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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MZ세대 명품 조연의 좋은 예, ‘빈센조’ 곽동연

글 정혜연 기자

2021. 05. 11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모에 묵직한 연기력까지 갖춘 97년생 곽동연. 아역으로 출발한 탓에 마냥 어리게 느껴졌는데, 연기를 논할 때면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보니 천상 배우가 따로 없다.

잘 자란 옆집 아들을 보는 심정이랄까. 2012년 방영된 KBS 2TV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속 기가 찰 정도로 멍청한 중학생 ‘방장군’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곽동연(24). 이후 여러 드라마와 예능에 꾸준히 출연해온 그는 5월 초 종영한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악역이지만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바벨그룹 회장 장한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장한서는 극 초반 안하무인이자 통제 불능인 회장으로 등장하는데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친구든 아버지든 서슴지 않고 살해하는 사이코패스 이복 형 장한석(옥택연)만큼은 무서워한다. 평생 형의 그림자 밑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던 장한서는 빈센조(송중기)만이 자신을 보호해줄 유일한 희망이라 여기며 친형처럼 따르고, 결국 그를 대신해 장한석이 쏜 총을 맞고 생을 마감한다. 곽동연은 ‘재벌가 서자’라는 드라마 단골 소재를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해 전에 없던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 덕에 송중기, 전여빈, 김여진 등 탄탄한 실력을 지닌 배우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아 ‘대한민국 97년생 가운데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애정 어린 수식어까지 얻었다.

이러한 성과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2년 데뷔해 올해로 9년째 연기를 계속하며 내공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곽동연은 당초 FT아일랜드, AOA 등이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으로 가수 데뷔를 꿈꿨으나 드라마 ‘넝쿨당’ 출연 이후 연기자로 전향했다. 다년간 아역 및 조연으로 출연하다가 2016년 MBC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세자 이영(박보검)의 죽마고우이자 호위무사 김병연으로 등장해 ‘갓병연’이란 수식어를 얻으며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18년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화학과 조교이자 엄친아 연우영, 같은 해 SBS ‘복수가 돌아왔다’에서 설송고 이사장이자 강복수(유승호), 손수정(조보아)과 삼각관계를 이룬 오세호를 맡아 주연급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방영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조증을 앓는 유력 국회의원의 막내아들 권기도로 등장해 정신병자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 단 2회 출연으로 존재감을 깊이 각인시켰다.

연기는 연기일 뿐, 실제 곽동연은 바른생활 사나이로 잘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MBC ‘나혼자 산다’에 최연소 무지개 회원으로 나와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홀로 대전에서 상경해 기획사에서 제공해준 반지하 숙소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교복까지 다림질해 등교하는 모습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2019년 출연한 ‘라디오스타’에서 한 “신세 망칠까봐 클럽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는 발언 역시 그의 이미지를 더욱 반듯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됐다.

까면 깔수록 매력이 넘치는 곽동연을 드라마 ‘빈센조’ 종영 이후 온라인 인터뷰로 만났다. 곽동연은 쏟아지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면서 재차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인터뷰하는 순간마저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연기의 자산”이라고 말하는 속 깊은 청년 곽동연을 한층 깊이 알아간 시간이었다.

‘곽동연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어요.

발견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어느덧 연기를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허투루 연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부분들을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7~8개월 동안 촬영을 했는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끝낼 수 있어서 기분 좋아요.



처음 장한서 역할을 맡았을 때 이렇게 주목을 받을 거라 예감했나요.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작품에 참여한 건 아니에요. 좋은 감독님(함승훈, 조수영 PD), 작가님(박재범 작가)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출연을 결정했던 것뿐이죠. 쟁쟁한 선배들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현장에서 많이 배우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저까지 이렇게 사랑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장한서는 재벌가 서자 출신 그룹 회장으로 극 초반에는 악인이었다가 점점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로 변화해 나가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연기했나요.

장한서의 성장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리고자 노력했어요. 캐릭터를 분석하며 떠올린 건 ‘중후함’이었어요. 장한서에게 회장 직책은 유일한 무기이자 방어구였기 때문에 어린 나이지만 중후해 보이려고 옷도 비싼 걸 입었고, 헤어스타일에도 신경 썼죠. 그런 외부적인 모습들로 바닥에 가까운 자존감을 감추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극 중반 빈센조를 만나고 변화하면서부터는 캐주얼한 옷에 포멀한 머리스타일로 변화를 주는 등 허영을 벗어던진 20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했어요.

빈센조를 만난 이후 변화 과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연기하는데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한서가 처음 빈센조를 만났을 때는 자꾸 일을 크게 벌이는 그를 보며 ‘능력자다!’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했어요. 그러다가 형인 장한석을 빈센조가 손쉽게 이기는 걸 보고 ‘이 사람이 앞으로 내 인생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는 걸 직감하게 되죠. 빈센조와 인간적으로 교류한 이후부터는 단순히 능력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내 형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요. 그런 심리적인 변화를 매순간 진정성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결국 빈센조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으로 죽음을 맞이해요. 결말이 마음에 들었나요.

많은 분들이 한서가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셨어요. 저도 마지막 회 대본이 나오기 전까지 몰랐어요. 항상 죽을 것 같기도, 살 것 같기도 한 인물이었죠. 그래서 감독님께도 어떻게 되냐고 재차 물어봤는데 20부 대본을 보고 나서야 한서의 죽음을 알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한서에게 딱 좋은 결말을 맞이했다고 생각해요. 빈센조라는 작품을 시작할 때 제가 생각하고 있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한서를 통해 얻고 싶었던 지점을 정확히 이뤄낸 결말이었거든요. 시청자분들도 보시고 수긍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송중기 배우와의 케미도 상당히 좋았어요. 어떤 자극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송중기 선배께 정말 많이 배우고 느꼈어요. 좋은 점을 얘기 하라면 3박4일 동안 이야기 할 수 있을 거 같아요(웃음). ‘빈센조’라는 드라마의 빈센조 역할이니까 분량이 얼마나 많겠어요. 선배님은 8개월 동안 3일씩 밤새며 촬영하면서도 현장에서 피곤한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저와 둘이 나오는 장면도 어떻게 연기할지 미리 상의하면서 “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해”라고 배려해줘서 고마웠고요. 연기도 연기지만 원톱 주인공으로서 현장을 아우르는 자세도 너무 멋졌어요. 배우든 스태프든 그 누구에게도 안 좋은 이야기하지 않았고 다 보듬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많은 걸 느꼈어요. ‘아무나 저런 위치에 오르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극중에서 한서가 빈센조를 동경하듯 저도 배우로서 송중기 선배님을 존경하고 여러 부분을 닮고 싶어요.

김여진 배우와는 3번째로 함께 출연한 작품이에요. 각별한 사이겠어요.

3번째 함께한 작품이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한 번도 겹치는 신이 없어서 만나 뵙지 못했고, ‘복수가 돌아왔다’에서는 사이가 좋지 않은 모자지간으로 등장했죠. 이번에 선배님이 캐스팅됐다고 해서 기뻤어요. 현장에서 김여진 선배님은 대장님이에요. 특히 저희 악역들 가운데 대장으로서 지도편달을 많이 해주셨어요(웃음). 과하게 한 발짝 나가면 잡아주시기도 하고, 또 방송 나간 뒤 “잘했다”고 문자 보내주시는 등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셨죠.

송중기 배우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이 입을 모아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했는데, 실제 어땠는지 자랑 좀 해주세요.

송중기 선배님 말씀에 100% 동의해요. 전 사실 드라마 중반까지는 금가프라자 식구들을 만날 일이 없었어요. 하루는 세트 촬영이 겹쳐서 선배들 촬영하는 걸 지켜봤다가 처음 말을 걸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금가프라자 식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촬영 끝나고 5시간 정도 집에 가지 않고 현장에 남아 있었을 정도예요. 폭탄이 설치된 RC카에 쫓기는 장면을 찍으며 정보원으로 출연한 임철수 형(안기석 역)을 처음 만났는데 서로 TV로만 봤으니 반가워서 끌어안았어요. “너무 잘 보고 있다”며 팬이라고 말했죠(웃음). 또 저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이 많았던 조한철(한승혁 역) 선배님께도 많이 배웠어요. 훨씬 연장자이신데도 불구하고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덕분에 재미있는 장면도 많이 나왔거든요. 저도 훗날 한철 선배님처럼 유쾌하게 후배들과 호흡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실제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데다가 극중 장한서도 나이가 잘 가늠하기 어려운 역할이었어요. 배역에 따라 나이가 자주 바뀌는데, 스스로 몇 살이라고 생각하나요.

항상 장난식으로 ‘저 사실 1897년생이에요’라고 말해왔어요(웃음). 예전에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한 적이 많아서 나이보다 성숙하게 보이고 싶었거든요.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 성숙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빈센조를 촬영하며 너무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아! 나는 한참 어리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스무 살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그때의 열정을 갖고 열심히 연기하려고 해요.

벌써 데뷔한지 9년인데,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특별히 애착을 갖는 캐릭터가 있을까요.

모든 작품이 다 기억에 남는데,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갓병연’이라는 별칭을 갖게 해준 김병연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가슴 아픈 서사를 가진 인물이어서 개인적으로 연기하기에 좋은 기회가 됐거든요. 최근 우연히 영상 클립을 봤는데 ‘다시 연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운 마음도 생겨서 더욱 애정이 생기는 캐릭터예요.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특별출연했는데 워낙 독특한 역할이라 오랫동안 회자됐어요.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제 생각에 많은 배우들이 조증을 앓는 국회의원 막내아들 권기도 역할을 탐냈을 것 같아요. 누가 봐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으니까요. 그래서 더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정확한 병명이 나왔기 때문에 허투루 연기하고 싶지 않아서 의학 자문도 구하고, 연습도 많이 했죠. 특히 감독님이 다양한 촬영 기법을 시도하셔서 그에 맞춰 연기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요즘도 헬스클럽에 꾸준히 가면서 자기관리를 하고 있어요. 원래도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지만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부터는 더욱 집에만 있는 편이에요. 촬영이 끝난 후로는 집을 보다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과거 인터뷰에서 “연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적은 없었다”고 확고하게 말한 바 있는데 지금도 그 말은 유효한가요.

저는 배우 일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해요. 오래도록 해나갈 수 있도록 지금처럼 계속해서 노력해나갈 거예요. 몇 년 사이 드라마 플랫폼도 많아지고, 편수도 늘어서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그런 시대 흐름에 도태되지 않고 발맞춰 가는 게 또 다른 숙제가 된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공부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늘 하고 있어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요.

연기 공부가 어려우면서도 쉬운 게 언제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기자님들과 이렇게 화상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앞으로 언젠가 촬영할 수도 있죠. 지금의 이 경험이 연기하는데 노하우가 될 거고요. 일상을 보내는 모든 시간이 필요한 소스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일상의 느낌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또 저는 연기하는 데 있어 시청각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항상 챙겨 봐요. 대중이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배우로서 선구안도 갖추기 위해 살펴보고요. 문학이나 어떤 언어능력에 있어서도 항상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련 서적도 찾아 읽는 편이에요.

미래가 더 기대되는 배우인데 앞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을까요.

예전에는 인생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그에 맞춰 살았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하루하루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촬영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그에 집중하고, 오늘 인터뷰가 있다면 집중해서 잘 마무리해요. 어떤 최종 목표를 정해서 달려 나가기보다는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진제공 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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