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과 ‘뮷즈’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사유의 방’ 관련 굿즈.
이런 관점에서 지난 몇 년간 2030 세대의 추구미 중 눈여겨볼 만한 게 있다. 바로 옛것에 관한 관심이다. 레트로, 뉴트로, Y2K, 할매니얼, 긱시크 등의 용어가 지칭하는 바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LP판을 사 모으고, 할머니 옷장에 있을 법한 스웨터를 입고, 약과와 흑임자로 만든 디저트를 먹는 일련의 사례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어떤 추구미는 20세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이 대표적인 예다. 2021년 11월부터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전시하기 시작한 사유의 방은 2024년 8월 중순을 기준으로 176만여 명의 누적 관람객을 기록했다. 미니어처로 만든 반가사유상 또한 지금까지 약 3만5000여 개가 판매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전통문화를 힙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힙 트래디션(hip tradition)’의 일환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인 ‘뮷즈(MU:DS)’를 통해 천년 유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결과다. 뮷즈의 주된 고객층이 2030 세대임은 물론이다. 무려 전체 매출의 60%가 이들에 의해 일어났다.
불교, 또 나 빼고 재미있는 거 하네

‘뉴진스님’으로 활동 중인 개그맨 윤성호가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대에서 진행한 디제이 공연 현장.
불교계에서 기획해 대중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사례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지난 4월에 개최된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다. ‘제12회 붓다아트페어’와 함께 진행된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크게 주제전 및 기획전, 산업전 등을 포함한 전시 프로그램과 릴랙스위크, 담마토크 등 부대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주제전에서는 청년 불교 미술가들이 참여해 대중에게 불교미술을 좀 더 친숙하게 전달할 기회를 마련했고, 전시와 연계해 챗GPT를 활용한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고민상담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개그맨 윤성호의 부캐인 ‘뉴진스님’의 DJ 네트워킹 파티도 현장과 SNS 모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고통을 이겨내면” “번뇌를 이겨내면 극락왕생”이란 가사에 함께 호응하며 박람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에 힘입어 박람회 기간 10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발걸음했다.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수치로, 이 중 80%가 2030 세대다.

2024 연애 보고서 ‘나는 절로’ 방송 화면 갈무리.
불교 박람회, 소개팅 프로그램 등의 사례는 불교를 친숙하게 접할 기회가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이전에도 템플 스테이나 상담을 겸한 토크 콘서트같이 대중이 참여할 기회는 있었지만, 수련이나 고민 상담 같은 구체적인 목적이 없는 이들까지 끌어들이긴 어려웠다. 이에 비해 박람회와 소개팅은 좀 더 종교색이 덜한 행사인 만큼 선입견 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중적인 접점을 마련하고자 하는 불교계의 적극적인 태도도 큰 역할을 했다. 화엄사의 경우 여름 휴가철을 맞아 야간에 산문을 개방하는 ‘화야몽(華夜夢)’, 사찰 마당에 모기장을 치고 밤새 콘서트를 감상하는 ‘모기장 영화음악회’, 지역민과 외부인 모두를 위한 ‘요가대회’를 운영 중이다. 해가 갈수록 커지는 불교에 관한 관심과 함께 이와 같은 문화 행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불교문화를 콘텐츠화하는 청년 불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부처님오신날에 앞서 서울 연화사에선 ‘부처님 생신 카페’를 열었다. 사찰 주변의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아이돌 팬덤 문화에 착안한 이벤트를 열고, 부처님 포토 카드, 행운 부적 카드, 포토 존 등을 마련했다. 불교와 관련한 인터넷 밈도 덩달아 생성 중이다. 조계종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는 각종 행사를 홍보하거나 불교 자체에 대한 친숙함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밈 이미지와 영상이 꾸준히 업로드된다. 패션과 불교가 결합한 사례도 있다. ‘극락도 락이다’ ‘깨닫다’ 등 밈화한 불교 용어를 활용해 티셔츠를 만들거나 기후 환경문제라는 ‘업보’를 청산하고자 ‘업보세탁소’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의류를 업사이클링하는 것. 자칫 흥미 위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지만, 이 같은 변화를 통해 무엇보다 불교문화의 포용성을 널리 알렸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 특히 전통 불교의 원류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 또는 시류를 받아들이는 전유 가능성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게 무해한 존재

불교 문화를 활용해 열리는 다양한 행사 포스터.

선명상 포교 프로젝트 그룹 ‘비텐스’.

난민 구호 캠페인 참가 모습.

화엄사에서 출시한 비건 버거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힙한 불교를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탈종교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종교가 ‘힙’할 가능성은 만무해서다. 오늘날 유행하는 많은 현상이 그런 것처럼 불교에의 관심은 예상 밖의 일이었으나 어느덧 현실이 되었다. 불교가 보여주는 ‘힙’의 근원을 파헤치다 보니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추구미는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종교인으로서의 신념이 필요하겠지만, 살아가는 방식(라이프스타일)이자 그 삶의 일상적 배경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게 아닌가 싶다. 매일 먹고 입고 머무는 일상적인 요소와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게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종교의 형태가 아닐까. 그렇게 볼 때 힙한 불교의 유효기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불교 #극락도락이다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사진출처 립중앙박물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그린마타 멍콕 마플샵 홈페이지 서울 연화사 조계종 JustBe홍대선원 인스타그램 KBS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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