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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할머니와 함께 들어 올린 역기" 국대를 만든 사람들

윤채원, 임경진, 전혜빈 수습기자

2024. 08. 21

국가대표의 땀과 눈물이 빛났던 2024 파리 올림픽. 선수들의 뒤를 묵묵히 지킨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인재를 알아보는 빛나는 안목
탁구 동메달리스트 전지희와 김형석 전 국가대표팀 감독

전지희를 발탁한 김형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탁구계의 ‘미다스 손’ 이라 불린다.

전지희를 발탁한 김형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탁구계의 ‘미다스 손’ 이라 불린다.

여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 게임 스코어는 2:2. 11점을 먼저 내는 쪽이 메달을 가져간다. 8:9로 한국이 독일을 1점 차 앞서는 상황에서 매치포인트(경기의 승부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1점을 가리키는 말) 10점까지 1점을 남겨두고 있었다. 양쪽 모두 자세를 낮추고 공을 노려본다. 이때 전지희(32)가 매섭게 ‘톱스핀(공이 앞으로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기술)’을 걸었다. 조그만 공이 낮게 네트를 향해 날았다. 상대가 급히 받아내려 했지만, 공은 맥없이 네트에 맞아 탁구대로 떨어졌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동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메달을 가져온 여자 탁구 단체전 승리의 순간이다.

전지희가 동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현 화성시청 감독인 김형석(62) 씨가 큰 역할을 했다. 김 감독은 중국 청소년 대표 출신인 전지희를 귀화하게 만든 주인공. 2008년, 16세이던 전지희를 처음 보고 마음에 들어 영입을 제안했다. 왼손잡이라는 특수성과 실력, 탁구에 대한 열정을 높이 샀다.

당시엔 귀화 선수에 대해 부정적 시선이 많았다. 본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편견과 맞서야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선수의 열정과 욕심이 뛰어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 감독은 2008년부터 귀화 절차가 끝나는 3년 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전지희를 도왔다. 결의대로 단체전 동메달을 딴 후, 전지희는 김 감독에게 직접 고마움을 표했다. 김 감독은 선수가 잘한 덕분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은 해준 게 없다는 김 감독이지만, 그의 안목이 아니었다면 값진 동메달도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들어 올린 메달
역도 은메달리스트 박혜정

2022년 전국체육대회 역도 경기가 끝난 후 박혜정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는 어머니 남현희 씨.

2022년 전국체육대회 역도 경기가 끝난 후 박혜정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는 어머니 남현희 씨.

“믿었던 박혜정이 해냈습니다!”

박혜정(21)은 역도 여자 81kg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31kg, 용상 168kg, 합계 299kg을 들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본인의 한국 신기록 296kg을 넘어서며 대한민국의 마지막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항상 우수한 성적을 거둔 엘리트 역도인 박혜정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어머니 남현희 씨가 4월 작고한 것이다. 장례를 치른 뒤 박혜정은 곧바로 태국으로 날아가 여자 87kg 이상급 경기에서 2위를 차지하고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박혜정과 어머니의 사이는 각별했다. 박혜정이 역도를 시작할 때 아버지는 부상 걱정에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박혜정을 묵묵히 응원했다. 육상 원반던지기 선수였던 어머니는 박혜정에게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그러던 남 씨는 8년 전 암 선고를 받았다.

박혜정은 중학교 시절 인터뷰에서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전한 바 있다. 박혜정은 “엄마도 (아프셔서) 스트레스 받는데, 제가 운동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엄마한테 푸니까 미안하다”며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남 씨는 2022년 전국체육대회 역도 경기를 마친 박혜정 선수에게 금메달을 직접 목에 걸어주며 “우리 혜정이가 힘든 과정을 다 극복하고 이렇게 잘 컸다. 고마운 마음으로 혜정이에게 메달을 건넸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대망의 올림픽 메달을 딴 뒤 박혜정은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우리 엄마”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혜정은 “엄마가 같이 들어줬다고 생각하며 시합을 마무리 했다”며 “이제 한국으로 가 엄마한테 은메달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레전드’ 아버지에 ‘레전드’ 딸
펜싱 은메달리스트 윤지수와 롯데 무쇠 팔 윤학길

윤지수(왼쪽)와 아버지 윤학길.

윤지수(왼쪽)와 아버지 윤학길.

“아빠, 나 벌써 메달 2개 땄어!”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사브르 단체 은메달리스트 윤지수(31)가 아버지에게 전한 메시지다. 윤지수의 아버지는 한국 야구의 전설 윤학길 한국야구위원회(KBO) 재능기부위원이다. 윤 위원은 1986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1997년 은퇴할 때까지 100회 완투를 기록했다. 그중 75회의 경기에서 승리했다. 완투란 야구에서 선발 투수가 구원 투수와 교체 없이 혼자서 등판한 경기를 끝냈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올 시즌 완투승이 3차례밖에 없었다는 점은 윤 위원이 왜 전설로 불리는지를 실감케 한다.

윤 위원도 올림픽 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윤 위원은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당시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야구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대표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윤지수는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2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아버지의 소원 풀이를 했다. 윤지수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사브르 단체전 막내 선수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파리에서는 맏언니로 출전에 은메달을 땄다. 한국 대표팀의 여자 사브르 단체전 은메달은 이번이 처음이다.

”할머니 고마워!“
태권도 종주국 명예 회복한 김유진

어린시절 김유진 선수와 할머니.

어린시절 김유진 선수와 할머니.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김유진(24). 김유진의 세계 랭킹은 24위로 이번 올림픽에서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유진은 자신만만했다. 몸 상태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늘 몸 상태는 레전드”라고 대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오늘 일내겠다 싶었다”던 김유진의 예상은 기분 좋게 맞아떨어졌다. 김유진은 결승 경기에서 만난 세계 랭킹 2위 이란의 나히드 키야니찬데를 상대로 시원한 승리를 거뒀다.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승리한 1라운드. 김유진은 2라운드에서는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183cm의 큰 신장을 활용한 과감한 얼굴 공격으로 3점을 따낸 김유진은 몸통 공격과 상대의 감점을 더해 9:0으로 승리를 거뒀다. 김유진은 16년 만에 57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했다.

김유진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첫 번째로 생각난 사람은 할머니였다. 김유진은 갓난아기 때부터 할머니 손에 컸다. 김유진은 8세 때 호신술을 배우라는 할머니의 권유에 태권도를 시작했다. 태권도에 즐거움을 느끼며 도장을 다니던 김유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올해 생애 첫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무뚝뚝한 할머니의 응원이 힘이 된 덕일까. 김유진이 지옥 훈련과 혹독한 식단 조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할머니였다. 그래서 김유진은 대회 전부터 금메달을 따 할머니께 드리고 싶어 했는데 그 꿈이 이루어졌다. 금메달을 목에 건 김유진은 ”할머니! 나 드디어 금메달 땄어. 너무 고마워. 나 태권도 시켜줘서!“라고 말하며 할머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든든한 아버지이자 유일한 스승,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과 아버지 서종국 감독

경기 전 서종국 감독은 서채현에게 ‘중압감 느끼지 말고 재미있게 하라’고 조언한다.

경기 전 서종국 감독은 서채현에게 ‘중압감 느끼지 말고 재미있게 하라’고 조언한다.

15m 높이 인공 암벽 위, 머리를 질끈 묶은 선수가 한 팔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손가락 마디 하나 길이로 보인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이리저리 양팔과 양쪽 다리를 펼치면서 오르는 모습이 마치 스파이더맨 같다. 날카로운 눈매로 신중하게 다음에 잡을 홀드를 고르는 이 선수, 2024 파리 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최종 6위를 기록한 서채현(21) 이다.

서채현은 어렸을 때부터 암벽타기에 익숙했다. 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아버지인 서종국(51) 씨 덕분이다. 서 감독이 직접 클라이밍장을 운영했기에 서채현은 7세 때부터 자연스럽게 스포츠클라이밍을 익힐 수 있었다. 10년 넘게 계속 아버지에게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운 셈이다. 서채현에게 서 감독은 든든한 아버지이자 선수촌에선 믿을 만한 스포츠클라이밍 감독이다. 서 감독은 서채현을 오랜 시간 봐온 만큼 선수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짚는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서채현의 장기였던 슬래브(70° 이하 완만한 경사로 구성된 반반한 바위)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만큼 딸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도 보인다. 쿨링 조끼를 직접 입혀주기도 하고, 이번 올림픽 직후 인터뷰에선 “(긁힐 우려가 있으니) 반바지 말고 긴바지를 입으라”는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서채현도 아버지를 유일한 스승으로 칭한다. 항상 똑같은 조건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아버지와 감독 사이를 오가야 하고 소소하게 호칭에 관한 고민도 있지만 서채현이 오늘날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는 비결은 하나, 묵묵히 뒤에서 지켜주는 아버지다.



#파리올림픽 #국가대표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사진제공 대한태권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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