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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남들 다 타서 탔는데, 전동킥보드 사고로 수술비만 1000만원”

이경은 기자

2022. 08. 22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전동킥보드는 한 줄기 빛이다. 걷기 애매한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면서 시원한 바람도 느낄 수 있기 때문. 특히 등하교 시 교복 차림으로 전동킥보드를 타는 학생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전동킥보드는 원동기 면허가 있어야만 운전 가능하다. 무면허 사고 시 건강보험 적용도 안 돼 피해가 막심하다.

7월 27일 전동킥보드(킥보드)를 타던 청소년 2명이 달려오던 승용차와 부딪혀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고 도로에 떨어지는 블랙박스 촬영 영상이 온라인에 퍼졌다. 두 학생은 안전모 등 보호 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하나의 킥보드를 탄 상황이었다. 킥보드 앞에 탑승한 A(18) 군은 무면허 운전자였다.

거리에 공유 킥보드가 부쩍 많아지면서 청소년이 무면허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면허 사고 시 발생하는 신체·재산상 피해가 커 정부 차원의 안전사고 예방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킥보드 사고 20대 이하 비율 36%

공유 킥보드 사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전동킥보드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 공유 킥보드 스타트업 ‘라임(Lime)’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2019년 12월 국내 킥보드 운영 대수는 1만7130대였다. 지난해 3월 13개 공유 킥보드 업체가 운영하는 킥보드 대수는 9만1028대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걷기 애매한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킥보드 이용자는 늘고 있다. PM(Personal Mobility) 산업 역시 성장세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PM 시장은 연평균 20% 이상 커지고 있다.

도로 위 킥보드가 늘어나며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는 오명도 얻었다. 교통법규에 익숙하지 않은 무면허 이용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킥보드를 이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인근에서 만난 한 주차 관리 요원은 “학생들이 등원하는 오후 5시쯤, 학원 건물에 주차된 킥보드를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통원 버스 기사도 “등·하원 시간대에는 킥보드에 2명이 한꺼번에 타고 인도를 달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킥보드 이용은 결국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도로교통공단이 제공한 PM 교통사고 가해 운전자 연령층별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1년 20세 이하 사고 건수는 628건(전체 사고의 36.2%)으로 연령층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 2020년 209건에 비해 3배 이상 늘기도 했다.



무면허 사고 나면 건강보험 적용 안 돼

특히 무면허 운전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큰 재산상 피해를 입을 수 있다. 7월 친구와 함께 킥보드를 타다 턱에 걸려 넘어진 양 모(16) 군은 왼발을 잘못 내딛어 양측 복사뼈가 골절되고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수술이 끝난 뒤 입원 3일 차 병원 원무과로부터 고지받은 금액은 약 500만원. 양 씨의 어머니인 한 모(47) 씨는 “전치 2주 판정을 받아 총치료비가 1000만원 이상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입원 중에 하는 필수 검진과 재활치료, 추후 진행될 핀 제거수술도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무면허 운전은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에서 급여 제한 사유로 규정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기 때문. 일부 킥보드 업체가 제공하는 운전자 보호 성격의 보험 역시 마찬가지다. 한 씨는 “킥보드를 타는 학생들을 길에서 흔히 봤기에 면허가 필수사항인지도 몰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면허 인증 절차 뺀 업체가 업계 2위 돼”

일부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면허 없이도 킥보드 대여가 가능하다.

일부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면허 없이도 킥보드 대여가 가능하다.

실제로 한 씨처럼 킥보드 이용 시 면허가 필요하다는 사항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동안 킥보드 이용 관련 법안이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인데, 국내 처음 킥보드가 도입된 2019년 당시 이를 이용하려면 원동기 면허가 필요했다. 하지만 2020년 5월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만 13세 이상부터 원동기 면허 없이도 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후 사고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지난해 5월 13일부터 ‘만 16세 이상 원동기 장치 자전거 면허(또는 그 이상) 취득자’로 탑승 자격이 높아졌다. 오락가락하는 제도로 도로 위 혼란이 커진 것이다.

업체별 면허 인증 방식이 상이한 것도 문제다. 공유 킥보드 사업은 자유업에 속해 면허 인증 규정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공유 킥보드 업체들은 최근 자체 면허 인증 제도를 슬그머니 풀었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결과 ‘스윙’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면허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킥보드 대여가 가능했고, ‘지쿠터’는 ‘다음에 입력하기’를 누르면 면허 인증을 미룰 수 있었다.

지쿠터 운영 업체 지바이크의 정구성 전략이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으려 2주 전 면허 인증 절차를 변경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 이사는 “지난해 규제가 시행된 후 처음엔 퍼스널모빌리티산업협의회(SPMA)에 가입된 모든 업체가 대여 전 면허 인증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A 업체만 협의회에서 탈퇴해 면허 인증 절차를 없앴다”며 “규제 이후 대부분 업체 매출이 급감했지만 무면허 청소년 이용이 쉬워진 A 업체는 매출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면허 인증을 지키는 공유 킥보드 업체들만 불리하다는 게 정 이사의 주장이다.

면허 인증 절차를 강제하는 법안은 3년째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11월 운전자 자격 확인 시스템 구축 의무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장치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원 구성 지연 등의 이유로 법안이 밀렸다”고 말했다. 여야 힘겨루기 속에 안전 관련 법안은 계속 뒤로 처지고 있는 셈이다.

‘PM 면허’ ‘허가제’ 등 새 규제 필요

8월 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인근에 공유 킥보드 여러 대가 줄지어 주차돼 있다.

8월 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인근에 공유 킥보드 여러 대가 줄지어 주차돼 있다.

업체 측은 “원동기 면허 대신 별도의 PM 면허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필수 한국PM협회장은 “오토바이와 킥보드는 차체와 운전 감각 모두 다른데 원동기 면허로 묶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정구성 전략이사는 “킥보드 운전이 비교적 쉽지만 원동기나 승합차와 달라 킥보드용 교통법규를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특히 청소년 안전을 위해서라도 전용 면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킥보드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면 “킥보드 사업을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는 누구나 등록·신고 절차만 거치면 공유 킥보드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자에게 킥보드나 이용자 관리 관련 의무를 강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노르웨이 오슬로 등에서는 국가가 운영 회사와 킥보드를 관리하는 ‘허가제 체계(permit system)’를 도입해 시와 지자체에 제한 권한을 부여했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도 공유 킥보드 사업에 허가제를 적용해 정부 기관이 적극적으로 청소년 킥보드 이용을 관리해야 한다”며 “특히 자전거도로가 잘 구축되지 않은 한국 교통 상황 특성상 사고 가능성은 더 높다”고 말했다.

정경옥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현 상황을 당장 개선하려면 부모와 청소년 자녀를 대상으로 한 교통 교육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사고 사례 중 자녀에게 킥보드를 선물로 준 경우도 봤다”며 “정부 차원의 규제와 별도로 이용자가 경각심을 갖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동킥보드 #무면허청소년 #여성동아

사진 이경은 기자 뉴스1 
사진출처 애플리케이션캡쳐 일러스트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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