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동아 로고

LifeStyle issue

아이들은 어떻게 ‘n번방’ 피해자가 되었나?

EDITOR 이나래

입력 2020.04.10 14:05:13

n번방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는 몰랐다. 우리 아이들도 순식간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어떻게 범죄의 사각지대에 노출됐는지, 그리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봤다.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던 3월 25일, 시민들이 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던 3월 25일, 시민들이 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n번방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3월 초, 한 일간지의 탐사보도를 통해서였다. 보안이 잘 된다고 알려진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성착취가 일어났다는 보도를 듣고 바로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텔레그램의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 했고, 그 다음에는 ‘n번방’이 왜 ‘n번방’인지를 알아야 했다. n번방은 유저네임 ‘갓갓’이 만든 채팅방을 통칭하는 말로, 그는 1번방부터 8번방까지 총 8개의 채팅방을 연이어 만들고 폐쇄하면서 보안을 유지했다. 

n번방 안에서는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성년자의 약점을 잡은 후, 이들을 ‘노예’라고 부르며 성착취를 일삼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 초기에 사건을 취재한 대학생 취재단 ‘추적단 불꽃’의 증언이다. 

“피해자는 대부분 중학생쯤으로 보였다. 개처럼 짖고 있는 아이들,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들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위를 하는 영상은 기본이었다. 영상마다 성기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 지시에 따라 영상물을 직접 촬영해 보내는 것 같았다.” – 국민일보 2020년 3월 9일자 < [n번방 추적기①]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中>


협박, 알바, 혹할 만한 물질적 보상으로 아이들 끌어들여

많은 이들이 분개했지만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분노와 두려움은 더욱 컸다. ‘겨우 사춘기 남짓의 아이들은 어떻게 ‘노예’로 전락한 걸까?’ ‘우리 아이는 과연 안전한가?’하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피해자들은 주로 SNS 상에서 ‘일탈계(일탈 계정의 줄임말)’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n번방의 관리자들은 SNS에 본인의 노출 사진과 함께 ‘#일탈계’라는 해시태그를 업로드한 이들을 대상으로 경찰을 사칭해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였다. “네가 올린 사진이 음란물로 신고됐으니 신상정보를 알리고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는 협박에 대다수의 아이들은 겁에 질려 신상정보를 제공했고, 이후로는 신원 확인을 위한 얼굴 사진, 탈의 사진 등으로 수위를 높여가면서 아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끝없이 가라앉는 수렁과도 같았다. 보도 이후,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고백이 잇따랐다. 사례는 다양했다. 첫 번째로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의 신상을 확보해 협박하는 것이었다. 



“채팅방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제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해 업로드 하는 것 같은데, 직접 찍은 사진을 보내서 본인인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했어요. 셀카를 찍어서 보냈더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제가 보낸 셀카를 알몸 사진과 합성해서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했어요.” 

“비공개 사이트에 제 신상정보가 돌아다닌다는 쪽지를 받았어요. 링크를 클릭했더니 로그인 창이 뜨길래 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쳤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보낸 피싱 사이트였어요.” 

두 번째로는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금전적인 사례를 제안하는 것이다. 단순히 채용 절차쯤으로 여기며 신상정보를 넘겼다가 피해자가 된 경우가 많다. 

“모델 아르바이트라고 했어요. 스튜디오로 갔다가 강제로 노출 사진을 찍게 됐고, 이후로는 협박이 이어졌어요. 응답을 피하면 영상을 퍼트리겠다고 했고, 가족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다고도 했고요.” 

“블로그에 패션이나 뷰티 포스팅을 올렸더니 쪽지가 왔어요. 유명 쇼핑몰의 10대 모델을 섭외하고 있다고 했어요. 아직 프로젝트 확정 단계가 아니라서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지 못하고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사람에게 미리 컨택하는 중인데, 대외비이기 때문에 보안이 좋은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야한다고 말했어요.” 

혹할 만한 물질적 보상을 미끼로 접근하자 경계심 없이 넘어간 케이스도 있다.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가끔 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주면 수백만 원에 최신 스마트폰까지 사주겠다고 했어요. 돈을 보낼 테니 이름과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고, 집주소를 알려주면 선물을 보내겠다고도 했어요.” 

심지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피해자의 부모로 추정되는 이가 쓴 게시물에는 “스마트폰 게임 아이템을 사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접근해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문화상품권을 주겠다고 했다더라, 지금 돌아보니 이런 게 n번방 수법인 것 같다”는 증언도 있었다.


아이에게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알려줘야

이번 사건으로 부모들에게 가장 우선으로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우리 아이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은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나 기관에 쉽사리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뒤늦은 고백을 살펴보면 “학교 상담센터에서는 성 관련 상담은 부모에게 바로 알린다고 들었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가해자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짓(노출 사진 업로드 등)을 왜 했느냐고 혼이 날 것 같았다”, “처음부터 알바를 하려고 한 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는 대다수 피해자에게 공통적으로 나온다. 

권현정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어른이 아이를 지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 편이 돼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믿음이 들어야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는 n번방 피해사례 고백에서 “엄마가 뉴스를 보고 우리 딸이 피해자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부모들은 나쁜 생각을 가지고 청소년을 착취하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가 강력히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또한 낯선 사람이 과도한 보상을 제시할 때는 우선 주변 어른과 상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정에서 함께 이런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혹시라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것 같으면 누구보다 먼저 부모에게 털어놓아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해주는 시간을 가질 필요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애는 방법, 젠더 감수성 있는 아이로 키우기

또 한 가지 부모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포인트가 있다.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4월 7일 추가로 알려진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n번방과 유사한 채널을 운영한 사람 가운데 초등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피해자도, 가해자도 만들지 않고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기를 수 있을까. 유아동 성평등 교육을 위한 도서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의 유지은 대표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성적인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 부모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관념이 올바르게 형성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성교육이 신체 구조, 임신과 출산 등 표면적이고 원론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공교육에서의 성인지 감수성이 시대에 맞추어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우선 가정에서는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조언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적인 궁금증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부모가 당황하지 않는 것이다. 얼버무리거나 대답을 회피하고, 그런 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아이는 성에 대한 이야기는 숨겨야 하는 것 또는 나쁜 것으로 인지하게 된다. 유 대표는 “부모님들이 쑥스럽다는 이유로 성기를 ‘소중이’ 등으로 돌려서 표현한다. 이 역시 아이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로는 스킨십과 보상을 교환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뽀뽀해 주면 사탕 사줄게~”같은 가벼운 보상행위가 나쁜 쪽으로 발전한 것이 바로 “벌거벗은 사진을 보내주면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줄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킨십=대가를 받는 행위’로 인지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아이의 사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지켜주는 것이다. 아이가 예쁘다고 볼을 꼬집거나 뽀뽀를 하는 등의 행동은 아이에게 ‘예쁘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일이 흔히 이어지면 아이는 스킨십을 ‘칭찬’ 혹은 ‘나를 좋아해서 하는 행동’으로 믿게 되고, 그루밍 성범죄에 노출되었을 때 거절하지 못할 수 있다. 아이들이 어른을 대상으로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평소에 부모가 가장 먼저 아이에게 자신의 행동을 고지하고, 아이의 동의를 얻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거절하면 행동을 중단하는 것은 기본이다. 

네 번째로는 사진 촬영 및 공유에 대한 에티켓을 숙지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을 찍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익숙한 상태로 성장하고, 누군가의 사진 혹은 영상을 보는 일에도 매우 익숙하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방의 동이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는 안 되고, 누군가 전체 공개로 올린 사진이나 영상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저장하거나 남들에게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력히 설명해야 한다. 어른 역시도 아이의 사진을 찍을 때는 동의를 구하고, 아이의 동의 없이 사진을 주변에 공유하지 않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기획 정혜연 기자 사진 뉴시스




여성동아 2020년 4월 676호
좋아요

Print Edition

How to be a woman

생각하는 여자가 읽는 매거진!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번호목차이번 호 구입하기

독자알림

더보기

Follow up on SNS

여성동아 에디터가 핫뉴스, 최신 트렌드와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전해 드립니다.

  • 여성동아 페이스북
  • 여성동아 인스타그램
  • 여성동아 유튜브
  • 여성동아 네이버포스트
  • 여성동아 네이버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