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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column

말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

이성배 아나운서

입력 2021.05.07 10:30:01

헌이가 시무룩하다. 지난 한 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해 미안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아이가 서먹하게 대하기에 섭섭함을 토로하나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마디 건넸다.

나 : 헌아, 남자답게 아빠한테 뭐가 속상한지 이야기해야지?
헌이 :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 : 아빠가 이번 주에 많이 못 놀아줘서 그래?
헌이 : 부회장에 당선된 정환(가명)이 때문이에요. 너무 잘난 척하잖아요.


아차 싶었다. 헌이가 3학년 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벌써 회장 선거에 출마할 나이가 된 헌이를 보면서 뿌듯해했다. 그러는 한편 막연히 ‘잘되겠지’ 하며 기대만 하고 도와준 건 없었다. 나의 무관심(?) 속에 헌이는 회장 선거에서 탈락했다. 당시 회장 선거에서 1표 차로 회장 자리를 내주고 부회장 선거로 내려온 헌이가, 부회장 후보자와 새로운 대결에서 발표 실력이 부족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 속상해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명색이 아나운서 아들인데 ‘말을 잘 못해서’ 선거에서 졌다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무엇보다 헌이가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진 것을 속상해하는 게 가슴 아팠다.

이 칼럼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요청받았던 내용은 역시, 자녀들을 위한 말하기(스피치) 및 발표(프레젠테이션) 교육법에 대한 것이었다. 딱히 말하기를 교육한 적도 없고, 내 아들이니까 당연히 잘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말하기 능력은 선천적이기보다는 후천적 훈련이 더 중요한 듯하다. 회장 선거에서 떨어진 날 화를 주체하지 못하던 헌이를 다시 떠올리면서, 아무래도 헌이에게 ‘말하기 교육’을 해줘야겠다 싶었다.

말하기 능력 향상을 위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를 보려고 헌이의 평소 습관을 관찰했다. 사실 헌이는 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은 의지와 욕심은 있었지만, 그에 맞는 적절한 준비와 자세가 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우선 헌이에게 교우 관계를 짚어주었다. 더 많은 친구들과 지금보다 가깝게 지내기 위해 스스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물었더니 여자아이들과 친하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와 신경 쓰였다. 엄마의 부재로 인한 영향도 있을 듯하여 이 부분은 장기적으로 보기로 했다. 다만 친구들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헌이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으로는 솔선수범이다. 리더는 기본적으로 ‘먼저’ 해야 한다. 회장과 부회장 다음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서 헌이가 2학기 회장 후보임을 자연스럽게 알리도록 했다. 다행스럽게도 헌이는 앞장서는 것만큼은 알아서 잘하고 있다며 웃어주었다.



마지막으로는 분명한 발표 태도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온라인 화상 교실로 공부하는 헌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표할 때마다 손도 자신 있게 들지 않고, 발언할 때 끝을 웅얼거리며 흐리는 것을 반복했다. 내 아들이 말할 때 자신감 없이 웅얼대는 것을 보면서 당황했다. 자세와 방법, 태도보다 우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로 했다.

요즘은 스피치 대회라고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웅변이나 나의 주장 말하기 대회라고 칭했다. 사실 힘주어 발표하는 연습으로는 ‘웅변’이 최고다. 헌이에게도 어렸을 때 내가 하던 웅변 방식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을 시키고 영상을 찍어서 보여주었다. 맘에 든 표정이었다. 반복 훈련을 시켰더니 말할 때 조금씩 힘도 들어가고, 할머니와 의견을 주고받을 때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주 1회 아빠 특강을 통해 꾸준히 연습을 시킬 생각이다.

얼마 전 재·보궐 선거가 끝이 났다. 선거는 어른들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 모든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어른들의 선거 과정을 들여다보며 다 배우고 있다. 헌이는 어른들의 정치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지금은 집권 여당의 반대편인 야당이다. 집권당이 잘못하면 그 빈틈으로 야당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다. 지금의 갈고닦는 노력은 빛을 볼 것이다. 헌이의 2학기 회장 선거가 기대되는 이유다.

‘싱글 대디’ 아놔리의 육아 라이프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8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여성동아 2021년 5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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