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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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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년, 한성주의 시간 꽃으로 피어나다

EDITOR 김명희 기자

2019. 06. 03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한성주가 원예치료 전문가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사생활 동영상 유출 파문 이후 지난 8년간 그녀에게 찾아온 변화와 용기의 원천이 되어준 지인들의 이야기.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았던 일로 행로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한성주(45)의 경우가 그렇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이듬해인 1994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그녀는 졸업과 동시에 SBS 공채 아나운서에 합격, 방송인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녀의 앞에는 항상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여느 잘나가는 여자 아나운서들처럼 재벌가(애경그룹) 며느리로 들어가기도 했다. 채 1년이 안 돼 이혼했지만 방송가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2003년 복귀 후 연기자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2011년 고비가 찾아왔다. 교제 중이던 남성이 그녀와의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을 유출한 것. 이 일로 공인으로서는 물론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치명상을 입은 한성주는 대인기피증으로 연예 활동을 중단한 것은 물론 포털사이트에서 프로필을 삭제하고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그녀가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원예치료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대병원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것은 아니지만 개인 연구원 신분으로 김만호 신경과 교수가 이끄는 팀에서 인지 저하 개선을 위한 기능성 식품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성주의 지인들은 그녀가 갑작스럽게 원예치료 전문가로 전업한 것이 아니라 10년 넘게 꾸준히 원예치료를 공부해왔다고 말한다. 원예치료 전문가는 식물을 이용해 사회적·정서적·신체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돕는 일을 한다. 실제로 한성주는 동영상 유출 사건이 불거지기 전 이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단국대 일반대학원에서 원예치료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한성주는 2007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도시에 살면서 흙냄새, 풀냄새 등 자연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꽃이나 나무 등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료해주는 효과가 있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가 원예치료를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박사과정 수료 후 방송 활동에 주력하던 그녀는 2011년 동영상 유출 사건을 계기로 원예치료학을 더욱 깊게 공부해 2017년 2월 ‘긍정 원예치료 프로그램이 여성 노인 삶의 질 향상에 미치는 효과’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은 65세 이상 여성 노인 40명을 대상으로 2개월간 토기 화분 만들기, 압화로 이름표 만들기 등 원예치료를 실시한 결과 자존감과 대인관계가 좋아져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그녀가 원예치료를 진행한 경기 일산 소재 한 교회 관계자는 “한성주 씨가 몇 년 전 우리 교회를 방문해 원예치료 수업을 했는데 어르신들이 정말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시련 앞에서 묵묵히 한성주를 지켜준 사람들

원예치료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여정은 한성주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녀는 논문 서두에 쓴 감사의 글에서 ‘험난한 시련 앞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준 오빠와, 힘든 시간을 기도로 이겨내주신 부모님께 뜨거운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으며 ‘날개 잃은 이 딸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고난 속에서 인내를, 시련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논문이 쓰이길 바란다’고 적었다. 



또한 그녀는 대학 시절 은사인 강성학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논문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서정근 전 단국대(천안캠퍼스) 생명자원과학대학 학장 등에게도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강 명예교수는 한성주가 시련을 겪고 있던 시절 인생 상담차 어머니와 찾아왔을 때 “용기를 잃지 말고 실력을 쌓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고, 서정근 전 학장 역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공부를 하며 내공을 쌓으라”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두 스승의 공통된 조언이 그녀를 공부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강성학 명예교수와 서정근 전 학장은 ‘여성동아’와의 통화에서 한성주에 대해 “재능과 에너지가 많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라며 제자의 새로운 출발에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정근 전 학장은 “최근 근황을 듣지 못해 궁금했는데 서울대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니 반갑다. 교육자의 가장 큰 보람은 제자가 배움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전 학장은 한성주가 연예계를 떠난 후 봉사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고 전했다. 한성주는 방송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알게 모르게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주로 노인과 어린이 단체, 장애인 시설 등을 방문해 식사나 청소를 돕는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했다. 과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한 관계자는 그런 한성주에 대해 “봉사 활동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다. 그는 특히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많은데,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무엇을 원하는지 척척 알아맞힌다. 편안한 차림으로 봉사 활동에 참여, 침과 눈물로 뒤범벅된 그들을 거리낌 없이 안고 뽀뽀도 한다”고 전한 바 있다. 

취재 중 만난 한성주의 지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녀를 응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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