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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뗑킴·하고엘엔에프 K패션 투자왕의 정체

글 이나래 프리랜서 기자

2022. 03. 13

최근 패션업계가 주목하는 회사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대명화학’. 화학 회사와 패션이 무슨 상관있을까 싶지만 이 기업은 한국의 LVMH로 불릴 만큼 국내 패션산업에 큰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삼성·LG 등 대기업 패션 계열사와 형지·세정 등 전통의 패션 기업이 이끌던 K패션 물길이 최근 바뀌는 추세다. 먼저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지그재그 등이 MZ세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시장 장악력을 확보했다. 패션산업 종사자 사이에서는 ‘코웰패션’ ‘대명화학’ 등의 이름이 무게감을 갖고 오르내린다.

투자·인수합병으로 이룬 대명화학의 패션 왕국

코웰패션은 대명화학 계열사로 패션 사업 전면에 있는 기업이다. DKNY·캘빈클라인 등 홈쇼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외 브랜드 다수가 이곳을 통해 생산·유통된다. 대표적인 아이템이 언더웨어. 선보이는 브랜드가 약 20여 개로, 해외 유명 브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생산 제품을 국내 홈쇼핑 채널을 통해 판매하는 구조다. 이 외에 스포츠웨어, 명품, 골프·키즈 패션부터 가방·신발·안경테 등의 액세서리까지 전개하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코웰패션 아이템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할 수 있을 정도다.

2002년에 설립해 20년간 업력을 쌓은 코웰패션이 대명화학에 편입된 것은 2015년. 당시 대명화학은 코웰패션 지분 48.78%를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인수 당시 1615억원(2015년 기준)이던 매출은 5년 만에 4264억원으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70억원에서 801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이런 성공 뒤에는 대명화학 권오일(60) 회장의 역량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는 게 업계 평가다.

권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회계사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 투자자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창업투자회사 케이아이지를 인수하면서 투자사업의 발판을 다졌고, 2006년 전자기기용 콘덴서를 생산해 삼성·LG 등 대기업에 납품하는 필코전자 최대주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후 코웰패션 이순섭 회장과 인연을 맺으면서 패션업계로 투자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 회장은 홈쇼핑업계 대부로 통하는 인물. 패션 브랜드에 대한 감식안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패션업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 회장이 브랜드의 잠재력이나 성장 가능성을 검토하고 권 회장이 최종적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일종의 ‘팀플레이’를 한다. 이 회장을 비롯해 1세대 패션 쇼핑몰 ‘패션플러스’를 이끄는 채영희 대표, 패션 플랫폼 ‘하고엘앤에프’의 홍정우 대표, 패션 기업 ‘하이라이트브랜즈’의 이준권 대표 등이 ‘권오일 사단’으로 꼽힌다.



한국의 LVMH 될까

현재 업계 종사자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대명화학이 프랑스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그룹)처럼 글로벌 패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느냐”로 쏠린다. 홈쇼핑·스트리트 브랜드를 주로 전개하는 대명화학과 루이비통·모엣헤네시 등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 두 회사의 사업 확장 방식에는 적잖은 유사성이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73) LVMH 회장과 대명화학 권 회장 모두 패션업계 밖에서 초기 자본을 마련한 뒤 기존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운 점이 눈에 띈다.

아르노 회장은 건설회사 오너 2세로, 부동산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진 인물. 자국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 진출해 건설업과 부동산업을 영위하며 글로벌 그룹을 일궜다. 이후 1984년 크리스찬디올 브랜드를 가진 모기업 부삭(Boussac Saint-Freres)을 인수하면서 럭셔리 패션업계에 등장한다. 그의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진 건 LVMH를 차지하면서부터. 1987년 설립된 LVMH는 이후 모엣헤네시 출신 알랭 슈발리에 회장과 루이비통 출신 앙리 라카미에 부회장 사이 갈등으로 한때 위기를 겪었다. 아르노 회장은 이때 라카미에 부회장을 지원해 슈발리에 회장을 몰아낸 뒤, 이어 라카미에 부회장까지 쫓아내고 이 회사를 자기 손에 넣었다. 그는 1988년 LVMH 최대주주가 된 뒤 2000년대 초반까지 셀린, 벨루티, 펜디, DKNY 등 여러 브랜드를 인수해 체질을 개선하면서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 주력한다. 마크 제이콥스, 존 갈리아노, 에디 슬리먼, 버질 아블로 등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해 임명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리뉴얼에 성공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아르노가 이끈 공격적인 경영으로 LVMH 매출 이익은 1989~2000년 사이에 5배, 시장가치는 15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에 아르노 회장은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 순위 톱 5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갑부가 됐다.

대명화학 권 회장도 아르노 회장처럼 기존 브랜드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를 키웠다. 대명화학은 2010년 아웃렛 기업 ‘모다’를 시작으로 2012년 패션플러스, 2015년에는 코웰패션까지 품에 안으며 패션업계에서 확고한 위상을 갖게 됐다. 2020년에는 하고엘앤에프를 인수해 여성 패션 부문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이후 패션 기업 ‘모던웍스’도 인수하면서 남녀노소 모두를 커버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완성한다. 대명화학이 코웰패션, 하고엘앤에프, 패션플러스 등 대표 계열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패션 기업만 27개, 브랜드는 200여 개에 이른다. 대명화학은 지난해 가을 로젠택배 인수에도 성공해 향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것을 신규 사업 진출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캐시미어를 걸친 늑대 vs 은둔의 회장님

단, 사업 방식이 유사한 듯 보이는 두 사람은 경영 스타일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르노 회장은 앞서 소개했듯 적대적 인수합병의 명수다. 일단 경영권을 확보하고 나면 기존 회사 구성원을 가차 없이 정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삭 인수 후 약 2년 사이에 직원 9000여 명을 해고해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르노 회장을 “캐시미어를 걸친 늑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악명 때문인지 1999년 그가 구찌 인수를 시도하자 구찌 측에서 주식 추가 발행을 통해 아르노 회장 지분을 희석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 결국 무산시킨 일이 있다.

반면 대명화학 권 회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를 선별해 ‘가치투자’를 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기업에 투자하거나 경영권을 확보한 뒤에도 기존 시스템을 존중하며 브랜드를 성장시킨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브랜드의 성격과 디자이너의 독립성 유지를 투자 원칙으로 삼는다고. 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고 투자에만 집중하는 것이 권 회장의 특징이다. 패션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권 회장에게 쏟아지는 업계 관심이 매우 뜨겁다. 하지만 워낙 노출이 적어 회사 직원들조차 그의 얼굴을 모르고 “얼굴 없는 큰손” “은둔의 회장님” 등으로 불리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대명화학 #한국의LVMH #권오일회장 #여성동아

사진제공 대명화학 로젠택배 르917 마뗑킴 모다아울렛 코웰패션 하고엘엔에프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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