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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사랑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오홍석 기자

2023. 02. 17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애나 마친 지음, 제효영 옮김, 어크로스, 1만8800원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의 명장면은 무수히 많지만, 개인적으로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이 미아를 찾아 나서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배우가 되고자 했으나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친 미아는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때 유명 감독이 세바스찬을 통해 미아에게 오디션을 제안한다. 그는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미아를 찾아 나선다. 미아의 집이 네바다주의 어느 도서관 앞에 있다는 단서만 가지고. 세바스찬은 도서관 앞에 있는 집마다 멈춰 서서 무작정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미아를 찾는다. 결국 미아와 마주한 세바스찬은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그녀를 설득해 이튿날 오디션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미아는 오디션에 합격하고 훗날 유명한 배우가 된다.

실제 미국 네바다주의 면적은 한국의 약 2.8배. 도서관 수는 공립과 사설을 합쳐 총 192개에 이른다. 사랑하는 이의 이뤄질지 모르는 꿈을 위해 실낱같은 가능성에 도전하는 무모함. 영화는 사람을 맹목적으로 대담하게 만드는 사랑의 성격을 잘 표현해냈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우리가 종종 목격하는 ‘사랑에 눈이 먼’ 사람들의 행동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과학적 관점에서 얘기해준다.

책에는 피실험자에게 지인의 사진을 보여준 뒤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로 뇌를 스캔하는 연구가 나온다. 피실험자는 성별에 상관없이 연인의 사진을 보자 신뢰, 공감 등 사회적 행동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됐다. 반대로 두려움을 유발하고 위기를 탐지하는 편도체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내측 전전두피질은 비활성화됐다. 신기하게도 친구 사진을 보여줄 때는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면 뇌에서는 호르몬 칵테일 파티가 시작된다. 연애 초기에는 두려움에 둔감해지는 옥시토신과 쾌감을 주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후에는 행복감, 친밀감, 희열을 느끼게 하는 베타 엔도르핀이 나온다. 뇌는 베타 엔도르핀에 곧잘 중독되는데, 이는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로 표상된다. 저자에 따르면 연인과의 실연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이유는 베타 엔도르핀이 갑작스럽게 감소하며 생겨나는 금단현상이다.



저자는 부성애 연구의 권위자답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랑을 다룬다. 연인 간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동성애와 무성애, 심지어 신과의 사랑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소통을 통한 협력은 탁월한 신체 능력이 없는 인간이 혹독한 자연에서 적자(敵者)로 생존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능력이다. 우리는 이러한 협력하고자하는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저자는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사랑은 생존에 유리한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과학이 설명하는 사랑은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한다. 마치 인간의 삶이 유전자를 대물림하기 위해 태어나 임무를 완수한 뒤 죽어가는 여타 종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사유하고 고뇌한다. 사랑으로 인한 희로애락이 채 2kg도 되지 않는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알지언정 우리는 내일도 사랑하며 기뻐하고 슬퍼할 것이다. 이처럼 살아가며 마주하는 일들에 끊임없이 의미 부여를 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과학이사랑에대해말해줄수있는모든것 #애나마친 #진화심리학 #여성동아

사진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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