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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연기도 엄지원처럼 쿨하게

글 이현준 기자

입력 2021.08.23 10:30:02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공개하며 소통하는 모습에 팬들은 그녀를 ‘엄지 언니’라 부르며 환호한다.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여전히 성장 중인 엄지원을 만났다.
“얍! 인터뷰 시작! 안녕하세요, 엄지원입니다. 반갑습니다.”

화상으로 마주한 배우 엄지원(44)은 청량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반려견 비키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그녀에게선 밝은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엄지원은 “다양한 장르를 많이 시도해서 그런지 언제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지금은 배우가 아닌 엄지원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녀는 1998년 TBC 공채 3기 리포터로 연예계에 첫발을 들였다. 데뷔 초반에는 ‘지구 용사 벡터맨’ ‘아니 벌써’ 같은 시트콤에 주로 출연한 터라 연기자보단 MC, 방송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엄지원은 프로그램 MC를 병행하면서도 일주일에 나흘, 하루 4시간씩 연기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렇게 실력을 갈고닦은 끝에 2002년 드라마 ‘황금마차’의 주연을 맡아 배우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영화 ‘똥개’(2003), ‘극장전’(2005), ‘소원’(2013), ‘미씽: 사라진 여자’(2016)와 드라마 ‘싸인’(2011), ‘산후조리원’(2020) 등을 통해 작품성과 흥행 2가지를 모두 잡으며 자신만의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깔끔하고 안정적이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기가 특징이다. 데뷔 초반 약점으로 지목됐던 높은 톤의 목소리는 어느덧 엄지원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아 개성을 더해주고 있다. ‘극장전’의 홍상수 감독은 영화 개봉 당시 엄지원을 “백지 같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캐릭터를 흡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의미다.

이렇듯 배우로서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녀의 매력을 더욱 끌어올리는 건 가감 없이 보여주는 ‘인간 엄지원’의 모습이다. 엄지원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 ‘배우 엄지원’ 등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팬들과 나누고 있다. 몸매 관리법, 식단, 드레스 룸 등 대개 연예인에 대해 갖는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것은 기본, 거리낌 없이 생얼을 공개하는 등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인다. 또 정원의 나뭇가지를 치며 “가지를 다 살려두면 모두 잘 자라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좀 아니다 싶은 친구들은 빨리 커트하고 그만 만나야 한다. 좋은 친구들만 만나라. 그래야 좋은 영향을 받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면 썩는다”고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그녀의 콘텐츠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이다. 무언가를 과장하지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자칫 민감할 수도 있는 개인사도 숨기지 않는다. 엄지원은 지난 4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이혼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2014년 5월 건축가이자 작가(필명 오기사)인 오영욱 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글을 통해 드러낸 엄지원의 심경은 담담했다. 그녀는 “여전히 서로의 일을 응원하고 안부를 물으며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 그분은 현재 베트남, 저는 서울에서 지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며 “앞으로도 이 공간을 통해 여러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언제까지 침묵할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아 용기를 내 글을 적어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금 오래된 일이고, 한 사람이자 배우 엄지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부디 지금처럼 변함없는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엄지원의 진솔한 고백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멀리 있는 ‘배우’가 아니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혹은 보고 싶은 ‘언니’의 모습에 팬들도 ‘엄 언니’ ‘엄지 언니’라는 애칭으로 화답하고 있다.


여성 중심 영화는 연기 이상의 의미

엄지원은 7월 28일 개봉 영화 ‘방법: 재차의’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방법: 재차의’는 지난해 방송됐던 드라마 ‘방법’을 영화화한 스핀오프 작품이다. ‘방법’은 사람을 저주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는 10대 소녀 방법사 백소진(정지소)과 정의감 가득한 사회부 기자 임진희(엄지원)가 정의 구현을 위해 악과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반면 ‘방법: 재차의’는 이들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시체 ‘재차의’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김용완 감독, 각본을 맡은 연상호 감독 등 스태프와 엄지원은 물론 정지소, 김인권, 고규필 등 배우들까지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왔다.

엄지원에게 드라마를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고. 그녀는 “사실 영화를 더 많이 해왔기에 반가움과 설렘이 컸다. 고향으로의 귀환과도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출연을 결심한 까닭을 말할 땐 특유의 발랄함이 드러났다.

“전작을 함께했는데, 제가 안 나오면 작품을 만들 수가 없는걸요? 임진희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저에겐 선택권이 없었어요. 하하.”

‘방법: 재차의’는 재차의 무리가 선보이는 전쟁과도 같은 전투 신, 카체이싱 등 뛰어난 액션과 큰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무엇보다 엄지원과 정지소 콤비가 선보이는 ‘워맨스’(Woman과 Romance를 합쳐 만든 조어로 여자들 사이의 진한 우정과 유대를 말함)가 돋보이는 영화다. 드라마에 이어 영화에서 워맨스를 선보이게 된 소감을 묻자 엄지원은 웃으며 답했다.

“저는 진희와 소진의 관계가 커플 혹은 파트너처럼 그려지길 바랐어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요. 다행히 보시는 분들이 참 좋아해주셔서 저도 좋더라고요. 실제로도 지소랑 잘 지내고, 지소가 절 많이 좋아해줘요. 앞으로 지소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만들어가면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커지리라 생각해요.”

극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역시 ‘방법’ 시리즈의 특징이다. 엄지원은 여성 중심 서사 작품에 대한 애정이 깊다. 공효진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개봉 당시 엄지원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브로맨스는 지겹다. 여자들끼리도 케미가 있고, 워맨스가 더 좋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충무로에 좋은 남자 배우는 많은데 좋은 여자 배우는 없다고 한다. 여자 배우가 없어서 없었을까, 아니면 쓰이지 않아서 없었을까. 한번 질문해보고 싶다” 등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간 바 있다. 엄지원이 생각하는 여성 중심 서사의 매력은 뭘까. 그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저는 여자 배우이기 때문에 (남자 배우에 비해) 더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예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건 배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와 더불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성 중심 서사 작품은 저에게 연기 이상의, 무언가 한 가지가 더 있는 느낌으로 다가오죠.”

‘방법: 재차의’에선 오윤아가 새로운 빌런으로 등장해 엄지원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정지소와 엄지원이 짝을 이뤄 선보인 워맨스와는 상반된 느낌이다. 사실 엄지원과 오윤아는 사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하지만 두 배우는 프로, 극에선 살벌한 기 싸움을 펼친다. 엄지원은 오윤아와 함께 작품을 한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찐친’ 면모를 자랑했다. 마치 지인과 수다를 나누는 듯 즐겁게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유튜브 영상 속 영락없는 엄지 언니와 같았다.

“윤아와는 정말 친해요. 약 10년 전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를 통해 만났죠. 오랜만에 연기로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같이 작품을 하게 돼 너무 좋고 재밌더라고요. 촬영 도중 식사 시간이 1시간 정도 주어지는데, 보통은 20분 전에 촬영장에 돌아와 다음 장면 준비를 하거든요. 그런데 윤아랑은 밥을 먹으며 수다를 오래 떠는 바람에 부랴부랴 돌아와 메이크업도 제대로 못 하고 촬영에 임하곤 했죠. 하하. 적대적인 역할이긴 했지만 오히려 함께 나오는 신이 많지 않아서 ‘더 많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서 엄지원은 촉망받던 판사 일을 그만두고 전 애인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미혼모 안소영 역을 맡아 절절한 모성애 연기를 선보였다. 모성 연기는 여자 배우만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지원의 소신과 맞닿는다. 엄지원은 ‘무자식 상팔자’ 외에도 영화 ‘소원’, 드라마 ‘산후조리원’ 등에서 엄마 역할을 맡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녀가 없는 엄지원에게 엄마 역을 소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실 모성애는 내가 잘 모르는 감정이라 연기하기 두려웠다. 예컨대 어떤 전문적인 직업군을 연기한다면 그 직업에 속한 사람들의 평만 소화하면 그만이지만 세상에 어머니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더 지적을 많이 받을까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고민 끝에 엄지원이 찾은 해답은 다음과 같다.

“모성도 결국 사람이 갖는 감정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더라고요. 또 작품을 잘 이해하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죠. 대본 속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열쇠들이 숨어 있거든요.”

오랜 시간 좋은 에너지로 연기하는 배우

영화 ‘방법: 재차의’

영화 ‘방법: 재차의’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엄마’라는 세계에 대한 도전을 잘 마쳤기 때문일까. 엄지원은 방법이라는 낯선 소재의 작품인 ‘방법’ 시리즈 출연에 망설임이 없었다.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스스로의 기준에서 재미있으면 된다는 것.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저의 관점에서 재미가 있느냐 혹은 없느냐예요. ‘방법’ 시리즈의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그냥 재미있겠더라고요. ‘내가 이 작품에 출연해서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저는 ‘올인’해요.”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재미’는 엄지원이 배우로서 롱런하고 있는 비결이다. 엄지원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배우를 꿈꾸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노력, 실력, 운, 이 3가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운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노력해야 하고,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지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연기를 사랑하면 돼요. 사랑하면 재미있게, 오래 할 수 있어요. 힘들어도 버틸 수 있고. 사랑하고 좋아하면 꿈꾸던 나의 미래가 바로 옆에 와 있을 겁니다.”

즐기며 일하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그녀는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라는 목마름을 꼽았다. 엄지원은 영화 ‘소원’을 찍었을 당시 “배우 10년을 돌아봤을 때 분명한 건 난 정말 연기를 못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해 엄지원은 ‘소원’으로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엄지원의 생각은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솔직히 지금도 제 연기에서 정말 맘에 드는 부분이 없어요. 제가 볼 때는 항상 부족한 면이 있더라고요. 스스로의 연기를 보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까요. 글쎄요. 하하. 그래도 지금은 연기를 너무 못하는 수준까진 아니고 ‘조금 아쉽다’ 정도로 할게요. 하하.”

엄지원은 아직 하고 싶은 연기가 많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맡아온 모든 역할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면서 “사극과 악역, 정통 멜로를 아직 못 해봤다. 다음부턴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어 드라마 ‘방법’ 시즌 2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방법’ 시즌 2가 언제 나올지 정말 궁금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제안받은 게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우선 영화가 잘돼서 ‘방법’ 시리즈가 프랜차이즈화될 수 있게 징검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만약 시즌 2를 찍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임진희보다 더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진희와 저는 비슷한 면이 많아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생각이 분명하다는 점에서요. 더 이해하고, 더 즐기면서,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소진의 방법 능력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능력을 갖고 싶다고 제작진에게 강력히 어필 중이에요. 하하.”

어느덧 데뷔 20년 차. 엄지원은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게 될까. 그녀는 방송인으로 인식되던 2000년 한 인터뷰에서 “정적인 분위기에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심은하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아직도 생각이 같냐고 묻자 엄지원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렇게 말했었군요. 하하. 지금은 윤여정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랫동안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진제공 CJ ENM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21년 9월 6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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