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고 유니버설발레단(이하 유니버설)의 쇼가 시작되면 유병헌 예술감독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음악, 춤, 조명, 의상, 메이크업까지 그가 머릿속으로 구상한 모든 것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진다.
유니버설에 속해 있는 유수한 무용수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뒤에서 묵묵히 작품을 창작하고 매만진 유 감독의 인내와 노력 덕분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찬사를 받은 유니버설의 작품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유병헌 감독은 유니버설의 최장수 예술감독이다. 그의 부모는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나고 자라 중국 지린예술학교와 베이징무용대학을 졸업했다. 그 뒤 중국 국립중앙발레단, 워싱턴 키로프발레아카데미 등에서 무용수를 가르쳤다. 2008년, 유니버설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16년째 유니버설의 안무 및 발레단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한중 수교 전인 1989년 유니버설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모교인 베이징무용대학에서 발레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맞아 학교는 무기한 휴교를 선언했다. 당시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 오게 된 그는 자연스럽게 발레 관계자들을 접했고, 그 인연으로 3년 동안 유니버설 무용수로 무대에 섰다. 그 후 비자 문제로 중국에 돌아갔다가 5년 뒤 유니버설 단장의 러브 콜을 받아 한국에 돌아왔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 발레단으로 탄생한 유니버설이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유니버설에서만 햇수로 30년 차인 그는, 유니버설은 물론 한국 발레의 성장 과정을 함께한 산증인이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하면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마련. 하지만 30년 동안 오직 발레만을 보고 달려온 그와 나눈 모든 대화는 결국 ‘발레’로 귀결됐다. 유병헌 감독의 머릿속은 오로지 발레뿐이었다.
무용수에서 예술감독으로 직업을 바꾼 계기가 있나요.
발레단의 예술감독 대부분은 무용수 출신이에요. 저 역시 유니버설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감독을 맡게 됐습니다. 제 꿈은 원래 발레단을 지도하고 훈련하는 발레 마스터였어요. 어렸을 때는 춤을 추고 성인이 되면 발레 마스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당시에는 동양 발레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동양 발레를 발전시키고 전 세계 무용수를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꿈꿨죠. 그래서 대학에서도 발레 교육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유니버설에서도 처음에는 무용수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당시 예술감독님이 저를 어시스던트로 임명하셨고, 감독님이 은퇴하신 뒤 제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됐죠.
예술감독은 어떤 일을 하나요.
작품 기획, 안무 창작 및 단원, 스태프, 계약 등 발레단 운영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예술감독은 작품, 무대에 관한 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발레는 종합 예술이에요. 무용수와 춤, 음악만으론 절대 무대에 설 수 없죠. 춤을 돋보이게 하는 의상, 메이크업, 조명과 마케팅 전략, 스케줄 관리 등이 다 갖춰져야 하나의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어요. 예술감독은 이 모든 걸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유니버설에서 수많은 작품을 선보였어요. 새로운 무대를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초등학교 때는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어요. 중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월급이 정말 적었어요. CD 3장을 사면 남는 게 없었죠. 하지만 음악이 너무 듣고 싶어 월급을 최대한 아껴서 매달 CD 1장씩 구입했어요. 음악을 들을 때는 단지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악장별로 분석하면서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 쌓아온 음악적 감각과 지식이 지금 작품을 기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음악을 많이 듣나요.
음악은 제게 삶의 일부예요. 집 한쪽 벽에는 CD가 빼곡하게 쌓여 있죠. 요즘은 세계 명작들을 다시 듣고 있는데,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음악적 요소를 찾아내는 게 정말 흥미로워요. 또 작곡가의 의도를 춤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상상하는 것도 즐겁고요.
요즘 발레 공연도 트렌드에 맞춰 변모하고 있어요. 감독님도 트렌드를 의식하는 편인가요.
충분히 의식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죠. 시대가 변하면서 관람객들의 성향과 관심도가 달라졌으니까요. 발레는 관객을 위한 예술 작품이에요. 그들이 원하는 것과 반응을 충분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한자리에서 장시간 공연 보는 걸 꺼리는 분위기예요. 특히 3시간을 훌쩍 넘는 클래식 발레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죠. 이와 같은 작품은 과감하게 편집 해서 관람 시간을 반으로 줄이기도 했어요.
반응은 어땠나요.
관람객도 무용수도 만족해하는 분위기였어요.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아져 무용수들도 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요. 또 클래식 발레에 대한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을 순삭할 정도로 너무 재미있고 우아했다고요. 어렵고 지루하다는 클래식 발레의 편견을 조금은 깬 것 같아 만족스러웠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씩은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스트레스 푸는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 같아요. 저는 일이 잘 안 풀리면 아예 안 해요(웃음). 그냥 내버려두고 뒷산에 올라갑니다. 조용히 혼자 산책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더라고요. 또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퇴근 후 지인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사실 제 주위에는 무용하는 사람이 전부예요. 만나서 “오늘 발레 이야기는 절대 금지”라고 선언한 뒤 식사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발레 이야기로 끝이 나요. 그럴 때마다 ‘발레는 내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숙명’이라는 생각을 하죠.
예술가들은 예민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친근하고 수더분한 느낌이에요.
스튜디오에서는 엄청 무섭고 예민해요(웃음). 특히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안무는 호흡이 중요한데 삐걱거릴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날카롭고 무섭게 지적하죠.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요. 물론 사석에서는 무용수들과 술도 한잔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예술감독으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요.
음악 선곡이요. 오늘 마음에 든 음악이 내일은 별로인 경우도 있고, 서양 발레를 표현할 수 있는 한국 음악을 찾는 일도 쉽지 않거든요. 저는 음악을 정해놓고 작업을 시작하는 스타일이에요.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안무를 상상한 뒤 직접 재현해내죠.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몇 개월 그 안에 빠져 지내고요. 그래서 음악 선곡에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요. ‘코리아 이모션’ 작품은 음악 선곡에만 6개월이 걸렸어요.
동서양을 결합한 작품 통해
대표작 중 2007년 초연한 ‘발레 춘향’을 빼놓을 수 없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완성도가 높았던 건 아니라고요.
당시에는 “음악과 발레 동작이 따로 논다”는 악평을 받았어요. 그 후로 수년간 ‘발레 춘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헤맸죠. 수많은 음악을 듣고 공부하다가 결국 악보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을 발견했습니다. ‘만프레드 교향곡’은 한국 리듬인 굿거리장단과 미묘하게 닮은 음악이에요. 당시에는 40년 넘게 연주조차 안 되고 있던 곡이라 악보도 없었죠. 이 곡을 ‘발레 춘향’에 접목하니 너무 환상적이더라고요. 차이콥스키가 춘향을 위해 작곡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황홀했습니다. 2007년 작품을 ‘만프레드 교향곡’에 맞춰 각색했고, 2016년 완성해 무대에 올렸어요.
무대 뒤에서 ‘발레 춘향’을 관람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발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요동쳤죠. 한편으론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어요. 무용수가 과하게 표현해서 부상당하진 않을지, 한 가지 실수로 인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진 않을지요. 사실 모든 공연을 이 같은 심정으로 보고 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본 작품도 있나요.
딱 하나 있어요. ‘더 발레리나’요. 10년 전부터 구상한 작품인데 대본, 안무, 음악 선정 등 모든 과정을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해내서 더욱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이 작품을 통해 발레는 수많은 노력과 반복으로 갈고닦은 아름다움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대 위 빛나는 한순간을 위해 매일 진행하는 수업부터 리허설, 공연 전후 이야기까지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무용수들의 일상 속 아름다움을 표현했죠. 준비도 철저하게 했고, 단원들도 잘 협조해줘서 두려움이 없었어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단원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관객 입장에서 즐기면서 관람했습니다.
‘더 발레리나’는 발레에 대사를 가미하는 새로운 시도였어요. 무용수들이 부담스러워하진 않았나요.
사실 처음에는 대사를 사전 녹음한 뒤 공연에서는 립싱크로 처리할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첫 공연 직전에 발레 마스터 역 무용수의 대사는 현장에서 소화하는 것으로 변경했죠. 발레 마스터 역을 맡은 이현준 씨와 알렉스 씨가 많이 고생했어요. 덕분에 관객들은 현장감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죠. 대사가 있고 발레단의 일상을 다룬 공연이라 연기 부분에도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더 발레리나’ 공연이 끝난 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진행했는데, 이현준 씨가 ‘호두까기 인형’은 너무 쉽다고 너스레를 떨더라고요. ‘더 발레리나’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거죠.
작품을 준비할 때 단원들에게 요구하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다독(多讀)’입니다. 책을 읽으면 스토리와 장면을 상상하고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잖아요. 이는 발레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고, 풍부한 감정 표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무용수들은 예전보다 신체 요건이 좋고 테크닉도 많이 향상됐어요. 하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책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다루고, 표현하는 방법을 키워나갔으면 좋겠어요.
유니버설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무용수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요.
지난해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강미선 무용수는 제 직속 제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 저예요(웃음). 정말 오랜 인연이죠. 사실 강미선 무용수는 러시아나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발레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발레에 적합한 신체 조건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99%의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어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늘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대견하죠. 또 꾸준히 어린이 발레단을 위한 작품도 만들고 있는데 정말 즐거워요. 안무를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아이들이 지금처럼 그저 밝고 행복하게 발레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죠.
발레에 한국 무용을 결합한 작품도 눈에 띄어요. 2021년 ‘강원, 정선아리랑 2014’에서는 국악, 성악, 클래식과 발레가 함께 어우러졌고, 국악인 권송희와 소프라노 신델라, 소리꾼 정주희가 피처링을 맡아 화제가 됐죠. 발레와 한국 무용을 결합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동양 특유의 정서와 선율, 아름다운 색채를 발레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현재 한국 발레 수준은 거의 정상급이에요. 세계 메이저 발레단에 많은 한국 무용수가 소속돼 있죠. 한국 발레의 발전과 수준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동서양 예술의 결합’이 말로는 쉽지만 작품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표현 방식부터 다르니까요.
맞아요. 음악만 놓고 봐도 서양 음악은 직설적으로 감정 표현을 한다면 한국 음악은 내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빙빙 돌려 말하는 느낌이죠. 예를 들어 발레는 웅장하고 빠른 리듬에 맞춰 불안감과 슬픔 감정을 표현해요. 한국 무용은 휘몰아치는 빠른 장단에 오히려 가만히 서 있어요. 겉은 미동이 없지만, 마음은 요동치고 있는 거죠. 이 감정을 서양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경계를 허물기 위해 상체는 우아한 포즈를 고수하되, 발은 빠르게 움직이는 안무를 창작해 선보였어요.
발레를 춤에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분야와 결합하며 확장하는 느낌이에요.
지금이 한국 발레를 수출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해요. 한국 발레는 급속도로 발전했고,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절대 뒤처지지 않거든요. 이럴 때일수록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 발레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K-팝이 전 세계에 유명해진 것처럼 한국 발레도 글로벌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거든요.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국가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니버설과 같은 민간단체의 지원도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외국과의 수교 등 국가적 행사에서도 민간단체의 공연을 선보일 기회가 많아져야 해요. 공연을 통해 한국에 훌륭한 작품이 많다는 걸 널리 알렸으면 합니다. 교육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요. 외국은 발레를 정식 교과목으로 지정한 곳이 많아요. 꼭 전공이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 친숙한 이미지를 심어줘야 합니다.
제2의 인생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요.
딱히 없어요. 설령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 해도 발레라는 울타리 속에서 무언가를 할 것 같아요. 저는 발레를 너무 사랑하고, 발레를 통해 인생과 세상을 배우고 있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진 모르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할 거예요. 발레는 제가 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해줬고, 무엇이든 진심으로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으니까요.
#유니버설스튜디오 #발레 #유병헌 #예술감독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유니버설에 속해 있는 유수한 무용수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뒤에서 묵묵히 작품을 창작하고 매만진 유 감독의 인내와 노력 덕분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찬사를 받은 유니버설의 작품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유병헌 감독은 유니버설의 최장수 예술감독이다. 그의 부모는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나고 자라 중국 지린예술학교와 베이징무용대학을 졸업했다. 그 뒤 중국 국립중앙발레단, 워싱턴 키로프발레아카데미 등에서 무용수를 가르쳤다. 2008년, 유니버설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16년째 유니버설의 안무 및 발레단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한중 수교 전인 1989년 유니버설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모교인 베이징무용대학에서 발레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를 맞아 학교는 무기한 휴교를 선언했다. 당시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 오게 된 그는 자연스럽게 발레 관계자들을 접했고, 그 인연으로 3년 동안 유니버설 무용수로 무대에 섰다. 그 후 비자 문제로 중국에 돌아갔다가 5년 뒤 유니버설 단장의 러브 콜을 받아 한국에 돌아왔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 발레단으로 탄생한 유니버설이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유니버설에서만 햇수로 30년 차인 그는, 유니버설은 물론 한국 발레의 성장 과정을 함께한 산증인이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하면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마련. 하지만 30년 동안 오직 발레만을 보고 달려온 그와 나눈 모든 대화는 결국 ‘발레’로 귀결됐다. 유병헌 감독의 머릿속은 오로지 발레뿐이었다.
2007년 초연한 ‘발레 춘향’(왼쪽)과 대사를 가미한 연출로 호평 받았던 ‘더 발레리나’의 한 장면.
발레단의 예술감독 대부분은 무용수 출신이에요. 저 역시 유니버설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감독을 맡게 됐습니다. 제 꿈은 원래 발레단을 지도하고 훈련하는 발레 마스터였어요. 어렸을 때는 춤을 추고 성인이 되면 발레 마스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당시에는 동양 발레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동양 발레를 발전시키고 전 세계 무용수를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꿈꿨죠. 그래서 대학에서도 발레 교육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유니버설에서도 처음에는 무용수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당시 예술감독님이 저를 어시스던트로 임명하셨고, 감독님이 은퇴하신 뒤 제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됐죠.
예술감독은 어떤 일을 하나요.
작품 기획, 안무 창작 및 단원, 스태프, 계약 등 발레단 운영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예술감독은 작품, 무대에 관한 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발레는 종합 예술이에요. 무용수와 춤, 음악만으론 절대 무대에 설 수 없죠. 춤을 돋보이게 하는 의상, 메이크업, 조명과 마케팅 전략, 스케줄 관리 등이 다 갖춰져야 하나의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어요. 예술감독은 이 모든 걸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유니버설에서 수많은 작품을 선보였어요. 새로운 무대를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초등학교 때는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웠어요. 중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월급이 정말 적었어요. CD 3장을 사면 남는 게 없었죠. 하지만 음악이 너무 듣고 싶어 월급을 최대한 아껴서 매달 CD 1장씩 구입했어요. 음악을 들을 때는 단지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악장별로 분석하면서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 쌓아온 음악적 감각과 지식이 지금 작품을 기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음악을 많이 듣나요.
음악은 제게 삶의 일부예요. 집 한쪽 벽에는 CD가 빼곡하게 쌓여 있죠. 요즘은 세계 명작들을 다시 듣고 있는데,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음악적 요소를 찾아내는 게 정말 흥미로워요. 또 작곡가의 의도를 춤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상상하는 것도 즐겁고요.
요즘 발레 공연도 트렌드에 맞춰 변모하고 있어요. 감독님도 트렌드를 의식하는 편인가요.
충분히 의식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죠. 시대가 변하면서 관람객들의 성향과 관심도가 달라졌으니까요. 발레는 관객을 위한 예술 작품이에요. 그들이 원하는 것과 반응을 충분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한자리에서 장시간 공연 보는 걸 꺼리는 분위기예요. 특히 3시간을 훌쩍 넘는 클래식 발레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죠. 이와 같은 작품은 과감하게 편집 해서 관람 시간을 반으로 줄이기도 했어요.
반응은 어땠나요.
관람객도 무용수도 만족해하는 분위기였어요.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아져 무용수들도 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요. 또 클래식 발레에 대한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을 순삭할 정도로 너무 재미있고 우아했다고요. 어렵고 지루하다는 클래식 발레의 편견을 조금은 깬 것 같아 만족스러웠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당연하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씩은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스트레스 푸는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 같아요. 저는 일이 잘 안 풀리면 아예 안 해요(웃음). 그냥 내버려두고 뒷산에 올라갑니다. 조용히 혼자 산책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더라고요. 또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퇴근 후 지인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사실 제 주위에는 무용하는 사람이 전부예요. 만나서 “오늘 발레 이야기는 절대 금지”라고 선언한 뒤 식사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발레 이야기로 끝이 나요. 그럴 때마다 ‘발레는 내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숙명’이라는 생각을 하죠.
예술가들은 예민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친근하고 수더분한 느낌이에요.
스튜디오에서는 엄청 무섭고 예민해요(웃음). 특히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안무는 호흡이 중요한데 삐걱거릴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날카롭고 무섭게 지적하죠.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요. 물론 사석에서는 무용수들과 술도 한잔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예술감독으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요.
음악 선곡이요. 오늘 마음에 든 음악이 내일은 별로인 경우도 있고, 서양 발레를 표현할 수 있는 한국 음악을 찾는 일도 쉽지 않거든요. 저는 음악을 정해놓고 작업을 시작하는 스타일이에요.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안무를 상상한 뒤 직접 재현해내죠.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몇 개월 그 안에 빠져 지내고요. 그래서 음악 선곡에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요. ‘코리아 이모션’ 작품은 음악 선곡에만 6개월이 걸렸어요.
동서양을 결합한 작품 통해
한국 발레의 위상과 수준 증명하고파
창작 안무를 무용수에게 직접 시현하고 있는 유병헌 감독.
당시에는 “음악과 발레 동작이 따로 논다”는 악평을 받았어요. 그 후로 수년간 ‘발레 춘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헤맸죠. 수많은 음악을 듣고 공부하다가 결국 악보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을 발견했습니다. ‘만프레드 교향곡’은 한국 리듬인 굿거리장단과 미묘하게 닮은 음악이에요. 당시에는 40년 넘게 연주조차 안 되고 있던 곡이라 악보도 없었죠. 이 곡을 ‘발레 춘향’에 접목하니 너무 환상적이더라고요. 차이콥스키가 춘향을 위해 작곡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황홀했습니다. 2007년 작품을 ‘만프레드 교향곡’에 맞춰 각색했고, 2016년 완성해 무대에 올렸어요.
무대 뒤에서 ‘발레 춘향’을 관람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발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요동쳤죠. 한편으론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어요. 무용수가 과하게 표현해서 부상당하진 않을지, 한 가지 실수로 인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진 않을지요. 사실 모든 공연을 이 같은 심정으로 보고 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본 작품도 있나요.
딱 하나 있어요. ‘더 발레리나’요. 10년 전부터 구상한 작품인데 대본, 안무, 음악 선정 등 모든 과정을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해내서 더욱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이 작품을 통해 발레는 수많은 노력과 반복으로 갈고닦은 아름다움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대 위 빛나는 한순간을 위해 매일 진행하는 수업부터 리허설, 공연 전후 이야기까지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무용수들의 일상 속 아름다움을 표현했죠. 준비도 철저하게 했고, 단원들도 잘 협조해줘서 두려움이 없었어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단원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관객 입장에서 즐기면서 관람했습니다.
‘더 발레리나’는 발레에 대사를 가미하는 새로운 시도였어요. 무용수들이 부담스러워하진 않았나요.
사실 처음에는 대사를 사전 녹음한 뒤 공연에서는 립싱크로 처리할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첫 공연 직전에 발레 마스터 역 무용수의 대사는 현장에서 소화하는 것으로 변경했죠. 발레 마스터 역을 맡은 이현준 씨와 알렉스 씨가 많이 고생했어요. 덕분에 관객들은 현장감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죠. 대사가 있고 발레단의 일상을 다룬 공연이라 연기 부분에도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더 발레리나’ 공연이 끝난 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진행했는데, 이현준 씨가 ‘호두까기 인형’은 너무 쉽다고 너스레를 떨더라고요. ‘더 발레리나’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거죠.
작품을 준비할 때 단원들에게 요구하는 메시지가 있다면요.
‘다독(多讀)’입니다. 책을 읽으면 스토리와 장면을 상상하고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잖아요. 이는 발레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고, 풍부한 감정 표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무용수들은 예전보다 신체 요건이 좋고 테크닉도 많이 향상됐어요. 하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책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다루고, 표현하는 방법을 키워나갔으면 좋겠어요.
유니버설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무용수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요.
지난해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강미선 무용수는 제 직속 제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 저예요(웃음). 정말 오랜 인연이죠. 사실 강미선 무용수는 러시아나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발레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발레에 적합한 신체 조건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99%의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어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늘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대견하죠. 또 꾸준히 어린이 발레단을 위한 작품도 만들고 있는데 정말 즐거워요. 안무를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아이들이 지금처럼 그저 밝고 행복하게 발레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죠.
발레에 한국 무용을 결합한 작품도 눈에 띄어요. 2021년 ‘강원, 정선아리랑 2014’에서는 국악, 성악, 클래식과 발레가 함께 어우러졌고, 국악인 권송희와 소프라노 신델라, 소리꾼 정주희가 피처링을 맡아 화제가 됐죠. 발레와 한국 무용을 결합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동양 특유의 정서와 선율, 아름다운 색채를 발레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현재 한국 발레 수준은 거의 정상급이에요. 세계 메이저 발레단에 많은 한국 무용수가 소속돼 있죠. 한국 발레의 발전과 수준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동서양 예술의 결합’이 말로는 쉽지만 작품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표현 방식부터 다르니까요.
맞아요. 음악만 놓고 봐도 서양 음악은 직설적으로 감정 표현을 한다면 한국 음악은 내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빙빙 돌려 말하는 느낌이죠. 예를 들어 발레는 웅장하고 빠른 리듬에 맞춰 불안감과 슬픔 감정을 표현해요. 한국 무용은 휘몰아치는 빠른 장단에 오히려 가만히 서 있어요. 겉은 미동이 없지만, 마음은 요동치고 있는 거죠. 이 감정을 서양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경계를 허물기 위해 상체는 우아한 포즈를 고수하되, 발은 빠르게 움직이는 안무를 창작해 선보였어요.
발레를 춤에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분야와 결합하며 확장하는 느낌이에요.
지금이 한국 발레를 수출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해요. 한국 발레는 급속도로 발전했고,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절대 뒤처지지 않거든요. 이럴 때일수록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 발레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K-팝이 전 세계에 유명해진 것처럼 한국 발레도 글로벌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거든요.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국가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니버설과 같은 민간단체의 지원도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외국과의 수교 등 국가적 행사에서도 민간단체의 공연을 선보일 기회가 많아져야 해요. 공연을 통해 한국에 훌륭한 작품이 많다는 걸 널리 알렸으면 합니다. 교육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요. 외국은 발레를 정식 교과목으로 지정한 곳이 많아요. 꼭 전공이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 친숙한 이미지를 심어줘야 합니다.
제2의 인생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요.
딱히 없어요. 설령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 해도 발레라는 울타리 속에서 무언가를 할 것 같아요. 저는 발레를 너무 사랑하고, 발레를 통해 인생과 세상을 배우고 있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진 모르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할 거예요. 발레는 제가 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해줬고, 무엇이든 진심으로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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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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