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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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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글니글 벗고 오빠들 달리다

글 · 정희순 | 사진 · 조영철 기자 | 디자인 · 김영화 | 선글라스 협찬 · 아카디우스(02-478-8314)

2016. 05. 18

〈개그콘서트〉의 인기 장수 코너였던 ‘니글니글’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충격적인 비주얼과 파격 댄스로 시청자들을 니글거리게 만들었던 송영길·이상훈의 벚꽃 엔딩.

고백하자면, 애초에 촬영 콘셉트는 ‘니글니글을 벗은 산뜻한 오빠들’이었다. 꽃피는 봄날 만남의 장소는 여의도 공원이었고, 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편안하게 인터뷰를 진행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송영길(32)과 이상훈(34)을 마주한 순간부터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고, 이들 역시 카메라만 들이대면 반사적으로 파격적인 포즈를 취했다. ‘니글니글’의 후폭풍은 이렇게나 거셌다.

개그맨 송영길과의 첫 대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편안한 차림으로 오세요”라고 했던 말을 전달받지 못했던 건지, 그는 각이 제대로 선 슈트에 정장 구두를 신고 공원에 나타났다. 송영길이 밝힌 이유는 이랬다. 타고난 몸매 탓에 평소 트레이닝복만 입다 보니 애초에 청바지 한 벌 없었다는 것. 부랴부랴 인터넷 쇼핑몰에서 바지를 구매했는데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배송 중’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슬픈 말인 줄 처음 알았어요.”(송영길)

촬영 소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유아용 자전거를 빌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대여소 주인이 송영길을 위아래로 쓰윽 한번 훑더니, “설마, 탈 건 아니죠?”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존재 그 자체로 그는 이미 뼈그맨(‘뼛속까지 개그맨’을 이르는 말)이다.

반면, 롤업진 팬츠에 스웨트 셔츠를 정직하게 매치한 이상훈은 모범생처럼 느껴졌다. 자칭인지 타칭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때는 ‘오류동 최시원’으로 군림하던 그였다. ‘니글니글’의 무대 의상을 벗고 나니 외모는 훨씬 업그레이드가 됐고, 올해 초 결혼한 새신랑답게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는 제법 알이 굵은 반지도 끼워져 있었다. “큐빅인데요?”(이상훈) 〈개그콘서트〈 입성 1년 차 때 ‘감사합니다’ 코너가 대박이 나면서 초등학생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작년에는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코미디 부문 남자 우수상도 거머쥐었다. ‘니글니글’ 코너 이후 ‘1대1’ 코너에서 선보이는 정치 풍자개그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한마디로 ‘개그맨 유망주’다.

▼ 송영길 씨가 정장 차림인 걸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어요.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송영길_진짜 청바지가 없어요. 그나마 하나 있던 청바지는 아내와 결혼 기념사진 촬영을 할 때 가지고 갔다가 잃어버렸죠. 청바지를 입고 와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인터넷 쇼핑몰에서 세 벌을 주문했어요. 그런데 배송 일자가 오늘인 거예요. 애타게 기다렸는데 오늘 오전까지 택배가 오지 않았어요. 아직 ‘배송 중’이라네요(그가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추리닝을 입고 올 순 없어서 제가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골라서 입었어요.

이상훈_정장에 구두라니, 건달이 온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하기야 이 옷이 영길이가 가장 아끼는 옷인 건 맞아요. 중요한 행사를 뛸 때도 항상 이렇게 입거든요.   

송영길_원래 별명이 ‘패션 고자’예요. 그나마 지금 아내 만나서 조금 나아진 거지, 예전에는 어느 체육대회에서 받은 단체 티셔츠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죠.



▼ 송영길 씨가 개그계 대표 애처가라 들었어요. 올해 초 결혼한 상훈 씨에게 조언도 많이 해줬나요.

송영길_“신혼을 만끽하다가 아기를 낳으라”는 말은 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해서 아내에게 미안한 점이 많아요. 물론 아들을 무척 사랑하긴 하지만 일단 아이가 생기면 커피숍이나 영화관에 가는 것도 힘들어요. 집에서 육아를 하는 아내가 힘들어지면 그게 결국엔 남편에게도 스트레스가 되죠. 내가 상훈이 형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언제나 말뿐이에요. 어차피 금전적으로는 형이 더 잘나가니까요.

이상훈_다들 될 수 있으면 늦게 결혼하라고 충고해줬는데 영길이는 달랐어요. 결혼하면 정말 좋다면서 꼭 하라고 격려해줬죠. 아마 자기가 결혼을 못 할 뻔하다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송영길_결혼 후 고민거리가 줄어든 게 가장 좋아요. 보통 서른 살 넘은 남자들은 고민이 많잖아요. 저 역시 누굴 만나서 연애를 할지, 결혼은 어떻게 할지, 또 일은 어떻게 할지 머리가 아팠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도 스트레스였어요. 지금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자’는 생각뿐이에요.

이상훈_누굴 만나다가 헤어지는 걸 반복해봤다고? 네가?

송영길_많이 만났지. 정말 무섭게 만났어(웃음). 결혼하면 어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항상 되물어봐요. “너 놀고 싶어? 그럼 하지 마. 서로 스트레스고 싸움 나니까.” 그런데 상훈이 형은 원래 노는 걸 안 좋아해요. 결혼하기 딱 좋죠. 형수가 진짜 잘 고른 거예요.

이상훈_원래 연예인병이 있어서 그런 거와는 잘 안 맞아요. 누가 술 마시자고 부르면 가긴 가는데, 일부러 막 찾아가는 스타일은 아니죠. 요즘도 집에서 쉴 때면 한자리에 앉아 14시간씩 블록 조립을 해요. 그것 때문에 아내가 화낼 수도 있는데 아직까진 잘 참아주는 것 같아요(웃음). 아내는 천생 여자예요. 아침밥은 물론이고 때 되면 간식도 챙겨주거든요. 곁에서 본 영길이는 정말 가족에게 헌신적이에요. 틈만 나면 장모님, 부모님 모시고 놀러 가려고 해요. 동료 개그맨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고요. 한마디로 ‘가족 이기주의’죠. 주변 사람들도 신경 좀 써줬으면 좋겠어요.

송영길_진심으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잘되길 바라요. 일단 나부터 잘되고요(웃음).

▼ ‘니글니글’ 코너가 막을 내렸어요. 참 많은 것을 가져다준 코너라 애정도 남다를 것 같아요.

이상훈_그렇죠. ‘니글니글’이 터진 이후 CF도 여섯 개 정도 찍고 방송도 많이 했거든요. 무엇보다 ‘이상훈’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송영길_그게 다 제 덕분이에요. ‘니글니글’에서 대사를 칠 때 항상 “야, 이상훈!” 하고 시작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당시 가진 돈이 딱 5백만원뿐이었어요. 신혼집을 구하느라 대출도 8천만원이나 받았죠. 너무 돈이 없어서 개그맨 선배들에게도 1천5백만원을 꿨다가 축의금을 받아 갚았어요. ‘언제 다 갚지’ 하고 눈앞이 캄캄했는데 ‘니글니글’이 터지면서 지금은 다 갚았어요.   

이상훈_짧은 브리지 코너를 1년 가까이 하는 건 쉽지가 않아요. ‘니글니글’은 회당 두 번씩 했기 때문에 내용으로만 치면 다른 코너 1년 6개월 한 것과 같죠. 자식 같은 코너지만 떠나보낼 땐 미련 없이 보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요.

송영길_우린 박수 잦아들 때쯤 떠난 거 아닌가?

▼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방영분이 있나요.

송영길_“야, 이상훈! 너의 혈액형을 알 것 같아. 넌 바로 미남형!”

이상훈_“아니야!”

송영길_“그럼 뭔데?”

이상훈_“바. 비. 인. 형!”

송영길_이걸 시청자분들이 무척 좋아해주셔서 한동안 이 시리즈를 계속했어요. 기존 춤에 변주를 줘서 꼭두각시 춤을 고정적으로 가져가게 된 것도 이때쯤이죠.

이상훈_11개월간 코너를 진행하면서 게스트가 딱 두 번 나왔는데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방송인 전현무 씨는 가슴 털을 공개하고 배우 김기방 씨는 겨드랑이 털을 공개했어요. 그때 정말 반응이 뜨거웠죠. 몸을 사리지 않으신 두 분의 열정에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송영길_사실 게스트가 실망스러운 경우도 많아요. 기껏 내용을 다 짜서 줬는데 몸을 사리고 대충 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죠. 그런데 두 분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흔들어주셨어요.

▼ 두 사람은 어떻게 친해지게 됐나요.

이상훈_예전에 〈개그스타〉라고 개그 지망생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영길이는 거기서 내리 5연승을 하며 한창 잘나갔고, 저는 유일한 일반인 참가자로 늘 혼자 개그를 짜곤 했죠. 고정 코너를 짜야 했던 잘나가는 영길이와 혼자 모든 아이디어를 짜야 했던 저는 자연스레 연습실에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 번씩 나가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많이 친해졌죠.

송영길_상훈이 형이 혼자 무대에서 스탠딩을 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느 극단 소속도 아닌 일반인 참가자가 원맨쇼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혼자 끝까지 남아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이 친구 언젠간 터지겠구나’ 싶었어요.

이상훈_이듬해에 같이 개그맨 공채 시험을 쳤는데 얘는 붙고 저는 떨어졌어요. 다행히 다음해에 바로 시험에 합격해 이제는 코너도 함께하는 막역한 사이가 된 거죠.

송영길_맨 처음 ‘니글니글’이라는 코너를 짤 때 누구와 함께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어요. 당시 상훈이 형이 여러 코너에서 여자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개그를 선보이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거든요.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아, 이 형 물 들어왔구나. 빨리 한배 타야겠다.’

▼ 개그맨으로서 서로의 장점은 뭔지 하나씩 말해주세요.

이상훈_솔직히 영길이를 처음 봤을 땐 비주얼로만 승부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연기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저 얼굴에 연기까지 잘하면 정말 ‘넘사벽’이잖아요. 후배인 제가 감히 칭찬을 하네요(웃음).

송영길_음…. 상훈이형…. 상훈이 형만이 가진 뭔가 독특한 아우라가 있는데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요. 음….

이상훈_뭐야, 그냥 없다고 해! 지어내지 말고.

송영길_(웃음) 무대에 오른 걸 보면 상훈이 형만의 기가 있어요. 그게 장점이에요. 진짜로요.

▼ 개그맨이 되기 전 원래 다른 일을 했다고들 들었어요. 어떻게 개그맨이 된 거예요.

이상훈_개그맨은 오랜 꿈이었어요. 그걸 가슴속에 접어놓고 물리치료사로 일했었죠.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바람만 잔뜩 들어서 이제는 연예인까지 하려고 한다”면서 반대하더라고요. 오히려 전 오기가 생겼어요.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매달렸죠.

송영길_저는 오히려 부모님이 개그맨 시험을 한번 준비해보라고 권하셨어요. 원래는 지하철 선로에서 정비 작업을 하는 일을 했었거든요. 작업 환경이 안 좋아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저를 믿어주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개그맨 시험에 붙었을 때 어머니는 “너무 잘됐다”며 거의 반나절을 펑펑 우셨어요. 개그맨이 된 건 제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그 다음번으로 잘한 건 운전면허 시험 합격한 거? 제가 원래 시험에 합격한 적이 거의 없어요(웃음). 어릴 때부터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친구들이 웃어주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주변에 웃음이 헤픈 친구들만 두고 살았었죠(웃음).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저기 가면 내가 더 잘할 수 있겠는데?’ 하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 ‘니글니글’ 이후의 계획이 있나요.

이상훈_‘니글니글’로 느끼하고 더러운 개그를 했다면 요즘은 ‘1대1’로 시사 풍자 개그를 하고 있어요. 반응이 꽤 괜찮아서 당분간은 이걸 열심히 밀어보려고요. 언젠가는 또 느끼하고 더러운 캐릭터로 돌아가겠죠? 한 가지만 잘하는 개그맨이 아닌, 여러 장르를 다 소화해낼 수 있는 팔방미인이 되고 싶어요.

송영길_남을 웃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하고 싶어요. 제가 〈개그콘서트〈 안에만 있다 보니 인맥이 그다지 넓지 않아요. 상훈이 형은 라디오도 하고 드라마 카메오도 하는데 저는 왜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들어오면 다 합니다. 연락주세요(웃음). 아, 그리고 전 5월에 둘째도 계획하고 있어요. 아내가 잘 도와줘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웃음). 개인적으로는 개그 공연 기획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잘 됐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보니 계획이 아니라 바람이 됐네?

이상훈_
올해는 영길이가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함께 열심히 했는데 작년 시상식 때 저 혼자만 상을 받았거든요. 영길이는 여자 분장하고 춤을 추느라 매년 시상식 때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데 아직까지 상은 못 받았어요.

송영길_아, 제발 시상식 때 ‘여장 돼지 춤’이나 안 시켰으면 좋겠어요. 근래 들어 이게 전통처럼 굳어졌는데 이젠 지겨워요. 여기서 벗어나려면 제가 살부터 빼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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