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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이 불러낸 ‘바나나걸

#엉덩이 #안수지 #아가

글 · 위성은 자유기고가 | 사진 · 박해윤 기자

입력 2016.06.15 17:33:20

‘엉덩일 흔들어봐, 왼쪽을 좀 들어봐~’ 세대를 막론하고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댄스곡 ‘엉덩이’에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 있었으니, 노래를 직접 작사한 가수가 데뷔를 하루 앞두고 잠적했던 것. 〈슈가맨〉을 통해 1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인물이었다.
〈슈가맨〉이 불러낸 ‘바나나걸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은 히트곡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진 가수들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이다. ‘슈가맨’이란 이름은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유래했다. 극 중 슈가맨으로 등장하는 로드리게스는 고향인 미국에서는 앨범을 6장밖에 팔지 못한 무명 가수지만, 음반을 정식으로 발매하지도 않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 있는 전설이자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 돼 있었다. 영화는 베일에 가려진 슈가맨의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슈가맨〉이 불러낸 ‘바나나걸
유재석과 유희열이 각각 팀을 구성해 ‘슈가맨’을 찾아내는 jtbc의 〈슈가맨〉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들과 함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연을 지닌 가수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4월 26일 방영된 ‘엉덩이’의 원조 가수, ‘바나나걸’ 안수지 편이었다. 미끈하게 잘 빠진 남자가 좋으니 엉덩이를 흔들어보라는 이 섹시한 노래는 지금 들어도 질리지 않고 신나는 댄스 넘버다. 하지만 정작 안수지는 2003년 ‘엉덩이’로 데뷔하기 하루 전날  잠적해 〈슈가맨〉 출연 전까지 이 노래로 무대에 선 적이 없다. 우리 귀에 익숙한 버전의 ‘엉덩이’는 ‘철이와 미애’의 신철이 클럽 버전으로 리믹스한 것이다. 대세 걸그룹 ‘IOI’가 다시 부른 ‘엉덩이’는 1백6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슈가맨〉 출연 이후 화제의 중심에 선 안수지를 〈여성동아〉가 재소환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슈가맨

〈슈가맨〉이 불러낸 ‘바나나걸
“다들 〈슈가맨〉에 출연하고 나서 방송 출연 제의가 늘지 않았냐고 묻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싱글 앨범 작업 때문에 한동안 지하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있었거든요. 제가 음악에선 고집이 있어요. ‘엉덩이’ 말고 다른 노래들을 들어보시면 댄스 음악을 못 하고 도망간 이유를 아실 거예요. 그래도 제가 작사한 자식 같은 노래(‘엉덩이’)를 너무 오래 외면했다는 생각은 했죠. 제작진의 출연 요청에 잠시 고민하다 잃을 것도 없어서 나갔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실 줄 몰랐어요. 제 노래를 응원하고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분들이 생겨서 음악을 계속하는 데 힘이 되고 있어요.”  



백팩에 블라우스 차림으로 걸어오는 안수지는 이기적인 ‘기럭지’의 소유자였다. 포즈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폼이 모델 못지않았다. 게다가 노래 실력은 또 어떤가. 방송에서 처음으로 불렀다는 ‘엉덩이’ 라이브, 데뷔 전 지수라는 예명으로 부른 드라마 〈청춘의 덫〉 주제가, 〈슈가맨〉에서 유희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편곡해 부른 재즈 버전의 ‘엉덩이’ 모두 일품이었다. 뜨고도 남았을 실력과 외모로 긴 세월을 돌아 이제야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안수지는 방송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졌던 이유에 대해, 댄스 음악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 삶이 남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방송에 나온 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다양한 이름을 가진 건 그만큼 곡절이 많았다는 얘기기도 해요. 그동안 방송 리포터와 작사를 했고, 5년 전부터 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뒤늦게 꿈을 찾은 거죠.” 

바나나걸, 가수 지수, 리포터 겸 방송인 아가, 아가싱즈의 보컬, 그리고 안수지. 혹자는 이를 우스갯소리로 ‘신분 세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지금의 안수지를 있게 해준 이름들이다. 포맨의 ‘그댈 만나러 갑니다’, 박지윤의 ‘날 기다려준 그대 곁에’,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OST ‘My Humming’ 등은 그녀가 직접 작사한 노래들이다. 20대 내내 작사와 보컬을 하며 음악을 놓지 않았지만 들어간 회사마다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고, 한번 지나간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대중의 곁을 떠났던 그녀가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서른 살 무렵,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그녀는 MBC 〈고향을 부탁해〉, SBS 〈동물농장〉, KBS 〈TV쇼 진품명품〉 등에 출연했고 지금도 KBS 〈생방송 아침이 좋다〉의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SBS 〈양희은의 시골밥상〉을 통해 인연을 맺은 양희은과 팀을 이뤄 〈도전 1000곡〉에서 우승(2012)한 적도 있다. 〈슈가맨〉에 출연한 후 주부 시청자들로부터 “정말 ‘엉덩이’를 부른 가수가 맞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여행이나 맛집 촬영차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죠. 제가 서울토박이라 시골집도 가본 적이 없고 아궁이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양희은의 시골밥상〉 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워야 했어요. 첫해엔 빠릿빠릿하지 못하다고 양희은 선생님께 되게 혼났어요. 어떨 땐 몸이 굳을 정도로 무서워서 녹화 전날에 잠을 설친 적도 있어요. 지금은 저도 후배가 많이 생기다 보니, 혼내가면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이 굉장히 힘들고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엄마도 양희은 선생님이 절 사람 만들어주셨다고 엄청 고마워하시고요.”    

방송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하지만 일주일에 스케줄을 4개씩 소화하다 보니 음악 할 시간이 없었다. 2011년 즈음 촬영을 겸해 여행을 떠났다가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 삶을 돌아보게 됐다. 길 위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은 데는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그녀의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열렬한 팬이자 재즈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집에는 1천 장이 넘는 클래식과 재즈 LP가 빼곡했고 늘 음악을 듣고 자란 그녀와 오빠는 각각 가수와 성악가가 됐다. 음악적 자양분이 돼준 아버지를 위해 2015년 ‘For My Daddy’란 노래를 만들었지만 정작 아버지는 음반을 듣지 못한 채 지난해 암으로 돌아가셨다.



싱어송라이터로 홀로서기

싱어송라이터이자 인디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찾은 안수지는 ‘아가싱즈’라는 팀을 결성해 음반과 공연 활동을 하다가 지난해 말부터 솔로를 준비해 5월 12일 ‘혼잣말’과 ‘해피’라는 싱글곡을 내놓았다. 

“어릴 때 목표를 다 이루면 인생이 멋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요. ‘엉덩이’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갔다면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지 몰라요. 다시 태어나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래요.”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누군가의 흉내를 내지 않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웠다. 가장 편안한 자신의 톤을 찾으니 나머지는 어렵지 않았다. 각자의 길이 있듯이 각자가 원하는 성공을 하면 삶에 후회가 없지 않을까. 어차피 모두가 1등을 할 수도, 그 자리를 영원히 유지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돈 되는 걸 안하고 왜 자꾸 엉뚱한 걸 하느냐고 묻는데 저는 지금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의 사랑을 받거나 반짝거리지는 않아도 사람들 곁에 스멀스멀 맴도는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뭘 사야겠다는 궁리는 안 하고, 돈이 생기면 일류 세션과 작업할 생각만 하죠. 장비 욕심도 많고요. 그러려면 방송도 열심히 해야 해요(웃음). 곡을 쓸 때 멜로디와 가사가 같이 나오는데, 제가 만들고 직접 부르니까 더 와닿는 것 아닐까요.”

안수지의 일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꾸준히 방송을 하고 일이 없는 날엔 작업실에 나와 이것저것 녹음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거나 직접 요리해 먹기도 한다. 여유롭게 산책하다 악상이 떠오르면 ‘유레카’를 외친다.

동안의 비결을 묻자 “관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메이크업도 스케줄이 있어야만 하고 심지어 수분크림도 바르지 않는다고. 옷도 교복처럼 똑같이 입고 녹음실이 제일 편하다고 한다. 안정된 삶과 하고 싶은 일의 갈래길에서 늘 후자를 택하는 것이 안수지의 방식이다. 고민 끝에 선택한 만큼 후회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는 자세야말로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기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생긴 덕분에 해야 할 일의 리스트가 늘었지만 즐거운 자극이다. 안수지라는 꽤 괜찮은 가수를 계속 지켜보고 싶어졌다.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청춘의 덫〉 주제곡도 다시 녹음해 부르고 싶고, 음식과 여행에 관한 책을 내고 싶어요. 마음에 품으면 죽기 전에는 이뤄지지 않을까요. 다음 싱글도 준비하고 있고요. 공연도 많이 하고 싶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출연하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면 불러주시려나요(웃음)? 남자친구는 있고요. 결혼은··· 하게 되면 내년쯤?” 

〈슈가맨〉이 소환한 추억의 스타들〈슈가맨〉이 방송된 다음 날이면 해당 가수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차트에 오르내리거나, 음원 차트에서도 그 가수의 곡이 역주행하는 등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8개월에 걸친 제작진의 끈질긴 섭외 요청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스페이스A는 ‘섹시한 당신은 나의 남자, 잘생긴 당신은 나의 남자’라는 가사로 유명한 추억의 명곡, ‘섹시한 남자’로 패널들은 물론 시청자들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홍일점 김현정은 연예계 생활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어린 나이에 방송 활동도 많고 행사도 많이 다니다 보니까 감사한 줄 모르고,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정은 현재 보컬 학원 강사를, 또 다른 멤버 제이슨과 잭슨은 각각 액세서리 사업과 아쿠아로빅 강사로 일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X세대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누린 구본승도 〈슈가맨〉이 불러낸 추억의 스타. 가수 이현도가 작사ㆍ작곡한 1집 타이틀곡 ‘너 하나만을 위해’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방송 활동을 쉬는 동안 골프 사업을 해왔다는 그는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연기로 컴백할 생각이 있다고 한다. 

브라운관을 주름잡았던 1990년대 청춘 스타 나현희도 〈슈가맨〉에 출연해 변치 않은 미모와 노래 실력으로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녀의 슈가송은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 OST인 ‘사랑하지 않을 거야’. 1996년 결혼해 연예계를 떠난 그녀는 2003년 잠시 컴백했다가 다시 활동을 접었는데, 그 이유가 딸의 건강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녀가 갑자기 일을 시작하자 유치원에 다니던 딸이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에 걸렸던 것. 엄마가 일을 중단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딸의 탈모도 자연스럽게 치료됐다고 한다.



〈슈가맨〉이 불러낸 ‘바나나걸


사진제공 · jtbc | 디자인 · 이지은 |
장소 협조 · 어쩌다가게 @망원 라운지(02-3144-7147) |
헤어 & 메이크업 · 파크뷰칼라빈(02-547-8204)





여성동아 2016년 6월 6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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