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늦었다. 초행길에 교통체증을 감안하지 않고 길을 나선 탓이다. 황급히 부산 영도 부두 변에 자리 잡은 모모스커피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어떤 여성이 기자를 불러 세웠다. 자세히 보니 그였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전주연(35). 상상보다 작은 체구의 전 바리스타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전주연 바리스타는 칠전팔기를 넘어 아홉 번의 도전 끝에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1년 말에는 ‘커피의 섬’으로 떠오른 부산 영도에 매장을 내고 부산의 커피 산업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108쪽 참조). 5월 6일 그와 모모스커피 2층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WBC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 커피에 대한 그의 철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 바리스타가 2월 26일 중미 커피 생산지로 떠났다 귀국한 지 막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피부는 많이 그을려 있었다. 커피 산지에 다녀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커피 산지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디 어디를 다녀온 건가요.
파나마,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에 갔다 왔어요. 2, 3월이 제가 다녀온 중미 지역 커피 수확 철이거든요. 7월에서 9월은 남미의 수확 철이라 그때는 콜롬비아,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를 돌아볼 예정이에요.
1년 중 4개월을 산지에 있는 거네요. 직접 가서 원두 납품을 계약하고 오는 건가요.
원두 계약은 한국에서 이미 마친 경우가 많아요. 산지에 가는 이유는 비즈니스적인 측면보다 생산자와의 관계를 다지기 위해서예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비슷해요. 가서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밥도 먹고 하면서 신뢰를 쌓는 거죠. 아무래도 농장주들은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더 좋은 품질의 원두를 주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만의 산지 방문이라 이번 여행은 특별히 더 의미가 있었어요. 산지에서 농장주들과 힘든 시간을 보낸 감정을 공유하고 왔죠.
언제부터 산지를 방문했나요. 농부들과 처음에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지 궁금해요. 그냥 농장에 찾아가면 만나주나요.
보통 찾아가기 전에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죠. 모모스커피는 2010년부터 산지와 직접 거래해왔는데 당시 회사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고생을 했어요(웃음). 이제는 오래 알고 지내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세요.
대부분의 카페가 수입된 생두를 사서 로스팅하거나 아예 로스팅된 원두를 납품받잖아요. 좋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산지를 방문해야 할까요.
저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 산지를 이렇게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어요.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해요. 산지에서 원두를 구매하는 역할은 주로 ‘그린빈 바이어’가 하죠. 바리스타는 최종 단계에서 커피를 제조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하고요. 바리스타들이 자신이 만들 커피에 대해 더 잘 알아보기 위해 산지를 방문하면 좋겠지만 꼭 산지를 방문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산지 농장들도 자신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에게 원두를 납품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낄 것 같아요.
절 보는 시선이 달라지긴 했죠(웃음). 월드 챔피언이 되기 전, 농부들에게 제가 대회에 나가서 우승할 거라고 말하면 응원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어요. 실제로 대회 우승하고 갔더니 콜롬비아, 에콰도르에서는 현지 언론이 취재 요청을 해오더라고요. 주민들이 카퍼레이드를 열어주기도 했어요.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모모스커피는 ‘콜롬비아 라팔마 엘투칸 레전더리 게이샤’라는 커피를 판매 중이었다. 전 바리스타에 따르면 이 원두는 1년에 8박스(1박스에 30kg)만 생산되는 희귀한 품종이다. 아시아는 대만과 한국에 2박스만 분배됐다. 2019년 대회에 출전할 당시도 같은 농장에서 원두를 받았지만 이 원두 대신 한 등급 낮은 원두를 가지고 나갔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이 커피를 맛볼 기회가 생긴 건 어쩌면 모모스커피가 오랜 시간 농장과 쌓아온 유대 관계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된 전 바리스타의 명성이 만들어낸 합작품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전 바리스타가 월드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우승한 WBC는 바리스타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데, 그 출전권은 국내 대회인 ‘한국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KNBC)’ 우승자에게만 주어진다. 사실 그는 2009년부터 WBC의 출전권을 얻기 위해 KNBC의 문을 두드렸지만 6위까지 오르는 파이널리스트 입상에 연달아 낙방했다. 실패 원인을 분석하던 그는 KNBC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에 이른다. 그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심사위원도 선수를 평가할 때 긴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그동안 심사위원들과 교감하고 설득하기보단 정보를 뱉어내기에만 급급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절치부심 끝에 다시 출전한 2018년, 그는 KNBC 챔피언에 등극한 뒤 WBC에 참가한다.
그러나 전 바리스타는 첫 국제 대회에서 탬핑(분쇄된 커피를 다지는 행위)을 하지 않는 기초적인 실수를 저질러 입상에 실패한다. 20년 대회 역사상 탬핑을 하지 않은 선수는 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너무 긴장한 탓에 저지른 실수였다”며 “대회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같이 간 지인들이 말해줄 때까지 실수한 줄도 몰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너무 속상해 20분 동안 무대 뒤에서 혼자 엉엉 울었다”며 “울다가 나를 보러 와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나 마음을 가다듬고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바리스타 대회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저는 원래 꿈이 유치원 교사였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어요. 제가 커피가 좋아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았어요. 가족도 반대했죠. 그래서 바리스타가 하나의 전문성이 있는 직업이란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2009년 모모스커피 대표님이 비행기표를 할부로 끊어서 미국에서 열리는 스페셜티커피협회(SCA) 박람회에 다녀오셨어요. 작은 회사다 보니 나름 큰 투자였죠. 귀국한 이튿날 대표님이 프레젠테이션을 하셨고 그때 WBC의 존재를 처음 알았어요.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무대에 선 바리스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죠. 세계 무대에 서면 이 직업이 존중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도전하게 됐어요.
거듭된 실패에도 또다시 도전해서 결국 챔피언이 됐어요. 실패한 당시에는 좌절감이 컸을 것 같은데요.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던가요.
돌이켜보면 2018년 실수를 저지른 게 차라리 잘된 일이었어요. 애초에 제 목적은 세계 무대에 서는 것이었기에 그때 대회에서 적절한 성적을 거뒀다면 이듬해에 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두렵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오래 기다린 세계 대회에서 긴장한 탓에 즐기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도전하게 됐죠.
바리스타로서 거둘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거머쥐었잖아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제 목표는 제가 하고 있는 바리스타라는 업(業)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었어요. WBC 우승은 제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뿐 결코 종착지는 아니죠. 운이 좋아 월드 챔피언이 됐는데 타이틀 덕분인지 제 이야기에 사람들이 좀 더 귀 기울여주시는 것 같아요. 의사나 변호사는 건강이나 법적 문제가 있을 때만 찾지만 바리스타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여느 직업 못지않게 사람들의 일상에 소중한 사람이란 사실을 널리 인정받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카페 운영자들 사이에서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은 격언처럼 통용된다. 더군다나 공간 중심의 카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한국에서는 커피의 품질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가의 스페셜티 커피를 고객에게 소개하고 설득해 지갑을 열게 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모모스커피는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며 한국의 손꼽히는 카페가 됐다. 그 중심에 전 바리스타가 있다. 그는 도대체 무엇으로 소비자를 설득한 것일까.
전 바리스타가 지향하는 커피는 무엇인가요.
커피는 기호식품이에요. 본인이 맛있으면 좋은 커피인 거죠. 제가 지향하는 커피는 다양한 가치가 담겨 있는 것이에요. 한 잔을 마셨을 때 그 가치가 소비자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커피가 이상적인 거죠. 저가 커피가 커피 인구를 유입시킨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커피가 단순히 카페인 한 잔으로만 인식되면 이 업(業)의 지속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봐요.
그렇다면 스페셜티 커피의 차별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 스페셜티 커피는 지속 가능한 밸류 체인을 중시해요. 커피 생산국들이 대부분 식민지일 당시 재배를 시작했잖아요. 그렇다 보니 에너지를 쏟은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성비’라는 단어도 생산국과 소비국의 불균형을 유지시키죠. 소비자가 산지의 노고에 걸맞은 가치를 지불해야 커피 밸류 체인이 이상적으로 순환한다고 생각해요. 밸류 체인이 지속되어야 그 안에 속해 있는 바리스타라는 직업도 유지되겠죠. 그래서 소비자에게 커피의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 바리스타의 역할이 중요해요.
모모스커피는 처음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했나요.
저희가 2007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한국에 스페셜티 커피는 굉장히 생소했어요. 저희도 대표님이 2009년 SCA 박람회를 관람하고 원두를 가져오셨을 때 처음 경험했죠. 개인적으로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원래 모모스커피는 ‘프랜차이즈 매장 100개를 만들자!’는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때 목표를 바꾸게 됐죠. 잘할 수 있는 것, 즉 한 우물을 깊게 파기로 했죠.
전부터 궁금했는데 유명한 바리스타 중에는 왜 여성이 적을까요.
사실 전에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여자라서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해왔어요.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말을 아끼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돌아보면 대회 파이널리스트에 여자는 늘 저뿐인 경우가 많았어요.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뭔가요.
오랜 시간 같이 일해온 직원들이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서 결혼을 앞두고 있기도 해요. 요즘 모모스커피는 어떻게 이들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거든요. 아직 뚜렷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어서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요.
다양한 이유가 있죠. 서비스 직종이다 보니 주중, 주말 구분이 없고 체력 소모도 많아요. 또 임신했는데 매일 테이스팅을 위해 섭취하는 카페인은 부담이 되죠. 체력 부족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쳐도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이에요. 어떤 분야든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업계 최전선은 짧은 기간에 빨리 변하니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 최신 정보를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저만 봐도 산지에서 돌아온 지 2주가 지났는데 두 달간의 공백이 메꿔지지 않아요. 아직도 적응 중인 거죠. 하물며 결혼이나 임신으로 공백이 생기면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쉽지 않죠. (잠시 뜸을 들인 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명확하니까요.
최근 커피계 내부에는 가향 커피(infused coffee)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가향 커피란 원두에 인위적으로 향을 입혀 일반적으로 커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나몬 향과 과일 향 등을 첨가한 것을 말한다. 커피계 내부에서는 현재 이 새로운 가공 방법에 대한 찬반 논의가 뜨겁다. 그간 스페셜티 커피는 떼루아(기후, 고도, 토양 등을 포함한 재배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원두들의 개성이 차별화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인위적인 가공 방법은 떼루아에 의한 차별화를 희석시킨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전주연 바리스타는 자신이 선호하는 주전자도 상호 노출을 우려해 공식적인 석상에 가져가지 않을 만큼 중립을 중요시한다. WBC 챔피언의 무게감을 인식해서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커피 업계의 화두인 가향 커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겠습니다만, 가향 커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웃음).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향 커피가 한국 스페셜티 커피 업계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가향 커피는 맛이 굉장히 직관적이잖아요. 컵 노트에 포도라고 적혀 있으면 정말 커피에서 명확하게 포도 맛이 나요. 사실 이전 가공 방식으로는 미묘한 뉘앙스의 맛을 일반 소비자들은 많이 느끼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가향 커피가 소비자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셜티 커피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에게는 비싸게 여겨질 수 있는데, 가향 커피가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스페셜티 커피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전반적인 미식의 단계가 올라가는 일은 긍정적인 거죠.
그럼 이런 가공 트렌드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보시나요.
네, 저는 이런 가공 방법도 떼루아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또 농부의 입장에서도 이런 가공방법을 고안하게 된 데에는 기후변화라는 불가항력적인 변수가 있었어요. 제가 아는 한 농장은 5년 전만 해도 굉장히 질 좋은 커피를 생산해왔는데 기후변화로 원두의 맛이 변해 제값을 받지 못하더라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부들도 기술만 있다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거죠. 다만 가공 방식의 발전은 필요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 가향 커피는 맛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전 바리스타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 산지는 어디인가요.
어려운 선택이지만 죽을 때까지 한 산지의 커피만 마셔야 한다면 저는 에티오피아 원두를 고르겠어요. 산지 내 종자가 굉장히 다양하고 아직 명명되지 않은 미지의 원두들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평생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주연 #월드바리스타챔피언 #모모스커피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기자
전주연 바리스타는 칠전팔기를 넘어 아홉 번의 도전 끝에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1년 말에는 ‘커피의 섬’으로 떠오른 부산 영도에 매장을 내고 부산의 커피 산업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108쪽 참조). 5월 6일 그와 모모스커피 2층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WBC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 커피에 대한 그의 철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 바리스타가 2월 26일 중미 커피 생산지로 떠났다 귀국한 지 막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피부는 많이 그을려 있었다. 커피 산지에 다녀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커피 산지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디 어디를 다녀온 건가요.
파나마,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에 갔다 왔어요. 2, 3월이 제가 다녀온 중미 지역 커피 수확 철이거든요. 7월에서 9월은 남미의 수확 철이라 그때는 콜롬비아,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를 돌아볼 예정이에요.
1년 중 4개월을 산지에 있는 거네요. 직접 가서 원두 납품을 계약하고 오는 건가요.
원두 계약은 한국에서 이미 마친 경우가 많아요. 산지에 가는 이유는 비즈니스적인 측면보다 생산자와의 관계를 다지기 위해서예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비슷해요. 가서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밥도 먹고 하면서 신뢰를 쌓는 거죠. 아무래도 농장주들은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더 좋은 품질의 원두를 주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만의 산지 방문이라 이번 여행은 특별히 더 의미가 있었어요. 산지에서 농장주들과 힘든 시간을 보낸 감정을 공유하고 왔죠.
언제부터 산지를 방문했나요. 농부들과 처음에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지 궁금해요. 그냥 농장에 찾아가면 만나주나요.
보통 찾아가기 전에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죠. 모모스커피는 2010년부터 산지와 직접 거래해왔는데 당시 회사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고생을 했어요(웃음). 이제는 오래 알고 지내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세요.
대부분의 카페가 수입된 생두를 사서 로스팅하거나 아예 로스팅된 원두를 납품받잖아요. 좋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산지를 방문해야 할까요.
저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 산지를 이렇게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어요.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해요. 산지에서 원두를 구매하는 역할은 주로 ‘그린빈 바이어’가 하죠. 바리스타는 최종 단계에서 커피를 제조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하고요. 바리스타들이 자신이 만들 커피에 대해 더 잘 알아보기 위해 산지를 방문하면 좋겠지만 꼭 산지를 방문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산지 농장들도 자신이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에게 원두를 납품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낄 것 같아요.
절 보는 시선이 달라지긴 했죠(웃음). 월드 챔피언이 되기 전, 농부들에게 제가 대회에 나가서 우승할 거라고 말하면 응원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어요. 실제로 대회 우승하고 갔더니 콜롬비아, 에콰도르에서는 현지 언론이 취재 요청을 해오더라고요. 주민들이 카퍼레이드를 열어주기도 했어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 되기까지
전주연 바리스타가 전 세계 소수에게만 판매된다는 원두 ‘콜롬비아 라팔마 엘투칸 레전더리 게이샤’를 내리고 있다.
전 바리스타가 월드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우승한 WBC는 바리스타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데, 그 출전권은 국내 대회인 ‘한국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KNBC)’ 우승자에게만 주어진다. 사실 그는 2009년부터 WBC의 출전권을 얻기 위해 KNBC의 문을 두드렸지만 6위까지 오르는 파이널리스트 입상에 연달아 낙방했다. 실패 원인을 분석하던 그는 KNBC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에 이른다. 그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심사위원도 선수를 평가할 때 긴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그동안 심사위원들과 교감하고 설득하기보단 정보를 뱉어내기에만 급급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밝혔다. 절치부심 끝에 다시 출전한 2018년, 그는 KNBC 챔피언에 등극한 뒤 WBC에 참가한다.
그러나 전 바리스타는 첫 국제 대회에서 탬핑(분쇄된 커피를 다지는 행위)을 하지 않는 기초적인 실수를 저질러 입상에 실패한다. 20년 대회 역사상 탬핑을 하지 않은 선수는 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너무 긴장한 탓에 저지른 실수였다”며 “대회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같이 간 지인들이 말해줄 때까지 실수한 줄도 몰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너무 속상해 20분 동안 무대 뒤에서 혼자 엉엉 울었다”며 “울다가 나를 보러 와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나 마음을 가다듬고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바리스타 대회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저는 원래 꿈이 유치원 교사였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어요. 제가 커피가 좋아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았어요. 가족도 반대했죠. 그래서 바리스타가 하나의 전문성이 있는 직업이란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2009년 모모스커피 대표님이 비행기표를 할부로 끊어서 미국에서 열리는 스페셜티커피협회(SCA) 박람회에 다녀오셨어요. 작은 회사다 보니 나름 큰 투자였죠. 귀국한 이튿날 대표님이 프레젠테이션을 하셨고 그때 WBC의 존재를 처음 알았어요.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무대에 선 바리스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죠. 세계 무대에 서면 이 직업이 존중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도전하게 됐어요.
거듭된 실패에도 또다시 도전해서 결국 챔피언이 됐어요. 실패한 당시에는 좌절감이 컸을 것 같은데요.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던가요.
돌이켜보면 2018년 실수를 저지른 게 차라리 잘된 일이었어요. 애초에 제 목적은 세계 무대에 서는 것이었기에 그때 대회에서 적절한 성적을 거뒀다면 이듬해에 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두렵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오래 기다린 세계 대회에서 긴장한 탓에 즐기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다시 도전하게 됐죠.
바리스타로서 거둘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거머쥐었잖아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제 목표는 제가 하고 있는 바리스타라는 업(業)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었어요. WBC 우승은 제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뿐 결코 종착지는 아니죠. 운이 좋아 월드 챔피언이 됐는데 타이틀 덕분인지 제 이야기에 사람들이 좀 더 귀 기울여주시는 것 같아요. 의사나 변호사는 건강이나 법적 문제가 있을 때만 찾지만 바리스타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여느 직업 못지않게 사람들의 일상에 소중한 사람이란 사실을 널리 인정받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한국에 유명 여성 바리스타가 적은 이유
전주연 바리스타는 “직원들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 바리스타가 지향하는 커피는 무엇인가요.
커피는 기호식품이에요. 본인이 맛있으면 좋은 커피인 거죠. 제가 지향하는 커피는 다양한 가치가 담겨 있는 것이에요. 한 잔을 마셨을 때 그 가치가 소비자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커피가 이상적인 거죠. 저가 커피가 커피 인구를 유입시킨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커피가 단순히 카페인 한 잔으로만 인식되면 이 업(業)의 지속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봐요.
그렇다면 스페셜티 커피의 차별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 스페셜티 커피는 지속 가능한 밸류 체인을 중시해요. 커피 생산국들이 대부분 식민지일 당시 재배를 시작했잖아요. 그렇다 보니 에너지를 쏟은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성비’라는 단어도 생산국과 소비국의 불균형을 유지시키죠. 소비자가 산지의 노고에 걸맞은 가치를 지불해야 커피 밸류 체인이 이상적으로 순환한다고 생각해요. 밸류 체인이 지속되어야 그 안에 속해 있는 바리스타라는 직업도 유지되겠죠. 그래서 소비자에게 커피의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 바리스타의 역할이 중요해요.
모모스커피는 처음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했나요.
저희가 2007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한국에 스페셜티 커피는 굉장히 생소했어요. 저희도 대표님이 2009년 SCA 박람회를 관람하고 원두를 가져오셨을 때 처음 경험했죠. 개인적으로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원래 모모스커피는 ‘프랜차이즈 매장 100개를 만들자!’는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때 목표를 바꾸게 됐죠. 잘할 수 있는 것, 즉 한 우물을 깊게 파기로 했죠.
전부터 궁금했는데 유명한 바리스타 중에는 왜 여성이 적을까요.
사실 전에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여자라서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해왔어요.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말을 아끼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돌아보면 대회 파이널리스트에 여자는 늘 저뿐인 경우가 많았어요.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뭔가요.
오랜 시간 같이 일해온 직원들이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서 결혼을 앞두고 있기도 해요. 요즘 모모스커피는 어떻게 이들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거든요. 아직 뚜렷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어서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요.
다양한 이유가 있죠. 서비스 직종이다 보니 주중, 주말 구분이 없고 체력 소모도 많아요. 또 임신했는데 매일 테이스팅을 위해 섭취하는 카페인은 부담이 되죠. 체력 부족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쳐도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이에요. 어떤 분야든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업계 최전선은 짧은 기간에 빨리 변하니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 최신 정보를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저만 봐도 산지에서 돌아온 지 2주가 지났는데 두 달간의 공백이 메꿔지지 않아요. 아직도 적응 중인 거죠. 하물며 결혼이나 임신으로 공백이 생기면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쉽지 않죠. (잠시 뜸을 들인 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명확하니까요.
가향 커피는 찬성, 최애 커피는 에티오피아산
전주연 바리스타가 몸담고 있는 모모스커피에서 판매하는 상품들.
전주연 바리스타는 자신이 선호하는 주전자도 상호 노출을 우려해 공식적인 석상에 가져가지 않을 만큼 중립을 중요시한다. WBC 챔피언의 무게감을 인식해서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커피 업계의 화두인 가향 커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모모스커피의 생두창고.
아니요 괜찮습니다(웃음).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향 커피가 한국 스페셜티 커피 업계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가향 커피는 맛이 굉장히 직관적이잖아요. 컵 노트에 포도라고 적혀 있으면 정말 커피에서 명확하게 포도 맛이 나요. 사실 이전 가공 방식으로는 미묘한 뉘앙스의 맛을 일반 소비자들은 많이 느끼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가향 커피가 소비자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셜티 커피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에게는 비싸게 여겨질 수 있는데, 가향 커피가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스페셜티 커피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전반적인 미식의 단계가 올라가는 일은 긍정적인 거죠.
그럼 이런 가공 트렌드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보시나요.
네, 저는 이런 가공 방법도 떼루아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또 농부의 입장에서도 이런 가공방법을 고안하게 된 데에는 기후변화라는 불가항력적인 변수가 있었어요. 제가 아는 한 농장은 5년 전만 해도 굉장히 질 좋은 커피를 생산해왔는데 기후변화로 원두의 맛이 변해 제값을 받지 못하더라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부들도 기술만 있다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거죠. 다만 가공 방식의 발전은 필요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 가향 커피는 맛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전 바리스타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 산지는 어디인가요.
어려운 선택이지만 죽을 때까지 한 산지의 커피만 마셔야 한다면 저는 에티오피아 원두를 고르겠어요. 산지 내 종자가 굉장히 다양하고 아직 명명되지 않은 미지의 원두들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평생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주연 #월드바리스타챔피언 #모모스커피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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