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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LITERATURE TRAVEL

〈사금파리 한 조각〉과 전남 강진

고려청자의 고장에서 맑고 순수한 도공 소년의 눈빛을 발견하다

글 · 남기환 여행작가 | 사진 · 남기환 셔터스톡 | 디자인 · 이수정

2016. 03. 09

2002년 동양인 최초로 미국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수상한 린다 수 박의 동화 〈사금파리 한 조각〉. 도공을 꿈꾸는 한 소년의 성장 일기로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나면 여전히 도자기를 굽고 공방을 운영하는 도공들이 모여 사는 전라남도 강진으로 훌쩍 떠나고픈 충동이 생긴다.

고려청자를 지켜낸 이들에게 바쳐진 따뜻한 작품

바닷가 작고 조용한 마을인 줄포의 어느 강변 다리 아래에는 구걸과 허드렛일로 연명하는 고아 소년 목이와 두루미 아저씨(다리가 하나뿐인 모습이 마치 두루미 같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가 살고 있다. 몇 날이 되어도 쌀 한 톨 구경하기 어려운 삶이지만 목이에게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건 마을 최고의 도공으로 손꼽히는 민 영감의 집에서 그가 도자기 빚는 모습을 훔쳐보는 일이었다.
당시는 12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고려. 이웃 중국에서도 최고로 쳤던 청자를 만드는 도공들이 줄포에 모여 살아 자연스레 도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민 영감의 솜씨는 으뜸이었다. 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민 영감이 만든 꽃병을 사기 위해 소 두 마리, 말 한 마리, 그 집 장남까지 내줘야 한다”는 동료 도공들의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도자기 하나에 유난한 공과 시간을 들였던 탓에, 요즘 말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돈 되는 고객’을 놓치는 일이 허다했지만 아랑곳 않고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는 장인이었다.
그러던 중 목이의 실수로 민 영감의 창고에 있던 도자기 보관 상자가 파손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목이는 그 손해를 갚기 위해 민 영감의 일을 거들게 된다. 평소 말이 없고 예민하며 엄하기까지 한 민 영감으로부터 어떠한 살가운 대접도 받지 못하는 목이였지만 일을 배워 언젠가 자기 손으로 도자기를 빚을 날을 꿈꾸며 전에 없는 행복감에 젖은 나날을 보냈다. 여기에 민 영감과는 정반대의 성정을 지닌 그의 부인이 베푸는 따뜻함은 목이의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는 의미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려 최고의 도자촌이었던 줄포에 왕실의 감도관(監陶官)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을은 설렘과 긴장감에 휩싸인다. 감도관은 왕실에서 쓰는 그릇이며 도자기, 예술품들을 감별해 선정하는 관리였는데, 당시 왕실 납품은 그 자체로 도공에게는 최고의 명예였다. 심지어 기존의 도공이 명을 다하거나 작품이 예전만 못할 때 새로이 선정하는 일이다 보니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민 영감은 물론, 마을의 내로라하는 도공들은 감도관의 방문 일정에 맞춰 그를 만족시키기 위한 최고의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왕실 감도관 김씨가 줄포에 당도한 날, 도공들은 저마다의 작품을 진열하며 그의 평가를 기다리고 마을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 자리에서 감도관은 민 영감이 선보인 매화 꽃병과 더불어 라이벌 도공인 강 영감이 청자에 적용한 새로운 ‘상감법’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감도관은 또다른 도예촌인 강진에 들렀다가 송도(지금의 개성)로 가는 길에 다시 줄포를 들르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민 영감은 자신의 꽃병에 상감법을 적용하기 위한 재작업에 착수한다. 마침 강 영감의 작업을 우연히 본 적이 있던 목이의 도움을 받아 이 획기적인 기법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감도관은 민 영감의 상감청자 완성품을 보지 못했고, 자연히 왕실 납품은 물 건너간 듯 보였다. 그러나 감도관 김씨는 결정을 미룬 대신, 완성이 되면 왕궁으로 가져와달라는 말을 민 영감에게 남기고 떠난다. 그 뒤 다행히 작품은 완성되었고, 목이는 자청해 이를 송도로 운반하는 일에 나선다.
상황은 희망적으로 흘러가는 듯했지만 목이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여의 낙화암을 지나던 중 강도를 만나고, 애지중지 운반하던 청자는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목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고민하기도 할 만큼 좌절감에 휩싸였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을 두루미 아저씨와 민 영감 부인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깨어진 청자의 조각, 그러니까 사금파리 한 조각만을 손에 쥐고 다시 송도로 향한다. 목이는 무사히 송도로 가서 한 조각의 사금파리로 왕실 감도관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작품 곳곳에서 숨어있는 은유들

이 책의 작가인 린다 수 박은 재미교포 2세로 아일랜드계 남편과 두 아이 등과 함께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늘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에 대한 궁금증과 동경을 품어왔고 이는 그의 작품 〈널뛰는 아가씨〉 〈연싸움〉 등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아이들에게 한국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정작 자신에게도 낯선 나라이고 생소한 문화였지만 풍부한 자료와 깊은 애정으로 이들을 소재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고 〈사금파리 한 조각〉 역시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이 동화로 2002년 전미국 도서관협회에서 수여하는 ‘뉴베리상’ 아동 문학 분야 최우수 작품상을 받는다. 동양인으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작품은 크게 두 흐름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표면적으로는 목이의 열정과 꿈, 그리고 성장을 그려가고 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경험들을 한데 모으면 고려청자를 만드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떤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때야 하고, 도공들은 가마를 어떻게 다루며, 어떤 진흙을 어떻게 고르고 걸러서 써야 하는지, 그리고 수비(水飛)와 유약 바르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상감기법은 어떤 탄생 과정을 거쳤는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목이가 하나씩 일을 배워가는 과정과 민 영감을 관찰하는 목이의 시점을 빌려 자연스레 설명하는 서술 기법은 탁월하다. 특히 ‘한국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청자 만드는 과정과 도공들의 노력, 이에 더해 어떻게 왕실은 최고의 도자기를 선정하고 수급했는지 등의 이야기는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을 반영한다.
또 하나의 큰 흐름은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고려청자의 은유들을 읽어내는 데 있다. 목이와 함께 지내고 늘 그를 응원하며 보살피는 ‘두루미 아저씨’는 실은 고려청자의 문양에서 자주 등장하는 ‘학’을 은유한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도공들이 자신의 아들에게만 도자기 만드는 비법을 전수하는 관습에 가로막혀 좌절될 뻔했던 목이의 꿈이 활짝 펴게 된 과정도 재미있다. 일찍 아들을 잃은 민 영감이 목이를 양자로 삼으며 ‘형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는 미국에 고려청자의 우수함을 일찌감치 전파했던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이름에 대한 오마주이다. 게다가 목이가 송도로 운반해 간 ‘걸작’은 다름 아닌 간송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다. 이러한 숨은 장치들을 발견해가며 읽는 것 역시 이 소설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아동 혹은 청소년을 위한 소설로 한정하기에는 어딘지 아까운 작품이다. 오히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며 전통적인 도자기 제조 방법과 열정을 접한다면 더 빛이 날 듯하다. 그저 도예 체험에 참가해 그릇 하나 만들고 오는 일에 족했다면, 미리 이 소설을 읽고 더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를 쌓아보기를 권하고 싶을 만큼 세심하고 친절한 설명이 돋보인다.
물론 이 점은 반대로 아쉬움을 남긴 이유이기도 하다. 도자기에 대한 목이의 열정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청자를 만드는 과정을 깊이 있게 묘사하는 와중에 목이는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간혹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개입하는 역할까지 떠맡고 있다. 게다가 꽤나 복잡한 제작 과정과 기법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천재적이기까지 한 목이의 이해력과 습득력은 소설에 대한 몰입도를 살짝 방해하기도 한다. 또 영어 원작 소설이다 보니 번역문 특유의 낯선 문체, 특히 시대적 배경이 고려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생소한 어투와 단어들, 인물 설정 등도 조금은 아쉽다.
그러나 작품 전반을 감싸는 따뜻함은 이 소설을 선택할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 갖은 고난에도 꿈을 잃지 않는 소년의 성장과 그를 지켜주는 이들, 그리고 고려 도공들의 열정은 누구나, 어느 세대나 공감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태평양 건너 멀리 어느 작은 나라의 거의 1천 년 전 이야기를 담았지만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낸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매주 토요일 고려청자박물관에서 열리는 도자기 경매

소설에서는 몇 곳의 지명이 등장하는데, 줄포와 강진, 송도, 부여 등이 그곳들이다. 이 중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과 전라남도 강진군은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듯 고려청자의 주요 산지로 손꼽혔던 곳이다. 비록 목이와 민 영감이 살았고 소설의 주 배경을 이루는 장소는 줄포 일대이긴 하지만, 고려청자의 진수를 제대로 경험하는 여행을 기대한다면 강진을 들러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사금파리 한 조각〉을 미리 읽고 혹은 손에 쥐고 떠난다면 더 깊이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전라남도 강진은 그 지형부터가 독특하다. 지도를 보면 마치 두 다리를 살짝 벌리고 선 사람의 하체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다리 사이로 좁고 깊은 강진만이 바다를 향해 길을 내고 있다. 바다는 안온하고 갯벌이 깊으니 비옥한 땅이었다. 청자를 만들기 위한 질 좋은 흙이 있었으리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다.
〈사금파리 한 조각〉을 들고 찾아야 하는 강진의 첫 여행지는 단연 고려청자의 역사와 뛰어난 미감을 확인하는 ‘고려청자박물관’일 것이다. 박물관이 세워져 있는 강진군 대구면은 물론 인근 칠량면 일대에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약 2백여 개에 이르는 청자 요지가 분포했다고 하니 고려청자 최고의 산실이면서 그야말로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문을 지나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기도 전부터 갖은 볼거리가 풍부한 점이 인상적이다. 도공의 모습을 표현한 동상이 곳곳에 있고, 깨어진 청자 파편 그러니까 강진으로의 여행을 부추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사금파리’들을 가득 채운 조형물도 눈길을 끌지만, 박물관 앞뜰 이곳저곳에 청자 작품들이 놓여 있고 가로등 기둥마저 청자로 빚어놓아 보는 이들의 눈이 더욱 커진다. 게다가 박물관의 외관 벽면과 지붕도 청자로 마감해놓아 박물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청자 작품처럼 보인다. 옛 고려 왕궁에 청자기와(청기와)를 얹었다는 사실(소설에서도 언급된다)을 현재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목격할 수 있기에 더욱 이채롭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입구에 많은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인근 공방과 도요지에서 만든 작품들로 경매가 이루어지는데, 그 주의 경매품을 미리 볼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실제로 이곳의 도자기 경매는 미술품 애호가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박물관 안에는 고려청자의 역사와 뛰어난 기법, 그리고 강진의 청자 요지에 대한 풍부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어 찬찬히 둘러보기 좋다. 그렇지만 역시나 이곳의 진가는 숱한 고려청자 전시품들에서 그 빛을 발한다. 청자양각연판문 대접과 청자상감매로학접문사이호, 청자상감연국모란문과형주자 등 우리 전통의 ‘명품’이자 ‘보물’들이 펼치는 향연이 걸음을 자꾸만 늦추게 할 것이다. 소설에서 민 영감이 완성하고 목이가 송도까지 운반하다 사금파리 한 조각의 신세가 된 것으로 설정된 청자상감용운학매병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청자를 실어 나르던 목선의 모형과 당시를 짐작할 수 있는 많은 유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청자박물관은 그저 진귀한 소장품을 전시하는 역할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야외에 고려청자 가마터를 복원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손수 도자기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도 있고, 실제 도공들이 도자기 빚는 과정을 찬찬히 둘러볼 수도 있다. 도자기 빚기 체험은 간단한 코일링 작업(흙가래를 만들어 단을 쌓고 연결하고 두께를 조절해 크기와 모양을 잡아가는 것)부터 완성된 그릇에 무늬나 그림을 새겨 넣어 완성하는 조각, 그리고 물레 빚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많은 인기를 모은다.
고려청자박물관 건너편으로는 옛 도자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듯 크고 작은 공방과 전시실, 도자기 판매점 등이 하나의 마을을 이룰 만큼 규모 있게 조성되어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된 청자와 전통 도자기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기에, 고려청자박물관에서 경험했던 1천 년의 미감 못지않게 흥미로울 것이다.
강진에서 고려청자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꼭 들러보면 좋은 곳들 중에 다산 정약용 유배지인 ‘다산초당’을 빼놓을 수 없다. 강진만을 한눈으로 굽어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와 머물렀던 공간이다. 다산은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이어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유배지를 강진으로 옮겼는데, 첫 8년이 지난 후 1808년 봄에 이곳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된(유배가 풀리는) 1818년 9월까지 10여 년을 살았다. 그러는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고 동문들과 교류하며 세월을 보냈는데, 특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다산을 대표하는 저서들을 포함한 6백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산 중턱 길을 20여 분 올라가 포근한 느낌이 감도는 터에 초당이 마련되어 있다. 사실 오래되어 무너졌던 것을 1957년에 최대한 옛 모습대로 복원한 건물들인데, 산세는 변한 것이 없을 터이니 선생의 10년 세월을 더듬어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초당 앞에 조성된 연못 한가운데 ‘연지석가산’이라는 이름의 작은 돌산을 쌓은 풍경이며,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이 공간의 이름에 걸맞게 차를 즐겼던 흔적(차를 끓이던 반석인 ‘다조’와 약수인 ‘약천’ 등)도 자연미 가득한 미감을 품은 볼거리이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보는 사이 잠시 여유를 부려 초당 마루에 앉아보길 권한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초당 주변의 대나무를 훑어 지나는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 강진만이 보이는 순간은, 어쩌면 다산이 10년 세월을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었던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어우러진 초당의 면면, 옛 현인이 남긴 흔적은 2016년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끈이 되어줄 것이다.
다산초당을 나와 강진 앞바다의 매력을 즐기면서 강진 여행의 추억 하나를 더하고 싶다면 맑은 바다가 넉넉하고 푸근한 느낌을 전하는 마량항 일대가 좋을 것이다. 번잡하지 않지만 생기가 넘치는 항구의 풍경도 좋고 바다를 향했을 때 마주 보이는 까막섬과 고금도, 약산도가 다도해의 진경을 수묵화처럼 펼쳐낸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유난한 생기와 즐거움이 가득한 항구가 된다. 토요일마다 항구 일대에 ‘마량놀토시장’이 열리는데, 갖은 수산물과 먹을거리가 미각을 자극하고 방파제를 따라 조성된 3곳의 무대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예술의 전통과 현인의 흔적,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에 더해 생기 넘치는 삶의 한순간을 경험하는 사이 강진이 얼마나 살갑고 넉넉한지를 오롯이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의 느낌은 강진을 떠나온 뒤에도 꽤나 자주 떠오르며 남행을 재차 결심하게 할지 모른다.




Travel Information강진 가는 길(서울 출발 승용차 기준)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방면 →목포에서 서영암IC 지나 남해고속도로→강진IC에서 나와 강진군 진입

고려청자박물관 이용 정보
관람 시간  화~일요일 09:00~18:00(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매주 월요일 휴관(청자 빚기 체험장은 무휴)
관람 요금  어른 2천원 / 청소년 1천5백원 / 어린이 1천원
문의  061-430-3755 www.celadon.go.kr
청자 빚기 체험
운영 시간  09:00~18:00(연중 무휴. 단, 오후 5시까지 현장 접수 가능)
체험 인원 및 예약  1회 체험 70명(71명 이상은 조 편성 후 순차 실시), 체험 3일 전까지 온라인과 전화 예약 가능, 현장 접수는 당일도 가능
체험 비용  프로그램에 따라 5천~1만5천원 선
문의  061-430-3735

강진 관광 정보
강진군 문화관광(061-430-3114 www.gangjin.go.kr/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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