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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story

카이스트 출신 돼지고기 마니아의 성공기 정육각 김재연 대표

글 김지은

입력 2021.07.19 14:07:29

우리의 일상은 앞으로 얼마나 더 스마트해질 수 있을까. ‘초신선’ 정육으로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카이스트 출신의 정육 유통 전문가
김재연 대표와의 만남은, 상상치 못하던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학혁명의 실체를 발견한 듯 무척이나 즐거웠다.
초신선을 내세우는 식재료 온라인 유통 스타트업 ‘정육각’이 화제다. 도축한 지 4일 이내의 돼지고기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것. 정육각을 이끄는 김재연(30) 대표는 그야말로 엄친아의 전형으로, 중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거쳐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미국 국무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준비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돼지고기 유통 사업에 눈을 떠 공부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돼지고기가 좋아 카이스트를 버린 남자’라는 타이틀로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창업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군 제대 후 휴학을 하고 전산 전공인 친구와 둘이서 자연어 처리 프로그램을 개발한 적이 있어요. 1년 정도 열심히 매달려 유저도 1만 명가량 모으고 나름 성과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어요. 그걸 어디서 누가 사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워 들고만 있었던 거죠. 더 허망한 건 저희가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때만 해도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 곳이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더라고요. 그때 배운 건 ‘우리가 할 수 있을 정도면 큰 회사의 똑똑한 인재들도 충분히 개발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자연어 처리’는 컴퓨터를 이용해 사람의 언어를 분석·처리하는 AI 기술로, 쉽게 말하면 기계가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사람의 언어를 컴퓨터 언어로 인식·분류한 다음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 그에 맞게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외국어 번역 프로그램이나 챗봇 같은 것들도 이러한 자연어 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공부는 재능, 진로는 재미

정육각의 초신선한 제품들.

정육각의 초신선한 제품들.

김 대표는 과거 방송을 통해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유학을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간략히 소개됐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유학 전 또래 대부분이 그러하듯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던 시기를 보냈다. 수학 교사인 어머니 덕분에 일찌감치 수학을 접했고 남들보다 일찍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 재능을 직업으로 삼는 건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였다.

“저뿐 아니라 친구들도 비슷했던 거 같아요. 딱히 정해진 진로가 없으니 졸업 후에도 공부를 계속하는 게 당연했고, 막상 박사 학위를 따고 나서 뭘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실제로 지금 고등학교 동창 중 절반 정도가 박사 학위 소지자인데, 대부분 이제 막 졸업 단계고 아직 진로를 고민 중인 친구들도 많아요.”



어쩌다 보니 친구들 중 가방끈이 제일 짧아진 셈이 됐지만 창업 당시 그의 합류 제안을 거절했던 이들조차 이제는 “그때 함께했어야 했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김 대표는 어느새 성공한 CEO가 됐다.

그에게 창업 멤버들은 돈 주고도 못 바꿀 최강의 어벤저스다. 과학고 출신의 군대 동기인 제품 담당 김환민 이사, 산업공학을 전공한 영재학교 동기인 개발 담당 박준태 이사, 대기업에서 온라인 신사업을 담당하던 이소해 이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5백만원을 종잣돈 삼아 ‘당일 도축 돼지고기 판매 사업’으로 유학 자금을 불려보겠다는 김 대표의 이야기에 “그거 재미있겠다!”며 맞장구를 쳐준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친구들이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무모하고 대책 없어 보였을 일이, 누군가에게는 살면서 도무지 만나기 힘든 재미있는 일을 해볼 절호의 기회였을까. 그렇게 뭉친 넷은 서로에게 ‘무엇을 함께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되었다.

의기투합해 2016년 완성한 ‘초신선 정육 사업’은 창업 5년 만에 도축 4일 이내 돼지고기를 비롯해 당일 도계 닭고기, 정온 숙성 소고기, 당일 산란한 달걀, 당일 착유한 우유 등 총 5가지 카테고리의 축산물과 초신선 재료를 이용한 밀키트, 그리고 수산물에 이르기까지 상품군을 확장해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6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아기 유니콘(중소벤처기업부가 기업가치 1천억원 미만의 유망한 비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벤처기업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선정된 데 이어, 11월에는 ‘혁신기업 국가대표 1000’에 이름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다. 유학 전 좋아하는 고기를 원 없이 먹어보자며 제주도로 돼지고기 투어를 다녀왔고 이후 틈만 나면 유명한 고기 맛집을 찾아다닌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문득 도축장에서 고기를 사면 저렴한 가격에 실컷 먹을 수 있겠다 싶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축장을 검색한 뒤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축장에서 소매로 거래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어요. 한두 근쯤 살 생각이었는데 최소 판매 단위가 20kg이라며 안 판다는 거예요.”
도축장까지 찾아간 것이 억울해서였는지, 안 판다는 말에 괜한 오기가 생겨서인지 부득부득 “나도 살 수 있다”고 우겨 20만원을 주고 덩어리 고기 한 박스를 받아든 김 대표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고기를 구웠다. 갓 도축한 돼지고기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맛있었다. 지금껏 찾아 헤매던, 어린 시절 외가댁에서 구워 먹었던 그 고기 맛의 비밀을 이제야 발견한 듯싶었다.

“너무 맛있어서 한자리에 앉아 엄청 먹었어요. 그런데도 고기가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 않을 만큼 너무 많이 남아 이웃집에 나눠드리고, 아이스박스에 담아 친구들에게도 보내줬지요.”

고기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너도나도 “어디에서 샀냐”고 물어봤고, 돈을 줄 테니 더 사다 달라는 이들까지 줄을 섰다. 그렇게 알음알음 ‘사다 달라’는 부탁이 늘어나자 이윤을 조금 남기고 팔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도축장 근처 작은 가게를 임시로 빌렸다. 미국 유학 전 딱 3개월만 운영할 생각으로 네이버 농축수산물 직거래 카페를 플랫폼 삼아 ‘당일 도축한 돼지고기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하루 종일 고기만 썰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초대박이 났고, 유학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재미도 있었다. 사업 구상을 이유로 한데 모여 고기를 구워 먹으며 “망해도 돼지고기 맛있게 굽는 법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배울 수 있겠다”고 신이 났던 건 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카이스트도 가르쳐주지 않은 미래

유학 포기 서류를 제출한 날 김 대표는 난생처음으로 부모님께 등짝을 세게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상의 한마디 없이 결정하고 처리해버린 무모함이 ‘철없음’으로 비친 탓이었다.

“제가 금방 포기할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한 번 창업을 했다가 망한 전적이 있어서 더 그러셨을 거예요. 게다가 이번 일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몸을 쓰는 일이니까 힘들어서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하셨겠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은 기성세대가 짜놓은 틀에 맞춰 살아오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게 된 사건이었다. 다행히 부모조차 믿기 어려웠던 김 대표의 사업 수완은 날로 빛을 발했고, “유학 간다던 아들은 잘 지내고 있느냐”는 지인들의 안부 인사에 할 말을 찾지 못해 “유학 대신 사업을 한다는데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던 어머니는 이제 “오프라인 주문은 더 이상 안 받는다”는 아들의 만류에도 “우리 아들이 고기 장사를 한다”며 주문까지 받아오신다.

“기분이 안 좋거나 계획했던 대로 일이 안 풀리는 날엔 고객 후기를 찬찬히 열어봐요. 고객들은 저희 고기를 먹으며 힘을 얻고 힐링하신다는데,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에서 힘을 얻거든요. 어떤 분은 좋은 후기가 가득한 걸 보고 저희가 내용을 조작하거나 나쁜 후기를 삭제하는 것 아니냐 묻기도 해요.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보람을 느끼며 재미있게 해나갈 수는 없었을 거예요.”

사실 처음부터 이런 선순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고기 장사는 고기만 맛있으면 된다’는 김 대표의 단순한 생각에 ‘진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건 정육각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이소해 이사였다. 정육각 창업의 네 번째 멤버이기도 한 그녀는 문과 출신의 재원이다.

“이소해 이사가 없었다면 정육각은 제 첫 번째 사업처럼 개발과 제조만 잘하는 데 그쳤을 거예요. 창립 멤버 중 저를 포함한 나머지 셋은 이과 출신이라 그런지 흑백이 명확한 편인데, 소비자들의 마음은 또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창업 초기 고객 응대까지 직접 하며 고기를 썰어낸 덕에 이들은 전화기 너머 들리는 소비자들의 희로애락까지 하나하나 읽어내는 법을 배웠다. 그냥 ‘고기가 맛있다’가 아니라 “이 고기를 일곱 살 딸이 어른이 되어서도 같이 먹을 수 있도록, 오래오래 열심히 해달라”는 고객의 격려 전화에는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맛있어서,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에 책임과 사명이 더해진 건 인생에서도 큰 전환점이 됐다.

정육각의 혁신은 농장에서 도축장, 육가공업체, 도매상, 중간 도매상,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길고 복잡한 정육 유통 단계를 도축, 가공 및 포장, 배송으로 단축시킨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생산과 유통의 일체화로 유통 비용을 절감했고, 생산 병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지연 배송과 재고 손실의 부담까지 획기적으로 줄였다.

물론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핵심 전략이자 마케팅 포인트인 ‘초신선 정육’은 여전히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오랜 세월 정설로 전해 내려온 ‘숙성’을 거부한 것만으로도 논란의 여지는 충분했다. 여기에 축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젊은이들이 학벌을 내세워 이슈화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그런데 똑똑한 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이 청년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전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축산과 IT, AI의 융합이 있었다.

“창업 초기엔 지금처럼 프로그램화된 자동발주 알고리즘이 없었어요. 고기를 썰면서 머릿속으로 주문량과 작업량, 작업 순서를 실시간으로 계산해나갔고 당연히 과부하가 생기고 실수도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자동발주 시스템을 통해 서울·경기권에서는 당일 오전에 주문받은 고기를 오후 7시 전에 집으로 배송하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오후에 주문받은 고기는 다음 날 새벽에 배송할 수 있고요. 재고가 남지 않도록 주문량과 실제 재고량, 작업분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고객 수요를 예측하고, 주문과 생산, 포장 사이에 병목이 생기는 것을 해소했거든요. 배송은 ‘정육각 런즈’라는 고유의 유통 서비스를 활용하는데 일반인들도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일종의 ‘쿠팡 플렉스’ 같은 개념입니다. 다른 배달 서비스에 비해 단가가 높아 인기가 좋은 편이죠.”

프로그램에는 고기를 썰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통제할 수 없는 손실분에 대한 오차도 계산에 넣었다. 자동화와 관련된 시스템만 개발하는 입장이었다면 절대 생각해낼 수 없는 부분이다.

“고기 1kg을 썰면 써는 동안 약 2g 정도가 증발해버려요. 2g이 뭐 별건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쌓이고 쌓여 1년이 지나면 반달치 생산량이 날아갈 수도 있는 거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생산과 유통에 큰 오차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사람의 일을 로봇이 대신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생산 과정에서 출현 가능한 모든 오류 포인트를 소프트웨어에 반영하는 것이 초신선 정육의 핵심 역량입니다.”

‘초신선’ 서비스의 핵심은 IT와 AI

직접 소나 돼지, 닭을 키우지 않는 한 육류의 맛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선한 육류를 공급하는 것에만 열심이던 사업 초기 “그렇게만 해서는 더 커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료업체 사장님의 따끔한 충고도 큰 도움이 됐다. 이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자와 도축장, 육가공업체는 물론 사료업체까지 수직계열화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품종에, 무슨 사료를 먹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고민하며 협력관계를 유지해나간다. 지역에 따라 다른 날씨와 환경, 계절, 심지어 물맛까지도 고려의 대상이다.

“규모가 커지고, 어느 정도 힘이 생긴 후부터는 저희의 요구가 생산에 반영되는 시스템이 가능해졌어요. 그래서 요즘엔 사료업체, 생산자와 협력해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정육각은 얼마 전 이곳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와 기존 돼지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기름을 비교하는 광고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초신선 삼겹살’이라고 표기한 기름은 맑은 반면, 일반 삼겹살 기름은 이보다 다소 어두운 색깔이었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광고를 게재했던 건 분명 저희 잘못입니다. 신선육이냐 숙성육이냐는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 유통과 품질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어느 쪽이 나은지 여부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죠. 다만 신선육을 고집하는 정육각의 돼지고기는 특유의 잡내가 나지 않아 누구나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정육각의 초신선육을 맛있게 즐기는 비결 역시 신선도 유지가 첫째다. 배달된 고기는 얼리지 말고 가급적 배송 당일, 늦어도 4~5일 안에 모두 소비하라는 것이 김 대표의 조언이다. 팬을 태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팬을 충분히 달군 후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굽는 것이 좋다.

“8월 말에는 정육각 정육에 최적화된 에어프라이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품질 좋은 고기를 집 앞까지 배송해주는 건 저희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고기를 구워드릴 수는 없잖아요. 간혹 굽기에 실패해 초신선육의 제맛을 즐기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인터넷이나 요리책에 나온 매뉴얼대로 해도 고기 두께나 양이 각기 다르다 보니 쉽지가 않다는 얘기죠. 그래서 정육각의 고기나 해산물의 종류와 양에 따라 각각 최적의 온도와 시간을 찾아주는 에어프라이어를 소개할 생각이에요.”

누구나 집에서 최상의 고기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생산부터 도축, 가공과 포장, 배송에 이어 조리까지 일체화하겠다는 독특한 수재들의 야심 찬 계획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정육각



여성동아 2021년 8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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