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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column

서른한 살 비혼주의자, 외로워도 괜찮아!

글 정지음 작가

입력 2022.04.19 10:30:02

얼마 전 사주를 보러 갔다가 “남편 복이 지지리도 없는 팔자”라는 말을 들었다. 어쩌다 결혼해도 이혼, 최악의 경우 사별이니 혼자 살란다. 저주에 가까운 해석이었지만 정작 나는 “우하하” 웃어버렸다. 비혼주의를 택한 내게는 “남편 복 있다” 소리가 더 심란하다. 남편 복이 있다면 삶이 고될 때마다 슬그머니 남편을 원하게 될지 모른다. 
얄팍한 나는 가끔씩 결혼 생활을 상상한다. 특히 친구들의 웨딩마치를 듣거나 신혼집을 구경할 때, 그것이 좋아 보여 속절없는 충동을 느낄 때 임계치의 외로움을 인식한다. 내 나이 서른하나밖에 안 됐는데 벌써 시집을 안 간 친구보다 간 친구가 더 많다.

이런 얘기를 나눌 애인이 없어 내 안의 외로움에게 말을 건다. “너 언제 그렇게 커졌니?” 외로움은 답이 없다. “얼른 사라지지 못하니!” 이런 호통은 나를 더 우스운 사람으로 만든다. 외로움에는 눈도 없고 입도 없고 귀도 없기에 대화나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외로움이 두렵고, 외로운데도 외로운 중인지 몰라 얼떨떨한 심정으로 밤을 새우곤 한다.

외로움이 빛을 꺼려 다행이다. 나는 외로움이 쫓겨 간 낮 동안만 당당하다 밤이 되면 조금씩 죽는다. 이러다가 정말 죽었는데 아무도 모르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혼자 사는 누군가의 황당한 사망 사고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아, 간담이 서늘하다.

생명을 보전할 확률부터 아플 때 덜 서러울 확률, 자산을 지금보다 더 빠르게 키울 확률, 큰 집에 살 확률, 밤길이 무섭지 않을 확률, 양질의 식사를 할 확률, 정부 정책의 수혜를 볼 확률까지. 언뜻 보면 기혼의 삶이 유리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비혼을 결심할 때, 기혼자와 나를 비교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비혼과 기혼을 떠나 애초에 비교는 모든 면에서 좋지 않다.

비교는 승부욕을 착취한다. 이기고 지고 길고 짧고를 자꾸 대다 보면 작은 차이를 벌리자고 큰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이 된다. 인생이 꽃다발처럼 여러 송이라면 가시 장미로 살아봐도 좋겠다. 하지만 모두에게 한 번뿐인 삶이기에 모두의 선택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착한 척을 한다고 비웃다가 “그럼 내가 악한 척을 해야 네 속이 시원하겠냐, 새끼야?”라고 답하자 자기 의견과 미소를 함께 철회했다.



사실 나는 착한 것이 아니라 독선적이다. 나의 세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밖에 없고, 누구에게도 나를 양보할 수 없고, 나를 내준 자리에 남을 채우며 만족할 수 없기에 비혼이다. 이렇게 내 생각만 하며 살아도 아직 나를 모르겠어서 비혼이기도 하다. 나는 카레인지 똥인지 밝혀지지 않은 갈색의 사람이다. 나조차 모를 나를 묻히기 미안해 혼자 산다니, 알고 보면 내가 정말 착할지도 모른다.

나를 훌륭한 비혼주의자로 만든 뮤즈들

이쯤에서 소개해도 좋겠다. 이들은 또래 비혼 여성도 아니고 기혼 여성은 더더욱 아니요, 나의 전 애인들이다. 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 같은 눈물이 난다. ‘왜 더 빨리 헤어지지 못했나’ 통한의 후회를 한다. 아예 만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윽박질러서라도 타임머신을 갖고 싶어진다. 어쨌든 그들과 결혼하지 않은 현재는 나의 천운이다. 미래의 내가 아득바득 타임머신을 구해 도망친 결과가 지금 이 순간 아닐지…. 그렇게 생각하면 잿빛 오늘도 청량한 투명색이 되고, 지긋지긋 살아온 날들의 카운트가 0으로 돌아간다. 내가 뜨개질을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온종일 인생의 프레임을 짜느라 바빠 털실 엮는 법을 배울 손이 없다.

안타까운 점은, 왜인지 나의 결혼 여부가 효도와 직결된다는 것. 특히 택시 기사님들에게 불효자 판정을 자주 받는다. 듣다 보면 정작 본인 딸들도 “결혼 안 하겠다” 난리라는데 왜 남의 딸인 나를 쥐고 흔들까? 기사님들은 내가 결혼하지 않아 우리 부모님이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거라며 혀를 찬다. 우리 부모님은 오후 9시부터 꿀잠을 주무신다. 유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오히려 나인데 재차 설명해도 의견 합치를 볼 수 없다. 모르는 아저씨와의 기 싸움이 지겨워 미치광이 워커홀릭인 척할 뿐이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돈이나 벌어야죠”는 “결혼 생각 없어요”보다 언제나 힘이 세다. “얼른 신랑 찾아서 애 한둘 낳아야지”라는 말도 “돈이 너무 들어 안 되겠어요”로 방어할 수 있다. 그래도 안 되면 “아버지 주식 빚이 5억이에요” 해버린다. 체크카드 한 장에 알뜰살뜰 용돈을 모으는 아빠에겐 죄송하지만 남의 아버지 입을 막을 때는 우리 아버지 얘기가 가장 좋다. ‘스몰 톡’을 막자고 진짜 결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래의 나는 외로움의 정체를 알까

아이러니하게도 남편 복이 전무한 내 사주에 ‘자식 복’이 있단다. 처음에는 한부모가정의 리더가 된다는 말인가 싶었는데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는 자식 복의 스펙트럼이 넓다. 반려동물은 물론, 예술가의 경우 작품까지 포함한다고. 나는 2020년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고, 2021년에는 책 ‘젊은 ADHD의 슬픔’을 출간해 작가 데뷔를 마쳤다. 올해 출간한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라는 에세이까지 벌써 자식이 셋인 셈이다.

특히 ‘젊은 ADHD의 슬픔’은 내 비혼 라이프에 큰 도움을 줬다. 책을 내기 직전까지만 해도 “결혼 어쩌구”를 묻는 이가 많았는데, 출간 후 관련 질문이 저절로 차단된 것. 추측하기론 ‘젊은 ADHD의 슬픔’이 내게 소중한 첫 작품임과 동시에 나의 치부책이기도 해서 그런 듯하다. 그 책에는 수치스러운 자기 고백과 자기 고발이 뒤섞여 있는데, 그로 인해 결혼 시장에서의 내 위상이 떨어졌다면 오히려 좋다.

요즘 결혼이란 단어 대신 “사람은 말한 대로 살게 된다”는 통설을 자주 떠올린다. 자꾸 떠벌리고 다닌 탓인지 시도 때도 없이 돈 벌자는 생각이 든다. 꼭 비혼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심을 떠받치는 것은 결국 금전이기 때문이다. “지음아, 아빠는 네가 행복하다면 맨날 산에서 도토리 줍고 놀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근데 도토리 줍고 놀아도 괜찮으려면 일단 돈이 많아야 한다.” 10년 전, 아버지는 스무 살인 내게 꽤 역설적인 예시를 들며 이 점을 알려주셨다.

외로움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자꾸만 돈으로 흐르는 것을 보니 외로움과 보유 자산은 무관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무관할 리가 없다. 얄팍한 내가 일 없이 가끔씩 해대는 결혼 생활 상상에는 큰 집이 있고, 고급 가전과 장인의 수제 가구,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과 고양이를 위한 최첨단 케어가 있지만 남편은 없다. 벤츠 G바겐 덕분에 택시 기사님의 질문 세례를 받을 일도 없을 거다.

신랑이 없는데 어째서 결혼 생활의 상상이냐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이지 얄팍하여 신혼같이 새것들은 누리되 남편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이제야 비로소 그토록 오리무중이던 외로움의 성분을 알겠다. 그것은 홀로서기에 대한 불안이고, 까딱하면 불안에 속아 비혼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외로움의 정체를 아는 즉시 외로움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자신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 방향을 착각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혹여 결혼하고 싶어지는 실수가 발생할 때마다 이 글로 돌아오기 위해 책갈피를 남겨둔다.

#비혼선언 #비혼주의 #젊은ADHD의슬픔 #여성동아


정지음
1992년 경기도 출생.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젊은 ADHD의 슬픔’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가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여성동아 2022년 4월 7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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