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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column

올림픽과 성적 그리고 메타인지

이성배 아나운서

입력 2021.09.03 10:30:02

뜨겁고 치열했던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났던 선수들의 열정의 순간이 가슴속에 훈훈하게 남아 있다. 예전 같으면 선수들이 획득한 메달의 개수와 그 색깔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 다이빙 우하람 선수를 비롯한 4위 선수들은 비록 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4위의 영웅들’로 칭송받고 메달을 딴 선수들 못지않게 인기를 얻었다. 국민들 역시 국제 대회에 참가해 그 순간을 즐기고 만끽하며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느끼게 해준 올림픽이었다.

사회의 의식 수준은 높아진 반면 나는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 일이 있었다. 헌이가 지난달 학원에서 실시한 학업 능력 시험 사회 과목에서 60점이라는 점수를 받아 왔다. 그동안 헌이를 교육하면서 점수보다는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의 낮은 점수에 흥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화를 냈고, 성적 때문에 혼이 난 헌이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안쓰러운 한편, 앉혀놓고 틀린 문제들을 설명하는데 이해를 잘하지 못하는 헌이를 보며 더 화가 났다. 나는 아닐 줄 알았는데, 나는 다를 줄 알았는데… 나 역시 ‘성적에 집착하는 부모’라는 현실에 직면한 날이었다.

이번 올림픽은 아들 헌이의 교육 방향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의 시선이 체육계의 성적 우선주의와 엘리트 육성 위주의 방향성을 넘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서, 그만큼 의식 수준이 올라왔다면 이번 기회에 ‘교육 시스템의 대전환’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와 같은 상황은 아직 이상(理想)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우리는 여전히 공교육과 사교육이라는 교육 시스템에 자녀를 맡기고, 자녀가 경쟁 속에서 이겨내어 사회 시스템에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 틀이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는 부모로서 자녀의 성적에 대해 마냥 모른 척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성적보다 아이의 인성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모들 역시 어느 순간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자신을 발견한 뒤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 부모로서 가지는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중간지점은 어디인지 고민스럽다.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컬럼비아대학교 버나드 칼리지 리사 손 교수의 ‘메타인지 학습법’ 강연이 이번 고민에 답을 안겨줘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리사 손 교수는 ‘공부를 잘하는 자녀와 적당히 하는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어떤 자녀를 더 걱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잘하는 자녀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의 착각’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 내용에 의하면 좋은 점수를 얻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나중에 반대의 상황이 생길 때 극복할 힘과 용기를 놓친다는 것. A의 상황에 대한 해결을 준비시켜놓고 갑자기 반대로 B에 대한 입장을 주면서 토론을 시켰을 경우, 브레인스토밍으로 훈련한 학생들은 여유 있게 반대 입장에서도 토론을 이어가지만 정답을 추구하고 집착하며 A의 입장에만 집중한 학생들은 반대 상황에서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를 훈련하기 위해서는 완성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하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자녀를 발전시키는 학습법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중학교 시절에 일부 수학 문제를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대충 하고 넘어가다 틀린 문제가 많았다. 점점 더 구멍이 커져서 고등학교 때는 과목 전체를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이처럼 부모가 점수에 집착하다 보면 자녀는 찍어서 맞았을 때도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냥 넘어가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다. 점수가 낮다고 혼내기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이 한 인터뷰에서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한 기사를 읽었다. 그 학생은 “부모의 기대와 주변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저 공부를 했던 자신을 후회한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4위를 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듯,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응원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교육 방향 또한 단순히 점수와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유연한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로서 내 아이가 지금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그에 맞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교육이 아닐까 싶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도 의식 수준에 맞게 선진화될 것이라 믿는다.

‘싱글 대디’ 아놔리의 육아 라이프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8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여성동아 2021년 9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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