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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좌절의 긍정화’ 피아니스트 백혜선 “삶의 이유 들려주는 연주하고파”

문영훈 기자

2023. 02. 10

연주자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면 뜨거운 조명이 쏟아진다. 피아노 건반에서 마지막 손가락 하나를 뗄 때까지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낸다. 관객들은 연주자의 무대 위 모습만 기억하지만 한 번의 공연을 위해서는 굳은살조차 박일 새 없는 수백, 수천번의 연습이 필요하다.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책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를 통해 무대 뒤 연주자의 숙명을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1월 26일 자신의 50년 음악 인생을 담은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출간했다. [홍중식 기자]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1월 26일 자신의 50년 음악 인생을 담은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출간했다. [홍중식 기자]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 ‘최연소 서울대 교수 임용’ ‘차이콥스키 콩쿠르 한국 국적 최초 3위’. 피아니스트 백혜선(58)의 이름 앞에는 항상 최고, 최초 같은 단어가 붙는다. 백혜선은 네 살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피아노 의자에 처음 앉게 된 뒤, 중학생 시절 미국에 건너가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러셀 셔먼을 사사했다. 1989년 미국 메릴랜드 윌리엄 카펠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3위), 영국 리즈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높은 세계의 벽을 허물었다.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으로 이어지는 K-클래식의 르네상스 이전 ‘콩쿠르 여제’로 불리는 백혜선의 위대한 도전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백혜선이 1월 출간한 에세이의 제목은 어색하기만 하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그가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쓴 고백을 믿을 수 있을까. 백혜선은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내 자서전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못생긴 발’을 꺼내놓는 일”이라고 기록했다. 그가 좌절을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2월 6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백혜선을 만났다.

왜 제목을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라고 지었나요.

연주자는 스포트라이트 속에 살죠. 무대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받고요. 하지만 저는 연주가 끝나면 항상 좌절해요. 하루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요. 출판사 대표님이 백혜선은 매일 만족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이 제목을 제안해주셨어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책이 나오고 댓글로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좌절은 주저앉은 상태에서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거라고요. 좌절의 단계는 너무 많기 때문에 저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분들이 본다면 좌절도 아닌 걸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보다 더 큰 좌절을 겪으시는 분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타인과 비교하기보다 자기에게 주어진 그릇 안에서 어떻게 발돋움 해나가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어쩌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육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일도 있고요.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어제 보다 조금 나를 나아지게 만드는 게 뭘까를 생각해야 해요. 나를 조여 매는 것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거죠.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너무 바빠 감정이 메마른 채 사는 관객들에게 인생을 사는 이유를 전달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너무 바빠 감정이 메마른 채 사는 관객들에게 인생을 사는 이유를 전달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그가 겪은 좌절을 소개하고 싶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기 1년 전의 일이다. 1989년을 시작으로 유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승승장구 하던 그가 1993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임윤찬이 우승한 그 콩쿠르) 1차 본선에서 탈락했다.

“1차에서 탈락한 건 처음이었어요. 너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아예 직업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국의 한 장거리 전화 회사에 취직해 6개월간 일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스승인 변화경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의 끈질긴 권유로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한다. 표토르 차이콥스키를 기려 1958년부터 개최된 유서 깊은 콩쿠르다. 이곳에서 그는 1위 없는 3위를 차지한다. 백혜선은 마지막 결선 무대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죠. 저는 제일 마지막 순서였어요. 결선 무대에서는 협주곡 두 곡을 연달아 연주해요. 처음 제가 무대에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동양에서 온 여성 연주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도 냉소적이었고요. 하지만 한 곡을 끝내고 다시 무대 위로 나갔을 때 관객과 오케스트라의 반응은 전혀 달라져 있었어요. 두 번째 협주곡을 끝냈을 때 ‘너의 국적과 성별은 상관없이 넌 우리 중에 하나야’라고 인정해주는 듯한 사람들의 환호와 응원은 정말 잊을 수 없죠.”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은 그에게 최연소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을 안겨줬다. 1995년 당시 29살의 나이였다. 하지만 꼭 10년이 지난 2005년 그는 안정적인 소득과 명예가 보장된 교수직을 스스로 그만두고 아들딸과 함께 미국으로 향한다.

대담한 결정이었습니다.

서울대 교수로 있던 시절 너무 많은 특권이 주어지는 것 같아 겁이 났어요. 사람들로부터 너무 큰 존경을 받는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피아니스트로서 스스로 평균 이상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 받았던 평가처럼 세계 최고, 최연소 같은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가 불편했고요. 타이틀만 보고 서울대에 오는 학생들 역시 제게 큰 영감을 주지 못했어요. 정직하고 떳떳하게 연주로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교수직을 내려놓았습니다. 

이후 “생계형 피아니스트가 됐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사임을 후회하지 않으셨나요.

전혀 후회하지 않았어요. 진짜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의미로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으면 생계의 어려움을 겪을 정도가 됐으니까요. 이렇게 살아야 예술이 나온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예술인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심리적이든, 육체적이든지 간에요. 미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든지, 미국에서 교수 자리를 찾아야한다고 조언했지만 10년간은 제게 연주에 몰두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자녀 두 분 다 하버드대에 진학했는데, 교육에 신경 쓸 겨를이 있었나요.

기적이죠.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저는 연주로 바빠서 1년에 절반은 집에 없었어요. 이모의 도움을 받거나, 오빠가 연년생으로 태어난 여동생을 돌봐주는 일도 많았습니다. 다만 엄마가 늘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고,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아이들도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운 것 같아요. 독립심도 강해졌고요. 한번은 제가 변화경 선생님께 야단맞고 집에 와서 울고 있으면 아들이 “엄마 울지마, 우리도 다 그렇게 공부해”라고 위로하더라고요(웃음).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은 백혜선을 어떤 어머니로 기억하나요.

모든 걸 함께 이야기하는 친구로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우리는 세 명밖에 없으니까 서로를 믿어야 해. 네가 나쁜 행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꼭 엄마한테 와서 이야기를 해줘야 해” 같은 거요. 그래서인지 요즘도 연애 상담을 저한테 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제가 막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섭섭해 하죠(웃음).

위대한 스승과 제자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틀리지 않고 100번을 쳐보는 등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하시나요.

매일 하죠. 오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걸렸다고 하고 집에서 쉬는 걸 혼자 상상해봤어요(웃음). 이 힘든 걸 왜 내가 계속 하고 있지,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러셀 셔먼 선생님과 변화경 선생님 영향입니다. 러셀 셔먼 선생님은 처음 뵀을 때 지금 제 나이 즈음이셨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하셨거든요. 그 루틴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변화경 선생님은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세요.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는 거죠. 가끔은 저도 선생님께 투정을 부려요. 그런 이야기를 40년간 들었고, 이제 저를 놓아달라고 하죠. 그러면 제게 “너는 아직도 나아질 게 많다”고 이야기해주세요.

아직도 변화경 선생님이 혼내신다고요.

서럽죠(웃음). 이제 저는 50대고, 제자가 있는 선생님이 됐는데도 항상 가혹하게 말하세요. 그래도 동료들은 제가 행운아래요.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연주에 대한 지적을 하기는 어렵거든요. 선생님이 제 연주에 대한 평가를 해주시는 경험은 제가 제 모습을 녹화된 비디오로 보고 고치는 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그만큼 변 선생님이 명교수이시고, 위대하신 분인 거죠. 아마 저를 다그칠수록 더 성장한다는 걸 아시는 것 같아요. 저도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봤지만 오히려 더 잘하는 학생일수록 더 야단치기 마련이거든요.

변화경 선생님께 이번에 쓴 책을 전달하셨나요. 

변화경 선생님은 글을 정말 잘 쓰세요. 그 분이 제게 건넨 카드만 봐도 펑펑 울게 돼요. 한 번은 변화경 선생님께 제안한 적이 있어요. 러셀 셔먼 선생님이 이제 아흔이 넘으셨으니 그분과의 기록을 전기로 남겨야하지 않겠냐고요. 그랬는데 “미쳤니?”라며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책도 몰래 냈죠. 최근에서야 제가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을 전화로 고백했어요. “네가 무슨 글을 쓸 줄 안다고 책을 내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면 혼날 일만 남았어요(웃음).

전진하는 음악인

1월 30일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책 출간 기자 간담회에 앞서 연주하는 모습. [마스트미디어 제공]

1월 30일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책 출간 기자 간담회에 앞서 연주하는 모습. [마스트미디어 제공]

K-클래식 열풍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임윤찬 씨나 조성진 씨, 손열음 씨와 같은 젊은 연주자를 보면 너무 자랑스럽죠. 지금도 많이 좋아졌지만 재능이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관심도 계속 필요하고요. 저희 세대의 책임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세상에서 관객들에게 생음악을 듣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공연을 계속 하시는 건가요.

영상의 시대일수록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상으로 보는 건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강하잖아요. 소설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 상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요. 우리의 감정이 풍부해지고 생각을 할 수 있죠. 저도 항상 소장하고 다니는 러셀 셔먼 선생님의 책이나, 이어령 선생님, 푸시킨이 쓴 책을 읽으면 늘 새로움을 느끼거든요. 제게 항상 뭔가를 전달해주거든요. 쉽게 검색하고 정보를 찾을 때 굉장한 죄책감을 느껴요. 깊이 있는 책을 봐야하는데 말이죠.

2009년 한 인터뷰에서 “겁 없이 달려온 20대, 시행착오를 겪은 30대, 원숙한 시각으로 음악과 세상을 바라보는 40대였다”고 회상했습니다. 백혜선의 50대는 어땠나요.

사실 40대 때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이 없었고,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거기에 적응하면서 살았어요. 50대에 접어들며 여유가 좀 생겼죠. 이제는 끝을 바라보게 됐어요. 어떻게 인생을 마감하는 게 좋을지를 생각해보죠. 그래서 지금이 나를 개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기에 헛되이 보낼 수 없어요.

앞으로 어떤 연주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나요.

앞으로는 가지치기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에너지가 넘친다고 생각하지만 30대나 40대의 집중력과는 다르니까요. 그래서 연습을 하더라도 최선의 힘을 쏟아야 해요. 그래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요. 너무 바쁘게 살다보면 감정이 메말라 있을 때가 많잖아요. 음악회에서는 “인간이라는 건 이런 것 때문에 사는구나”를 상기시킬 수 있는, 그런 연주를 꼭 하고 싶어요.

“항상 앞으로 전진하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

1994년 백혜선은 음악동아 대상을 받으며 이와 같이 말했다. 이후 29년이 흘렀지만 그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백혜선 #피아니스트 #나는좌절의스페셜리스트입니다 #여성동아

사진 홍중식 기자
사진제공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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