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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사회주의자 샌더스에 열광하는 이유

글 · 이세형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사진 · 뉴시스AP | 디자인 · 김영화

입력 2016.03.10 09:14:41

‘미국 의회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정치인’ ‘유대인’ ‘미혼부 출신’
‘사회 민주주의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의 철옹성을 뒤흔들며 선전 중인 버니 샌더스 의원을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미국이 사회주의자 샌더스에  열광하는 이유


수개월 전만 해도 버니 샌더스(75) 상원의원은 지역구인 버몬트 주를 제외하고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평범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2월 초 치러진 미 대선의 첫 관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샌더스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거물’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대선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샌더스 돌풍’의 가장 큰 이유로는 ‘왼쪽 성향’이 분명한 그의 공약들이 꼽힌다. 그가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정책들 중에는 △공립대학 학비 무료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최저 시급 인상 등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한 것들이 다수다. ‘아메리칸드림’이 사실상 사라지고 상위 1% 계층의 ‘독점’ 혹은 ‘탐욕’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중산층과 서민층 유권자들을 자극하거나 설레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러나 샌더스에 대한 관심, 나아가 매력을 이끌어내는 본질적인 부분은 그의 ‘흙수저’ 배경과 녹록지 않았던 성장 과정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안정된 엘리트 코스를 걸으며 성장한 힐러리 클린턴이나 도널드 트럼프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1941년 뉴욕 브루클린의 폴란드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밥을 굶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걱정 없이 구입하고 안정적으로 문화생활을 누리며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샌더스는 “성장 과정에서 많은 불평등을 목격했고, 이는 정치 활동을 하는 데 영감으로 작용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브루클린의 제임스 매디슨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하버드대 진학을 꿈꿨지만 그는 유대인을 10% 이상 뽑지 않는 할당제 때문에 ‘하버드생’이 될 수 없었다. 대신 샌더스는 브루클린대를 거쳐 명문인 시카고대 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젊은 시절 샌더스의 스펙 중 거의 유일하게 ‘주류 브랜드’로 인정받을 만한 것이 시카고대 학벌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샌더스는 ‘로스쿨 진학 준비’ 같은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 대신 ‘진보 정치’와 관련된 공부와 활동에 주력한다. 러시아 혁명 관련 책을 열심히 읽었고, 인종차별 반대와 반전 평화 시위 등을 주도했다.



힐러리 대세론 잠재운 비주류 정치인의 반란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해리 재프 기자는 저서 〈왜 버니 샌더스가 중요한가〉에서 “시카고대 재학 시절 샌더스는 친구들에게 ‘자본주의는 망했다’며 사회주의를 설파했는데, 상대가 설득되지 않으면 분해서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골수 좌파’였다”고 기술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1966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고, 28세 때는 당시 사귀던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들 레비를 낳았다. 하지만 이 여성과도 헤어졌고, 레비를 키우며 ‘싱글 대디’로 쭉 지냈다. 현재 부인인 제인 오미라 샌더스와는 47세 때 재혼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에 당선되기 전까지 목수, 다큐멘터리 감독, 기고가 등으로 활동하며 어렵게 생활했다. 그 뒤 버몬트 주 하원의원(1991~2007)과 상원의원(2007~현재)을 거쳤지만 지난해 11월 민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무소속으로 활동하며 ‘비주류 정치인’으로 지냈다.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 나아가 11월 8일 대선에서 승리하고 백악관의 주인이 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아 있다. 그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그의 공약에 반대하는 미국 재계와 금융계의 견제 움직임도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미 ‘최고령 대통령’ ‘최초의 유대인 대통령’ ‘최초의 사회 민주주의자 출신 대통령’ 같은 표현을 써가며 그의 당선 뒤 모습을 그려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분간 ‘샌더스 열풍’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증거다. 또 결과를 떠나 경쟁 후보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이념과 성장 과정 그리고 정치적 행보만으로도 샌더스가 2016년 미 대선에서 ‘딥 임팩트(Deep Impact · 강한 충격)’를 준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성동아 2016년 3월 6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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