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가 테니스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지.” 지난 2022년 채널A 예능 ‘슈퍼 DNA-피는 못 속여’에서 아빠 이형택(50) 오리온 테니스단 감독의 말에 “테니스보다 배드민턴은 어때? 꿈은 사춘기가 지나야 생기는 거야. 나 개그우먼 해도 괜찮을 것 같대!”라고 받아치던 귀여운 꼬마 이미나(15)가 주니어 테니스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 들어 하나증권 전국종별테니스대회와 ITF 바볼랏 안성 국제주니어테니스투어대회 복식 16세 이하, ITF 영월 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 복식에서 잇달아 우승한 것. 장난기 가득했던 눈빛은 승부처에서 빛나는 진지함으로 바뀌었고,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이형택 감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머드리’에 미나가 출연하면 조회수가 크게 증가한다.
아빠를 꼭 닮은 ‘리틀 이형택’
이형택 감독은 2000년 한국인 최초 US오픈 16강 진출, 2003년 시드니 아디다스 인터내셔널대회에서 앤디 로딕과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를 꺾고 한국 남자 선수 최초 ATP 투어 우승, 2007년 US오픈 두 번째 16강 진출까지 한국 테니스의 살아 있는 역사다. 이 감독의 1남 2녀 중 막내인 미나는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 테니스를 시작했다. 예능 출연 당시 골프채를 처음 잡은 날 비거리 140m를 기록하고, 축구와 수영 등에서도 타고난 운동신경을 보였던 그는 이후 이형택 감독의 유튜브 채널 ‘[머드Lee]이형택TV’(이하 ‘머드리’)에 출연해 테니스 선수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미나가 출연한 영상들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최근 미나의 경기를 본 이들은 서브 전 공을 튀기는 루틴부터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 백핸드, 발리까지 아버지의 플레이를 그대로 닮았다며 “리틀 이형택”이라 입을 모은다. 미나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인데 주변에서 똑같다고 하니 가끔 놀란다”며 쑥스러워했고, 이 감독은 “나와 훈련했던 코치가 미나를 지도하는데, 사소한 습관까지 비슷하다고 하더라. 나는 기분이 좋지만, 미나는 여자 선수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미나의 롤 모델은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다. 실력뿐 아니라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련한 경기 운영을 본받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페더러에게 직접 “슬라이스를 잘 친다”는 칭찬을 들었던 경험도 있다. 아버지가 테니스 황제를 고전하게 할 만큼 대단한 선수였다는 사실이 내심 자랑스럽기도 하다.
부녀의 테니스 여정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 테니스를 어려워하던 미나에게 이 감독은 “힘들면 하지 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나는 오히려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왜 그만두라고 하냐”며 테니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제 그는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하기 싫기도 하지만, 그걸 이겨낸 뒤 얻는 결과가 눈물이 날 만큼 기뻐서 테니스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 촬영을 위해 나란히 선 부녀는 코트를 가득 채우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한국 테니스의 미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성장하고 있는 미나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는 이형택 감독을 만났다.
최근 3개 대회 연속 우승했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미나 | 우승해서 정말 기뻤어요. 노력의 결과라 더 뿌듯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보시는 미나 선수의 장단점은요.
이형택 | 여자 선수치고 파워가 좋은 편입니다. 서브와 발리가 강점이고 순발력도 뛰어나요, 다만 경기 운영에 필요한 지구력은 아직 보완이 필요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순간적인 움직임은 좋았지만 지구력은 약했던 편이었죠. 그래도 최근에는 이기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고, 스스로 보완점을 찾으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특히 백핸드 발리에서도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경기 운영과 관련해 조언도 하시나요.
이형택 |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니어 때는 실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승부가 가능하지만, 성인이 되면 파워가 크게 작용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다양한 플레이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네트 플레이나 슬라이스를 배우려 하면 늦을 수 있거든요. 지금 당장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좋아요. 지도자들은 현재 성적보다 이 선수가 앞으로 어떤 플레이를 할지를 더 많이 봅니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미나는 시큰둥하고 아빠가 테니스를 권하는 모습이었어요.
이형택 | 사실 미나가 축구를 비롯해 활동적인 스포츠는 다 좋아합니다. 한때 힘들어하길래 “테니스가 어렵다면 하지 마라” 했더니 오히려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왜 그만두라고 하냐”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때 정말 테니스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미나 |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테니스가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하기 싫기도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싶어요. 힘든 과정을 넘어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기는 방법보다, 도전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머드리’ 영상에서 감독님이 미나와 복식 파트너일 때 더 쩔쩔매는 것 같아요.이형택 | 쩔쩔매는 건 아니고요(웃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더 신경 쓰게 됩니다. 그래서 경기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최근 아시아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스타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형택 |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제 무대에 계속 도전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경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스폰서 없이는 어렵기도 하고요. 동호인은 늘고 있지만 선수층은 줄어들고 있는 점도 안타까워요.
감독님이 세계 무대에 도전할 땐 어떤 마음이었나요.
이형택 | 처음부터 세계 무대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어요. 삼성팀 창단 때 세계 랭킹 150위가 목표였는데, 그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 정도 수준의 선수를 만나면 주눅이 들어서 공도 제대로 못 칠 정도였죠. 그런데 먼저 국제 무대에 도전했던 박성희 선배가 “너희보다 못한 선수들도 그랜드슬램 뛰고 있다. 계속 도전하라”고 이야기해줬어요. 그 말을 3년 정도 안 듣다가 나중에 도전해보니, 우리한테 졌던 선수들이 이미 100위권에 가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미국, 유럽 챌린저 대회에 도전하면서 랭킹이 빠르게 올랐습니다. 선배의 조언을 일찍 들었으면 3년은 벌었을 텐데, 그게 좀 아쉽죠.
US오픈에서 피트 샘프라스와의 경기는 어땠나요.
이형택 | 경기 전날 너무 떨려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전 세계 중계인데 6:0으로 지면 망신이다’ 싶어서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첫 게임을 따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타이브레이크에서 긴장해 네트를 건드리는 실수도 했지만, 세계 1위와 대등하게 싸운 경험은 은퇴할 때까지 큰 자산이 됐습니다.
조코비치 선수와도 인연이 있으시죠.
이형택 | 경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조코비치 선수가 주니어에서 프로로 넘어갈 때 독일에서 함께 훈련한 적이 있습니다. 조코비치 선수가 그때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만 하고 가겠다”고 했었어요. 테니스는 안 치고 체력 훈련만 계속했거든요. 그런데 결국 4주를 다 버티더라고요. 주니어 때부터 “열심히 해서 아디다스 같은 큰 스폰서들과 돈을 많이 받고 계약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꿈이 컸어요. 그런데 정말 몇 년 안 돼 그랜드슬램에서 성적을 내기 시작하더니 아디다스와 계약을 하더라고요.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연습할 때 스트로크 랠리를 하면 거의 실수가 없었어요. 그걸 보면서 ‘이 선수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죠. 나중에는 정말 머신처럼 플레이하는 선수가 됐더라고요.

“부모님께 감사, 실력으로 증명하는 선수 될 것”
예전엔 아빠의 코칭을 부담스러워했는데 요즘은 어떤가요.미나 | 예전에는 성적이 안 나오니까 더 긴장되고 부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성장하고 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어서 그런지 부담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가까이서 조언해주는 분이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이형택 | 어릴 때는 이야기를 해도 이해를 못 하니까 훈계하는 식이 됐는데, 지금은 제가 말하면 본인이 느낌을 알고 받아들이면서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훨씬 나아졌어요.
미나 선수의 앞으로 목표도 궁금합니다.
미나 | 가깝게는 단식도 잘해서 단식과 복식 2관왕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빠가 기록한 세계 36위라는 랭킹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요. 36위를 넘어서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형택 | 미나가 어릴 때 “아빠가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고마웠죠. 아직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해가 갈수록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나는 지는 것에 오래 매달리지 않고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스타일이에요. 여행지나 음식에도 잘 적응합니다. 그런 것들이 투어 선수로서 큰 장점이에요. ‘이정후 아빠’ 이종범, ‘허웅·허훈 아빠’ 허재처럼 저도 ‘미나 아빠’ 이형택으로 불릴 날이 오지 않을까요? 하하하.
아빠로서, 선배로서 미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형택 | 성장하면서 점점 태도도 좋아지고,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해요. 저도 선수 생활을 해보니까 투어를 8년 정도 한다는 게 굉장히 긴 시간이더라고요. 미나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치지 말고, 무엇보다 재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적이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지금 해야 할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나를 키우면서 감독님도 같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이형택 | 저도 조급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미나 나이에 어땠지?’를 떠올려보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조급해지면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고 해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지는 게 마치 내가 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계속 압박을 주면 결국 선수에게 스트레스가 되니까요. 그러면 아이의 운동이 아니라 부모의 운동이 돼버리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거든요. 테니스의 재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믿습니다.
미나도 아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미나 |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코트 위에서 실력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지켜봐 주세요.
#이형택 #머드리 #테니스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홍태식 사진출처 유튜브 ‘머드리’ 화면 캡처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