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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DESIGNER

세계가 사랑하는 악동 장 폴 고티에

글 · 정희순 | 사진 · 이상윤 | 디자인 · 최정미

2016. 05. 18

미용사였던 외할머니의 옷장에서 영감을 얻었던 소년은 50년이 지난 후 패션계의 거장이 되어 한국을 찾았다. 마돈나의 ‘원뿔형 브라’로 세상을 뒤집어놓았던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 아이돌과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전한 패션계의 악동 장 폴 고티에와의 아주 유쾌한 만남.

세계적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64)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장 폴 고티에’전에 참석하기 위한 것. 이번 전시는 201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작해 뉴욕·런던·파리 등 11개국을 거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2백20만 명이 관람한 메가톤급 전시다.

지난 3월 25일 전시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푸른색 줄무늬 티셔츠에 가죽 재킷을 매치한 장 폴 고티에를 만났다. 그는 “대규모 회고전은 이미 돌아가신 디자이너를 위해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에게서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느껴졌다.

장 폴 고티에는 1970년 피에르 가르뎅의 어시스턴트로 패션계에 처음 입문했다. 그 후 여러 쿠튀르 하우스를 거치며 일하다가 1976년 처음으로 자신의 하우스를 연 후부터 줄곧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패션계의 악동’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가 작업한 대표적인 의상이 바로 1990년 마돈나가 월드 투어 때 입은 ‘원뿔형 브라(Con Bra)’다. 이 의상은 당시 급부상 하던 여권 신장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외에도 그는 패션쇼 무대에 뚱뚱하거나 키가 작은 모델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비닐이나 주방 기구와 같은 의외의 소재를 사용해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얼핏 보기에 그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서깊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에서 2003년부터 7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며 좋은 성과를 이뤄낸 이력도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어린 시절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

미용사였던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워낙 성격이 사교적인 분이셔서, 손님들에게 패션은 물론이고 남편이 바람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화장해야 하는지까지도 조언해주시곤 했다. 외할머니를 만나 단장을 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살롱에서 본 것을 직접 스케치북에 그리면서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TV에서 본 마릴린 먼로, 브리짓 바르도의 옷과 머리 모양을 상상해서 그리기도 했다. 나는 인형을 가지고 싶어했는데, 내가 가진 인형이라고는 직접 만든 테디 베어 ‘나나’뿐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테디 베어에 원뿔형 브래지어를 만들어 입혀봤고 웨딩드레스도 만들어줬다.



▼ 사람들은 ‘장 폴 고티에’ 하면 코르셋을 떠올린다.

외할머니 옷장에서 살색 레이스로 된 코르셋을 처음 봤다. 첫 느낌? 그냥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코르셋이 애초에는 자세를 바로잡기 위한 교정용이었다가 점차 여성들의 미용을 위한 옷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에 매료돼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다.


▼ 학창 시절엔 어땠나.

나는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축구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그저 혼자 그림을 그리며 놀곤 했는데, 한번은 TV 프로그램 〈카바레 쇼〉에서 본 장면을 수업 시간에 그리다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망사 스타킹을 신고 반짝이를 붙이고 있는 여자의 그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 그 그림을 등에 붙이고 다니도록 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그 후로 친구들이 나를 더 좋아해줬다. 쉬는 시간이면 남자아이들이 몰려들어 한 장씩 그려달라고 보챘으니까(웃음). 그때 처음으로 ‘아, 내 그림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 같다. 열세 살쯤 오트쿠튀르를 소재로 한 영화 ‘빨발라(Falbalas, 스커트 끝의 주름)’를 보고 그때부터 의상 디자인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진행해왔다.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하는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다. 나만의 컬렉션을 할 때와는 달리, 콜래보레이션을 할 때는 상대의 비전도 존중하려고 한다. 영화 의상을 만들 때는 시나리오도 고려하고, 감독의 가치관도 존중한다. 또 그 과정이 내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 늘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본인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패션계의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다. 스웨덴 출신의 금발 미녀가 전형적인 미인으로 여겨진다면, 나는 검은 머리, 진한 피부색,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과 개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걸음걸이가 좋았고, 그래서 전문 모델 대신 그들을 패션쇼 모델로 기용했었다. 나는 어떠한 사물도 원래 용도가 아닌 것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뽑아낼 수 있다고 본다. 고양이 먹이가 들어 있는 캔으로 ‘아프리카 팔찌’를 만들었던 작업이 대표적인 예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에 자신감을 느끼고 보여줘야 한다.

▼ 한국을 처음 방문한 소감을 들려달라.

서울은 에너지가 넘치고 멋진 도시다. 30년 전 일본에 처음 갔을 때도 새로운 발견을 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정말 우아하고 독특한 의상을 입고 있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오늘 밤엔 오트쿠튀르 패션쇼도 진행된다. 앞서 11개 국가에서 열린 세계 투어 전시에선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쇼에서 한복을 고티에식으로 재해석했는데 참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실제로 입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길 바란다.

▼ 한국 사람들의 패션은 획일화된 스타일로 지적받는다. 조언할 점이 있다면.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모방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 프랑스 사람을 흉내 내선 안 된다. 모든 나라는 각각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전통을 살리되, 눈을 뜨고 전 세계에서 무엇이 새로 창출되고 있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패션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골고루 섞는 게 중요하다. 나 역시 늘 전통의 요소들을 재해석하고 변형하려고 노력한다. 과거를 증오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껴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 한국 디자이너나 유명인사 중 함께 작업하고 싶은 인물이 있는가.

몇 해 전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굉장히 신선하다 느꼈다. 재치가 있으면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K-pop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번 기회에 한국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류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 아이돌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고 문화 장벽을 넘는 경험은 늘 독특하고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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