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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톱스타들은 왜 ‘SNL’만 나가면 사정없이 망가지는 걸까

글 김윤정 프리랜서 기자

입력 2022.03.09 10:30:02

폐지 4년 만에 부활한 ‘SNL 코리아’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OTT에 둥지를 틀면서 풍자는 더 신랄해지고, 19금 개그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SNL코리아에서 사정없이 망가진 신혜선, 차인표, 이병헌(왼쪽부터).

SNL코리아에서 사정없이 망가진 신혜선, 차인표, 이병헌(왼쪽부터).

‘여의도 텔레토비’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 등 신선한 코너로 유쾌한 풍자극의 진수를 보여줬던 ‘SNL 코리아’. 부활 후에도 과거의 ‘매운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tvN 방송 당시 연출자였던 안상휘 PD와 신동엽·정상훈·김민교·정이랑 등 핵심 크루가 다시 뭉쳤다. 대선 시즌을 맞아 이번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부부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부를 풍자하는 ‘콜드 오프닝’이 화제다.

콜드 오프닝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타이틀이 뜨기 전 보여주는 짧은 에피소드. ‘SNL 코리아’의 원작인 미국 ‘SNL’도 현지 대선 시즌이면 콜드 오프닝을 통해 신랄한 풍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0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를 배우 짐 캐리와 앨릭 볼드윈이 각각 모사해 큰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코너다.

‘SNL 코리아’에서는 권혁수와 정이랑(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부부), 김민교와 주현영(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부)이 풍자 연기에 나선다. 이웃으로 만난 네 사람의 대화를 통해 대선 정국에서 거론되는 각종 의혹과 논란을 꼬집는데, 이재명 후보 아들 도박 문제와 대장동 이슈, 윤석열 후보 아내 무속 논란과 사과 기자회견 등이 모두 풍자 대상이 됐다. 후보 가족 검증이 주요 이슈가 된 이번 대선 정국은 ‘SNL 코리아’에 그야말로 ‘노다지’라 할 수 있다.

어리숙한 주기자, 정치풍자의 진수 콜드 오프닝

‘코카인 댄스’로 전성기를 맞은 배우 허성태.

‘코카인 댄스’로 전성기를 맞은 배우 허성태.

시청자 반응도 좋다. ‘SNL 코리아’를 방송하는 쿠팡플레이는 쿠팡 회원 중 로켓와우 서비스 이용자만 볼 수 있다. 2021년 1월 52만 명대였던 이용자 수는 ‘SNL 코리아’가 론칭한 9월을 기점으로 240만 명까지 늘었고, 2022년 1월 기준 5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SNL 코리아’ 인기 주역은 누가 뭐래도 주현영이다. 주현영은 두려움과 어리숙함을 감추고 고군분투하는 사회 초년생의 말투와 행동을 리얼하게 모사한 ‘인턴 기자 주현영’ 캐릭터를 맡았다. “앵커님, 제가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질문? 지적? 감사합니다”라는 유행어도 만들어냈는데, 많은 이가 주기자의 모습에서 자신의 현재 혹은 과거를 떠올리며 호응을 보내고 있다. 등장 초반만 해도 선배 앵커에게 혼나면 울먹이곤 하던 주기자는 시청자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 이제는 어떤 거물을 만나도 기죽지 않고 할 말을 한다.



유력 대선 주자를 만나 “딸이 결혼을 한다면? 무속을 믿는 집 vs 전과 4범이 있는 집 가운데 고르라”고 한다거나 “표창장 위조한 딸 vs 상습 도박 아들” “재산 1550억 지키기 vs 1550원만 남기고 대통령 되기” 같은 황당하지만 뼈가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는 비트코인 투자로 얼마나 벌었는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는 어떤 정치인의 종아리를 때려주고 싶은지 묻기도 했다. 순진한 표정과 말투의 주기자와 어디서도 받지 못할 질문을 받고 헛웃음 짓는 정치인의 모습이 웃음 포인트.

‘SNL 코리아’가 정치풍자만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아니다. 망가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호스트들의 과감한 연기도 이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견인하고 있다. 이병헌을 시작으로 하지원·조정석·김동욱·차인표·조진웅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던 스타들이 ‘SNL 코리아’ 무대를 거쳐 갔다.

‘SNL 코리아’에서는 화끈하게 망가질수록 호스트의 매력이 높아진다. 영화 ‘내부자들’ 분장을 하고 신동엽과 19금 개그를 펼친 이병헌, “어쩔티비 저쩔냉장고~ 개킹받쥬~” 하며 요즘 중고생들 사이 유행어를 ‘살벌하게’ 쏟아낸 신혜선이 대표 사례다. 조정석과 김동욱은 인터넷 밈(meme)인 ‘제로투 댄스’와 ‘사쿠란보’ 리액션까지 선보이며 충격적인 웃음을 줬다.

스타들에게 ‘SNL 코리아’는 기존에 공개한 적 없던 새로운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자, 현재 가장 활발하게 문화를 소비하는 MZ세대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무대로 통한다. 스타들이 유독 이곳에서 과감하게 망가지는 이유다.

최근 가장 큰 수혜자는 배우 허성태다. 허성태는 ‘오징어 게임’ 조폭 두목 덕수 역으로 명성을 얻기 전 오랫동안 여러 작품에서 폭력적이거나 진지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SNL 코리아’에서 이런 기존 이미지를 확 비튼 조폭 유튜버 ‘허블리’로 분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허성태가 섹시한 표정으로 아슬아슬한 웨이브가 중독적인 ‘코카인 댄스’를 추는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270만을 돌파하는 등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정작 허성태 본인은 “징그러워서 세 번만 봤다”는데 네티즌들은 “징그럽기도 하고 섹시하기도 해서 중독됐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허성태의 코카인” “그만 보고 싶은데 그만 볼 수가 없다” 등의 댓글을 달며 영상을 즐기고 있다. ‘조폭 전문 배우’로 굳어질 뻔했던 배우 허성태에겐 이제 친근함과 더티 섹시라는 두 가지 이미지가 새로 생겼다.

검증된 제작진, 신생 OTT의 과감한 지원 시너지

SNL코리아는 ‘주기자가 간다’(왼쪽)와 ‘콜드 오프닝’ 코너를 통해 화끈한 정치 풍자를 선보이고 있다.

SNL코리아는 ‘주기자가 간다’(왼쪽)와 ‘콜드 오프닝’ 코너를 통해 화끈한 정치 풍자를 선보이고 있다.

‘SNL 코리아’의 웃음은 빠르게 흘러가는 정치 상황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를 기반으로 탄생한다. 작가진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SNL 코리아’ 스태프는 PD 14명, 작가 16명. 특히 작가진은 기성 작가 40%, 신인 작가 60% 비율로 구성했다고 한다. 젊은 감각이 필요한 대본은 젊은 작가에게, 정치를 다루는 대본은 내공 있는 작가에게 나눠 맡겨 참신함과 노련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특징이다.

‘SNL’과 신생 OTT 쿠팡플레이의 만남 역시 ‘신의 한 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방영 초기에는 제작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기술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지만, 쿠팡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막대한 수준의 투자를 결정했다. 쿠팡은 지난해에만 쿠팡플레이에 약 1000억원을 투자했는데, 그 가운데 120억원이 ‘SNL 코리아’에 들어갔다. 회당 제작비가 12억원에 이른다. 2013년 기준이긴 하지만 MBC ‘무한도전’ 제작비가 1억원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능 프로그램치고는 투자 금액이 얼마나 큰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SNL 코리아’는 OTT로 넘어온 후 생방송 대신 ‘공개 이틀 전 녹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관객을 앞에 둔 공개 쇼 형식은 변화가 없다. 녹화는 서로 다른 관객을 대상으로 총 2회 진행하며, 제작진이 직접 객석에 앉아 관객들 반응을 보며 불쾌감을 주거나 ‘썰렁한’ 내용은 걸러낸다. 이 또한 제작비가 넉넉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했을 일이다.

쿠팡플레이는 안정적인 제작비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한편, 소재와 장르의 자유로움도 허용하고 있다. 기존 채널이라면 내부적인 필터링 대상이 됐을 법한 소재가 거침없이 방송되는 게 ‘SNL 코리아’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포인트다.

전체 분량으로 보면 호스트가 등장하는 콩트의 비중이 크지만 ‘SNL 코리아’의 뼈대는 정치풍자다. 최근 ‘SNL 코리아’는 ‘주기자가 간다’ 코너를 통해 유력 대선 주자들에게 정치풍자 코미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조선시대에도 왕을 흉보는 마당극이 가장 인기였다”고 답했고, 윤석열 후보는 “아주 좋다고 본다. ‘SNL’의 정치풍자는 ‘SNL’의 권리”라고 말했다. 유력 후보 두 사람 모두 정치풍자 코미디에 호의적인 의견을 밝힌 만큼, 누가 당선해도 ‘SNL 코리아’에 브레이크가 걸릴 일은 없지 않을까. 다가오는 대선만큼이나 ‘SNL 코리아’가 보여줄 더 신랄하고 더 센 정치풍자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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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쿠팡플레이



여성동아 2022년 3월 6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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