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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시작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이석원 자주스쿨 대표

EDITOR 정혜연 기자 사진 홍중식 기자

입력 2020.04.17 16:53:39

성범죄가 이슈가 될 때마다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우리 아이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까 걱정에 잠긴다. 성교육 전문가 이석원 자주스쿨 대표에게 성범죄 막는 올바른 성교육에 대해 물었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4년 전 국내 최대 포르노 유통 사이트 ‘소라넷’이 폐쇄될 때,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 안도했다. 하지만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포르노를 봐온 이들은 곧장 다른 루트를 찾았다. 그러곤 더 악랄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성노리개 삼아 대량의 포르노를 양산하고, 이를 상품화해 금전 거래까지 하고 있었다. 

n번방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후 피해자들의 어린 나이만큼이나 놀라웠던 건 어마어마한 관람자들의 숫자였다. n번방 텔레그램 가입자만 26만 명이고 중복 아이디를 제외해도 최소 5만 명은 넘을 것이란 보도가 이어졌다. 이들 중 일부는 직접적으로 성범죄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돈을 내고 이를 즐겼던 사람들로 “단순 호기심으로 들어가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몇몇 피해자는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제대로 된 성의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점이 n번방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강도 높은 목소리로 비판했다. 성교육 전문가로 지난 2월 ‘세상 쉬운 우리 아이 성교육’이란 책을 내기도 한 이석원 자주스쿨 대표는 “호기심에 살인했다면 정당화되는가. 우리나라에 성인지 감수성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가해자를 막는 성교육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들었다.

n번방 사건으로 많은 부모의 우려가 크다. 딸을 둔 부모뿐 아니라 아들을 둔 부모 역시 걱정이 큰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요즘은 추세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성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 ‘피해자가 밤늦게 돌아다닌 것이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는 등의 잘못된 프레임을 적용했다. 성범죄는 100% 가해자 잘못이다. 요즘 학부모들은 이에 공감하고 자신의 아들이 혹은 딸이 성범죄 가해자가 될까 우려해 강의를 요청한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자 예방 교육’이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 방지 교육’ 위주로 개념을 달리해서 접근해 강의를 하고 있다.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이들이 왜곡된 성의식으로 성범죄를 일삼는 것이 문제다. n번방 사건의 경우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보는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성교육이라고 하면 갖는 선입견이 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와 임신 과정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성교육’에 있다. n번방 주범 및 가해자들은 성의식보다 인격적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열등감, 타인에 대한 분노 등을 풀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결국 가해자가 된 것으로 본다. 특히 대면할 수 없는 온라인 채널에서 이들은 얼굴 맞대고는 쉽사리 저지를 수 없는 성폭력을 저질렀다. 어릴 때부터 생명은 소중하며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인성교육을 받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내 아이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정에서 어떻게 성교육을 시켜야 하는가. 

집에서 하는 성교육은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프레임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길 바란다. 간혹 아들에게 “넌 남자니까 여자를 때리면 안 돼”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사람은 사람을 때려선 안 돼”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또 요즘에는 부모 자식 간의 스킨십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이 역시 동의를 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엄마가 뽀뽀를 할 때도 신체적, 심리적 동의를 얻는 편이 좋다. 통계적으로 성범죄의 80%는 지인이 저지르는 경우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예뻐하는 정도의 신체적 접촉과 성폭력의 경계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그 경계를 정립시켜줘야 한다. 집에서 샤워 후 아빠나 엄마가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성교육은 생활교육이다. 10대 아이들은 SNS에서 ‘좋아요’ 하나를 받기 위해 엽기적인 사진을 찍는 등 범죄라는 생각조차 없이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가정에서 부모가 먼저 경계를 알려줘야 아이들도 어느 순간 ‘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의문을 제기하고 그에 따라 대응할 수 있다. 

학교나 기관에서의 성교육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가. 

현재 학교에서는 필수 교육과정으로 1년 동안 15시간의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강당에서 전교생을 모아놓고 하는 식인데 전달할 내용에 비해 시간이 부족하다. 또 대체로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 되기 어렵다. 우선 의무교육 시간을 늘려 꾸준히 교육받도록 해야 한다. 강의 내용도 신체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물론 문화적, 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성교육 내용 또한 ‘내 몸을 사랑해야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런 교육은 매우 큰 효과를 나타낸다. 

어릴 때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미 대학생, 고등학생 가운데 왜곡된 성의식을 갖게 된 경우 뒤늦게 받는 성교육이 효과를 나타낼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커서 받는 성교육이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의 경우 입학생 오리엔테이션 때 성범죄가 상당수 발생한다. 한 번은 어느 대학에서 OT 전에 성교육 단체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신입생들에게 술을 마셨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경계해야 하는지 등 술과 성에 대해 전반적인 성교육을 진행했다. 그해 OT에서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나이를 불문하고 성교육을 받으면 그만큼 경계심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사회인이 되기 직전인 대학에서 필수 교육과정으로 성교육을 실시한다면 직장 내 성범죄도 크게 줄 것으로 본다. 

연인 간의 성관계 영상 촬영이나 대화 중 성적인 용어를 말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호기심에 연인끼리 성관계 동영상을 찍기로 합의하고 찍을 수는 있다. 그러나 헤어졌으면 서로가 깨끗하게 지우는 것이 예의다. 촬영에 동의했다고 해서 유포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 여성이든 남성이든 얼굴 평가, 몸 평가를 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4년 전 교육대학교 남학생들이 단체 카톡방에서 “얼굴이 별로니 봉지 씌우고 먹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한 것이 밝혀져 학교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도 남학생들은 대화 중에 성적인 용어를 남발하고, 아무렇지 않게 “느금마 창녀”라는 말을 하며 웃어재낀다. 초등학교 성교육 강의 때 아이들에게 그 단어의 뜻을 진지하게 설명했더니 낯빛이 변했다. 인식이 바뀌고 의식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음란물 촬영, 공유 등의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녀 성교육과 관련해 부모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보다 부모가 공부를 하고, 가정에서 제대로 성교육을 하길 바란다. 성교육은 ‘하지 마라, 조심해라’ 교육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보호하는 방법이다. 한번은 초등학교 성교육 강의에서 “너희가 얼마나 놀라운 확률도 이 땅에 태어난 줄 아냐”고 말하며 그 확률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러자 아이들이 “내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더라. 양질의 성교육이 가정과 사회에서 꾸준히 이뤄진다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거라 믿는다.


EDITOR 정혜연 기자 사진 홍중식 기자




여성동아 2020년 4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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