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크디자인하우스의 새로운 도전, 보스켓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 뒤편 은행나무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부드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모서리가 조화로운 새하얀 건물이 눈에 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외관과 신비한 아우라는 프랑스 동부 작은 시골 마을 롱샹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과 꼭 닮아 있다.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회자되는 롱샹성당을 모티프로 한 이 건물은 디자인 컨설팅 회사 ‘당크디자인하우스’(이하 당크)의 신사옥이자 당크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보스켓’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B2B(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 사업에 주력해온 만큼 개인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당크는 지난 2006년 창업 이래 삼성물산, 현대자동차, 두산, 대한항공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브랜드 제품을 개발하고 디자인 컨설팅을 진행해왔다. 다년간 축적해온 패션, 디자인 관련 경험과 노하우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새롭게 선보인 브랜드가 보스켓으로, 브랜드 론칭과 더불어 그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인 것.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을 모티프로 한 보스켓의 외관 전경. 1층은 비스트로&카페, 와인 숍,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 있고 2층은 당크디자인하우스 오피스, 3층은 루프톱으로 구성된다.(좌) 4월 오픈한 보스켓 루프톱. 도심 속 휴양지 콘셉트로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음식과 음료를 즐길 수 있어 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우)
코로나19 시대에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보스켓은 최근 직면한 경영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대안이다. 독보적인 디자인과 안정적인 품질을 바탕으로 기업 비즈니스에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로 사업을 확장한 당크는 2013년 인천국제공항의 단독 매장과 미국 LA 베벌리힐스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고, 2015년에는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순탄했던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결국 작년에 모든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하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보스켓인 것이다. 작년 10월 오픈한 독일어로 숲을 의미하는 보스켓(Boskett)은 ‘도심 속 휴식’이라는 브랜드 콘셉트에 맞게 건물 외관과 실내 인테리어, 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주변 환경까지 ‘쉼’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돼 있다.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테라스에는 플랜테리어 전문 회사와 협업해 계절 변화에 따른 식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작은 정원을 만들었고, 최근 개방한 루프톱 역시 휴양지와 그리너리 콘셉트로 스타일링했다. 제주 현무암을 사용한 간판과 돌을 깎아 만든 인포메이션 데스크, 프라이빗 룸의 벽에 멸종된 동물과 자연의 다양성을 표현한 모오이(Moooi) 벽지, 그리고 매주 바뀌는 생화를 이용한 테이블 데코까지 건물 안팎으로 크고 작은 요소들이 보스켓의 슬로건 ‘For:rest’(숲과 휴식을 의미)와 맞닿아 있다.
보스켓 건물 바로 옆 테라스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보스켓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김은정 총괄 디렉터
홀과 프라이빗 룸, 테라스, 루프톱까지 보스켓의 전 좌석에 생화가 담긴 꽃병이 놓여 있다.(좌)
보스켓 라이프스타일 숍의 진열장 전경. 당크와 보스켓 자체 제작 상품부터 보스켓에서 까다롭게 셀렉한 트렌디한 패션&리빙 아이템을 만날 수 있다.(우)
15년째 당크를 이끌어온 이수연 대표가 새로운 브랜드 론칭을 확정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재 당크와 보스켓에서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는 김은정 실장을 다시 영입하는 것이었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한 김은정 실장은 2008년 당크에 입사한 후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품 기획과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회사의 핵심 인재로 성장했다. 2010년 초중반 당크가 B2B에서 B2C로 영역을 확장할 때 이수연 대표를 도와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던 그녀는 자사 브랜드가 면세점과 백화점에 안착하자 퇴사를 결심했다. 어느덧 입사 9년 차였다. “기업이 아닌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가방, 의류 등을 만들면서 텍스타일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은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대표님도 저의 결정에 공감해주셨고 더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오라며 격려해주셨어요.” 퇴사 후 패션과 스포츠 용품, 화장품, 인테리어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개인 사업을 이어오던 중에 이수연 대표의 러브 콜을 다시 받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마다 부담감도 크지만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사람 중심 경영 철학을 가진 대표님을 신뢰했고, 보스켓이 그동안 쌓은 저의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녹일 수 있는 공간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김은정 실장은 2020년 당크에 다시 합류했고 이수연 대표와 12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보스켓은 캐주얼 레스토랑임에도 불구하고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인재를 영입해 최강 팀워크를 자랑한다. 왼쪽부터 강병찬 수 셰프, 이지민 헤드 셰프, 최강혁 소믈리에, 한송이 리셉셔니스트, 전정훈 바리스타, 성윤경 매니저.
회사에 다시 돌아오자 신규 브랜드 론칭과 비스트로 오픈이라는 특명이 주어졌다. 기대와 격려보단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더 많았다. 하지만 김은정 실장은 요리도 패션이고 디자인이라는 이수연 대표의 생각에 동의했고, 한발 더 나아가 요리와 디자인 영역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할 때처럼 시장조사부터 시작했다. “작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와인 바, 호텔 등 1백여 곳을 다니며 외식 트렌드 분석에 착수했어요. 비스트로는 보스켓의 정체성을 잘 녹이면서 트렌드를 반영한 메뉴 구성이 관건이었어요.” 계속되는 연구와 여러 차례의 논의 끝에 ‘와인과 페어링하기 쉬운 한식을 베이스로 한 이탤리언 요리’라는 메뉴 콘셉트를 도출했고 그사이 셰프와 홀 매니저를 비롯해 소믈리에, 바리스타, 리셉셔니스트까지 전문 인력을 갖춘 팀 보스켓이 꾸려졌다.
메뉴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공간 스타일링 등 보스켓의 하드웨어도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브랜드 콘셉트와 맞는 천연 대리석을 직접 골라 원하는 사이즈로 재단한 후 다리를 조립해 테이블을 만들었고, 프라이빗 룸의 목재 테이블 역시 이태원 앤티크 가구 거리에서 발품 팔아 구입한 것이다. 그녀의 열정에 직원들도 합세해 앤티크 가게에서 구입한 의자의 도색을 돕고, 파트에 상관없이 매주 돌아가며 원하는 스타일의 꽃을 사 와 직접 화병에 꽂고 매일같이 관리한다. 매주 화요일, 김은정 실장이 주관하는 보스켓 전체 회의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지식 교류의 장이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맡고 있는 파트의 트렌드를 조사한 후 발표함으로써 패션, 와인, 요리 등 다방면의 지식을 공유한다. 팀 보스켓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공간과 제품 디렉팅, 메뉴 개발, 마케팅 등 브랜드 전체를 총괄하는 김은정 실장은 보스켓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고 전 직원의 화합을 조율하는 지휘자인 셈이다.
컨벤셔널부터 내추럴 와인까지 다양한 리스트를 보유한 보스켓의 와인 보틀 숍.
보스켓은 크게 비스트로&카페, 와인 숍,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으로 운영된다. 비스트로와 카페는 ‘해초를 담은 남해바다 샐러드’ ‘들깨 버섯 크림파스타’ ‘핑크 식혜 에이드’ 등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양식에 한국식 터치가 가미된 메뉴가 대부분이다. 호주에서 요리를 전공한 후 관련 이력을 쌓은 이지민 헤드 셰프를 필두로 6개월간 지속적인 테스트를 거쳐 현재의 메뉴가 완성됐다. 올해 4월부터 루프톱을 오픈하며 브런치 메뉴를 새롭게 선보였는데 모회사가 디자인 사업체인 만큼 ‘비주얼 갑’의 스타일리시한 브런치를 맛볼 수 있다. 컨벤셔널 와인부터 내추럴 와인까지 다채로운 와인 리스트를 보유한 보스켓은 와인 보틀 숍도 함께 운영한다. 모든 제품에는 매장에서 마실 때와 가져갈 때의 가격을 노출해 접근성을 높였고, 보스켓 자체적으로 와인 소매업을 운영한 덕에 양질의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최근 언택트 시대에 맞게 집에서도 보스켓의 와인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보스켓 투고(to go) 세트를 개발해 배달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 중이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은 취향과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수요를 반영해 다양하고 트렌디한 셀렉션을 제공한다. 영국 LSA와 이탈리아 IVV의 와인 글라스, 벨기에 세락스(Serax)와 국내 디자이너 도자기 브랜드 이미저리코드의 제품, 그리고 당크의 패션 잡화와 보스켓에서 자체 제작한 캔들, 커피잔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보스켓의 정체성을 담은 비스트로 메뉴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반가 어니언 채끝 스테이크, 두부 튀김과 단호박 가든 샐러드, 들깨 버섯 크림파스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에서 보스켓은 한발 더 나아가 문화까지 담았다. 비스트로를 이용할 때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 사전 예약을 통해 중앙대학교 와인 전문과정 손진호 교수의 와인 강의와 공연 기획 기업인 아르테마니아 백규선 대표의 오페라를 주제로 한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또한 홀 벽면을 활용한 오픈 갤러리에는 한국 팝아트의 대표 격인 김동유 작가의 작품을 전시 중이며, 1층에서 3층 루프톱까지 올라가는 통로에도 신진 작가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스몰 웨딩 상품까지 개발 중이라고 하니 일상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은정 실장은 당크가 미지의 세계를 개척했던 것처럼 보스켓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 계획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뛰어난 감각과 더불어 남다른 일 처리 능력, 성실함으로 동료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그녀는 이수연 대표가 그러했듯 ‘직원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믿는다. “브랜드 사업 확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보스켓 구성원의 협업과 소통을 바탕으로 한 팀워크라고 생각합니다. 보스켓 종착점에 도달하기 위한 올해 목표는 외식업계에서 가장 단단한 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스켓에서 계절의 변화를 감상하며 와인 한잔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브랜드의 성장 과정은 찬찬히 지켜보면 될 일이고, 청초하고 싱그러운 콘셉트와 직원들의 팀워크가 뿜어내는 무한 긍정 에너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 보스켓은 코로나19로 지친 많은 이들에게 잠깐이라도 제대로 된 ‘쉼’을 줄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사진 홍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