혼났나 봐요. 불출마 선언문을 읽자마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더군요. ‘서울시장에 나간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 꽤 당혹스럽더군요.”
사실 그의 ‘불출마 선언’ 이후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환경전문 변호사 출신의 젊고 깨끗한 정치인으로 국민들의 인기를 모은 그와 관련해 충분히 나돌 만한 소문이었다.
“우리 정치에서 ‘말 바꾸기’가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저도 ‘다시는 정치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부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런 자리를 욕심낼 만큼 큰그릇이 되지 못해요. 이제 우리 사회도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눈에는 국회의원의 30% 정도는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번 불출마 선언이 일종의 ‘물귀신 작전’이라고 했다. 정치무대에서 물러나야 할 구정치인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이 먼저 ‘내 탓이오’를 외치며 충격을 주겠다는 것. 정치인들에게 팽배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없애는 데 일조하겠다는 것이다.

불출마 선언 지지해준 아내는 든든한 후원자
오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기까지는 부인 송현옥 교수의 내조가 한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교수는 남편의 결심에 박수를 보내며 “당신의 결단이 한나라당보다 정치 전체를 바꾸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충고와 격려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4년 동안 힘들어도 이야기할 곳이 별로 없었는데 그런 제게 아내는 큰 힘이 됐어요. 같은 동료 의원들에겐 이런 이야기를 못하는 게 우리 정치 풍토예요. ‘곧 그만둘 사람’으로 비치면 힘이 실리지 않거든요. 지역구 행사나 활동에 소홀해 정치인 아내로서는 빵점이지만 제겐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예요.”
곁에서 남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송교수가 그제야 한마디 거든다.
“불출마를 결심하고 선언문을 작성하고 있는 남편을 보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했어요. 그런데 선언문을 보니까 ‘부끄럽다’는 항목이 열개나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마디했죠. ‘너무 자학하지마.’ 나중에 보니 여섯 항목으로 줄었더군요(웃음).”
송교수는 여느 국회의원의 아내들과 달리 지역구 활동에 소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4년 동안 지역구 행사에 참여한 것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 ‘남편이 국회의원이지 나는 아니다’라는 게 송교수의 생각이라고 한다.
“사실은 남편이 이번 총선에 출마하면 미국에 잠시 도망가 있을 참이었거든요. 그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요(웃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건전한 상식을 가진 정치인 하나가 떠나는 것 같아 아쉽지만, 아내로서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아 기대돼요.”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신선한 파장 일으킨 오세훈 송현옥 부부

송교수는 “혹시 남편이 거대한 벽에 도전하려다 실패한 패배주의자로 비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으나 서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며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그만둘 때 미련 없이 물러나는 풍토가 형성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의와 연극비평, 작품기획 등으로 저보다 더 바쁜 아내가 가끔은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딱딱한 정치와 부드러운 문화 사이에서 균형된 시각을 가질 수 있었어요. 사실 의원 부인들끼리 몰려다니면 모두 같은 생각, 같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거든요. 아내는 제겐 ‘재야’였던 셈이죠(웃음).”
고등학교 때 만나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는 두딸을 두고 있다. 무용을 전공하는 큰딸은 올해 대학에 들어가고, 둘째딸은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다.
“아빠 노릇이요? 여느 집처럼 아빠도 바쁘고 아이들도 바빠서….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하지만 혼낼 때는 아주 호되게 해요. 엄마의 잔소리 열번보다 제 잔소리 한번이 더 효과적이거든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와 모니터 역할도 하고, 또 자신의 의견이 담긴 글을 남기기도 한다. 가끔 주변에서 ‘이놈의 국회의원들 다 쓸어버려야 돼’ 하는 소리를 들은 날이면 하루 종일 심각한 얼굴로 제 아빠를 바라본다고.
“제가 국회의원으로 일하던 지난 4년은 아이들에게도 고민과 성숙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국회의원의 자녀로서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고, 또 둘째의 경우 아빠가 정치인으로 비판받는 걸 보면서 세상살이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한 것 같아요.”
국민을 위한 곳은 국회만이 아니다
그는 16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환경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 1년 정도 유학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변호사 시절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일하던 경력을 살려 환경전문 변호사로, 또 시민운동가 활동하고 싶다는 것.
“의정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최근 통과된 ‘수도권 대기질특별법’을 만든 것이에요. 경제부처와 산업자원부 등이 반발했지만 제 주장이 대폭 반영된 법안이 통과됐죠. 사실 시민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국회의원을 설득하는 것이었거든요. 이제는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입법 청원시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급소를 알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은 5개월 정도의 임기를 충실히 끝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함께하는 정치인들이 4월 총선 준비로 정신이 없겠지만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라고.



“제가 ‘정개특위’의 간사를 희망하자 당에서 이상한 눈길로 보더군요. ‘곧 떠날 사람이 무엇 하러’ 하는 거죠. 사실 정개특위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진정한 정치개혁보다는 당리당략에 충실한 소모전이 많아요. 이제 저야 당의 입장에서 홀가분한 사람이니 좀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신선한 파장 일으킨 오세훈 송현옥 부부

의원직이 끝난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는 것.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 강남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출근하다 보니 체력에도 자신이 붙었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 아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또 아쉬움과 실망을 남기게 된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국회만이 국민을 위하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디에서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시민운동을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디딤돌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한 요즘, 의원에서 다시 시민운동가로 돌아온 그의 활발한 활동이 기대된다.


《‘저는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먼저 정치 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고, 잘못된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묵인한 무력함이 부끄럽고, 묵인을 넘어서서 어느 사이 동화되어간 무감각함이 부끄럽고, 미숙한 자기 확신을 진리인 양 착각한 무지함이 부끄럽고, 세계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심 무시하고 배척한 편협함이 부끄러우며,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운 자신의 입으로 역사에 공과 과가 있음을 애써 무시하고 선배들께 감히 용퇴를 요구한 그 용감함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회의원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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