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으로 수익을 낸다는 건 마음 고생의 댓가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1월 삼성전자에 1천만원을 투자했다가 하락장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같은 시기에 투자했던 회사 동료는 지난 가을 투자금이 평균단를 회복하자마자 팔았는데 지금 후회한대요.”
주식 투자 2년차에 접어든 30대 워킹맘 임 모 씨는 지난해 봄, 여름 내내 남편에게 왜 삼성전자에 투자했느냐는 잔소리를 듣다가 가을부터 전세가 역전돼 한숨 돌렸다. 최근에는 대출을 받아 더 매수하자는 남편을 말리고 있다고. 임 씨는 “큰 수익을 내고나서부턴 유튜브를 보며 더 열심히 주식투자 공부를 하고 있다. 은행 적금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아이 학원비나 벌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3개월 전 주식 시장에 뛰어든 40대 주부 ‘주린이’ 김 모 씨도 성공적인 걸음마를 뗐다. 지금까지 1백만원 정도 수익을 거뒀으니 목표한 대로 자녀 영어 학원 석 달치 수강료는 번 셈이다. 김 씨는 “지금 장이 좋다던데 다들 주식으로 돈 벌 때 나만 안 하면 손해”라며 “큰 욕심 안 내고 지금처럼 내 여유 자금 안에서 계속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2021년 1월 6일, 코스피 지수가 2007년 2000선을 돌파한 이후 14년 만에 3000선을 넘겼다. ‘줌마 버핏’ ‘우먼 버핏’ 등 여성들과 주식 투자계의 거물 워런 버핏을 합성한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증권 시장으로 여성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성적이 남성을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NH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11월 새로 개설된 신규 주식 계좌 70만 개 가운데 여성 투자자들의 평균 수익률은 24.2%, 남성 투자자는 18.3%였다. 특히 30대와 40대 여성의 수익률은 각각 26%, 25.7%로 비교군 중 가장 높았다.
주식 투자에서 여성 투자자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비단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다. 2014년 삼성증권에서 실시한 실전투자대회에서 최고 수익률을 거둔 5백만원 리그 1위를 비롯해 1억원 리그 2위, 수익금 리그 1위 수상자 등이 30~40대 여성 참가자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05년 당시 대우증권이 실시한 모의투자대회에서 여성의 평균 수익률은 3.43%로 남성(2.10%)보다 높았고, 같은 해 한화증권이 실시한 실전투자대회에서도 여성 참가자의 평균 수익률(13.46%)이 남성보다 1.13%p 앞섰다.
당시 대회를 주관했던 한화증권 관계자는 “여성보다 남성이 다소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지니고 있어 수익이 날 때는 크게 나지만, 손실 규모 역시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균적인 수익률 면에서는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여성이 유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투자 성향 차이는 투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새해를 맞아 우먼 버핏을 꿈꾼다면 여자의 또 어떤 성향이 주식 투자를 성공으로 이끄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백은영 경희사이버대 금융부동산학부 교수는 이 같은 남녀의 거래 패턴 차이를 행동경제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백은영 교수는 “주식에 성공하는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는 장기 투자인데 남자들은 스스로를 과신하는 성향이 짙어 매매를 자주 하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UC 데이비스의 브래드 바버 교수와 UC 버클리의 터랜스 오딘 교수는 1991년부터 6년간 3만5천 가구의 주식 계좌를 살펴본 후 자신이 주가 예측을 잘한다고 믿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빈번히 주식 매매에 임하고 결국 더 낮은 투자 수익을 거둔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유명한 주식 투자 격언처럼 적당히 쌀 때 매수해 비싸게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매매 타이밍을 맞추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뿐더러 투자는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에 장기 투자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로 들면 2017년 9월 첫 재산 공개 당시 강 장관이 보유한 삼성전자 2백 주는 2019년 3월 재산 공개에선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보유 주식 2백 주가 50 대 1 액면분할로 1만 주가 된 것. 심지어 2019년 3월 신고된 평가액 3억8천7백만원은 딱 1년 뒤인 지난해 3월 재산 공개에선 5억5천8백만원으로 뛰었다. 강 장관이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지금까지 갖고 있다면 평가금은 8억9천만원(1월 14일 종가 기준)에 이른다.
이처럼 멀리 보고 인내하다 보면 확실히 단타보단 장기 투자가 더 큰 수익을 가져다 준다. 때문에 재테크에 밝은 엄마들 중에는 적금 붓듯 우량주를 아이 이름으로 사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주요 7개 증권사에 새로 개설된 미성년자 계좌는 31만5백54개로 전년 3만4천8백35개 대비 791%나 급증했다. 10년마다 미성년자 자녀에게 2천만원까지 비과세 증여가 가능하고, 증여한 현금으로 매입한 주식의 주가 상승으로 평가금이 올라도 평가 차익에 대한 증여세를 물지 않는다. 미성년 자녀 이름으로 주식 계좌 개설 시에는 자녀 본인 명의 주민등록초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부모 신분증과 도장 등 여러 서류와 준비물을 갖춰야 한다. 또 주식을 살 때나 증여 신고를 할 때는 자녀 명의 인증서가 필요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공격적이며 여자는 남자보다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남녀의 성향 차이는 매수 종목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NH투자증권 신규 계좌를 통해 주식 투자한 3040 여성들 역시 기업 가치가 높은 우량 종목들을 주로 택했다. 1위는 삼성전자이며 카카오, KODEX 레버리지, 씨젠, 현대차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남성의 경우 KODEX 200 선물인버스 2X, 삼성전자, KODEX 레버리지, 신풍제약, 씨젠 순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여성들은 지난해 봄 코로나19가 촉발한 폭락장에서도 삼성전자라는 국내 증시 대장주를 믿고 매수했지만 남성들은 오히려 시장 하락에 베팅했다는 점이다. 남성들이 가장 많이 산 ‘KODEX 200 선물인버스 2X’는 일명 ‘곱버스’로 불리며 주가가 하락할 때 2배로 수익을 얻는다. 결과는 알다시피 대형주 위주 상승장이 펼쳐지면서 오히려 초보 주린이들이 수익을 거뒀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김승규 팀장은 “장기 투자할 때와 투자 초보인 경우 주가 지수를 대표하는 리딩 컴퍼니에 투자하는 게 안전한 방법”이라며 “리딩 컴퍼니는 다른 기업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고 업계를 선도하다 보니 EPS(주당순이익)가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꼭 삼성전자가 아니어도 새해 첫날부터 SK하이닉스, 현대차, LG전자 등 대형주들이 줄줄이 신고가를 기록했다. 초저금리와 부동산 규제 등으로 인한 시중의 유동성이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나는 우량 대형주에 몰렸다. 현재 국내 시가총액 10위 기업들을 보면 코로나19 이후로도 전망이 밝은 반도체, IT, 2차전지, 헬스케어 등에 포진해 있는 만큼 증권가에서는 대형주 중심의 장세가 조금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형주만큼 비교적 위험성이 덜한 투자가 바로 ‘가치 투자’다. ‘워런 버핏은 왜 여자처럼 투자할까?’의 저자이자 투자 상담가인 루앤 로프턴은 여성인 전문 투자가들의 성과를 분석한 후 그들의 투자 방식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누누이 강조한 가치 투자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워런 버핏 회장의 투자법은 한마디로 저평가된 좋은 주식을 적절한 가격에 사서 충분한 수익률을 올릴 때까지 보유하는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당장의 이익이 예상되는 성장주에 먼저 눈이 간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가치주는 폭등하진 않지만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10년 넘게 꾸준히 오른다. 성장주는 보통 짧고 굵다. 대표적인 성장주이자 거품론에 시달리는 테슬라의 경우가 그러하다. 지난해 주가가 743% 급등한 테슬라는 전체 주식 가치가 1년간 순이익보다 1천 배 이상 크다. 고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물론 친환경을 앞세운 바이든 정부가 있기에 앞으로 얼마큼 더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늘 그렇듯 판단은 투자자의 몫이다.
다만, 보다 짜임새 있는 수익 구조를 위해서라면 우먼 버핏들이라 할지라도 가치주, 대형주보단 올 한 해 포트폴리오를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을 겪으며 글로벌 경제는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이 경제를 주도하는 테크노믹스 시대에 진입했다”며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한 경제 및 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주식 시장에서 논쟁의 틀을 성장주와 가치주 간 이슈가 아닌 성장 산업과 좌초 산업 간 선택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시류만 잘 타면 한몫 벌 수 있는 테마주가 유행할 때도 우먼 버핏들이 욕심내지 않고 우직하게 내 갈 길을 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앞서 살펴본 NH투자증권 자료에서 여자 순위권엔 없지만 남자 순위권에는 있었던 종목이 ‘신풍제약’이다. 신풍제약은 지난해 증시를 휩쓴 3대 테마인 백신테마주, 친환경주, 우선주 중 백신테마주에 속한다. 이들 테마주는 상승률이 높기 때문에 단타로 큰 수익을 거두려는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러나 테마주를 따라잡으려면 여기저기서 그만큼 ‘정확한’ 정보를 ‘빨리’ ‘많이’ 확보해야 한다.
한 모바일 기기 업체의 신제품 이슈로 뜨거웠던 2017년, 대학 동창 단체 채팅방에서 오간 정보를 바탕으로 그 기업의 하청 업체를 매수했던 30대 주부 홍 모 씨는 수익은커녕 원금 회수에 실패했다. 부품 불량설에 휘말리며 하청업체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단 소문이 돌아 폭락하는 걸 지켜보다 결국 손절매했다. 홍 씨는 “주부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접하는 고급 정보의 양이나 정확도 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그 후로 친구들이 아무리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다 해도 테마주는 속 편하게 거른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등 테마주가 부상하면서 크게 관련 없는 기업의 주가까지 오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관련 유사 테마주는 주가 변동성이 크고 재료 소진에 따른 주가 급락도 이어지는 만큼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백은영 교수 역시 “소비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여성들은 어떤 섹터가 상승 중인지 전문적으로 알지 못해도 요즘은 어떤 게 유행인지는 잘 안다”며 “트렌드에 밝은 성향이 특히 소비재 투자 시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남성 애널리스트들도 화장품, 인테리어 등 자신이 잘 모르는 생활 밀착형 분야는 아내에게 조언을 받기도 한다.
물론 소비의 흐름을 읽는 촉이 남다르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된다. 반도체, 바이오 등 생소한 분야에 투자할 때에는 관심 이상의 객관적인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성공한다.
3040 여성 투자자 중에도 소득이 있을 때 공격적으로 재테크를 해두려는 경우가 있다. 이런 투자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수익이 났을 때 수익금을 다른 계좌로 옮겨놓지 않고 원금에 그만큼을 합쳐 더 크게 투자하는 것이다. 미래에셋 자산운용 김승규 팀장은 “주식은 아홉 번 잘해도 한 번 실패하는 게 뼈아프다. 상한가 20번으로 고수익을 내도 하한가 3번이면 제자리이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1억이 2억으로 불어났을 때 바로 원금 1억을 제외한 1억을 다른 곳으로 배분해 안정적으로 분산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주식 전문가 맹신은 금물
남성 투자자들이 자기자신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면 여성 투자자들은 돌다리를 지나치게 두드려보는 편이다. 물론 전문가나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귀가 얇은 게 문제. 경제 유튜브 채널이 인기이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비전문가들의 채널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고급 정보를 제공한다는 주식 리딩방, 유튜브 유료 멤버십도 성황이다. 그러다 보니 주식 리딩방 운영자가 추천 예정인 종목을 미리 매수한 후 회원들에게 권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가를 조작한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의도하지 않게 주가 조작에 연루될 위험도 있는 상황.
금융감독원은 “리딩방 운영자는 투자 상담 자격을 검증받지 않아 투자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높고 손실 발생 시 손해배상 청구도 어렵다”며 “신속한 적발 및 피해자 구제도 쉽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억하자. 진짜 전문가나 부자는 인터넷에 댓글을 달 시간도, 푼돈을 욕심낼 이유도 없다.
공부, 또 공부만이 살길
백은영 경희사이버대 금융부동산학부 교수는 “지난해는 장이 좋아서 대개 수익이 났다. 그런데 ‘내가 투자를 잘해서’라고 착각해 더 큰 액수로 투자에 뛰어든다면 위험에 빠지기 쉽다. 2007년에 지금과 비슷한 주식 붐이 일었다가 다음해 경제 공황이 왔던 걸 알아야 한다”며 거품 시그널을 읽고 대비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초보라면 지금은 종목 분석을 철저하게 하고 위험 관리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또한 금융 당국이 오는 3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금지한 공매도 재개는 증시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고 있다. 백 교수는 “모르고 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꼬집으며 “주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거 시장에 참여했다가 공포에 휩쓸리게 되면 그땐 너도나도 내던지는 대량 투매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사진 게티이미지
주식 투자 2년차에 접어든 30대 워킹맘 임 모 씨는 지난해 봄, 여름 내내 남편에게 왜 삼성전자에 투자했느냐는 잔소리를 듣다가 가을부터 전세가 역전돼 한숨 돌렸다. 최근에는 대출을 받아 더 매수하자는 남편을 말리고 있다고. 임 씨는 “큰 수익을 내고나서부턴 유튜브를 보며 더 열심히 주식투자 공부를 하고 있다. 은행 적금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아이 학원비나 벌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3개월 전 주식 시장에 뛰어든 40대 주부 ‘주린이’ 김 모 씨도 성공적인 걸음마를 뗐다. 지금까지 1백만원 정도 수익을 거뒀으니 목표한 대로 자녀 영어 학원 석 달치 수강료는 번 셈이다. 김 씨는 “지금 장이 좋다던데 다들 주식으로 돈 벌 때 나만 안 하면 손해”라며 “큰 욕심 안 내고 지금처럼 내 여유 자금 안에서 계속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2021년 1월 6일, 코스피 지수가 2007년 2000선을 돌파한 이후 14년 만에 3000선을 넘겼다. ‘줌마 버핏’ ‘우먼 버핏’ 등 여성들과 주식 투자계의 거물 워런 버핏을 합성한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증권 시장으로 여성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성적이 남성을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NH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11월 새로 개설된 신규 주식 계좌 70만 개 가운데 여성 투자자들의 평균 수익률은 24.2%, 남성 투자자는 18.3%였다. 특히 30대와 40대 여성의 수익률은 각각 26%, 25.7%로 비교군 중 가장 높았다.
주식 투자에서 여성 투자자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비단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다. 2014년 삼성증권에서 실시한 실전투자대회에서 최고 수익률을 거둔 5백만원 리그 1위를 비롯해 1억원 리그 2위, 수익금 리그 1위 수상자 등이 30~40대 여성 참가자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05년 당시 대우증권이 실시한 모의투자대회에서 여성의 평균 수익률은 3.43%로 남성(2.10%)보다 높았고, 같은 해 한화증권이 실시한 실전투자대회에서도 여성 참가자의 평균 수익률(13.46%)이 남성보다 1.13%p 앞섰다.
당시 대회를 주관했던 한화증권 관계자는 “여성보다 남성이 다소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지니고 있어 수익이 날 때는 크게 나지만, 손실 규모 역시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균적인 수익률 면에서는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여성이 유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투자 성향 차이는 투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새해를 맞아 우먼 버핏을 꿈꾼다면 여자의 또 어떤 성향이 주식 투자를 성공으로 이끄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1 거북이처럼 묵묵히 장기 투자
먼저 여자와 남자는 거래 패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NH투자증권 신규 계좌 분석에 따르면 주식 거래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수치화한 회전율이 남자는 40%, 여자는 24%로 남자가 여자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68.3%로 가장 높은 회전율을 기록한 20대 남자들의 경우 투자 수익률은 3.8%로 가장 낮았다.백은영 경희사이버대 금융부동산학부 교수는 이 같은 남녀의 거래 패턴 차이를 행동경제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백은영 교수는 “주식에 성공하는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는 장기 투자인데 남자들은 스스로를 과신하는 성향이 짙어 매매를 자주 하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UC 데이비스의 브래드 바버 교수와 UC 버클리의 터랜스 오딘 교수는 1991년부터 6년간 3만5천 가구의 주식 계좌를 살펴본 후 자신이 주가 예측을 잘한다고 믿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빈번히 주식 매매에 임하고 결국 더 낮은 투자 수익을 거둔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유명한 주식 투자 격언처럼 적당히 쌀 때 매수해 비싸게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매매 타이밍을 맞추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뿐더러 투자는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에 장기 투자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로 들면 2017년 9월 첫 재산 공개 당시 강 장관이 보유한 삼성전자 2백 주는 2019년 3월 재산 공개에선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보유 주식 2백 주가 50 대 1 액면분할로 1만 주가 된 것. 심지어 2019년 3월 신고된 평가액 3억8천7백만원은 딱 1년 뒤인 지난해 3월 재산 공개에선 5억5천8백만원으로 뛰었다. 강 장관이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지금까지 갖고 있다면 평가금은 8억9천만원(1월 14일 종가 기준)에 이른다.
이처럼 멀리 보고 인내하다 보면 확실히 단타보단 장기 투자가 더 큰 수익을 가져다 준다. 때문에 재테크에 밝은 엄마들 중에는 적금 붓듯 우량주를 아이 이름으로 사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주요 7개 증권사에 새로 개설된 미성년자 계좌는 31만5백54개로 전년 3만4천8백35개 대비 791%나 급증했다. 10년마다 미성년자 자녀에게 2천만원까지 비과세 증여가 가능하고, 증여한 현금으로 매입한 주식의 주가 상승으로 평가금이 올라도 평가 차익에 대한 증여세를 물지 않는다. 미성년 자녀 이름으로 주식 계좌 개설 시에는 자녀 본인 명의 주민등록초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부모 신분증과 도장 등 여러 서류와 준비물을 갖춰야 한다. 또 주식을 살 때나 증여 신고를 할 때는 자녀 명의 인증서가 필요하다.
2 가치주·대형주 위주로 ‘안전 추구’
여성 투자자들은 시류를 타는 테마주보다 대형주, 가치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여성들은 지난해 봄 코로나19가 촉발한 폭락장에서도 삼성전자라는 국내 증시 대장주를 믿고 매수했지만 남성들은 오히려 시장 하락에 베팅했다는 점이다. 남성들이 가장 많이 산 ‘KODEX 200 선물인버스 2X’는 일명 ‘곱버스’로 불리며 주가가 하락할 때 2배로 수익을 얻는다. 결과는 알다시피 대형주 위주 상승장이 펼쳐지면서 오히려 초보 주린이들이 수익을 거뒀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김승규 팀장은 “장기 투자할 때와 투자 초보인 경우 주가 지수를 대표하는 리딩 컴퍼니에 투자하는 게 안전한 방법”이라며 “리딩 컴퍼니는 다른 기업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고 업계를 선도하다 보니 EPS(주당순이익)가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꼭 삼성전자가 아니어도 새해 첫날부터 SK하이닉스, 현대차, LG전자 등 대형주들이 줄줄이 신고가를 기록했다. 초저금리와 부동산 규제 등으로 인한 시중의 유동성이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나는 우량 대형주에 몰렸다. 현재 국내 시가총액 10위 기업들을 보면 코로나19 이후로도 전망이 밝은 반도체, IT, 2차전지, 헬스케어 등에 포진해 있는 만큼 증권가에서는 대형주 중심의 장세가 조금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형주만큼 비교적 위험성이 덜한 투자가 바로 ‘가치 투자’다. ‘워런 버핏은 왜 여자처럼 투자할까?’의 저자이자 투자 상담가인 루앤 로프턴은 여성인 전문 투자가들의 성과를 분석한 후 그들의 투자 방식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누누이 강조한 가치 투자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워런 버핏 회장의 투자법은 한마디로 저평가된 좋은 주식을 적절한 가격에 사서 충분한 수익률을 올릴 때까지 보유하는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당장의 이익이 예상되는 성장주에 먼저 눈이 간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가치주는 폭등하진 않지만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10년 넘게 꾸준히 오른다. 성장주는 보통 짧고 굵다. 대표적인 성장주이자 거품론에 시달리는 테슬라의 경우가 그러하다. 지난해 주가가 743% 급등한 테슬라는 전체 주식 가치가 1년간 순이익보다 1천 배 이상 크다. 고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물론 친환경을 앞세운 바이든 정부가 있기에 앞으로 얼마큼 더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늘 그렇듯 판단은 투자자의 몫이다.
다만, 보다 짜임새 있는 수익 구조를 위해서라면 우먼 버핏들이라 할지라도 가치주, 대형주보단 올 한 해 포트폴리오를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을 겪으며 글로벌 경제는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이 경제를 주도하는 테크노믹스 시대에 진입했다”며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한 경제 및 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주식 시장에서 논쟁의 틀을 성장주와 가치주 간 이슈가 아닌 성장 산업과 좌초 산업 간 선택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3 내 사전에 ‘한 방’은 없다
주식 투자의 승패는 누가 더 무리하지 않고 적은 실수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 방’을 노리다간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 ‘부자언니’로 유명한 자산관리사 유수진 루비스톤 대표는 “남자들은 차근차근 재테크해서 언제 부자 되느냐는 식이지만 여자들은 지구력이 있어서 전략을 세워 해나가는 걸 힘들어하지 않는다”며 “‘인생 한 방’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일 때나 가능하던 얘기”라고 설명했다. 유수진 대표에 따르면 두 자릿수 성장률을 올리고 누구나 열심히 살면 한 방 노릴 수 있던 때는 지났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선 여자들의 착실한 재테크 전략이 더 잘 들어맞는다고 한다.시류만 잘 타면 한몫 벌 수 있는 테마주가 유행할 때도 우먼 버핏들이 욕심내지 않고 우직하게 내 갈 길을 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앞서 살펴본 NH투자증권 자료에서 여자 순위권엔 없지만 남자 순위권에는 있었던 종목이 ‘신풍제약’이다. 신풍제약은 지난해 증시를 휩쓴 3대 테마인 백신테마주, 친환경주, 우선주 중 백신테마주에 속한다. 이들 테마주는 상승률이 높기 때문에 단타로 큰 수익을 거두려는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러나 테마주를 따라잡으려면 여기저기서 그만큼 ‘정확한’ 정보를 ‘빨리’ ‘많이’ 확보해야 한다.
한 모바일 기기 업체의 신제품 이슈로 뜨거웠던 2017년, 대학 동창 단체 채팅방에서 오간 정보를 바탕으로 그 기업의 하청 업체를 매수했던 30대 주부 홍 모 씨는 수익은커녕 원금 회수에 실패했다. 부품 불량설에 휘말리며 하청업체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단 소문이 돌아 폭락하는 걸 지켜보다 결국 손절매했다. 홍 씨는 “주부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접하는 고급 정보의 양이나 정확도 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그 후로 친구들이 아무리 단기간에 수익을 낼 수 있다 해도 테마주는 속 편하게 거른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백신 등 테마주가 부상하면서 크게 관련 없는 기업의 주가까지 오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관련 유사 테마주는 주가 변동성이 크고 재료 소진에 따른 주가 급락도 이어지는 만큼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4 트렌드를 읽는 힘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유행에 민감한 편이다. 특히 3040 여성 중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구입하는 주부가 많다 보니 음식료·교육·헬스케어 등 어떤 제품이 우수하고 인기 있는지, 현재 장바구니 물가가 어떤지 빠삭하다. 때론 이런 익숙함이 투자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투자법이다. 주식 투자 전문가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자신의 투자 원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가에 주목하는데 출발지는 소비”라며 “내 지갑을 열리게 하는 회사 주식에 투자하라”고 밝힌 바 있다.백은영 교수 역시 “소비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여성들은 어떤 섹터가 상승 중인지 전문적으로 알지 못해도 요즘은 어떤 게 유행인지는 잘 안다”며 “트렌드에 밝은 성향이 특히 소비재 투자 시에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남성 애널리스트들도 화장품, 인테리어 등 자신이 잘 모르는 생활 밀착형 분야는 아내에게 조언을 받기도 한다.
물론 소비의 흐름을 읽는 촉이 남다르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된다. 반도체, 바이오 등 생소한 분야에 투자할 때에는 관심 이상의 객관적인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성공한다.
현명한 투자를 꿈꾸는 우먼 버핏이라면, 이것만은 꼭 지키자!
수익금 이동시켜놓기3040 여성 투자자 중에도 소득이 있을 때 공격적으로 재테크를 해두려는 경우가 있다. 이런 투자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수익이 났을 때 수익금을 다른 계좌로 옮겨놓지 않고 원금에 그만큼을 합쳐 더 크게 투자하는 것이다. 미래에셋 자산운용 김승규 팀장은 “주식은 아홉 번 잘해도 한 번 실패하는 게 뼈아프다. 상한가 20번으로 고수익을 내도 하한가 3번이면 제자리이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1억이 2억으로 불어났을 때 바로 원금 1억을 제외한 1억을 다른 곳으로 배분해 안정적으로 분산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주식 전문가 맹신은 금물
남성 투자자들이 자기자신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면 여성 투자자들은 돌다리를 지나치게 두드려보는 편이다. 물론 전문가나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귀가 얇은 게 문제. 경제 유튜브 채널이 인기이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비전문가들의 채널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고급 정보를 제공한다는 주식 리딩방, 유튜브 유료 멤버십도 성황이다. 그러다 보니 주식 리딩방 운영자가 추천 예정인 종목을 미리 매수한 후 회원들에게 권하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가를 조작한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의도하지 않게 주가 조작에 연루될 위험도 있는 상황.
금융감독원은 “리딩방 운영자는 투자 상담 자격을 검증받지 않아 투자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높고 손실 발생 시 손해배상 청구도 어렵다”며 “신속한 적발 및 피해자 구제도 쉽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억하자. 진짜 전문가나 부자는 인터넷에 댓글을 달 시간도, 푼돈을 욕심낼 이유도 없다.
공부, 또 공부만이 살길
백은영 경희사이버대 금융부동산학부 교수는 “지난해는 장이 좋아서 대개 수익이 났다. 그런데 ‘내가 투자를 잘해서’라고 착각해 더 큰 액수로 투자에 뛰어든다면 위험에 빠지기 쉽다. 2007년에 지금과 비슷한 주식 붐이 일었다가 다음해 경제 공황이 왔던 걸 알아야 한다”며 거품 시그널을 읽고 대비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초보라면 지금은 종목 분석을 철저하게 하고 위험 관리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또한 금융 당국이 오는 3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금지한 공매도 재개는 증시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고 있다. 백 교수는 “모르고 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꼬집으며 “주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거 시장에 참여했다가 공포에 휩쓸리게 되면 그땐 너도나도 내던지는 대량 투매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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