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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 3대 때렸는데 죽었다”

editor 양은경 조선일보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입력 2017.07.20 10:35:41

동거녀를 살해해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남성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딸이 죽었는지도 몰랐던 아버지가 범인의 감형에 합의했다.
“화가 나  3대 때렸는데  죽었다”
지난해 10월 충북 음성의 한 밭에서 콘크리트에 덮여 있던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이 ‘4년 전 한 여성이 동거 중인 남성에 의해 살해된 채 암매장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벌인 끝에 시신을 찾아낸 것이다.

경찰은 동거남 이모 씨를 추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12년부터 이씨의 어머니와 함께 주점을 운영했으며, 이씨 어머니가 피해자에게 손님 술 시중을 들게 해 이씨와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사건은 그해 9월 어느 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에서 발생했다.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에 누워 있던 피해자는 이씨에게 한 남자 손님에 대해 “멋있다”고 하면서 “(이 남자에게) 가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이씨가 화가 나 주먹으로 피해자를 3대 정도 때렸는데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씨는 사체를 자신의 어머니 밭에 암매장하기로 하고 동생에게 차를 운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밭에 사체를 묻고 시멘트를 뿌려 매장했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 폭행치사 및 사체유기로 구속 기소된 이씨는 지난 1월 청주지법 1심에서 징역 5년을, 동생은 사체유기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6월 초 열린 2심에서 재판부는 이씨가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했으며,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감형 사유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한 ‘목숨 값 3년’ 사건의 개요다.



20년 넘게 인연 끊은 아버지의 합의로 감형

이씨의 형이 가벼웠던 일차적인 이유는 죄명이 ‘살인’이 아닌 ‘폭행치사’였기 때문이다. 동거녀를 살해하고 콘크리트에 시신을 은닉한 또 다른 남성은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5년이 확정됐다. 똑같은 ‘콘크리트 시신 사건’이라도 죄명에 따라 형량 차이가 엄청났던 것이다. 이씨를 살인죄로 처벌하려면 그가 피해자를 죽일 의도로 때렸다는 점을 수사 기관이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점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망 후 4년이 흐른 백골 상태여서 국과수 감식으로 사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 두개골 골절 등 다른 타살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결국 “화가 나 3대 때렸는데 죽었다”는 이씨 주장대로 사건이 처리된 것이다. 판사들이 주로 참고하는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살인죄는 10~16년인데 반해 폭행치사는 2~4년에 불과하다. 1심이 선고한 5년은 이 기준에 따르면 ‘나름 무거운’ 형이다. 게다가 2심은 “피해자 유족과 합의했다”며 2년을 더 깎아줬다. 2심에 와서 합의가 돼 형을 깎아주는 일은 종종 있다. 문제는 합의의 진정성이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가족과 연락은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며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라면 합의했다고 형을 깎아주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실제 그랬다. 합의한 유족이 피해자와 2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지낸 아버지로 밝혀졌다. 피해자는 부모가 이혼한 후 할머니와 생활하다 고아원을 전전했고, 아버지는 딸의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실종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목숨 값 3년은 어쩌면 삶에 대한 배려가 없는 기계적 사법 시스템의 산물이다. 똑같이 사람이 죽었는데도 ‘의도’가 없었다며 살인죄의 5분의 1도 안 되는 형을 선고하도록 하는 양형 기준, 딸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합의서를 감형 요소로 반영하는 기계적 판결 등이 결합한 결과다. 대법원은 뒤늦게 “폭행치사의 양형 기준을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셔터스톡 디자인 박경옥




여성동아 2017년 7월 6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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