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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특별하게 평범한 차태현

editor 김지은

2018. 02. 19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오가며 연예계 만능 치트키로 사랑받아온 차태현이 영화 ‘신과 함께’로 천만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늘 한결같은 미소, 개구쟁이처럼 천진한 웃음, 어쩌면 너무 평범해서 특별해 보였던 그의 모습 뒤에는 배우라는 평생직장을 선택한 사람이 다져놓은 내공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와, 밖에서 지금 촬영하나 봐요. 그치? 응? 저기 밖에 저거 좀 봐요.” 

카메라 앵글 안에서의 삶이 더 익숙했던 때문일까. 인터뷰가 진행된 서울 삼청동 2층 카페 유리창에 매달려 연신 수다를 떨어대는 이 남자, 차태현(42)은 그리 낯설 것도 신기할 것도 없어 보이는 풍경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생각해보니 어딜 가나 구경꾼이 되기보다 구경을 당하는 쪽이었을 테니 그럴 만도 하겠다. 

“며칠 전 여기 북촌에 있는 한옥 펜션에서 1박 2일 놀다 왔어요. 같은 아파트 사는 이적 형네랑 또 다른 친한 집이랑 해서 애들까지 세 가족이 다녀왔는데, 좋더라고요. 내가 머리털 나고 이 동네에 일 말고 놀러 온 건 또 첨이네. 하하.” 

누군가로부터 주목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사람들에게 ‘평범함’이란 쉽게 찾아오지 않는 행복이다. 또래의 아이를 둔 이웃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는 일상도, 서울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구경 삼아 다녀온다는 한옥마을 나들이도, 그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이 된다. 

스스로 택한 연기자로서의 삶. 그러나 그는 늘 평범한 일상을 꿈꿨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접받거나, 격리되듯 사는 것도 원치 않았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이웃집 회사원 남편처럼 성실하게 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알콩달콩 깨를 볶으며 사는 것.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는 제법 괜찮은 비율로 그런 시간들을 삶의 일부로 들여왔다. 누군가의 눈에는 별다른 기복 없이, 연예인치곤 참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누구보다 더 숱하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연예인이라고 해서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서른 정도에, 남들 다 결혼하는 나이 즈음에 결혼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애들 키우며 여행도 다니고 좋아하는 영화 보러 다니고 뭐 그런 것들, 사실 연예인이라서 하기 애매한 것들도 꽤 있지만 그런 일상들을 경험하면서 살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그런 평범한 면들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알려진 대로,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첫사랑과 결혼했다. 여성들에겐 멋진 로맨티시스트, 남자들에겐 모자란 놈 취급을 받기도 하는 일이지만 스스로에겐 일생의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멋진 동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다. 

“와이프랑은 워낙 오래돼서 옛날 일이건 뭐건, 서로 다 아는 얘기니까 그런 건 참 좋은 거 같아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거.” 

새해 열두 살이 된 큰아들 수찬이와는 이제 제법 말이 잘 통한다. 그에게는 12세 관람가 영화를 함께 볼 고정 파트너가 생긴 셈. 영화광인 아빠와 코드가 잘 맞는 아들이 있다는 건 꽤나 근사한 일이다. 지난 연말엔 수찬이 친구들까지 대동하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함께 봤다. 

“아이들을 가끔 ‘1박 2일’에 출연시키는 것은, 사실 정말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에요. 우리는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아무리 애들을 데려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해도 그런 각이 안 나오거든요. 한계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전문가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찍어주고 편집해주고 그런 게 너무 좋더라고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은 좀 부담스럽고, ‘1박 2일’에서처럼 가끔 나와서 잠깐씩 촬영하는 건 저한테도 아이들한테도 추억이 되니까.”

아이들을 연예인 시킬 거냐, 아이들 얼굴까지 노출되어 좋을 것 뭐가 있냐, 이런저런 말들이 들리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소소한 추억거리를 쌓을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좋다. 그의 휴대폰에는 아이들이 출연한 장면들이 모두 저장돼 있다.

후회 없이 사는 것

1월 초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그는 화재 사고 현장에서 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의로운 귀인을 연기했다. 저승법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사후 49일 동안 7개의 재판을 거쳐야 한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되고, 환생하기 전 꼭 한 번 산자의 꿈에 나타날 수 있다는 ‘현몽’의 시간이 찾아온다면 그는 누구에게 무슨 이야길 전하고 싶을까. 

“정말 어려운 문제네요. 부모님도 계시고, 애들도 있고 와이프도 있는데 누구 꿈에 나타나야 하지? 음… 아! 명절 때,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가겠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얼굴을 다 같이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저는 딱히 크게 미련을 갖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환생을 하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그는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자신이 책임지는 것일 뿐, 지난 일에 미련을 두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데뷔 24년 차, 돌이켜보면 배우 차태현만큼 꾸준히 모습을 비쳐온 배우도 드물다. ‘어떤 배역을 맡게 되더라도 1년에 한 번, 적어도 1년 반에 한 번은 작품에 출연하자.’ 그것은 데뷔 초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이었다. 시나리오가 100%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도, 촬영을 해나가면서 어디선가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런 만큼 배역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해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 기복을 만들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었고, 그런 면에서 그의 계획은 신뢰도와 만족도가 꽤나 높은 편이다. 

“저는 재충전, 휴식 이런 시간을 따로 가져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그런 게 필요하단 생각을 거의 못 했던 건지, 하여튼 옛날부터 그랬어요. 배우마다 다른데, 저는 배역에 몰입했다가도 촬영이 끝나면 금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스타일이거든요. 어떤 분들은 한번 배역에 몰입하면 촬영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빠져나오지 못해 힘들어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촬영이 끝나면 딱, 거기까지인가 봐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고 말고 할 것조차 없었다고나 할까. 아마 작품을 고를 때, 주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극 중 캐릭터를 내것화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그것은 스스로가 만든 장점이자 단점이다. 자연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인데도 어쩐지 비슷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코미디를 했다가 드라마를 했다가 하면서 가급적 비슷한 장르를 연속해서 출연하지 않으려는 것이 나름의 묘책이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웃음기를 쫙 뺀, 다소 어둡고 무거운 캐릭터로 인간의 내면을 연기해낸다. 그에게는 나름 새로운 도전이었다. 

“2016년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를 찍고 있을 때였어요. 촬영 대기 중에 세트에 꽂혀 있는 책들을 구경하다 웹툰 ‘신과 함께’를 보게 되었어요. ‘아, 이게 하정우 씨가 캐스팅되었다는 영화의 원작이구나’ 했죠. 하필 거기 꽂혀 있던 게 하권밖에 없어서 하권부터 읽었는데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상권도 읽고 싶었는데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저한테도 시나리오가 왔어요. 받는 순간 ‘자홍’ 역이구나 직감했죠.” 

단지 원작을 재미있게 읽어서만은 아니었다. 시나리오 속 자홍은 원작에서보다 훨씬 입체감 있는 인물로 변해 있었고, 웹툰의 방대했던 스토리는 영화에 꼭 알맞은 규모로 각색되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웹툰을 처음부터 다시 봤어요. 또 한 번 놀랐죠.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을 해봐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거든요. 웹툰에 담긴 방대한 이야기를 2시간 안에 녹여내는 것부터가 참 힘든 일이고, 캐릭터를 영화에 맞게 바꾸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감독님께서 각색을 참 잘 해주셨더라고요. 무엇보다 1편과 2편을 동시에 찍는다는 시도도 신선했어요. 어찌 보면 무모한, 도박 같은 시도인데 욕심이 나더라고요. 이런 작업에 언젠간 꼭 한번 참여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죠. 아쉽게도 저는 1편에만 등장합니다. 2편에선 정우와 지훈, 향기가 연기하는 삼차사를 비롯해 이정재 씨가 연기하는 염라대왕도 계속해서 출연하니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하정우는 흥미롭고 매력 있는 배우

이번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하정우는 그에게 매우 흥미롭고, 매력 있는 연기자다. 연기력뿐만 아니라 촬영장 분위기를 편하고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가는 능력도 대단해서, 그와 함께 작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또다시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번 영화의 초호화 캐스팅도 배우 하정우의 인맥이 상당 부분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차태현의 생각이다. 이번 촬영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으로 배우들에 대한 신뢰를 꼽았을 정도.

“연기하는 걸 보면서 확실히 내공이 다르다는 걸 느꼈죠. 사실은 촬영을 하는 장면 장면이 너무 웃길 수밖에 없었거든요. 제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 해도 아무것도 없는 그린 매트 위에서 마치 긴박한 상황에 빠진 것처럼 모든 것을 상상하며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게, NG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영화의 스케일이 워낙 크다 보니 세트장도 넓고 장비들도 규모가 엄청나서 한번 NG를 내면 그날 촬영은 그냥 접어야 했거든요. 다시 장비를 옮기고 어쩌고 할 수가 없으니까요. 감독님이 디렉션도 마이크에 대고 즉석에서 주실 수밖에 없었고요. 한참 연기를 하고 있는데 ‘정우 씨, 거기서 옆으로 고개를 살짝만 어, 그렇지!’ 뭐 이런 식이었죠. 감정이 깨지기 쉬웠을 텐데, 정우도 지훈이도 정말 흔들림 없이 잘하더라고요. 제 경우엔 드라마 ‘전우치’ 때 워낙 와이어신을 많이 찍어봐서 그런지 그나마 익숙했지만 정우랑 지훈이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이래서 캐스팅이 중요하구나, 새삼 깨닫게 됐죠.” 

제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 해도 아무것도 없는 그린 매트 위에서 마치 긴박한 상황에 빠진 것처럼 모든 것을 상상하며 연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그야말로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만큼 그토록 멋진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소득이다. 

또 한 명, 그의 눈에 들어온 이가 배우 이정재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염라대왕’은 극을 결말로 이끄는 열쇠를 가진 인물로 비칠 만큼 비중이 꽤 높았다. 이를 두고 배우 이정재는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처음에는 김용화 감독님이 우정 출연을 잠깐 해달라는 제안을 해서 흔쾌히 좋다고 했던 것”이라 회고했다. 

이틀 정도만 촬영하면 되는 굉장히 작은 역할이라는 말에 감쪽같이 속았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역할은 ‘우정 출연’ 정도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의상이나 특수 분장을 테스트하는 데만 3일이 지나갔고, 그러다 1편은 물론 2편에까지 나오게 되었으니까. 주연을 맡은 차태현조차 촬영장을 늘 지키고 있던 이정재가 우정 출연이라는 걸 제작보고회 자리에서야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을 정도이니 촬영장에서 주고받은 배우들 간의 뜨거운 열기는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1편과 2편을 동시에 촬영하는 바람에 거의 1년을 현장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로서는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차태현은 2017년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을 비롯해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했던 ‘용띠클럽-철부지 브로망스’, ‘1박 2일’의 제2의 전성기를 이끈 유호진 PD와 함께 연출에 도전한 드라마 ‘최고의 한방’까지 다양한 활동 속에 한 해를 꽉 채워 보냈다. “2018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은 아직 짜지 않았어요. 다음에 제게 들어올 작품 중에서, 또 무엇을 선택해 보여드릴 수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죠. 어떤 작품을 선택하건 잘될 수도 있겠지만,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누굴 탓하거나 원망하진 않아요. 다만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많이 돌아보게는 되죠. 그러면서 생각해요. ‘이 또한 좋은 경험이었고, 내게 큰 자산이 되어 앞으로의 활동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요. 2017년 한 해 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드셨던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라 믿습니다. 새해엔 다들 좋은 일이 많이 생기셨으면 좋겠어요.” 

좀처럼 기복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반대, 스스로의 삶을 누구보다 잘 들여다보고 컨트롤할 줄 아는 이가 바로 배우 차태현이었다.

director 김명희 기자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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