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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작가 김수현과 ‘날것’으로 나눈 이야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뉴시스 | 디자인 · 김영화

2016. 03. 03

김수현 작가가 가족 이야기를 들고 또다시 안방극장을 찾았다. 50년 가까이 같은 이야기를 쓰다 보면 지겨울 법도 한데 그가 계속 가족 드라마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생〉을 보며 살아보려 애쓰는 직장인들이 가여워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노작가에게 우문을 던졌다.

김수현(73 · 본명 김순옥) 작가 하면 떠오르는 여러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가족 드라마’다. 민망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인간관계를 다룬 막장 드라마가 물밀 듯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그는 사람다움에 가치를 둔 가족 드라마를 48년째 고집하고 있다. 1992년 시청률 64.9%를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를 비롯해 〈목욕탕집 남자들〉〈인생은 아름다워〉 〈부모님 전상서〉 〈엄마가 뿔났다〉 등이 대표적이다.
2월 13일 방송을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재단사 출신으로 30년간 양복점을 운영한 89세 할아버지 유종철(이순재)과 16세에 양복점집 가정부로 들어가 일하다 홀아비 종철과 정분이 나 결혼식도 없이 그의 처가 된 83세 할머니 김숙자(강부자)가 있다. 이 드라마는 이들 부부와 자식 내외, 손자 손녀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로 꾸려질 예정이다.
첫 방송을 몇 시간 앞둔 2월 13일 오후 5시, 김수현 작가와의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김 작가는 처음에는 “드라마가 어느 정도 순항을 하겠구나 싶을 때 인터뷰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지금까지 써온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생 한 이야기라 새로울 게 없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거 죽 쑬 수도 있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원래 인터뷰를 즐기지 않는 데다 지금은 한창 집필 중인 기간이라 더욱 예민해졌을 작가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이해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입에서 맴돌았다. 그렇다고 인터뷰를 접을 수도 없어 준비한 질문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자 그는 성의를 다해 하나하나 답을 했다.
다음은 그와 주고받은 일문일답(오랫동안 알고 지낸 터라 그는 기자를 편하게 대한다. 읽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의 말투를 가급적 살렸다).



연습 때마다 참석하는 건 작가의 책임감  

▼ 대가족 중심의 드라마를 일관되게 써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의 뿌리는 가족이야. 그렇지 않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잖아. 내가 가족 드라마를 쓴 건 굉장히 오래됐어. (1968년 MBC 라디오 드라마〈저 눈밭에 사슴이〉) 데뷔하면서부터 가족으로 갔어. 〈새엄마〉 〈신부 일기〉 〈당신〉 이런 게 다 가족 드라마야. 50년 가까이 썼는데 (이유를 물어보면) 내가 무슨 할 이야기가 있겠어.
▼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모든 인물이 다 주인공으로 보여요.
우리는 각자가 다 인생의 주인공이야.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무수한 사람들을 흩어놓고 원을 그려봐. 그러면 그 사람 주변, 이 사람 주변 이렇게 되지. 주변이 아닌 열외는 없어. 그러니 자연히 가족 드라마를 쓰면 다 주인공이지. 특별한 주인공은 없어. 얘기에 따라, 에피소드에 따라, 문제에 따라서 한 2~3주는 이 사람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다른 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나가. 그러면서 서로 힘을 보태고 보듬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거지.
▼ 세대 차가 많이 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혼, 일자리가 없어 부모에게 얹혀사는 백수, 아들의 고민까지 간파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젊은이들의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을 알기 위한 특별한 루트가 있나요. 이를테면 커뮤니티 같은 거요.  
커뮤니티 같은 건 없어. 그런 건 신문하고 TV 뉴스만 봐도 아는 거지. 내가 뭐 토굴 속에 갇혀 있니? 요즘 취직이 젊은이들에게는 절체절명의 문제잖아. 좁은 문이고. 그런 거는 그냥 아는 거지.
▼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요.
일자리가 많이 생기면 좋지. 그런데 사람 못 구해서 난리인 중소기업들도 많아. 너무 괜찮은 일자리만 노리는 아이들도 많지. 일자리가 정말 없어서 그런 건 아니고. 작은 기업들은 일꾼이 없어서 난리야. 그런 거는 잘 이야기하지 않잖아. 늘 일자리가 없다고만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일손이 부족하다고 그래.  
▼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까운가요.
안타까운 게 아니라 열불이 터지지.
▼ 이번 작품에는 소위 ‘김수현 사단’으로 통하는 배우들이 유독 많이 출연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캐스팅 포인트가 뭔가요.
내가 이제 일을 그만둬야 될 때가 왔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몇 십 년 동안 일하면서 내가 신세졌던 사람들을 모으자 한 거야. 신세졌다는 건 내가 필요로 할 때 군소리 없이 튀어나온 사람들, 와서 기쁘고 즐겁게 일한 양반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전부 다 선수야. 연령이 높은 층은 선수들만 가지고, 그 대신 젊은 층에는 처음 일하는 애들도 넣어서 출연진을 구성해봤어. 그래서 ‘굉장히 많이 봤다’ ‘낡았다’ ‘싫증난다’ 이런 반응이 있을 수도 있어.
▼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은 선생님이 평소 눈여겨본 사람들인가요.
특별히 눈여겨본다든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든지 그런 건 없어. 다만 모양새가 좋은 연기자, 저런 연기를 곧잘 하네 하는 배우들로 모았지. 우리 드라마의 막내둥이인 정해인이라는 아이는 이번에 처음 봤어. 제작사와 PD가 몇 사람의 후보 중에서 가장 맑은 느낌이 들어 뽑았지.
▼ 작품을 할 때마다 배우들의 리딩 연습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건 열정이 아니야. 내 일에 대한 책임감이지. 내 대본 가지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노래 부르면 어떡해. 내 음표대로 노래를 불러줘야지.



필요할 때 달려와 준 배우가 ‘김수현 사단’

▼ 그동안 심은하, 이영애, 수애 등 많은 배우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하면서 연기력이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배우는 어때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나요.
어떤 연기자든지 작품에 들어와서 어떤 인물을 맡았을 때는 그 인물이 돼줘야지. 그게 제일 관건인데 그걸 실패하면 안 돼. 내 작품에 처음 들어오는 배우는 초장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드라마에서 자기 나름대로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해가며 마음대로 표현하다가 왔으니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해. 그런데 조금만 드라마가 진행되면 아주 편안해져. 자신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알게 되니까, 그 물을 타니까 그때부터 편해지는 거야. 처음에는 나이 든 배우들도 힘들어해.
▼ 〈그래, 그런 거야〉 대본이 벌써 12회까지 나왔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연기하는 걸 지켜보면서 기대 이상으로 잘한다 싶은 배우가 있었나요.
있지만 그건 밝힐 순 없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네!’ 그런 연기자가 있어. 그런데 우리 드라마의 어린 친구들은 하나같이 잔머리 안 쓰고 열심히 하니까 기특해.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지만, 윤소이나 서지혜는 나라는 작가를 원래 염두에 두고 있던 배우들이더라고.
▼ 배우라면 누구나 선생님 작품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제가 그동안 인터뷰한 배우들은 그렇던데요.
아니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 (나한테) 결박당해서 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 피하는 경우도 많아. 다행히 지금 연기자들은 한번 내 작품을 해봤으면, 하다 출연해서 그런지 너무들 열심이야. 근데, 열심히 안 하는 배우도 있나.
▼ 있죠. 거들먹거린다는 평을 받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거들먹거리는 친구들은 나도 알거든. 소문 들어서. 그런 친구들은 내가 피하지. 하하하.
▼ 선생님은 막장 드라마도 안 쓰시지만 쪽 대본을 내놓거나 결말을 수정한 적도 없으시잖아요. 그건 작가로서 소신인가요.
소신이고 뭐고 할 거 없이 대본이 늦으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장을 줘. 그건 폐를 끼치는 거니까 대본을 미리미리 주는 거지. 그리고 결말을 왜 수정하나? 내 생각대로 쓰는 거지. 그러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어.
▼ 평소 다른 작가의 작품도 즐겨 보시나요.
챙겨서 보지는 않는데 채널 돌리다 잠깐 멈추는 일이 어쩌다가 한번 있거든. 그런 게 있으면 봐. 〈유나의 거리〉(jtbc 50부작 드라마)나 〈미생〉(tvN 20부작 드라마)이 그런 작품이지.
▼ 〈미생〉을 울면서 보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가지고. 그 작품에 직장인들이 많이 나오잖아. 주인공을 비롯해 직장인들이 그렇게 다 가여울 수가 없었어. 그게 다 살려고 그러는 거잖아. 사는 게 뭘까 싶더라고. 애달프더라. 그래서 울며불며 봤지.
▼ 선생님도 샐러리맨이었던 시절이 있었나요.
 대학교 졸업하고 잠깐. 길지는 않았어. 그때도 〈미생〉 같았겠지.
▼ 선생님 작품 중 〈청춘의 덫〉처럼 리메이크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별로 그런 거 없는데! 〈청춘의 덫〉은 예전에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다시 썼던 거고. 뭘 또다시 해. 이제 고만할 거야.
▼ 그럼 서운해하는 팬들이 많을 것 같아요.
반대로 시원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하하하.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건강 관리

▼ 건강은 좀 어떤가요(김수현 작가는 2007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특별히 나쁜 데는 없는데 쉽게 피곤해져. 나이 따라가는 거지. 수술 후유증은 없어. 주기적으로 (건강을) 체크하는데 아무 이상 없대.
▼ 작품을 쓸 땐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을 쓰시나요.
그건 그래야지. 나이가 적지 않으니까 감기 들지 않도록 스스로 단속을 해야지.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안 하고, 사람을 안 만나려고 하고. 보양식이나 건강보조식품도 안 먹지만 식사는 잘해.
▼ 운동도 하시나요. 공기 좋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사시니 산책하기 좋을 것 같아요.
산책하려면 옷 갈아입어야 하고, 갔다 오면 또 갈아입어야 하니까 다리에 힘이 빠진다 싶으면 집에서 러닝머신을 며칠 해주고, 또 며칠 거르고 그래.
▼ 새해 소망은 뭔가요.
지금 쓰는 드라마를 잘 끝내는 거.
▼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나요.
난 그런 거 없네.
▼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미쳤니? 다시 태어나게. 뭐 하러? 아이구 지겨워.
▼ 선생님은 무척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한 분야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모르지. 근데 한 가지 재주로 평생 먹고살았으니 고맙지(웃음).
▼ 선생님, 계속 건강하시길 바라요. 이렇게 가끔 통화할 수 있게요. 작품도 계속 쓰시면 좋겠어요. 은퇴,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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